<마더>와 <세상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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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는 자식의 허물을 눈감아야 하는 한국 어머니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다. 엄마 혜자(김혜자)는 ‘물방개 한 마리도 못 죽이는’ 도준(원빈)이 동네 여고생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누명을 벗기겠다며 스스로 사건 추적에 나선다. 하지만 아들이 진범임을 가리키는 사실 앞에서 이를 평생 비밀에 붙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사회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제 새끼의 죄악마저도 눈감아 줄 수 있는 이기적 모성의 학습을 뜻한다.

모성의 본질을 다루는 까닭에 <마더>에는 엄마를 섹스와 별개의 존재로 바라보는 한국인 특유의 시선이 짙게 깔려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모성의 정체와 엄마를 여자로 인식하지 않는 저변의 의식을 결합하는 이 영화의 핵심 정서는 ‘은밀함’이다. <마더>에서 여자의 특정 신체를 연상시키는 미장센이 은근히 제시되는 이유다. 그중 어두운 약재상 안에서 좁고 기다란 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혜자의 시선은 명백히 여성의 성기를 시각화하는데 극 중 수미쌍관을 이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첫 장면에선 바깥을 보며 작두질하던 혜자가 손을 베어 피를 흘림으로써 생리가 가능한 ‘여자’로 비추는 것에 반해 마지막엔 안전하게 작두질에 성공함으로써 ‘엄마’가 됐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 장면의 구도는 여러 모에서 구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1866)을 연상시킨다. <세상의 근원>은 여성의 성기를 정면에서 응시해 확대한 그림으로 악명이 높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풍만한 가슴과 복부도 노골적이지만 무성한 음모 속에 모습을 드러낸 성기는 지금의 시선으로도 충격적일 만큼 혁신적이다. 특히 이 작품이 여성의 나체를 묘사한 그림들과 전적으로 차별되는 이유는 어떠한 수식 없이 사실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근원>을 작업할 당시 쿠르베는 한창 유행이던 나체 사진에 푹 빠져있기도 했거니와 원래부터 사실적인 묘사로 명성을 쌓아오던 터였다. 다만 이 그림이 외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제목처럼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서는 어떤 영원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쿠르베는 <세상의 근원> 외에도 <잠>(1866) <파도의 여인>(1868) 등 나체를 대상으로 한 그림을 그리는 한편으로 <돌 깨는 사람들>(1849) <루에의 동굴>(1864)과 같은 풍경화를 작업하기도 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대상을 다루는 <세상의 근원>과 <루에의 동굴>이 실은 같은 그림이라고 한다면 믿어지시는가. 우거진 나무로 둘러싸인 검은 동굴 한 가운데로 물이 흘러나오는 <루에의 동굴>의 구도가 그대로 <세상의 근원>에 적용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쿠르베가 자연을 묘사하듯 여성의 성기를 그렸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1819년 프랑스 오르낭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쿠르베는 어릴 적부터 풍경을 관찰하는데 익숙한 삶을 지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드넓은 대지, 씨를 품은 대지 위로 무성하게 피어오른 새싹과 나무들, 그리고 이곳에 터를 삼아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 그의 작품에서 유독 물이 흐르는 광경이 많은 이유는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고 몸의 순환을 돕는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쿠르베는 자연의 풍경 속에서 어머니의 대지를 보았을 테고 세상의 근원을 바라보는 눈으로 여성의 나체를 그렸을 것이다.

<마더>의 약재상 장면이 의도하는 바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뭇한 음모와 같은 약재들 사이에서 위치한 세로 문, 즉 상징적인 성기 이미지 바깥에는 모성의 산물인 아들 도준이 자리하고 있다. 대지 위에 싹을 피워 열매를 맺기까지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듯 엄마의 의무 역시 자식을 돌보아 성장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자궁으로 회귀하고 싶은 쿠르베의 순수한 시선이 느껴지는 <세상의 근원>과 달리 <마더>의 봉준호 감독은 약재상의 성기 이미지를 통해 갈수록 각박해지는 한국사회를 비극적으로 바라본다. 아들의 잘못을 덮어 가정의 행복을 이뤄보겠다고 약자를 밟고 일어서는 이 땅 모든 엄마들의 운명, 즉 세상의 근원이라 할 만한 숭고한 모성신화를 해체하며 그 자리에 비극의 근원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우리가 밝히기를 꺼릴 뿐이지 경험으로 체득한 삶의 방식이다. 떳떳하지 않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인정할 뿐인데 이는 <세상의 근원>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과 맥락을 함께 한다. 이 그림은 현재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감상하고 있지만 원래는 1866년 당시 파리 주재 터키 대사이자 대부호였던 칼릴 베이가 쿠르베에게 주문한 제작품이었다. 애초 개인적인 용도로 제작된 그림이지 공개를 목적으로 한 작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의 근원>이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완성된 지 무려 122년 뒤인 1985년이었다.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열린 쿠르베 회고전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1995년 6월 26일 오르세 미술관을 통해 비로소 공식적으로 등재됐다.

그동안 <세상의 근원>이 개인의 소장품으로 꼭꼭 숨겨져 있었던 이유는 은밀하게 감상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쿠르베가 외설용으로 그린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림을 대놓고 본다는 것은 사회적인 금기에 속했다.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해도 보기 민망한 그림을 공개적으로 감상한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행동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이 그림은 완성되었을 때부터 어떻게 가려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1955년 파리의 한 경매장에서 <세상의 근원>을 구입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초현실주의 화가 앙드레 마숑에게 그림 속 성기를 가리겠다며 덮개 그림을 의뢰한 일화는, 그래서 더욱 유명하다.

<마더>의 혜자가 필사적으로 덮으려는 도준의 범죄를 오랫동안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던 <세상의 근원>의 뒷이야기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금기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금기의 바탕에는 언제나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어미의 공포가 <마더>의 기저에 흐른다면 <세상의 근원>에는 공개됐을 경우 사회적으로 불러일으킬 파장에 대한 두려움이 그림 외적으로 아우라를 형성한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에서 목격되는 공포의 정체는 모두 성적인 영역에 걸쳐 있다. 말하자면,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구분해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작용한 결과다. 엄마를 섹스하지 않는 여자로 바라보는 <마더>의 시선, 매일 같이 보는 신체 일부지만 공개를 꺼리는 <세상의 근원>의 시선, 두 작품은 모두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은밀한 경계 위에서 대중의 관심을 모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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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호

2009 장르영화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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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Moon> 던컨 존스 | 영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더 문>은 <디스트릭트9>와 함께 올해 나온 SF영화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을만하다. <더 문>은 배우 샘 록웰의 열렬한 팬인 감독이 그를 위해 만든 영화. 극중 주인공을 빼면 변변한 캐릭터가 없는 이 영화에서 샘 록웰은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펼친다. 한편으로 샘 록웰의 1인 3역을 비롯해 달기지 사랑을 벗어나지 않는 배경, 7,80년대 SF영화에서나 볼법한 아날로그적인 기지 내부 모습 등 <더 문>은 곳곳에서 저예산의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의미마저 저예산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달에 홀로 남아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의 심리드라마이기도 하며 돈에 눈먼 대기업과 하청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관계를 은유한 사회비판물로도 기능한다. 하여 드라마틱한 감정의 블록버스터를 선사하는 <더 문>은 작은 규모와 달리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작품인 것이다.


<디스트릭트9 District 9> 닐 블롬캠프 | 미국, 뉴질랜드

사용자 삽입 이미지<디스트릭트9>이 8월 14일자 미국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할 때까지 이 영화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딱 하나. 피터 잭슨이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원래 피터 잭슨은 닐 블롬캠프라는 신예감독과 게임원작 영화 <헤일로>를 준비하던 중 <디스트릭트9>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제작을 결정했다. 인간이 외계인을 슬럼가에 격리시켜 착취하고, 이걸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대체역사물처럼 포장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이는 한편으론 피터 잭슨이 초짜 감독시절 꿈꿨던 영화적 야망을 재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설적인 B급영화로 회자되는 <고무인간의 최후>(1987)를 통해 잔인무도하게 외계인을 살상하는 인간을 다뤘고, ‘페이크 다큐멘터리‘ <포가튼 실버>(1996)에서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조국 뉴질랜드의 영화사를 넘어 세계영화사를 다시(?) 썼던 그에게 <디스트릭트9>은 21세기 버전의 <고무인간의 최후>요, <포가튼 실버>이었던 셈이다.


<마더> 봉준호 | 한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봉준호가 <마더>에서 비트는 장르는 ‘김혜자’다. 김혜자라는 장르는 완벽한 어머니 상을 대표한다. 그녀는 한국의 모성신화다. 하지만 봉준호는 모성애의 극단을 보여주겠다며 국민엄마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지만 이 영화는 진범 찾기보다 진범을 찾은 후 이에 대응하는 엄마의 행동을 통해 모성의 극단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자식 때문에 엄마가 미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이 험한 세상 (혹은 부자들만의 나라)을 살아갈 수가 없다. 아버지까지 부재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자식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혜자, 아니 오로지 ‘엄마’뿐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인(murder)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mother)는 괴물의 다른 이름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라면 망각하는 것일 뿐. 봉준호는 김혜자라는 숭고한 모성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모성신화를 완성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쿠엔틴 타란티노 | 미국, 독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타란티노의 첫 번째 전쟁영화이자, 시대물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은 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 잠입한 유태계 특공대의 활약상을 담았다. 다만 인용이 창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타란티노는 <바스터즈>를 전쟁영화인 동시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이자 이탈리아의 지알로 무비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전쟁영화 특유의 진지한 자세라든지 숭고함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타란티노가 영화를 엄숙하게 다뤘던 적이 있었나. 영화를 놀이로 대하는 그는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와일드번치>(1969)까지, 자신이 열광한 영화의 특정 장면을 ‘모아모아’ <바스터즈>를 구성하는 한편 그 잘생긴 브래드 피트의 외모마저도 ‘주걱턱’으로 만들어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얼마나 재미있냐고? IMDB에 오른 관객 평점을 보면 자신의 영화 중 <펄프픽션>(8.9점/10점)을 빼면 가장 높은 점수(8.6점)를 받았더랬다.


<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ies> 마이클 만 | 미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퍼블릭 에너미는 올해 나온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지만 국내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마이클 만이 존 딜린저를 영화화한 이유는 현실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현실이 된 세상에 살았던 첫 번째 인물이기 때문이다. <퍼블릭 에너미>를 보고 있자면 1930년대와 200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불안한 시대는 징후를 부른다. 할리우드의 최근 영화적 전략은 시대의 징후를 포착해 혁신적인 대중영화로 체화하고 이를 체험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마이클 만은 오락성과 예술성을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작가다. 그는 이전부터 장르영화를 다루면서도 영화의 현실성(reality)에 대한 자각을 결코 놓지 않으면서 필모그래프를 발전시켜왔다. <퍼블릭 에너미>는 시각적 체험을 넘어 감정의 체험까지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다. 할리우드 대중영화의 첨단을 이끄는 마이클 만이 이후 작품에서 도달하게 될 영화의 경지가 어디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차우> 신정원 | 한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차우>는 국내외를 통틀어 올해 등장한 장르영화 중 가장 별나다. 식인 멧돼지의 실체는 영화의 중반이 한참 지나서야 공개되고 CG로 구현된 그 모습 또한 조악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차우>에는 괴수의 출현이 야기하는 경이로운 공포감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기상천외한 캐릭터를 앞세워 무질서한 세계를 조장하면서 B급영화의 면모를 과시한다. 애초부터 차우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미션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치환하려는 상황에서 <차우>는 웃음을 유발한다. 차우의 존재를 알리려할수록 사회의 갈등은 더 커지고, 차우를 쫓을수록 피해는 늘어나며, 차우를 잡는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차우를 잡으려고 하는 걸까? 극중 인물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것을 잘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사회는 왜 이 지경일까? <차우>는 정확히 우리의 자화상을 겨냥하고 있다.


<아바타 Avatar> 제임스 카메론 | 미국, 영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바타>는 영화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아바타>는 우리가 영화를 본다는 것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3D영화 <아바타>는 관객을 스크린 앞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뤼미에르 형제가 활동사진을 최초로 상영한 이후 영화가 꿈꾸는 최종 목적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의 꿈을 이룬 ‘세상의 왕’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단순히 기술력에만 있지 않다. 기술력의 최첨단에 있는 <아바타>지만 메시지는 자연과의 융합이다. 이 영화가 수정주의 서부극을 끌어와 SF로 개비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영화란 결국 인간을 말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는 늘 인간과 자본의 대립을 다뤄왔다. 오히려 인간 이외의 미지의 존재는 인간의 친구인 경우가 많았다. <아바타> 역시 다르지 않다. 첨단의 기술이 인간과 결합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가 바로 <아바타>다. 


<박쥐> 박찬욱 | 한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쥐>는 <하녀>로 대변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불균질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한다. <박쥐>의 미학은 <테레즈 라캥>과 뱀파이어의 대척점에서 한국영화사에 존재하는 불균질함과 충돌할 때 생기는 경계의 텍스트에서 발생한다. 그 경계의 특정 지점을 잘 살펴보면 언젠가부터 명맥이 끊긴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녀>를 비롯해 한국의 공포영화들이 즐겨 사용해왔던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갈등을 다룬 이용민 감독의 <살인마>(1965) 같은 작품도 있고(이용민 감독은 <흡혈화 악의 꽃>(1961)을 통해 일찍이 ‘한국판 흡혈귀’를 내세운 적이 있다!), 흑백화면 속에 유독 흰 이미지가 강조되는 서양식 병원을 무대로 옛 애인을 향한 여자의 복수를 다룬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1964)도 있다. 서양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뱀파이어물에 대한 전형을 한국적인 토양 위에서 새롭게 꽃피우려는 박찬욱 감독의 의지가 <박쥐>에는 짙게 배어있는 것이다.


