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감독과 배우 사이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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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위 거장이라 부르는 감독들의 연출력을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저 몇 가지 특징을 두고 가늠해볼 수 있을 뿐인데 그럴 때 배우들과의 호흡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마틴 스콜세지가 불안정한 초상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분열된 정신을 탐구하듯(<셔터 아일랜드>), 팀 버튼이 안개 자욱한 조니 뎁의 얼굴 위로 무지개를 쏘아 올리듯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배우들과의 남다른 인연을 과시하는 거장들의 신작 소식이 있어 화제다.

사실 이 같은 주제를 생각하게 된 건 순전히 피나 바우쉬가 속했던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내한 공연 소식과 때마침 들려온 빔 벤더스의 신작 <피나>(Pina) 소식을 접하고서다. 피나 바우쉬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무용수로 지난여름 암으로 사망해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특히 빔 벤더스는 생전의 피나 바우쉬와 공동으로 그녀의 공연을 스크린에 담기로 했던 터라 충격은 더했다. 대신 빔 벤더스는 영화를 통해 그녀를 되살리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피나>는 3D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영화다. 피나 바우쉬는 가고 없지만 <카페 뮐러> <봄의 제전> 등 대표작을 통해 스크린에서나마 실재하는 그녀의 춤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장 뤽 고다르의 신작 <소셜리즘>(Socialisme)에서 만날 수 있는 배우(?)는 패티 스미스다. 펑크록의 대모로 유명한 패티 스미스가 전면에 나서 연기를 펼치는 것은 처음이다. 고다르가 워낙 비밀리에 영화를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해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지만 그녀는 전직 프랑스 경찰로 출연한다고 한다. 고다르의 말을 빌자면, <소셜리즘>은 ‘세계 속의 흐름’에 관한 영화다. 고다르의 특성상 정치적인 경향을 띌 이 영화에서 패티 스미스는 록의 전설로써, 페미니즘 전파자로써 자기반영적인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두기봉의 <복수>(復仇)는 홍콩영화지만 주인공은 음반을 8천만장이나 팔아치우고 100회의 투어기록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의 록큰롤 스타이자 국민가수인 조니 할리데이가 맡았다.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홍콩을 찾은 프랑스인 아버지 역할을 맡은 것. 극중 이름 코스텔로는 알랭 들롱이 출연했던 걸작 범죄영화 <사무라이>(1967)의 주인공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두기봉 감독은 코스텔로 역에 알랭 들롱을 캐스팅하려했다. 하지만 알랭 들롱은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거절했고 결국 조니 할리데이가 출연하게 됐다.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 작가>(The Ghost Writer)는 영국 총리와 그의 대필 작가 간에 벌어진 살인을 다룬다. 특히 과거 미국에서의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구속된 이후 스위스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감독의 처지가 묘하게 겹친다. 극중 섬에 갇힌 대필 작가의 신세가 폴란스키의 지금을 연상시키는 것. 실제로 로만 폴란스키는 <유령 작가>의 포스트 프로덕션 도중 체포되어 한동안 감금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영화사는 출연 배우들에게 로만 폴란스키의 체포와 관련한 발언을 자제할 것을 권유했는데 피어스 브로스넌은 “필름도 깡통 속에 담겼고 감독도 깡통 속에 감금됐다.”고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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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2010년 4월호

[PIFF 2009] <파주> 부산을 매료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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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를 두고 ‘시네마 천국’이라 일컫는 이유는 단순히 영화가 많고 스타가 즐비하기 때문이 아니다. 영화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봉영화에서 보이는 평단과 관객의 괴리 현상이 이곳이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다만 영화제에서는 장소를 막론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의견 차이를 좁히려는 토론으로까지 발전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에 대해 존중하는 배려가 목격된다. 결국 영화제의 궁극적인 목적이 ‘소통’이라는 것을 부산영화제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드물다.

소통은 또한 영화가 추구하고 갈구하는 이상(理想)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는 결과적으로 소통을 주제 삼으며, 또한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유통에 대해 고민한다. 이 세상에 자기 혼자 만족하려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없다. 설령 있다면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 소개하는 세 편의 작품은 영화중에서도 영화다.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인 동시에 앞으로도 인구에 회자될 ‘진짜’ 영화라는 얘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 인형>은 배두나가 출연한다고 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극중 배두나가 맡은 역할은 공기 인형 노조미다. 섹스 인형이라고 해도 무방한데(이 작품에서 배두나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전라의 연기를 펼친다.) 어느 날 생명을 얻으면서 영화는 노조미의 시선을 좇아 이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공기 인형>에는 딱히 극적인 전개랄 것이 없지만 대신 그녀 