<불신지옥> 이용주 | 한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매년 여름이면 양산되는 수준 이하의 국산 공포영화를 바라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건 <불신지옥>과 같은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불신지옥>은 맹목적 믿음이 만들어낸 불신의 지옥도를 한국적인 풍경 위에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공간의 배경은 물론 공포를 발현하는 방식까지도 ‘현실’이라는 범위를 넘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는 공포물보다 추리물의 성격이 더 짙다. 추리물로의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거시적인 공포를 자아낸다고 할까. 그러니까 실종된 주인공 여동생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은 곧 공포의 정체를 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불신지옥>은 실종된 아이라는 공포분자를 추적함으로써 불신이 어떻게 발생하고 전이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결국 여동생의 실종은 불안한 시대의 황폐한 정신이 야기한 필연의 산물이다. 영화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현실은 상식을 뛰어넘은 우리 사회의 각종 광신의 총합이 빚어낸 비극의 총체다.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샘 레이미 | 미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샘 레이미의 <드래그 미 투 헬>은 2009년 버전의 <이블 데드2>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종류의 공포, 즉 관객에게 비명을 선사하면서 폭소까지 제공하는 놀이동산의 유령의 집 같은 작품인 것이다. 샘 레이미는 공포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에게 공포영화는 표피적인 무서움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의 집단적인 무의식에 스며든 고통의 장르적 발현이다. <드래그 미 투 헬>를 기획하면서 세 편의 <이블 데드> 시리즈를 두고 유독 <이블 데드2>를 염두에 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만 <이블 데드2>와 <드래그 미 투 헬> 사이의 시간 동안 현실은 더욱 무시무시해졌다. (그에 비례해 웃음도 그만큼 늘어났다.) 그러니 샘 레이미가 자기 복제를 통해 도달한 지옥문에는 아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지 않을까. ‘공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샘 레이미가 가학적인 공포영화가 난무하는 지금에 20년 전의 구식 공포영화로 돌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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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09.12.31)

<마더>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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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가 뿔났다. 모성애의 극단을 탐구한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화제다.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박물관이 살아있다2> 등 할리우드 대박영화 틈바구니 속에서 6월 10일 현재 230만 관객을 모으며 연일 매진행렬을 기록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 최초의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아줌마 아니 할머니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중견배우 김혜자 주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차고 넘쳐나는 시즌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흥행 고공행진을 펼치는 이유는 무얼까? 당근 재미있으니까.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을까? 그걸 모르겠다. 이를 알기 위해 본지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는 그의 사무실 1층에 위치한 고즈넉한 카페에서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봉준호 감독은 극중 면회소 구조의 아이디어를 이 카페에서 얻었다며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알려줬는데 이번 인터뷰는 한편으론 <마더>의 뒷얘기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반전이 마구 까발려지고 스포일러가 다수 공개되는 전차로,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못한 독자제위께서는 <마더>를 관람한 후 인터뷰를 열람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그럼 인터뷰 요이 땅!


허남웅 기자(이하 ‘허’) 노무현 전(前)대통령 서거와 개봉시기가 우연히도 겹쳤다.
봉준호 감독(이하 ‘봉’) <마더> 개봉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건 고인에 대한 실례고 한사람의 국민으로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날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깨어 TV를 보고 있었다. 보는데 밑에 자막이 나오더라고. 노태우가 병이 있다더니 죽었나. (웃음) 난 몇 초 정도 노태우인 줄 알았다. 근데 자꾸 봐도 노무현인 거야. 그러고 나서 한동안 패닉상태가 되더라고. 뉴스앵커도 횡설수설하면서 보도하고 손발도 안 맞고. 정말 모두의 패닉이었던 것 같다.

<마더> 관련 행사는 취소 없이 모두 진행했나?
국민장 하는 날도 <마더> 무대인사가 잡혀 있어서 취소할까 했었다. 근데 그날 맞춰서 예매한 관객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김혜자 선생님 이하 원빈이나 우리 모두 검은 옷 입고 근조 검은 리본 달고 차분한 분위기로 무대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마더>는 봉준호의 본격 섹스 영화

<마더>는 진실을 숨기려는 영화다. 다시 말하자면 욕망을 숨기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은폐와 망각은 이 영화의 주된 키워드다. <마더>에는 주제에 이르는 여러 갈래의 길이 숨겨져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 바로 ‘엄마와 섹스’다. 봉준호 감독의 특기는 서로 결합할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것들을 충돌시켜 어색하지 않게 조합해내는 능력이다. 엄마와 섹스라,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긴 하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의견은 다르다. 엄마와 섹스를 왜 별개로 취급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그런 점에서 <마더>의 목적은 ‘왜 엄마는 섹스와 별개의 존재가 되었는가?’를 탐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발단은 ‘발정난’ 아들의 살인 누명죄다.

<마더>가 연일 매진사례다.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이나 <박물관이 살아있다2>와 함께 개봉하니까 <마더>가 상대적으로 어떻게 될까, 난 예상을 못 하겠더라. 다만 엄마들이 많이 오셔서 보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그분들이 ‘공감했다’, ‘내가 엄마라도 김혜자처럼 했겠다’ 그런 반응을 보이면 기분이 좋았다. 

더군다나 당신 최초의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아닌가.
<마더>는 내가 최초로 섹스의 세계를 탐험한 본격 섹스영화지. (웃음) ‘엄마와 섹스’니까 많은 이들이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그런 조합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다.

김혜자 선생님이 몰래 섹스를 보는 장면도 있고. (웃음)
그 장면만으로도 불경한 것 같다. 선생님 본인이 직접 섹스를 한 건 아니지만 숨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낯설지 않나. 더군다나 거기서 섹스 하던 진태(진구)가 후에 ‘웃장 까고’ 다가와서 “씨발 니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웃음) 원래는 “엄마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였는데 촬영 전날에 내가 반말로 바꿨다. 그게 더 강렬한 거 같더라. 주변에서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냐고, 근데 진구한테 보여주니까, “감독님 입에 딱 붙는데요” (웃음) 역시 이 새끼 뭘 아는군. 아주 극악하게 잘 하더라고.  

<마더>의 비극은 결국 도준(원빈)의 발정에서 비롯된 거 아닌가?
도준은 말 그대로 발정난 청년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하지만 한 이불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은 엄마 밖에 없다. 반대로 ‘쌀떡소녀’ 문아정(문희라)은 남자가 싫다. 섹스가 싫은데 생존 때문에 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 둘이 만났기 때문에 비극이 일어난 거지. 처음엔 엄마가 진태의 섹스를 엿보지만 나중엔 마을 전체의 섹스를 보게 되는 것처럼 <마더>는 정말 섹스에 대한 영화다. 진흙탕 같은 섹스의 세계로 돌진하게 되는 엄마의 이야기지.

그래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가 됐다?
우리 나라는 왜 이렇게 엄마에게서 섹스를 격리시키는지 몰라. 엄마가 아빠와 섹스해서 자기가 생겨난 건데 그 한 번만 인정하고 싶은가봐. 자식이 셋이면 우리 엄마가 세 번 했나봐, 거기까지만 인정하려고 하나봐. 삼십, 삼백 번 했다는 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와 섹스를 분리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가 됐다. (웃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은 수익 면에서 모험일 수 있었을 텐데 회사에서 반대는 없었나?
제작사가 착해서 그렇게 압박은 없었다. 보통 제작사 입장에서는 15세 관람가에 대한 미련이 많을 수도 있고 징징 사정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마더>가 영화 분위기나 폭력적인 느낌, 사건 자체가 15세가 안 될 것 같으니 차라리 우리는 확 가는 게 낫지 않냐, 주춤주춤하면 오히려 손해인 것 같다 그러니까 선뜻 동의해줬다.


<마더>를 향한 논란

봉준호 감독은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욕망은 늘 범죄드라마를 향한다. <마더>는 그중에서도 가장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그래서 끝까지 은폐와 은폐를 거듭하는 이야기를 상대로 엄마는 준(準)수사관이 되어 탐문과 추리, 목격담을 통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해간다. 하지만 진실이 확인된 순간, 이 영화는 모든 것이 뒤집어진다. 추리소설의 재미가 폭발하는 지점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때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질문한다. “가슴 찢어지는 자식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 당신이 엄마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현재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마더>를 향한 논란과 궁금증은 결국 이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앞선 작품들에 비해 강하다.
범죄드라마니까. 오히려 그쪽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엄마 얘기를 많이 해서. (웃음) <마더>도 어떻게 보면 되게 독특한 구조의 범죄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범죄영화를 찍어왔다.
그렇다. <괴물>도 사실 표면적으로는 괴수물이지만 유괴영화다. 유괴범이 괴물이라 그렇지. (웃음) <살인의 추억>은 명백하고. <플란다스의 개>는 나름 범죄영화로 찍은 건데 너무 ‘짜쳐서’ 그렇지. 기껏 옆집 개를 죽이면서 전혀 심각하지도 않았고. 흐흐흐. 이번에 <마더>는 되게 독특하고 강하긴 한데 굵고 크기보다는 가늘고 예리한 범죄영화가 아닐까 한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괴물>은 맥팔랜드 사건을 인용했다. <마더>에도 실제 사건에서 영향 받은 이야기가 있나?
핵심 줄거리나 모자 관계에는 없다. 다만 문아정이라는 친구를 둘러싼 사건만 놓고 보면 비슷한 사건이 꽤 있다. 그중 어느 농촌 마을의 동네 남자들이 핸디캡이 있는 아이를 암묵적으로 돌아가면서 했다. 천원만 주면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서 사건이 커진 경우가 있었다. 나중에 여자 아이가 실토를 했는데 오십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관계가 됐었다. 그걸 그 전에 목사가 고발하려고 했다가 온 마을이 뒤집어져서 동네 사람들이 목사를 미친놈으로 몰고 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거든. 이 외에도 비슷한 사건이 많다. 내가 자료를 다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문아정 관련 이야기는 그런 사건에 기반을 뒀다.  

추리 부분에 많이 집중한 작품인 만큼 봉준호 영화 특유의 엇박자스러운 느낌이 많이 줄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단순하고 심플하고 강렬한 느낌을 많이 추구했다. 영화 라스트에 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마지막 펀치를 위해 아끼면서 갔다. 영화의 전체 리듬도 그런 쪽으로 많이 생각했다. 엇박자스러운 건 진태 집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섹스 장면 목격할 때 애들이 끝말잇기 하는 에피소드가 유일한 것 같다. 그 뒤에 벌어지는 일들은 아주 스트레이트하게 아정의 진실과 도준의 진실이 논스톱으로 달려가니까.

영화를 본 관객 중에 도준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을 두고 얄팍한 트릭이라고 생각하는 반응도 있다.
불편한 진실이 참 불편하다 이런 게 아닐까. 어쩌겠어요, 할 수 없지. (웃음)

문아정 부분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쌀을 받고 남자들과 관계 할 수 있냐, 말도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알고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그렇지 누가 지금 시대에 쌀 가지고 그럴 수 있냐 지적하는 관객이 있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얘기다. 단돈 오백 원, 천원 가지고도 그런 일이 일어난 적도 있고 아무튼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별의 별 사건이 다 있다.

<마더>에 관한 반응 중에 인상 깊었던 건 무엇이었나?
애기 엄마 친구가 영화 보고 나서 전미선이 범인인 거 같데. 으하하하. 그 얘기 듣고 너무 황당해서 왜 그런지 물어봤다. 전미선이 계속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침도 맞고, 약도 먹고 자신은 그렇게 노력을 하는데 정작 남편은 문아정과 했다는 거다. 그 사실을 알고 분노한 나머지 문아정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는 온 동네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시체를 옥상에 널어뒀던 거지. 내가 이 화냥년을 죽였다, 동네사람들에게 경고하려고. 재미있는 얘기였는데 내가 할 말이 없더라. (웃음)

고물상 할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더라.
그 할아버지가 문아정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맞다. 손님이니까 그녀의 핸드폰에도 나온 거겠지. 다만 문아정을 기다리고 있을 때 사건이 터진 거고 그러니까 자기도 켕기는 게 있어서 신고를 안 한 거겠지. 물론 거기서 더 깊게 생각하면 고물상 할아버지의 거짓진술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관점도 나올 수 있겠더라. 영화 속에서 그 사람 말이 진실이라는 걸 가정한 거니까. 도준의 살인을 회고하는 장면도 고물상 할아버지의 관점인 거고. 원빈도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 고물상 할아버지가 거짓말하는 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1%라고 남겨놓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러면 도준은 결백한 거 아니냐고.

도준이 바보이긴 한데 농약 박카스 먹은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 걸로 봐서는 꽤 영악해 보이는 측면도 있더라.
안 그래도, 이게 ‘도준의 복수극이다’라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서 조회 수가 6만 건을 넘길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엄마가 농약 박카스를 먹인 거에 대한 복수로 지금까지 바보 연기를 해왔다는 거지. 그럴 듯하게 끼워 맞췄는데 억지야. (웃음) 하지만 그 개념이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니다. 나도 시나리오를 쓰다가 최종 탈고하기 두 달 전 노트에 서브텍스트 상으로 봤을 때 도준의 복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메모를 적은 적이 있으니까. 동반자살을 동반살인으로 되갚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엄마 손에 피를 묻히게 되니까. 근데 그건 넓게 봐서 그런 거고 도준이 20년 넘게 바보 연기를 하거나 그런 개념은 아니다. 그냥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럴 수도 있다 정도의 개념이지.  

전작의 제목들은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하나같이 한국어를 고수했다. 근데 왜 <마더>만 영어인가 했더니, 마더(mother)와 머더(murder)가 겹치더라.
내가 그 얘기를 했는지, 누가 그런 억측을 한 건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처음엔 <엄마>로 하고 싶었다. 엄마라고 부르는 느낌이 원초적이지 않나. 그런데 살펴보니 고두심 씨가 출연했던 <엄마>(2005)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더라. 불가피하게 <마더>로 바꿨다. 마더를 한글이라고 생각하고 자꾸 반복해서 얘기해봐, 되게 기분 이상해진다. 마. 더. 사장님, 여기 ‘마’ 좀 ‘더’ 주세요. 푸하하하.

요새 많이 힘든가?
내가 요즘 개봉하고 나서 힘들어서 그래. 내가 이렇게 어이없진 않은데. (웃음)

안 그래도, 이번 영화 촬영은 유독 힘이 들었다고?
내가 이제 겨우 나이 마흔 된 건데 체력이 되게 안 좋아졌나봐. 쪽 팔려서 어디 가서 얘기도 못하겠고. 촬영감독 (홍)경표 형이나 김혜자 선생님이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힘들다 아프다 이럴 수도 없고. 촬영 초반에 잠깐 아팠던 적이 있었고 후반 작업할 때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예민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기술시사 직전이 절정이었다. 내가 지금 모하고 있는 거지, 밖에 나가서 고양이를 죽일까, 죄 많고 힘없는 사람 없나, 죄책감 없이 패주게. (웃음) 칸 영화제를 전후해서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상태다.

그렇게 힘들었다는데 살은 예전보다 더 찐 거 같다. (웃음)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니까. 현장에 있으니까 섹스는 막혀 있고 식욕으로 푸는 거지. 여관방 숙소에서 혼자 치킨 시켜 먹고. 바닥에는 치킨 껍데기 사방에 흩어져있고 말이야. 이렇게 얘기하니까 되게 비참하다. (웃음)


김혜자를 비틀어라

봉준호 감독은 장르 비틀기가 특기다. 할리우드의 장르를 가져와 익숙한 전형을 배반하고 이를 통해 한국형 장르를 지향한다. <살인의 추억>은 끝내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미스터리 스릴러의 공식을 배반했고, <괴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을 주인공 삼아 초인적 영웅을 편애하는 할리우드와는 차별되는 한국형 괴수물을 창조했다. 결국 봉준호 감독의 장르 비틀기는 그동안 한국사회라는 수면 아래 침전해 있는 온갖 부조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때 작동한다. <마더>에서 봉준호는 ‘김혜자’를 비튼다. 김혜자는 한국의 완벽한 어머니 상을 대표하는 장르다. 하지만 봉준호는 국민엄마의 이미지를 무너뜨리며 한국의 모성신화를 새로 쓴다.

한국에서 김혜자는 ‘모성’이란 장르다. 하지만 <마더>에서 ‘국민엄마’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장르를 비튼다는 건 배반의 쾌감인데 <마더>는 기다림이 필요한 배반이지. 대신 영화 초반에 이에 대한 예고는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춤추는 오프닝이나 작두 써는 모습은 우리가 이전까지 보아왔던 혜자 선생님과는 다른 모습이니까. 그렇게 선전포고를 해놓고 뒤에 가서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흐름을 생각했다. 그게 내가 이 영화를 만드는 쾌감이었다. 김혜자 장르의 변주와 파괴.

김혜자 선생님의 여러 인터뷰를 보니 굉장히 순수한 분인 것 같더라.
소녀지 소녀. 진공의 세계 속에 갇혀 있는 소녀 같은 느낌이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비현실이었다가 어느 때는 되게 세속적이실 때도 있다. 눈이 막 꿈꾸는 것 같은 느낌인데 굉장히 복합적인 분이시다.

게다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분을 가지고 살인을 하게 만들다니!
으하하하. 몽키 스패너로 두개골을 가루로 만들어버리시는 사상 초유의 일을 벌이셨지. 정말 그 장면 끔찍해. (웃음)

김혜자 선생님은 그 장면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던가?
되게 좋아하던데. (웃음) 2005년 처음 이야기를 만들 때, 물론 구체적인 디테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러이러해서 광기로 치닫다가 사람을 XX하게 된다니까 너무 하고 싶었다면서 좋아하셨다. 더 잔인하게 찍으시고 싶은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보이신 적도 있어. (웃음) 

자기도 이상적인 어머니 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나보다.
드라마 포함 수백 편을 하셨는데 사람을 죽인 적은 딱 한 번인가? 대중들은 기억을 못하지만 <수사반장>에서 남편을 죽인 아내 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더라. 근데 공중파 방송이니까 암시적인 묘사였겠지. <마더>에선 그 장면 찍으시면서 최초의 어떤 짜릿함이 있으셨다고 하더라. 혜자 선생님의 그런 모습을 본 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기분이 이상했다. 지난 4,5년 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이미지를 마침내 찍어버리니까. 제천에서 찍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공개된 촬영현장 스틸을 보니 두 분이 다정하게 모자처럼 있는 경우가 많더라.
우리는 서로 사랑했지.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웃음) 시나리오 때부터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이견이 생기는 경우가 없었다. 해석이 다르거나 그런 게 아니라 연기를 덧붙이거나 재미있게 바꾸려고 다르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게 전미선 씨와 농약 얘기할 때. “그람옥선 탔으면 그때 죽었을 텐데 내가 마음이 약해서 론스타를 탔어. 그게 약하거든” 되게 끔찍한 사건인데 웃기게 얘기하신다. 원래 혜자 선생님은 정통파 방식으로 슬프게 하셨다. 그게 나쁜 건 아닌데 내가 재미없었다. 역으로 완전 다르게 가보자 해서 이런 느낌을 보여드렸더니 금방 재미있어 하셨다. 선생님 본인이 그런 걸 좋아한다. 오픈돼있다. 내가 엉뚱한 걸 몇 번 주문한 적이 있는데 그걸 되게 잘 흡수하시니까 내가 연출하는 재미가 있었다.

문아정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하는 장면에서의 악귀 같은 표정도 인상적이었다.
일명 ‘광기의 레이저’ 찍다보니 그렇게 됐다. (웃음) 혜자 선생님 본인도 굉장히 놀라셨다. 모니터 보면서 약간 흉하다 생각하셨는지, “어머 내 눈이 왜 저래? 이 장면 쓸 거예요?” 근데 그 표정은 절대 다시 나올 수 없는 거라 나와 스태프들은 그 필름이 현상사고 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그 장면은 마치 성수대교가 붕괴하는 순간을 찍은 뉴스릴과도 같은 거다. 절대 재현될 수 없는 느낌이랄까. 자기 몸을 기계적으로 사용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 감정과 느낌에 몰입하는 순간, 바바바박 된 거다. 그러니까 자기도 모니터 보면서 놀라신 거고. 

몇 번 만에 얻은 표정인가?
6~7번 간 거였는데 몇 가지 변주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정서적으로 2만 볼트 전류가 올라오셨나봐. 나한테는 혜자 선생님 눈의 실핏줄이 터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모세혈관이 두두둑 끊어지는 환청이 들렸다. 사실 그 자리에는 안 가도 되는 건데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아들 욕하는 거 생각하면 이 엄마는 견딜 수가 없는 거야. 일당백으로 혈연단신 찾아가서 자기 자식이 안 그랬다고 선언을 하지 않나. 일견 미친 여자 같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다니까. 그래서 “내 아들 미워하지 마”란 대사가 나온 거고. 그게 한국 엄마들의 특징인 것 같다. 사람들이 보는 내 자식의 모습에 되게 민감해하는 거. 

엄마라면 무척 공감할 만한 장면이다.
뺨 맞고 나서는 바로 내려가서 립스틱 바르잖아. 공석호 변호사(여무영) 만나러 가려고. (웃음) 그게 우리 엄마들의 모습인 거 같다. 자식 때문에 온갖 굴욕과 모진 꼴을 당하시잖아. 자식이 사고 치면 담임선생님 앞에서 무릎 꿇고 맞은 애 엄마한테 싹싹 빌고.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집에 와서는 자식 먹이려고 콩나물 다듬고. 난 그걸 컷만 싹 붙인 거지. 흐흐흐. 엄마들은 그 장면 보면 바로 느낌 올 거야. 엄마들은 되게 몰입해서 보더라고. 

모성이라는 게 세계적인 보편성인데 한국관객과 칸영화제에서 만난 외국관객이 다르게 반응하는 지점이 있나?
나라 별로 반응을 체크해보지는 않았지만 비슷하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우리가 2002년 월드컵에서 이겼던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다혈질 벨트 쪽이 상대적으로 <마더>에 더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괴물> 프로모션 때 해외를 다니면서 <마더>에 대해 극단적인 엄마 이야기다, 코리안 마더가 워낙 세다, 라고 가볍게 얘기한 적이 있다. 폴란드계 프로듀서는 너 몰라서 하는 얘기다, 폴란드 마더가 짱이다, 그러면 옆에 있던 이탈리아계는 너희 다 비켜라, 이탈리아 마마보이 유명하지 않나. (웃음) 근데 미국이나 이런 쪽은 잘 모르겠다. 걔네들은 히치콕으로 <마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좀 더 장르적으로 보는 것 같고, 일본은 한국과 정서가 비슷한 만큼 더 깊숙이 엄마에 대한 부분으로 접근할 것 같다.


엄마는 괴물이다

결국 봉준호가 <마더>를 통해 새롭게 쓴 한국의 모성신화는 실은 ‘엄마=괴물’이란 공식을 밝히는데 있다. 많은 이들이 도준의 살인을 두고 진범이 누군가에 대해 설왕설래를 거듭하지만 실은 이 영화는 진범을 찾은 후 이에 대응하는 엄마의 행동이 더욱 중요하다. 이를 통해 모성의 극단을 탐구하는 것이야 말로 <마더>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자식 때문에 미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봉준호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한다. 봉준호 영화에서 약자는 늘 주인공이었고 약자를 배제하는 사회구조에 맞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다가 결국 약자끼리 연대했다. <마더> 역시 약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안타깝게도 더한 약자를 밟고 일어서야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다.

많은 관객들이 반전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극단적인 모성애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 도준이 아정을 죽였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엄마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영화다. 근데 범죄드라마나 스릴러의 외양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관객의 촉각이 곤두서는 것 같다. 오죽 곤두서면 전미선까지 의심하겠어. (웃음) 사실 도준이 그렇게 했다는 건 어떻게 보면 되게 단순한 결론이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고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그렇게 생각을 안 하게 되는 거다. 근데 사전정보 없이, 아무 예측 없이 본 관객들은 도준이 던진 돌에 문아정이 맞는 장면에서 엄청 비명 지르더라고.

그 장면 뿐 아니라 영화 전체적으로 무서운 분위기가 지배한다.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웠다는 젊은 여자 관객도 있었다.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학습된 거라고 한다. 그런데 인간이 아무런 학습이나 경험 없이도 느끼는 원초적인 공포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가 고소공포증이고 또 하나가 어둠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준이가 어두운 골목 속으로 들어가는 아정을 볼 때 카메라가 어둠을 향해서 죽 가고 그런 다음에 시점이 바뀌어서 어둠 속에서 도준을 바라보는 전환은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준이 고물상 할아버지를 목격한 것처럼 돼서 엄마가 그 할아버지를 잡으러 가게 되는 건데 사실은 그 반대다. 할아버지가 안에서 밖에 있는 원빈을 본 거다. 그 시점이 전환됨으로써 모든 게 붕괴되고 어둠 속으로 추락한다. 이미 어둠을 보는 순간부터 근원적인 공포를 느끼는 거다.

그러면서 엄마는 괴물이 된다.
그렇게 보는 시각이 꽤 있다.

<괴물> 때도 괴물이 엄마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마더>에서는 ‘엄마=괴물’이란 공식이 더 확실해진 것 같다.
새끼 때문에 원초적인 짐승이나 야수가 되는 순간을 보여주려고 했다. 새끼를 보호하려고 이빨을 으르렁 으르렁 할 때 그 순간은 사실 선도 악도 아니다. 도덕의 영역을 벗어난 부분이다. 엄마가 그 순간이 되는 지경을 묘사했다. 그게 관객 입장에선 충격적이면서 불편할 수 있었겠지만 그래서 엄마가 괴물일 수 있는 것 같다. <괴물>에서는 엄마 자리에만 사람이 없었는데 <마더>에는 엄마가 중심에 있고 대신 아빠가 없으니까, 결국 이상한 범죄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웃음)

<마더>의 설정은 어쩔 수 없이 구원을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괴물 같은 사회가 그렇게 몰아간다.
모성이 구원이라는 말에는 어머니한테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나. 그럼 어머니들은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들은 누군가를 보듬고 보호해주고 구원해준다. 이런 것들은 어머니 본인의 의무감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들은 벼랑 끝에 놓인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그게 <마더>에서 굉장히 중요한 감정으로 작용한다. 어머니들은 불쌍하잖아, 눈물 나고 가슴이 쓰라리고. 그런 감정적인 경로를 통해서 엄마라는 존재에 접근해 들어갔다.

외국 평자들은 히치콕과 많이 비교한다. 개인적으로는 <마더>의 갈대밭 오프닝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대평원 장면과 겹쳐지더라. 남자 주인공이 사방이 뻥 뚫린 평원에서 비행기에 혈연단신으로 쫓기지 않나.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막막한 상황이 <마더>와 일치한다.
신선한 얘기다. 정말 <마더>의 엄마는 홀로된 고독한 존재지. 그게 우리 영화의 주된 이미지다. 오프닝 말고도 넓은 공간에서 이 엄마가 혼자 가는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진태 집에서 골프채 찾아 혼자 가는 장면도 그렇고 고물상으로 가는 클라이맥스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엄청나게 롱숏으로 잡고 주변이 음산하게 나무들이 있고 운명적인 음악이 흐르면서 혜자와 고물상 할아버지가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리고 엄마가 고물상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 운명이 완전히 바뀐다. 진흙탕에 찍 미끄러지듯이 가지 말았어야 할 곳이었다.   

그래서 2.35:1의 화면을 선택한 건가?
출발은 그게 아니었다. 근데 1.85:1로 했으면 그게 좀 답답했을 텐데 2.35:1을 사용하니까 그런 구성을 하기가 좋더라. 남들은 스펙터클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2.35:1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취향이 이상해서 그런지 그 사이즈를 보면 마음이 불안해. 옆으로 길쭉해서 그런가, 뭔가 기우뚱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사이즈에서 인물을 한쪽으로 몰면 공간이 언밸런스해지면서 불안정해지는데 <마더>가 불안과 히스테리를 다루니까 거기에 매혹됐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의외로 얼굴 두 개가 나오는 장면이 별로 없다. 2.35:1은 사람들이 측면에서 마주보는 구도가 많은데 <마더>는 한 명이 나오는 장면이 대부분이다. 이건 의도한 바다. 2.35:1에서 클로즈업을 세게 들어가면 머리와 턱 부분이 잘라진다. 그래서 혜자 선생님의 미묘하게 불안하고 타이트하게 드러난 눈이 이만하게 나오는 장면을 찍고 싶었다.

의도적으로라도 <괴물>과는 다르게 만들겠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전작과는 차별되는 요소가 많다. 아버지가 부재하고 실재적인 공간이 등장하지 않고 결말도 나름 명확하다.
<괴물>이 망치로 사람을 통통 치는 영화였다면 <마더>는 종이에 싹 베일 때 쓰라린 느낌과 같은 영화다. 또한 <괴물>은 여러 가지를 한 데 녹여낼 수 있을까, 잡탕을 잘 끓일 수 있을까에 집중했다. 반면 <마더>는 올림픽 구호처럼 따진다면 더 높이, 더 멀리가 아니라 단순하게 깊게 강렬하게가 모토였다.

게다가 약자와 약자끼리 먹이사슬을 형성하는 경우도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그걸 떨어져서 전체를 바라보는 우리는 되게 슬픈 거지. 엄마가 불쌍한 것도 알고 종팔(김홍집)이 불쌍한 것도 아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가슴 아픈 거다. 실제로도 우리 생활이 그렇지 않나. <마더>는 특히 이야기 구조 자체가 그런 게 심한 거 같다. 문아정 되게 불쌍하다. 이 불쌍한 아이를 또 다른 불쌍한 애인 도준이 죽이고, 더 불쌍한 종팔이가 그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간다. 이 모든 걸 알고 있는 엄마만 그 고통을 껴안으면서 침 맞고 춤을 추며 끝나는 거지. 참 잔인한 영화에요. (웃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금 시대에 굉장히 어울리는 은유적 설정이다.
내가 작품을 하는 게 항상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 영화를 준비하기 때문에 시사적인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임한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다. 바보 노무현과 바보 도준을 묶어서 설명한 글도 있다.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약간 억지스러운 느낌? 나야 3년 걸려서 찍더라도 관객은 그 시점에서 보는 거니까 당연한 해석인 것 같다.

엄마가 교도소를 찾아가 종팔이에게 “너 엄마 없어?”라고 묻는 지점에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더라.
만인의 심금을 울린 그 대사는 나와 함께 작업한 박은교 작가가 쓴 대사다. 사실 엄마도 범죄자다. 그렇게 말하고 울면서 옆에 형사 제문(윤제문)이 있는데도 절대 얘기를 안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엄마를 어쩔 수 없이 미워하지 못한다. 왜 그런지 다 아니까, 거기서 오는 죄책감이 관객을 진퇴양난에 빠뜨리는 거 같다. 그나마 엄마가 종팔이한테 차리는 유일한 예의라면 도준이 출소를 할 때 마중을 안 나가는 거다. 

매 작품 다른 작가들과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손태웅, 송지호 작가, <살인의 추억>은 심성보 작가, <괴물>은 하준원, 백철현 작가, 그리고 <마더>는 박은교 작가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내가 영상원 강의 나갈 때 내 수업 들었던 학생들이다. 난 프로작가와 일해 본 적이 없다. 나와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면 연출부나 스크립터를 했다. 그 말의 의미는, 나와 2~3년은 보내게 된다는 거다. 인고의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다. 나랑 함께 하면 몸이 한두 군데가 망가진다. <괴물> 때 하준원은 같이 시나리오 쓰고 스크립터 한 후 나의 개인 영화 학교를 졸업한 셈인데 얼굴에 경련 오고 결국 수술까지 받았다.

박은교 작가는 어떤가? 건강하게 잘 살아있나? (웃음)
박은교 작가는 잘 버틴 편이었다. <마더>가 내가 했던 영화들에 비하면 프리프러덕션 시작해서 개봉할 때까지 기간이 제일 짧았다. 모든 공정이 1년 안에 끝났으니까. 작년 4월에 연출부가 출근하기 시작했으니까 정확히 1년 만에 작업을 마친 거다.


<설국열차>로 만나요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은 잘 알려졌다시피 제작자 박찬욱과 손잡은 동명의 프랑스 SF만화 <설국열차>다. 그의 작업방식이 늘 그렇듯 <설국열차>는 이미 <마더> 연출하기 전부터 시나리오 작업이 시작돼 현재 1차 원고가 탈고된 상태다. 봉준호 감독은 이를 토대로 조만간 시나리오 수정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설국열차>를 스크린에서 조우하기 위해서는 이번 역시 3년을 기다려야 한다. 봉준호 감독은 늘 3년 터울로 장편을 발표해왔다. 다만 그는 당분간 좀 쉬고 싶다고 말한다. <살인의 추억> 이후로 <마더>까지 쉴 새 없이 달려온 터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은 조만간 ‘뿅~’ 사라질 예정이다.

<설국열차>의 1차 시나리오는 SF소설가 김보영(<미래를 가는 사람들><7인의 집행관>)이 작업했다. 
시나리오 경험이 없어서인지 그분이 쓴 버전은 영화적인 틀이 갖춰져 있지 않다. 원작의 설정을 토대로 자유롭게 에세이나 소설을 쓴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올 여름부터 완전히 새롭게 쓰려고. 전체적으로 완전히 다를 것 같다. 다만 그분이 쓴 시나리오를 보면 단편적인 아이디어나 과학적 배경지식이 엄청 풍부하다. 그런 것들이 좋은 바탕이 될 것 같다.

올 여름에 시나리오 작업 들어가면 별로 쉴 시간도 없네?
요즘 인터뷰할 때마다 다음 달부터 <설국열차> 시나리오 쓴다고 얘기하는데 (목소리가 작아지며) 사실은 내년부터 쓸 거야. 금년엔 놀려고. ‘찬욱팍’이 이 사실을 알며 쪼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 쓴다고 얘기하는 거지. 흐흐흐. 금년은 남은 기간이나마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3년 터울로 영화를 개봉했지만 준비기간도 그만큼 만만치 않았으니 그동안 휴식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겠다.
내가 <마더>를 개봉시키고 과거의 일을 반추해보니까 2002년부터 논스톱으로 6년을 달려온 거 같다. <플란다스의 개>는 쫄딱 망했기 때문에 개봉하고 나서도 널널했는데 2001년 <살인의 추억> 발동 걸리면서 한영애 뮤직비디오, 단편 <싱크&라이즈>, 디지털 삼인삼색 <인플루엔자> <괴물> <흔들리는 도쿄> <마더>까지 미친 듯이 작업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이번에 반년이나마 쉬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럼 휴식기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놀 건가?
6월 말에 스위스의 뉴샤텔 영화제라고 부천 판타스틱과 비슷한 영화제인데 거기 심사위원을 맡았다. 영화제 끝나면 안 돌아오려고. 알프스 주변으로 당분간 사라졌다가 8월 쯤 돌아올 예정이다. 9월에는 산 세바스찬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할 예정이라 그땐 스페인 근처에서 사라질 거다. (웃음)  사진 편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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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6.9)

<마더>의 혜자가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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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오프닝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반듯한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김혜자가 추레한 몰골로 광활한 갈대밭을 헤매다가 느닷없이 막춤을 춘다. 얼굴을 보면 넋이 나간 표정이 역력하다. 정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김혜자가 미쳤다! ‘국민엄마’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봉준호에게 장르는 익숙한 형식의 전형이 아니라 비틀기의 대상이다. <살인의 추억>은 끝내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미스터리 스릴러의 공식을 배반했고, <괴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이 등장해 할리우드와는 차별되는 한국형 괴수물을 창조했다. 봉준호가 <마더>에서 비트는 장르는 ‘김혜자’다. 김혜자라는 장르는 완벽한 어머니 상을 대표한다. 그녀는 한국의 모성신화다. 하지만 봉준호는 모성애의 극단을 보여주겠다며 국민엄마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마더>의 오프닝은 그런 감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목적은 극중 엄마인 혜자가 미친 이유를 밝히는데 있다. 발단은 아들 도준(원빈)의 여고생 살인 누명 죄다. 엄마에게 도준은 “물방개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애”다. 그녀 입장에서 보건데 아들이 잡혀간 이유는 순전히 좀 모자란 아이이기 때문이다. “항상 만만한 게 우리 도준이지”라고 형사 제문(윤제문)을 원망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권력에 대한,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이 스스로 도준의 무죄를 추적하기에 이른다.

<마더>는 봉준호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엄마가 준(準)수사관이 되어 탐문과 추리, 목격담을 통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해가는 방식도 그러하거니와 그 과정에서 봉준호 월드 특유의 엇박자스러운 느낌이 상당 부분 배제돼있다. 심각한 순간에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이 영화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더>는 전작과 비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공포를 자아내는 시점이 (도준이 사건에 연루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엄마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자식 잃은 혹은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어미의 공포가 짙게 배어있는 것이다.

봉준호의 전작들을 보면 자식(과 아이들)은 하나같이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엄마 뱃속에 있거나(<플란다스의 개>),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하고(<살인의 추억>), 납치당한 후 주검으로 돌아온다(<괴물>). 급기야 <마더>에서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기까지 한다. 기본적으로 봉준호 영화의 기저에는 부모의 공포가 깔려있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마더>와 <괴물>은 직접적으로 가족을 다루는 까닭에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두 영화는 모두 가족의 사투를 다루지만 <괴물>은 부성을, <마더>는 모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일종의 상대급부로 기능한다. <괴물>이 아버지의 성장을 다룬다면 <마더>는 엄마의 성장을 그린다. 더 정확히는 주인공 혜자가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는 엄마를 여자로 인식하지 않는 저변의 의식에서 출발한다. 엄마를 섹스하지 않는 무성의 존재로 바라보는 한국인 특유의 시선이 담겨있는 것이다.

<마더>에서 노골적으로 제시되는 성적인 코드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너 여자랑 자봤어?” “어” “누구?” “엄마” 진태(진구)와 도준이 나누는 얄궂은 대화에서부터 한 이불에서 서로의 몸을 밀착하는 모자간의 잠자리, 진태 집에 몰래 숨어들어간 혜자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질펀한 섹스까지. 그중 어두운 약재상 안에서 좁고 기다란 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혜자의 시선은 명백히 여성의 성기를 시각화하는데, 동일한 장면이 수미쌍관을 이룬다는 점에서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첫 장면에선 바깥을 보며 작두질하던 혜자가 손을 베어 피를 흘림으로써 생리가 가능한 ‘여자’로 비추는 것에 반해 마지막엔 안전하게 작두질에 성공함으로써 ‘엄마’가 됐음을 알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혜자가 미친 이유를 밝히는 영화의 목적은 곧 엄마는 왜 섹스와 별개의 존재가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이를 작동시키는 변곡점은 아들 도준의 살인사건이다. 사건 전까지 이들 모자관계는 어쩌면 남녀관계일 수도 있을 만큼 모호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명을 쓴 줄 알았던 도준이 실은 진범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혜자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오프닝에 제시됐던 그녀의 넋 나간 얼굴을 다시 한 번 클로즈업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표정에서 하나의 질문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가슴 찢어지는 자식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 당신이 엄마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마더>는 진범 찾기보다 진범을 찾은 후 이에 대응하는 엄마의 행동을 통해 모성의 극단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자식 때문에 엄마가 미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 <마더>의 목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말을 빌자면, “<남극일기>의 도달불능점처럼 모성의 최극단에 가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도준이 진범임을 밝히면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간다. 거기에는 제 새끼의 죄악마저 눈감아 줄 수 있는 이기적 모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결국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함인데 다만 혜자의 모성이 더욱 지독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이를 희생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혜자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시키는 대상이 자신보다 더 약자라는 데 있다.

봉준호 영화에서 약자는 늘 주인공이었고 약자를 도와주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과 사투를 벌였으며 그래서 약자끼리 연대했다. <마더> 역시 약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강자에 대항하기는커녕 약자와 약자끼리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다. 약한 자를 밟고, 약한 자의 지분을 빼앗아야만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이 험한 세상 (혹은 부자들만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엄마=괴물’이라는 등식은 전작 <괴물>에서 이미 등장했었다. 한강에 방류된 독극물, 즉 한국에 존재하는 온갖 부조리를 씨앗삼아 태어난 괴물은 강두(송강호) 가족에게 부재한 엄마의 상징이었다. 단적인 예로, 강두가 괴물의 입에서 딸 현서를 꺼내는 장면은 출산에 다름 아니었다. 다만 강두는 현서(고아성)를 잃는 대신 세주(이동호)를 얻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괴물>은 ‘가족의 탄생’이었던 셈이다. <마더>는 ‘가족의 유지’다. 아버지까지 부재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자식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혜자, 아니 오로지 ‘엄마’뿐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인(murder)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mother)는 괴물의 다른 이름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라면 망각하는 것일 뿐.

한국영화사에 명장면으로 회자될 관광버스 장면은 망각을 방패삼은 모성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뒷자리에 앉은 혜자는 허벅지에 침을 놓음으로써 도준의 살인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그럼으로써 동시에 혜자는 여자라는 자신의 성도 망각하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제 엄마는 아들에게 가슴을 내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들 또한 엄마와 잔다는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는 것만이 그녀의 임무이자 의무가 됐다. 이는 곧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의 비극이요, 운명이다. 그래서 오프닝에서 혼자 춤추던 혜자는 엔딩에 이르러 관광버스 막춤을 추며 동네 엄마들과 한데 뒤섞인다. 봉준호는 김혜자라는 숭고한 모성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모성신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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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8)

5월은 <마더>의 달 봉준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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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계절의 여왕, 또 누군가는 가정의 달, 또또 누군가는 징검다리 연휴의 달이라고 얘기하지만 5월은 대박영화의 달이라고 이 필자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왜냐고? <스타트렉: 더 비기닝>부터 <천사와 악마> <박물관이 살아있다2>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이하 <터미네이터4>), 그리고 <마더>까지, 블록버스터 영화가 떼거지로 개봉하니까.


<마더> 아빠 없는 하늘 아래

허나 ‘5월은 <마더>의 달 봉준호 세상’이라고 마더송을 제창해도 될 만큼 <마더>(5/28 개봉)를 향한 국민적 기대치는 김연아, 박태환에 모아지는 그것을 1.73배가량 능가하는 형국이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등 영화 제목 국산화를 선도해온 봉 감독이 <마더>에서 영문 제목으로 유턴하며 변신을 예고하는 통에 당 영화는 일찌감치 2009년 한국영화의 지존으로 자리 잡은 터.

‘국민엄마’로 추앙받는 김혜자가 마더로, ‘국민꽃돌이’ 원빈이 아들로 출연, <전원일기>의 금동엄마와 금동의 관계에 오마주 바치는 것 아니냐며 갖은 추측이 난무했더랬는데 <마더>는 전혀 사맛디 아니한 이야기다. 집나간 아들을 향해 빤쓰끈 줄여 놨다, 컴백 홈 해다오 눈물로 호소하던 엄마가 아들의 살인 소식을 접하곤 누명을 풀어주기 위해 특유의 마더파워를 과시한다는 이야기다.

그럼 파더는 뭐하고? 당 영화는 철저히 아빠 없는 하늘 아래에서 진행된다. 전작 <괴물>에서 아빠를 전면에 내세워 부성애를 보여준 까닭에 <마더>에서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모성애의 결정체를 탐구생활해보겠다는 것이 봉 감독의 자세다. 그래서 ‘봉 감독의 변신은 무죄!’야 말로 <마더>의 밑줄쫙 관람 키워드다.


<터미네이터4> 새로운 시작

미제산 대박무비 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라면 단연 <터미네이터4>(5/22)다. 박힌 돌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뽑힌 자리를 배트맨의 탈을 벗은 크리스천 베일이 굴러와 박혔다. 고로 기존 세 편의 <터미네이터>와 안녕을 고한 <터미네이터4>는 미래를 배경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서막을 열어 제친다는 점에서 기대할 법한 영화인 것이다. 5월은 곧 죽어도 가정의 달이다, 가족영화를 소개해다오 눈물로 호소하는 그대들에겐 <박물관이 살아있다2>(5/22)를 추천하는 바이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웃기고 자빠진 행각을 벌였던 벤 스틸러가 이번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배꼽을 강타할 빅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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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OOK
2009년 5월호

빅 매치! <박쥐> vs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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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계신 <아레나> 독자 여러분, 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상반기 충무로를 달굴 문제적 두 무비, <박쥐>(4/30 개봉)와 <마더>(5/28)의 미리 보는 명승부전을 중계방송 해드리겠습니다. 본격적인 대결에 앞서 간략하게 선수소개 있겠습니다.

선수소개  먼저 홍코너 박찬욱의 <박쥐>로 말할 것 같으면, 어머나 세상에! 한국영화계에선 유례가 없는 흡혈귀 무비에요. 항간엔 제목을 거꾸로 읽으면 ‘쥐박’이 된다고 하여 상위 1%를 위해 서민‘s Life를 절단 내고 있는 現정부를 향한 복수무비일 것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더랬는데, 오해입니다. 당 영화는 천주교 신부께옵서 수혈을 잘못 받아 배트맨 아니 뱀파이어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맞서는 청코너 봉준호의 <마더>는 ‘괴물’이 주인공이었던 전작과 달리 인간, 그것도 모자(母子)가 주인공 듀오로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군요. 살인사건에 휘말린 아들의 누명을 풀기위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는 마더의 고군분투기를 다뤘다고 합니다. 마더 테레사도 울고 갈, 지는 모르겠지만 주최 측에 따르면 심금을 울리고, 오금이 저리고, 심지어 손발까지 오그라드는 영화가 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아~ 말씀드린 순간, 1 Round 공이 울렸습니다.

1 Round  <박쥐>는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복수 삼부작을 완성한 박찬욱 감독의 또 하나의 삼부작이라 할 만합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제작자로 참여한 <미쓰 홍당무>, 그리고 <박쥐>까지. 로봇과 채소, 조류를 제목으로 붙인 걸 보아 ‘비인간 삼부작’에 대한 야망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데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미쓰 홍당무>의 연달은 흥행실패로 비인간적인 관객에게 배신감을 느낀 박 감독이 ‘이래도 정말 안 볼래!’ 밀어붙이는 심정으로 작정하고 만든 작품인 거 같아요. 다시 한 번 비인간 주인공 흡혈귀를 앞세워 모든 걸 쏟아 부은 작품인 거죠. 정말이냐고요? 아님 말고. 그에 반해 <마더>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로 영화 제목 국산화를 선도해온 봉준호 감독이 영문제목으로 유턴한 경우에요. 국내 영화제목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 이번 사태에 대해 혹자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고 싶은 봉 감독이 자신의 심정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분석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마더>를 비롯하여 <박쥐>까지 두 편 모두 칸 영화제 경쟁부문 가능성이 높아 동반진출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 Round  흡혈귀 vs 모자, 흡사 무(모)한 도전 시즌1의 인간 vs 소의 줄다리기를 연상시키는 이번 대결에서 <박쥐>와 <마더>가 내세우는 핵심 소재는 각각 불륜과 모성애입니다. <박쥐>가 높은 수위의 응응응 장면 때문에 여배우 캐스팅에 난항을 겪은 일화는 유명하죠. 흡혈귀로 분한 송강호가 절친의 여자 김옥빈과 사랑을 나누는 <박쥐>의 부제를 단다면, 송강호에겐 ‘불륜은 나의 것’, 김옥빈에겐 ‘흡혈귀지만 괜찮아’일 정도로 <색, 계>의 그것을 넘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해요. <마더>에는 <박쥐>처럼 관객의 대뇌피질에 피가 되고 살이 될 응응응 장면은 없어요. 혹시 이런 거 기대하고 <마더> 보러 간다면?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아, 좋지 않은 짓이에요. 대신 영화는 모자 관계에 초점을 맞춰 사골국물처럼 순수한 모성애의 결정체를 탐구합니다. 원빈처럼 티 없이 맑은 우리 아가가 누명을 썼는데 어느 마더인들 미치지 않겠어요. <남극일기>의 도달 불능점처럼 모성애의 마지막 남은 골수까지 쪽 파먹을 거라고 기염을 토합니다.

3 Round  근데 <마더>는 모성이 등장하는 첫 번째 봉준호 영화에요. <괴물>만 하더라도 엄마 없는 하늘 아래 펼쳐지는 아빠 이야기였더랬어요. 봉준호 영화에 약방에 감초처럼 변희봉이 안 나오면 배, 배, 배신이었는데 김혜자가 등장하는 건 그래서예요. 그 결과, <마더>는 <괴물>과 스타일이 많이 다를 뿐이고, 그래서 <마더>가 더욱 기대될 뿐이고. 반면 <박쥐>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등 전작의 빛나는 공식을 이어 받아 안으로 자기 색깔 확립하고 밖으로 관객 공영에 이바지하려는 기세가 등등합니다. 특히 박찬욱 영화에서 늘 리피트 되는 ‘도덕적 딜레마’, 즉 당 영화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흡혈귀로 형상화되니, 기존 뱀파이어 무비와 안녕을 고하고 New 뱀파이어 무비를 창조하려는 박 감독을 이길 자 그 누가 있겠습니까. <마더>? 그 결과가 궁금하시다고요? 결과는 <박쥐>와 <마더>가 개봉한 이후에 공개됩니다. 이상 <아레나>에서 알려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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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2009년 5월호

2009년 한국 ‘명품’ 감독들의 신작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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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영화계는 그야말로 ‘명품’ 감독들의 격전지다. 이창동, 홍상수, 박찬욱, 봉준호 등 한국을 넘어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들의 기대작 소식이 한꺼번에 들려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올드보이> 등 한국영화사(史)에 길이 남을 작품이 대거 쏟아졌던 2003년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는 조심스런 평가까지 나올 정도.  

그중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봉준호 감독의 <마더>다. 각각 4월, 5월 개봉예정인 두 영화는 칸영화제로부터도 열렬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박쥐>는 잘 알려진 대로 ‘뱀파이어’ 영화다. 만인의 존경을 받는 신부가 백신 개발 실험에 자원했다가 수혈을 잘못 받아 뱀파이어가 된다는 이야기. 기존 뱀파이어 영화와 달리 액션보다 사랑에 방점을 찍었다는 박찬욱 감독의 전언이 이채롭다. 안 그래도 <박쥐>는 제작단계부터 높은 수위의 베드신으로 여배우 캐스팅에 난항을 겪기도 했는데 부부로 출연하는 송강호와 김옥빈 조합이 만들어낼 ‘러브스토리’는 <색, 계>의 그것을 넘어설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런 점에서 <박쥐>는 송강호가 연기하는 첫 번째 사랑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때문에 그가 연기하는 신부가 과도하게 흡혈귀로 변하거나 뱀파이어 액션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찬욱 감독이 전작을 통해 늘 제기해왔던 ‘도덕적 딜레마’, 즉 <박쥐>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흡혈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니, 기존 뱀파이어 영화의 장르적 규칙을 위반하면서 슬며시 한발을 걸치고 있는 모양새가 더욱 독특한 작품을 기대케 한다.

반면 봉준호 감독이 <마더>에서 다루는 사랑은 모성애다. 단,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모성애와는 성격이 좀 다르다. <마더>는 살인사건에 휘말린 아들의 누명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사실 이 영화에서 대해서는 간략한 줄거리와 김혜자와 원빈이 모자(母子)로 출연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다. 그중 <마더>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의식적으로라도 전작들과는 좀 다르게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마더>는 기존에 봉준호 감독이 보여줬던 작품들처럼 평범한 주인공을 앞세워 장르의 전형성을 파괴하는 주특기는 그대로 가져간다. 하지만 아버지가 없다. (봉준호 감독의 모든 영화에 출연했던 변희봉이 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부성(父性)이 중요한 기능을 작용했던 <괴물>과 달리 <마더>는 엄마와 아들간의 관계에만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전작과는 많은 지점에서 달라졌다. <마더>에서 보게 될 생소한 요소는 그로 인해 생긴 결과다.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가족의 이야기로 축소됐고 ‘화성’(<살인의 추억>), ‘한강’(<괴물>)과 같은 공간의 구체성이 사라졌으며 그 결과, 감정이 사건을 압도하는 영화가 됐다. 그래서 규모는 작아졌지만 봉준호 감독은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지금껏 만든 영화중에 가장 셀 것 같다”고 표현한다. 

‘센 이야기’라면 이창동 감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에서 ‘불편한 진실’을 대놓고 이야기하며 모든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의 신작은 <시>다. 그런데 의외로 사건이 아닌 일상을 다룬다. 그것도 60대 중반의 여성이 등장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시>는 60대 중반의 여성이 시를 쓴다는 이야기다. 파출부 생활을 하면서 외손녀와 단 둘이 살고 있고 딸은 이혼을 한 후 함께 지내지 않은지 오래다. 이렇게 무료한 생활을 영위하던 중 무료 문학 강좌를 듣게 되는데 시를 한 편 써야 하는 과제를 받게 된다. 이처럼 표면상 드러난 이야기만 가지고는 이창동 감독 특유의 고통스런 묘사를 예상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시를 영화로 바꿔보는 가정은 어떨까. <시>의 주인공 여성이 평생 관심을 두지 않던 시를 써야 되는 상황은 흔히 창작의 고통에 비견될 만하다. 영화 역시 그렇다. <시>는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연출작이지만 그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건 여전히 고통을 수반한다. 다시 말해, <시>는 영화의 본질에 대해 묻는 질문 같은 작품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은 없지만 <시> 자체가 하나의 고통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이창동표’ 영화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생활의 발견>을 연상케 한다. 주인공 영화감독이 제천과 제주도 두 번의 여행을 통해 이상한 사건을 겪는다는 얘기다. <생활의 발견>과 결정적으로 다르다면 사랑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 그리고 홍상수 영화를 통틀어 가장 웃긴 작품이라는 점이다. 하긴 사랑을 빙자한 수컷의 찌질함을 방관자의 시점에서 묘사한 그의 영화가 언제 안 웃긴 적이 있었냐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그 단계를 뛰어넘는다. 물론 큰 이야기 틀을 정해놓고 현장에서 즉석으로 디테일한 에피소드를 만드는 그의 방식을 감안하건데 정확한 이야기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두 번의 여행길에서 모두 부부를 만난다는 점에 비춰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가식’의 정체를 발가벗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사실을 감안한다면 제목이 주는 뉘앙스가 절묘하다. (싱글로 설정될 가능성이 높은) 주인공은 부부의 사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부부 또한 각자의 진실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벌이는 속고 속이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웃음을 줄지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덧붙여,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홍상수 지금 언급한 감독들이 2009년 한국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섭섭해 할 이름이 꽤 많다.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 박진표 감독의 <내사랑 내곁에>, 장진 감독의 <굿모닝 프레지던트>,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까지. 2009년 한국영화는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의 대거 출현으로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구가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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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2009년 3월호

대륙에 출몰한 <괴물>, 반응도 괴물급



<괴물>이 중국과 미국에 출몰했다. 중국에선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까지 차지했다. 미국에선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대륙을 강타한 <괴물>,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정리한다.


지난 9일(현지 시각) 뉴욕과 LA를 비롯한 전미 71개관에서 개봉한 <괴물>은 첫 주 박스오피스 23위를 기록했다. 높다고는 할 수 없는 성적이다. 그러나 20개 도시의 제한적인 상영이었다는 점과 극장 평균수입이 4,429달러로 비교적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무엇보다 개봉을 전후해 속속 나오고 있는 미국 언론의 리뷰가 호평 일색이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 가운데는 “최근 본 가장 만족스러운 괴수영화“ ”고전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위대한 영화“라는 극찬까지 있다.


“195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고지라> 또는 <로저 코먼의 괴물 게의 공격 Roger Corman’s Attack of the Crab Monsters>과 같은 괴수영화와 닮았다”는 릴닷컴(www.reel.com)의 언급처럼 대부분의 현지 언론들이 <괴물>과 할리우드 B급 괴수영화와의 유사점을 가장 먼저 지적하고 있다는 게 우리로선 먼저 눈길을 모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봉준호 감독의 접근법이 차별성을 확보할 만큼 영리하다고 평가하며 장르의 진화적인 측면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괴물>을 평범한 공포영화와 차별화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설정뿐만 아니라 이를 제대로 풀어가는 연출력의 힘”이라며 이것이야말로 “한국에서 크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라고 평했다.

미국의 모든 영화리뷰가 총망라돼 있는 로튼토마토닷컴(www.rottentomato.com)에서 <괴물>의 신선도가 93%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살론닷컴(www.salon.com)의 경우, <괴물>에 쏟아지는 지나친 찬사가 거북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살론닷컴은 그러나 그것이 영화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며 “휴머니티와 영화적인 힘, 그리고 당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그 어떤 요소에 있어서도 <괴물>은 동시대의 호러영화 중 가장 빛난다”는 상찬을 빼놓지 않았다. “북한이 문제라고? 하하! 서울에는 더 큰 문제가 존재한다”는 재치 있는 제목으로 말문을 연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조지 A.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을 예로 들며 “TV 뉴스 때 브라운관 하단에서 흘러나오는 자막처럼 사회적인 언급으로 가득 차 있는 <괴물>은 긴장감이 넘치는 B급영화이자 호러영화인 동시에 이 장르에서 오랜 세월 동안 토론과 논쟁, 해석이 거듭될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며 입체적으로 구성된 영화의 다층적인 메시지를 높이 샀다.

<괴물>이 취하고 있는 반미적 설정에 대해서도 현지 언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또 하나의 장점으로 떠받드는 분위기다. 살론닷컴은 “철옹성처럼 뻣뻣한 미군기지와 이에 아첨하는 한국정부를 통쾌하게 풍자하고 있다”고 칭찬했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한미 양국에 대한 부조리한 관계를 논리적으로 이끌어내지 않는 대신 재기 넘치면서 은근한 방식으로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고 호평했다.

무엇보다 미국 언론은, <괴물>이 기존의 괴수물이 가지고 있던 익숙한 공식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장르의 공식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초반 20분 사이에 봉준호 감독은 공포영화 제작지침의 기초(the first lesson in Horror Filmmaking 101)를 부정한다. 괴물의 모습을 감칠맛 나게 보여주며 관객의 애를 태우는 할리우드의 뻔한 괴수물과 달리 영화 초반부터 사람들이 몰려 있는 대낮의 한강에 괴물을 풀어 놓는다”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서서히 진행되던 이야기가 괴물의 출현으로 갑작스럽게 공포감에 휩싸이는 방식이 봉준호 감독의 장인다운 연출력 속에 다양한 템포로 변주되며 진행된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릴닷컴은 “영화가 줄 수 있는 모든 장르적 재미를 주면서도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감정적인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전하면서 “<괴물>은 상영시간 내내 어딘가 나사가 빠진 가족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심지어는 가족 중 한 명인 막내 현서(고아성)가 괴물에게 납치되기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며 강두(송강호) 가족의 반(反)영웅적인 면모가 영화에 미치고 있는 특수성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호의적인 평가로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현지 언론들은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을 스티븐 스필버그와 비교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봉준호 감독은 굉장히 눈에 익은 속임수를 구사하고 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새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재능이 뛰어나다”며 고전적인 연출력의 효과를 높이 사고 있다. 릴닷컴은 “스필버그처럼 봉준호 감독 역시 카메라 움직임이나 편집을 하는 데 있어 한 치의 오차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액션 장면은 최소한의 시간 동안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며 두 감독의 꼼꼼하고 경제적인 연출력의 유사함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 가운데는 “<괴물>은, 거대한 뇌를 가진 해빙된 외계인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묵시록적 경고를 전하는 영화(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을 지칭하는 듯)처럼 요즘 미국 극장가를 어지럽히는 평범한 스플래터 무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강두 가족을 “한국에서 온 <미스 리틀 선샤인> 가족들”이라고 묘사한 살론닷컴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비유처럼 자연재앙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과 <괴물>을 비교한 ‘뉴욕타임스’의 리뷰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큰 스크린으로 보는 앨 고어의 강의처럼 <괴물>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담보한 자연훼손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와 큰 재앙으로 괴롭힐 것임을 경고한다”며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도.


이 같은 호의적인 리뷰가 대거 양산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괴물>의 단점을 지적하고 있는 리뷰는 주로 정치색이 짙어 순수오락영화의 재미가 반감된다는 쪽과 어색한 결말부의 특수효과 장면에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릴필름(www.reelfilm.com)은 “오락적인 이야기가 정치적인 상황으로 치중될수록 지루해진다”며 감독의 정치성향을 꼬집었고, ‘인디펜던트 크리틱스닷컴(www.independentcritics.com)’은 “특수효과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뛰어나지만 괴물이 불에 타는 장면만은 예외”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호평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가운데 <괴물>은 개봉 2주차인 3월 23일을 맞아 볼티모어, 밀워키와 같은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개봉관을 늘려갈 예정이다. 한편 <괴물>의 제작사 청어람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보다 하루 이른 지난 3월 8일 중국에서 <한강괴물(漢江怪物)>이라는 제목을 달고 개봉한 <괴물>은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역대 한국영화 중 최대 규모인 250개 스크린에서 상영돼 520만 위안, 우리 돈 약 6억 원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시장인 미국과 중국 박스오피스까지 넘보는 한강 괴물의 활약, 우리로선 기분 좋게 지켜볼 일만 남았다.






FILM2.0 327호
(2007. 3. 27)

<괴물> DVD 한정판


<괴물>의 한정판이 나왔다. 2006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만큼 구성도 화려하다. 본편 외에 300분이 훌쩍 넘는 부가영상이 2장의 디스크에 빼곡히 담겨 있다. 특히 한국 영화사상 전대미문의 캐릭터인 괴물의 창조과정 및 연출 작업에 집중한 서플먼트는 과연 기대했던 바를 ‘지대로’ 충족시켜준다.


한강에 나타난 괴생물체와 사투를 벌이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괴물>에서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괴물은 영화의 시작이자 존재의의. 이를 위해 류성희 미술감독의 권유로 참여하게 된 장희철 크리처 디자이너는 괴물을 ‘디자인’하였고, 이를 토대로 <반지의 제왕><킹콩>으로 유명한 웨타 워크샵이 괴물의 ‘모델링작업’을 담당했으며, <쥬라기 공원><맨인블랙2>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캐빈 래퍼티의 총감독 하에 <해리포터와 불의 잔><슈퍼맨 리턴즈>의 오퍼너지가 ‘CG 작업‘을 맡아, 현실에는 없는 그러나 스크린 속에 살아 숨 쉬는 생물체를 창조하였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이와 같은 괴물 제작 과정이 ‘괴물 탄생’과 ‘괴물 제작’으로 나뉘어 스케치에서부터 실제 영상까지 19개의 챕터 속에 세세히 소개된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스크린 속 괴물의 영상만을 따로 모아 봉준호 감독이 직접 코멘터리를 첨부한 ‘괴물은 왜 그랬을까’  괴물의 변천과정은 물론 잡아온 사람을 왜 은신처에 모아두는지, 왜 이 시점에서 뼈를 토하는지 등 해부학적으로 분석한 이 코너를 통해 영화에서는 알 수 없었던 괴물의 심리와 행동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괴물>에 출연한 배우, 연출진들이 CG로 창조된 괴물과 실제상황으로 호흡을 맞출 수는 없는 법. 그 비밀은 세 번째 디스크에서 풀린다.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괴물의 움직임을 임의로 상정해 봉준호 감독의 지시에 따라 ‘허공에 삿대질하듯’ 배우는 연기하고, ‘맨땅에 헤딩하듯’ 촬영 팀은 카메라를 돌린 것. 웃음이 터지는 광경이지만 이들은 얼마나 힘들었던지 제작부의 가장 절망적이고 억울했던 순간이 ‘한강 한풀이’에 가감 없이 표현된다. 1,300만 관객이 본 영화는 이런 과정 끝에 탄생하게 되었다.


<괴물> 한정판이 중요하게 평가받는 건 단지 역대 흥행 1위의 작품이 출시됐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한국영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지만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의 길을 개척한 <괴물>은 그런 의미에서, 연출 과정을 체계화해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이 땅에는 여전히 제2, 제3의 <괴물>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괴물>의 귀환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2007. 1. 11. <스크린>)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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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다들 아시겠지만 본 공사 웬만해선 소위 잘 나가거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영화인은 잘 만나지 않음이다. 본 공사가 그렇게 콧대가 높아서? 그것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음이다. 본 공사와의 이념과도 잘 안 맞을뿐더러 무슨 영화만 개봉했다 하면 재래식 언론들이 백미터 경주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이너뷰를 해대는 까닭에 본 공사까정 나서서 호들갑 떨지 않더라도 얼마간의 궁금증을 풀어줬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살인의 추억>. 올해의 기대작답게 개봉하자마자 무더기로 관객을 불러 모았고 지금 추세로라면 머지않아 <쉬리><공동경비구역 JSA><친구>의 관객 수를 넘어설 만큼의 폭발력을 보이고 있음이다. 그래서 그 인기에 무임승차해 한 몫 잡아볼 겸 봉준호 감독을 만났느냐? 당근 아니다. 당 영화가 위에 열거한 대박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관람 후 관객들의 반응이 재밌다, 씨바 돈 날렸다와 같은 단순 의견 피력이 아니라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어느 것이 실제고 허구인지 등 스토리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의견 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나 이와 같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할 언론들이 그것을 풀어주겠다며 던진 질문들의 수준은 과연 어떠했단 말인가? 맨털리티에 대한 모자이크 같다는 둥, 인물과 사건이 구체적인 질감을 읽게 된다는 둥 현학적인 질문을 남발할 뿐 아니라 이너뷰 재료의 답변보다 2.5839배는 더 긴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게 과연 이너뷰를 하자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독자 개무시의 이너뷰를 보면서 본 공사 화르르 불 타오르는 똥꼬를 부여잡고 전면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음이다. 그래서 봉준호 감독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4월 29일 서울 모처의 한 카페로 비밀리에 꼬셔 불러내었고 <살인의 추억>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관객의 입장에 서서 가장 궁금한 질문들만을 추려 그에게 냅따 던져 보았음이다.

다음은 본 공사와 봉준호 감독 간에  2시간 여에 걸친 접선 내용이다.



첫 질문이니까 간단하면서도 디피컬트하고 난해하면서도 심플한 질문부터 던져보도록 하겠다. 딴지일보는 자주 보나?
그럼요, 되게 좋아하는 매체고 맨날 보죠. 그리고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 쓸 때도 딴지일보 기사에서 도움받은 것도 꽤 있었는데…


본지 기사가 도움을 많이 주긴 한다. 흠흠.. 근데 어느 기사에서 도움을 받았나?
80년대 짜가 마크에 대한 소고, 그 기사. 프로스포츠, 나이스… 영화에 나오잖아요. “나이키가 아니구 나이스구만” 그거. 저도 짝퉁에 대한 기억이 많이 있거든요. 근데 그 기사를 보니까 딱 총정리가 되더라구요.


아주 난리다. 속된말로 터졌다. 이번 주 흥행 순위 보니까 1등이던데. 영화 쫄딱 말아먹은 감독에서 대박 감독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 기분이 어떤가?
별로 실감이 안 나요. 집에 그런 돈이 없는데 우리 와이프가 몇 억 어치 표를 샀나… (웃음) 제가 흥행을 경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플란다스의 개>도 쫄딱 망했고, 그리고 제가 연출부나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영화들도 흥행했던 적이 별로 없어요. <모텔 선인장> 경우도 서울 이만 몇 천 그랬거든요. 그래서인지 별로 실감도 안 나고, 저번에 회사 갔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메가박스 앞을 지나는데 매진매진매진매진 돼 있더라구요. 그래서 옆에 가봤지. (웃음) 일렬로 늘어져있는 거 그거 바라보면서 좋아 가지구 ‘헤~’ 이러구 전철 타고 집에 갔지. 되게 신기하더라구요.


그럼 언제쯤 되야 실감할 거 같나?
지금은 실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주위에서 축하전화가 오니까 실감을 하려고 애쓰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내가 당장 모 변할 것도 없고…


회사에서 돈 나올꺼 아닌가?
이거 다 계산하구 하려면 한참 걸려요. 정산해서 저한테까지 오려면 오래 걸려요. 그걸 가지고 실감하려면 올 연말쯤이나 되야 되지 않을까… (웃음)


<살인의 추억>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재래식 언론들하고 한 이너뷰처럼 각 잡지말고 걍 친구에게 썰 풀 듯 편안하게 한 번 얘기해봐라.
범죄영화가 찍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혹시나 딴지에서 그런 거 한 번 판매 해 줬으면 좋겠는데, 옛날 동서추리문고 판매 같은 거.


그런가? 알았다. 당 영화가 잭 더 리퍼 사건을 참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 영감을 많이 받았지요. 근데 100년 전의 영국 얘기니까 세부내용과 시추에이션은 워낙 달라요. 잭 더 리퍼라는 이름도 그냥 경찰서에 보낸 편지에 적혀있는 이름이었지. 그것도 범인 안 잡혔잖아요, 영구미제잖아요. 영구미제사건에 어떻게 접근해야 되나 그런 거에 힌트를 많이 얻었지요.

되게 재밌구 그 시대에 대한 느낌이 화~악! 나요. 런던에서 이 때 사람들이 이런 꼬라지로 살았구나, 이 때 귀족들이 이랬고 이 때 사회상이 이랬고 사건만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냄새가 물씬 나거든요. 우리영화도 시대적인 공기나 분위기가 많이 스며들어 있잖아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도 그 시대에 대한 흔적을 부각 안 시키고 은근히 보여주려 열라 노력하더라.
그런 거 일부러 생색내면 민망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훌륭한 영화들이 이미 앞에 많이 있었구요. 사실 우리 영화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형사들이 범인 못 잡는 영화잖아요. 형사들이 실패하는 그 점이 특이한건데, 왜 실패했는지 따져보다 보니까 그것이 시대상하고 맞물린 거였거든요. 되게 무능하고 어둡고 한마디로 조까튼 시대였기 때문에 범인도 못 잡고 우리는 이렇게 엿같이 패배하지 않았느냐, 라는 주제가 있었기 때문에 시대상이나 분위기 같은 게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원론적인 질문은 요기까정. 사실 이 영화 만든 목적이 먼가요, 무엇을 참조 했나요와 같은 질문은 본지가 아니더라도 재래식 언론이라든가 주간영화 찌라시덜에서 많이들 했다. 그러니 이런 원론적인 사항이 궁금하면 얘네들 꺼 보시덩가 하시고…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본 이너뷰의 목적은 이런 게 아니지 않나. 썰이 길었다. 그럼 본 이너뷰의
하이라이트 들어간다.)


양복 쫙 차려입은 송재호 아저씨가 등장할 때 기차 길에 서서 후까 잡으며 담배에 불 붙이는 씬 나온다. 그거 <영웅본색>에 대한 오마쥬 아닌가?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그렇게 등장하잖나.
으하하하하! 기찻길… 상상력 기막히시다. 할튼 <영웅본색>까지는 아닌데 우리 영화가 원체 꿀꿀하다보니까 멋있는 사람도 없고, 간만에 한 번 약간 폼을 잡아보자는 의도에서…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함)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그렇고, 귀 재료가 만든 영화엔 항상 뽀일라실이 나온다.
네, 당신 영화엔 왜 항상 보일러실이 나오냐고 사람들이 또 그러더라구요. 어릴 때 보일러실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냐, 근데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의도한 건 아닌데. 실제 그 당시 경찰서를 보면요 미국영화에 나오는 멋있는 이중거울 돼있고 안에서 취조하는 거 밖에서 막 들리구 이런 거 전혀 없었어요. 창고, 보일러실 심지어는 경찰관 옆에 있는 여관있지요, 여관방에 들어가서 방구들에 앉아 가지고 취조하고 이랬어요. 여인숙 같은데 끌고가서 때리고 그 당시에는 다 야매였어요, 야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더 리얼하게 그런 썰렁한 파이프들 있는 지하실에서 취조하는 장면을 연출했어요.


뽀일라실과 관련하여 당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취조할 때 뽀일라 수리공의 등장시간에 대한 것이다. 그 넘을 장시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항간엔 뽀일라 수리공이 범인이다, 사건 해결의 열쇠다, 이거 단서다, 이런 의견덜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에 대한 해명 바란다.
그러니까요. 저로서는 의외의 반응인데… 너무나 허접한 취조 분위기 있잖아요, 취조하고 있는데 막 왔다갔다하고, 신경 안 쓰고, 옆에선 빤스 입고 취조하고 있고. 너무나 부조리하고 뻘쭘한 그 상황을 보여주려고 한건데 영화가 워낙 사건이 강렬하다보니까 관객들이 예민하게 단서로 받아들여서 미안하더라고.

난 그냥 뻘쭘하고 조악한 느낌을 살릴려고 한 거였는데. 또 이강산 기사님이 연기가 서투르시다 보니까 느릿느릿 걷잖아요. 웬지 더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거야. 그런데 그 시퀀스가 그럴 수 있는 시퀀스 같아요. 거기가 드라마의 어떤 핵심적인 몬가를 차지하는 시퀀스가 아니라 박해일이 등장하는 중간 과정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찍을 여유가 있었고 관객들도 드라마, 내러티브 상으로 그 단락에서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서 눈이 가게 되고 예를 들어 더 긴박하고 아수라장 상황에서는 그런 인물이 심어져 있어도 눈에 띄지도 않죠. 드라마 흐름 탓도 있는 거 같아요.


박현규에 대한 부분도 몹시 궁금하다. 영화를 보면 박현규가 범인 인 것처럼 몰고 가는데 실제에도 그런 넘이 있었나?
사실 실제 사건에서도 유전자 조사를 받고 그런 사람이 있긴 있었어요. 언론 상에 거의 범인처럼 발표가 되긴 했었고. 하지만 유전자 결과가 아닌 걸로 드러났지요. 근데 그 인물에 대해서는 실제적으로 언급이 되면 피해가 될 거 같아서 피하고 싶고, 그리고 범인이 아닌 걸로 명확히 판명이 났으니까.


그럼에도 당 영화를 보고 나면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박현규는 투수 마운드에 투수가 올라가는 것처럼 그 인물의 위치, 자리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그니까 박해일 배우가 등장하기 전에 우리는 그를 밑그림으로 해서 계속 생각하잖아요. <우울한 편지>를 계속 보내는 놈이 있다, 그가 범인이라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잖아요. 이미 그는 범인 또는 범인 같은 것이고 앞에 나왔던 용의자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라는 느낌이 생성 돼가고 있잖아요.

근데 투수마운드에 투수가 올라가듯이 그 자리에 해일이가 싹 들어가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미 캐릭터 자체보다 그 캐릭터의 포지션 자체가 드라마 상에 이미 있었어요. 그 인물은 사실 형사나 관객들이 범인을 잡고 싶은 욕구가 되게 강하게 몰고 가는 드라마니까 형사나 관객들의 입장에선 걔가 범인이고 싶어요.

그 욕구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는데 가장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 감식이 아니라고 나오니까 그게 인제 거의 불덩이와 얼음이 충돌하듯이 그 접점에서 뜨거운 경계선이 생기는 거죠. 어떻게 보면 박현규라는 것은 실질적인 사건의 인물, 캐릭터라기 보다는 하나의 어떤 형사나 관객의 욕망이 하나로 집결되는 어떤 포지션인 거 같아요.


본 우원도 박현규가 범인이 아니라는 FBI의 서류장면을 보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따. 그래서 FBI 이 넘들도 조사를 날림으로 했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가 범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죠. 그리고 그만큼 김상경의 심정에 동화 돼 버린 거죠. 영화를 보면 얘는 범인이다, 로 몰고 가고 있잖아요. 그니까 <우울한 편지>를 계속 신청한다, 그리고 또 얘가 버스 타고 사라졌을 때 여중생이 죽는다, 손이 부드럽다, 이 모든 것이 강한 심증일 뿐이지 이게 다 정확한 물증은 아니니까. 그 지점에서 형사들이 미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실제 사건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지만 실제 사건을 보면서 내가 비극적이라고 느꼈던 게 사건이 5년에 걸쳐서 일어났잖아요, 초창기 일수록 더 개판이예요. 현장보존도 안 되고. 근데 그 5년 동안 과학수사도 발전을 하더라고.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실제 사건에서도 여중생이 죽었을 때 거의 클라이막스나 마찬가지였거든요. 그 땐 정말 형사들이 과학수사를 했어요. 실제 사건에서는 유전자를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 보냈어요. 형사들도 정말 승부수를 제대로 던진거지. 그동안은 두들겨 패고 풀려나고 그걸 반복하고 억지 수사만 하다가 이번엔 정말 승부수를 던졌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에서는 범인이 아니라고 온 거야. 그거 자체가 너무 아이러니칼하고 웃기기도 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졌었어요.

영화에도 그게 고스란히 반영이 돼 있어요. 특히 관객들이 영화 안에서 김상경의 시점이나 심정을 따라가게 돼 있는데 맨날 “서류는 절대 거짓말을 안 하거든” 그랬다가 정작 서류가 얘를 배신하게 되잖아요. 대사도 “이건 다 거짓말이야” 이러는데 실제 사건에서도 그렇고, 그 비극성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마침내 과학수사라는 게 본 궤도에 오르고 승부를 던졌는데 거기서는 정작 아닌 걸로 나오니까 얼마나 허망했겠어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도 실제로 있었던 걸 차용한 건가?
그건 실제가 아니라 픽션인데 원작 연극 <날 보러와요>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장치예요. 연극 원작에서 가져온 가장 중요한 장치 중의 하나가 FM 라디오 신청하는 그거랑 무모증 에피소드 그런 건데 연극에 고스란히 있어요.

사실 박현규 캐릭터랑 잘 맞을 거 같기도 했어요. 뽀얀 피부를 한 애가 앉아서 그 음악을 듣고 있는 그런 장면을 생각해 보면 섬세한 그런 느낌과 잘 맞을 거 같기도 했고, 또 유재하가 죽은 가수잖아요. 그 때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사람. 그래서 더 끌리기도 했고, 그래서 <우울한 편지>를 하게 됐죠.


마지막 기차 터널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심장이 쪼리뽕 될 정도로 정말 벌렁벌렁하더라. 그 장소는 시나리오 쓸 때부터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곳인가? 아니면 현장 헌팅하다가 발견하고 넣은 장면인가?
처음 시나리오에는 기차 클라이막스가 원래 터널이 아니었어요. 그냥 뻥 트인 공간이었는데 그게 항상 답답했었거든요. 뭔가 아쉽고 클라이막스에서 이런 식으로 풀어 가지고는 과연 비쥬얼한 이펙트가 있을까… 근데 헌팅하다가 터널을 몇 개 발견했는데 그 터널 덕분에 그동안 여러 가지 매듭이 안 풀렸던 생각들이 쫙 정리되면서 참 좋았었어요.


어떤 매듭?
일단 빛과 어둠이 있고 그 터널이 반대쪽은 안 보이잖아요. 박현규가 어둠 속으로 쫙 사라져서 퇴장하는 그 느낌도 너무 좋았고,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 있는 그 느낌. 대부분 관객들이 잘 모르는데 자세히 보면 송강호가 해일이한테 “밥은 먹고 다니냐” 대사 치는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이 그 터널 경계선에 서 있는데 송강호는 비를 막 맞고 있고 박해일은 말짱하게 비를 안 맞고 있어요. 그게 해일이 쪽 표정연기에도 도움을 줬고 일부러 그렇게 설정을 했는데 그 서로 다른 경계선에 있는 느낌이 좋았어요.

근데 그건 영화 보면서 느끼기는 힘들어요. 빗소리 사운드가 계속 나기 때문에 별로 인식하기 어려운데 예를 들면 그런 설정이라든가 그리고 터널이니까 기차가 나올 꺼 아니예요. 형사와 박해일을 서로 갈라놓는, 운명적으로 완전히 끝나 버린 느낌 있잖아요, 그리고 FBI 서류를 찢어 놓고. 그니까 터널로 인한 일타사피의 효과라고나 할까 모든 매듭을 다 풀어줬어요.

그 시각적인 느낌하며 터널 그 자체의 느낌도 좋았고 그 이끼가 잔뜩 낀 질감이라든가 어두컴컴한 느낌. 좀 으슥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더러 터널 때문에 비로소 모든 장면들을 구성할 수 있었고 클라이맥스에 대한 고민이 풀렸어요.

사실 클라이막스 부분은 콘티를 안 해놓은 상태였거든요. 대부분의 씬들이 클랭크 인 할 때 콘티북이 통째로 책이 한 권 있을 정도로 미리 정교하게 짜 놨었는데 클라이막스는 비워 놓은 상태였어요. 계속 고민을 하다가 그 터널로 컨셉을 잡게 되면서 모든 매듭이 다 풀렸지요.


“밥은 잘 먹고 다니냐” 그게 귀 재료가 범인에게 하는 소리라는데?
그거 애드립이예요, 내가 계속 강요한 애드립이지. 장소는 사천의 한 피자집, 때는 늦은 밤. 그거 찍기 며칠 전부터 강호 선배 불렀어요. “잘 모르겠다”와 “아, 씨발 모르겠다” 그 대사는 원래 시나리오에 있는 건데 내가 강호 형 거기 모가 또 하나 있을 꺼 같아요, 뭔가 하나 더 나와야 한다, 그동안 박두만 역할을 몇 달 동안 해 오셨으니까 박두만 만이 할 수 있는 결정적인 걸 나보다 더 아실 꺼 같다, 모 좀 하나 해 주세요, 내가 강요를 했거든, 괴롭혔어요. 근데 막 고민하면서 죽을려구 그러더라구.

그런 얘기도 했었어요, 예를 들어 <복수는 나의 것> 보면은 마지막에 신하균이랑 강물에 들어가 갔고 “내가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면서 다리 확 짤라 버리잖아, 그게 얼마나 웃겨. 말은 그렇게 해 놓고, 착하다면서 왜 또 짤라 짜르기는. 그 점이 되게 강렬하잖아요. 그 예를 들면서 내가 막 그런 모시기가 있어야 되요, 그랬더니만 괴로워하더라고.

그랬더니 강호 선배가 그 대사를 딱 생각 해 오신 모양이야. 현장에서 딱 한거지. 처음에 스탭들은 대체 뭔 소리야 저게, 멀뚱했던 모양인데 두고두고 볼수록 좋았어요. 그렇게 ‘밥을 먹고 다니냐’ 한 버전도 있고 안 한 버전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밥은 먹고 다니냐’를 편집에서 하게 됐지.


그럼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의 주제는 몬가?
주제? 아! 씨바, 이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플란다스의 개>는 특히 말하기 복잡한데요,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는 정말 말 그대로 살인의 추억이죠.

<살인의 추억>은 제목 그대론 거 같아요. 사실은 살인의 악몽이죠. 역설적으로 살인은 추억이 될 수 없다 그런 건데, 작게 보면 형사들이 실패하는 아픈 기억, 피해자 가족들한테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아픔, 그 시대의 살았던 우리 모두의 씁쓸한 아픔 같은 거, 그게 주제죠.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우리가 씨바 이렇게 살았었구나. 저렇게 엿 같은 시대에서 나름대로 낄낄거리면서 살았었구나. 어떻게 보면 되게 부조리 하자나요, 한 편의 코미디처럼 보이잖아. 한복 여고생들이 태극기 들고 뛰어가고 그 때는 그게 리얼한 거였잖아, 지금 와서 보니까 그게 부조리 한 거지. 불과 십 몇 년 전인데, 사건 자체도 강렬하고 전대미문의 사건이긴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저런 꼬라지로 저런 범인도 하나 못 잡고 여자애 죽는 거 하나 못 막고, 그렇게 살았었구나, 슬프다 씨바,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그게 주제죠 사실.

임상수 감독님이 처음 제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반응을 해주셨어요. 그렇게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우리가 이 꼬라지로 살았었구나, 라는 반응을 해주셨는데 저는 그 반응이 가장 기뻣고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했고, 그거 같아요.


(사실 당 영화의 주제에 대한 질문을 날렸을 때 봉준호 감독은 웃으면서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본 우원에게 ‘어렵다’는 의미는 아픈 기억을 설명해야 하는 가슴 쓰라림 이런 카인드의 맥락으로 들려왔다. 고로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을 영화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 물어봐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귀 재료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시기 몇 살이었나?
고2때부터 방위병 때까지 걸쳐진, 그니까 대학교 2, 3학년 때까지.

그럼 귀 재료는 당시에도 이 사건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나?
일반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기억이나 관심은 있었죠. 근데 저도 이 영화 다시 시작하고 있기 전까지 다 잊고 있었어요. 영화 작업 들어갈 때부터 그 당시 신문이나 자료 찾고 조사해 나가기 시작하다가 ‘아~ 이 정도까지 끔찍했었나’, ‘이렇게 많이 죽었었나’ 하는 감정을 느끼게 됐죠.

그렇다면 귀 재료 역시 당 영화를 찍으면서 반성의 기분이랄까, 느꼈겠다?
클라이막스에서 소녀가 죽을 때 민방위 사이렌 등화관제 하면서 불 꺼지잖아요. 마치 그 여자아이는 끔찍하게 죽는데 세상 사람들은 다 외면하는 거 같은 느낌. 실제 사건에서 그 소녀가 죽은 날이 1990년 11월 15일 이었어요. 우리 매달 15일은 민방위 날이었잖아요. 그래서 시나리오에 제가 처음 영감, 아이디어를 받았던 게 그 신문기사의 날짜를 보고 그 여자아이가 그렇게 죽어 가는데 만약에 온 천지에서 민방위 훈련 내지 등화관제 훈련을 하고 있는걸 상상만 해도 너무 슬프고 열이 받는 거예요. 등화관제를 지금은 안 하지만 80년대에만 했던 거잖아요. 그게 영화적인 모티브예요. 어둠을 만드니까. 그래서 영화 속에 등화관제가 등장하게 된 거였고, 모두가 셔터문 닫고 커튼 내리고 불 끄고 이러잖아요, 저도 그랬을 꺼란 생각이 막 들었거든요.

그 여자아이 죽었을 때 90년 11월이면 저는 방위병 생활 할 때였고. 웬지 내가 범인이 아님에도 느껴지는 일말의 죄책감 같은 거 있잖아요, 우리는 몰랐었고 우리는 다 그냥 모든 걸 방조했고, 우리는 먹고살기 바빴고, 이런 느낌들. 개인적인 반성이라든가 돌이켜 보는 질문 하셨는데 이 영화는 저의 개인적인 느낌하고도 관련이 있어요. 그 시대를 추상적으로 ‘어둠의 시대’, ‘독재정권의 시대’로 설정 해 가지고 꼭 그렇게만 접근한 건 아니예요. 저의 개인적인 기억들, 영화 보면 여고생들 태극기 흔들고 그러는 장면 나오잖아요. 저도 그런 거 동원 많이 됐었거든요. 남학생이지만 전국체전 행사에 동원 됐었고, 그 당시에 학교 다녔던 사람들은 그런 경험 많을 꺼예요, 그렇죠?

그렇다. 본 우원 같은 경우도 올림픽 때 관중 없다고 별루 잼없는 육상경기에 불려나갔던 적이 있다. 닝기리.
괜히 새벽에 나오라고 해서 학교 앞에 청소시키고, 우리가 왜 그런 걸 하냔 말이야. 지금 생각하면 열 받는데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거 같아요. 시대상이 영화 속에 반영되지만 그게 일제시대나 그게 아니라 우리가 나 자신도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직접 살았던 시대니까.

실제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은 당근 만나보고 이너뷰 해 보았겠다?
경인일보라고 있는데 가장 가까이서 빨리 취재하고 정보량도 많고 화성사건은 그 신문이 가장 뛰어났어요. 거기 유일하게 6년 간 다 취재했던 박 모 기자라고 있었는데 그 분한테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고 또 그 당시 그 지역에 실제 있었던 형사 조 아무개 씨라고 있는데 지금은 전라도에서 여관하고 계세요. 이 양반 인터뷰나 그런 것도 도움이 많이 됐었고. 오고 가며 주민들도 만났었고, 시나리오 쓸 때 그 쪽 동네 자주 갔었어요, 사진도 많이 찍었고.


박두만은 그럼 조 아무개 씨를 모델로 한 건가?
딱 정해진 모델은 아니고 이런 저런 인물들에서 뒤섞었어요. 우리 영화가 연극원작도 있잖아요, 연극원작에서 빌려온 에피소드도 있고. 실제 내가 만났던 형사들, 제가 한 상상력 막 뒤섞여 있어요.


당 영화에 대한 화성주민의 반응은 어떤가? 압박이 들어오고 있나?
직접적인 압박은 못 느껴요. 사실 영화에서는 지명이 전혀 안 나오거든요. 그리고 화성이란 특정지역의 묘사 같은 건 하나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고. 왜냐하면 이게 특정시대에 포카스를 맞춘 거지 지역성에 맞춘 영화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저는 화성주민들을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그 동네 가면 괜히 으시시하다, 끔찍하다 그러는데 그건 편견이 있어서 그런 거지 사실 거기 가보면 평범한 농촌이에요. 다른 지역하고 별 차이가 없어요. 근데 정말 재수 없게, 운 나쁘게 그런 사건에 휘말리면서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그런 것을 겪었던 것일 뿐이죠. 그래서 영화에서도 시대에 초점이 맞춰있지 그 지역이 특이하다거나 그 동네 풍토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그런 접근은 전혀 없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 사건 자체에 대해 그거를 스릴러적인 장치로 엽기적인 묘사로써 즐기고 있다거나 이러지 않고 사건 자체에 저의 분노나 슬픔 같은 게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에 저 개인적으로는 떳떳한데 그래도 좀 죄송한 마음은 있어요. 주민들 입장에서는 민감하고 잊고 싶고 그럴텐데 본의 아니게 내가 영화에서 그 지명을 거론 안 해도 다른 매체들에서는 무조건 화성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다 이래 버리니까 그 거를 우리가 일일이 통제할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 그런 면에선 죄송하긴 한데, 저는 오히려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는 입장이니까 주민들께서 직접 영화를 보신다면 아픈 기억이긴 해도 그래도 어떤 카타르시스나 위로를 받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쉽게 그냥 잊는다고 먹고살기 바쁘니까 잊어버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 기억할 건 기억하자라는 입장이니까 떳떳하지요. 근데 모 심정적으로는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화성살인 사건 수사하면서 잡혀온 용의자 중에 조사를 받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기사도 보았다.
황경일 씨. 심지어 죽은 사람도 있었어요. 명노열 씨라고 그 때 열아홉 살로 걔는 성당에서 헌금한 돈 훔치다 걸렸어요. 그러니까 좀도둑이지. 그 당시에는 무슨 사건이든 경찰서에 오면 일단 한 번 화성사건 쪽으로 물어보고 그러는 거야. 또 여자를 약간 성추행해서 들어왔다 그러면 당연히 물어보고 그 쪽 조사를 하는 거야 옆에서. 근데 명노열 씨는 헌금통에서 돈을 훔치다가 그 과정에서 구타를 당하고 그랬는데 죽어 버렸어요. 그래가지고 서장 모가지 날라 가고 그 밑에도 파면되고 그랬었죠.


송강호에게 그렇게 애드립을 많이 요구했다는데, 그의 애드립엔 만족하는 편인가?
강호 씨의 최대 강점이 절정 초식이라고 해야할까, 우리 영화에서 송강호씨의 연기를 보면 애드립과 애드립 아닌 거에 경계선이 없어요. 하수급 배우들을 보면 써준 대사 다하고 그 다음에 애드립 탁하면 저거 애드립이구나 표나고 그래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보신 우리 영화에서 강호 씨의 대사 중에 저게 애드립이다 싶은 게 사실 내가 콘티에 써 준 대사가 있고 반대로 그냥 차분하고 평범한 듯한 대사라서 저건 당연히 시나리오에 있었겠지 생각하는데 애드립인 게 있어요. 그니까 애드립이 애드립처럼 돌출 되지 않아요, 그 경계가 없어. 모든 게 다 캐릭터와 리얼한 품안에 쏴아~ 들어가요. 그게 제일 훌륭한 점인 거 같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예를 들어 강간의 왕국 같은 건 애드립이 아니에요. 콘티에 내가 적어 준 거거든요. 그런데 그걸 애드립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건 그만큼 생동감 있게 라이브 하게 한다는 거 아니에요. 반대로 상경이 하고 책상에 누워있는 거 있지, 백광호 얘기 다시 하면서 그 때 보면은 상경이가 “두들겨 패야 해” 그러면 “너 많이 변했다” 차분하게 말하는데 그게 또 애드립이에요. 그 대산 시나리오에 없던 거야. 되게 차분하고 드라마의 정곡을 찌르는 대산데 오히려 그런 건 애드립이거든요. 관객들이 보면서 느끼는 “이건 애드립일 꺼야”, “이건 시나리올 꺼야”라는 그게 사실은 되게 많이 달라요.

그 작업하는 게 서로 재밌었어요. 내가 써 주면 거기에 몰 덧붙여서 그 양반이 더 하고, 또 그 얘길 듣고 재밌어서 내가 하나 거기에 만들면 서로 토스하듯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나리오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또 중요한 거는 내가 쓴 것이건 자기가 애드립으로 만들어 낸 것이건 그게 다 박두만 캐릭터 품안에 돌출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거지. 그게 과연 역시 괴물 배우 송강호의 절정내공이 아닐까.


강간의 왕국 씬에서 송강호가 김상경을 날라 차기 할 때 그게 서로 약속이 돼있던 게 아니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맞은 김상경이 송강호 한테 열라 삐져서 서로 사이가 안 좋았다는 얘기가 있던데.
촬영 첫 날 첫 캇트였어요. 근데 영화에서도 둘이 사이가 안 좋잖아요. 배우들도 오히려 그 상태로 대립하는 가운데 서로 신경전을 하면서 갔어요. 근데 뒤에 가선 서로 친해졌어요. 그니까 영화의 흐름과 되게 비슷했어요. 이 장면에서 요구하는 게 액션영화도 아니고 합을 맞춰 가지고 딱 하면 딱 피하고 그런 느낌은 너무 깰 거 같았어요. 그래서 배우들한텐 참 미안하지만 싸워보자 이러면서 무술감독 없다, 안정장비 없다, 그냥 좀 해달라, 했어요.

다행히 한 번에 오케이가 났고 그걸 다시 반복해서 하거나 리허설을 해서 하면은 생동감이나 리얼리티가 살수가 없는데 강호 선배가 노련하게 리드를 잘 해줘서 상경이는 진짜로 맞고 머리 쥐어 잡히고 되게 고생했죠. 근데 아닌게 아니라 좀 삐졌을꺼야. (웃음) 그 때 나랑 강호형이 가서 막 달래주고, 되게 고생했죠. 이단옆차기도 예상했던 게 아니라 지형 자체가 경사지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구. 사실 그 장면에서 정말 감사 드리고 싶은 것은 물론 강호형도 고맙고 상경이도 고맙지만…


박현규라는 캐릭터에 박해일은 염두에 두고 있었던가?
예, 원래부터 염두에 뒀어요. 그 친구가 99년도에 <청춘예찬>이란 연극할 때 처음 보고 만났는데 너무 좋아서 내가 팬이었는데 시나리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나랑 모좀 하자, 재밌는 거다, 했어요. 초창기에 시나리오에는 그 인물의 캐릭터 이름 자체가 그냥 박해일이었어요. 근데 계속 준비해 오던 1~2년 동안 박해일 선수가 점점 유명해져 가지고 배우 이름을 극중에 그냥 쓰기가 부담스럽더라구. 그래서 박현규로 바꾼 거예요.


귀 재료는 코미디를 유발하는데 있어 슬로비디오를 많이 이용하는 거 같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 찾았을 때 이성재가 기뻐하는 장면도 그랬고 <살인의 추억>에서는 현장 검증할 때랑 채석장에서랑.
맞아, <살인의 추억>에 슬로 모션이 딱 두 번 나왔을 꺼야. 현장검증 때 아수라장 되는 거는 아수라장의 생생한 현장을 오히려 좀 시간이 정지 된 듯이 이렇게 세세하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 전까지는 커트 되는 게 빠르잖아요. 뛰어가면서 막 소리지르고. 아수라장 자체를 아수라장처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아수라장 자체를 고요하게 보여주는 거죠. 물론 사운드는 시끄럽지만 슬로모션이 딱 걸리면서 그 엄청 뒤엉킨 기자, 형사, 백광호, 그 뒤의 주민들 다 철저히 볼 수가 있잖아. 그 순간 아수라장의 현장에 빠져들었다가 갑자기 거리가 확 생기면서 물끄러미 하나하나를 보게되는 느낌, 그런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그게 정속도로 찍은 버전도 있었어요. 그 진흙창에서 배우들 굴려놓고, “자 슬로우 모션 하니까 한번 더 갈께요” 하니까 그 배우들의 표정이란 정말 너무 미안하드라구. 그렇지만 모르는 척 했지 찍어야 되니까.(웃음) 그러고 보니 슬로모션은 혼잡스러울 때만 썼네. 채석장에서도 그 수 백 명의 공사장 인물들이 모여있는데 송강호의 얼굴로 카메라 쫘악 들어가면서 모든 주변의 그 것들이 확 지워지잖아요. 뭔가 아수라장이었다가 그 아수라장으로부터 확 떨어져 나올 때, 그럴 때 쓴 거 같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근데 귀 재료의 코미디는 독특한 게 이거 웃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 때리게 만드는 성격이 짙다. 네, 은근하고 뻘쭘한 유머가 많죠. 성격이 그래서 그런가? 근데 그게 저한테는 자연스럽거든요. 코미디 영화에서 웃긴다 그러면 기를 쓰잖아요. 여기서 한번 웃겨주고, 폭소 한 번 이런 게 많은데 저는 그렇게는 못하고 성격상도 그렇고 또 그렇게 하다보면 너무 오바하게 되는 거 같고.

이 영화에서 나오는 웃음은 사실 형사들이 하는 여러 가지 짓거리 때문에 웃게 되잖아요. 무덤가에서 절 한다거나 목욕탕에서 무모증 환자 찾는 거처럼. 그런데 실제 에피소드에서도 그랬고 저는 그 모든 걸 그냥 공포이건 웃음이건 모두가 사실적인 테두리 안에 있는 거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호러영화에서처럼 여기선 겁 한번 주고, 여기서는 폭소, 여기서는 슬픔, 뭐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건 되게 싫어하거든요. 모든 게 인물들의 리얼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원래 인간들이 항상 희로애락 겪으면서 사니까. 형사들의 캐릭터를 따라가다 보니까 그 모든 감정들을 만나게 된 것 같아요.

당 영화에 대한 기사가 모두 호평 일색이다. 단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본 우원의 작지만 날카로운 눈은 피해 갈 수 없음이다. 당 영화에서 단점을 찾아냈다. 그것도 결정적인 단점을. 베드신이 너무 짧다.
으하하하! 짧을 뿐더러 제대로 하고 있지도 않지. “빠진 거 같은데?” 이게 다잖아. (계속 웃음)

그러니까 말이다. 보여주려면 좀 더 화끈하게 보여주지 왜 그랬나, 토끼 빠굴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에로틱한 거 보여주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이런 말하면 강호형이 신경질 내려나? 사실 강호 선배 데리고 에로틱한게 되지도 않지. 근데 하여튼 둘의 관계를 보여준 장면이 나른하고 일상적인 느낌이잖아요, 대낮이지 또 여관에서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고.


둘이 동거하는 집이 아니고 여관이란 말인가?
여관이에요. 에로틱한 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냥 뻘쭘한 얘기하면서 시골 형사의 일상을 보여주는 느낌이었어요. 명랑 빠굴 사회를 앞당기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누워있잖아요, 그러다가 금방 또 백광호에 대한 정보를 듣고. 원래 시골 형사들이 동네 미장원이나 목욕탕 집 아저씨 등 거점을 확보하면 정보가 금방 들어오거든요. 어쩌면 둘의 관계도, 나중엔 애까지 낳고 살지만 아마 그렇게 출발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건 직접 형사들을 인터뷰 하다가 들은 얘긴데 살 섞어서 나온 정보가 진짜 캡 정보다, 그런 말이 있어. 그냥 어디서 주어들은 정보랑은 완전 질이 다른 정보다 그거죠. 예전에 그런 사건 있었어. 신창원이 레지들이랑 동거하다가 도망가고 그랬쟈나요. 근데 한번 뉴스에 잠깐 나왔던 사건이 있는데, 신창원을 추격하던 형사 하나가 신창원과 동거했던 다방 아가씨를 성추행 비스므리하게 해서 고소당한 사건이 있었어요.


나랑 인터뷰하던 형사는 그 얘기를 하면서, “물론 그게 안 좋은 거지만 그게 다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수산데, 노하우야, 그 자식이 성추행하고 그런 건 실수지만 그 심정은 이해가 갔어. 신창원의 여자와 살을 섞으면 그건 정말 바짝 다가가는 거거든. 성공했으면 정말 많은 정보가 나왔을 꺼야” 이러시드라. 나는 수긍하는 척하면서 들었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저건 심하다, 했는데 그런 맥락이 있드라구요. 그러니까 송강호와 전미선의 캐릭터들의 역사를 상상해보면 아마도 그렇게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귀 파면서 백광호 얘기 해 주자나요. 전반적으로 그런 느낌이 중요했지.

송강호가 목욕탕에 수사 나갔다 온 후에 전미선과 나란히 눕잖나. 근데 전미선 가슴을 무심하게 만져주 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드라. 그게 감독 생각인지 배우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무심하게 만져주는, 그거 말이 너무 우낀다. (웃음) 그렇죠. 그게 콘티에 딱 있어요. 부라자 위에 손을 올리는 게 콘티에 있고 저도 결혼생활을 7년 넘게 하다보니까 남녀가 같이 누워있는 분위기는 잘 알죠. 유일한 현장에서의 고민은 브래지어 속으로 손을 넣을 것인가, 겉으로 만질 것인가인데 나나 강호씨나 베드신 경험이 없고 모질지가 못해서 미선씨 눈치를 딱 보다가 강호선배가 미선씨 죄송합니다 하면서 위로만 했어요…



이렇게 끝났다.


뜬금없나, 그래도 할 수 없음이다. 2시간이나 계속된 질문과 대답으로 봉준호 감독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고 아직 물어볼 꺼리가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아쉽게도 그와의 이너뷰는 베드신에 대한 대답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니덜이 좀 이해해 주시라. 요즘 봉 감독 좀 바쁘겠냐?


아닌게 아니라 그 날 봉준호 감독은 본지와의 접선을 포함하여 약속이 4건이나 더 있었고 개봉을 전후하여 <살인의 추억>과 관련해서 반복되는 이너뷰에 거의 미칠 지경이라는 표현까정 썼드랬다.


그럼에도 당 이너뷰는 매우 즐겁고 유익한 것이었다. 봉 감독 자체가 본 공사에 몹시 호의적인 인물인지라 친구들끼리 노가리 까듯 반말도 섞어가며 거의 허물없는 분위기 속에서 이너뷰가 진행됐고 영화가 한창 상영 중임에도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에 얽힌 많은 궁금증들을 속 시원하게 까 밝혀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인의 추억>을 이미 보신 독자라도 당 이너뷰를 열람한 후 다시 영화를 보게되면 그 느낌이 처음 볼 때와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 영화가 갖는 주제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세부적인 사항들이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소리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 역시 본지가 봉준호 감독을 만나 장시간에 걸쳐 이너뷰를 하게된 이유였음이다.


궁금증은 풀리셨는가? 그럼 봉준호 감독과의 이너뷰를 여기서 마친다. 졸라~


(2003. 4. 29. <딴지일보> 사진 편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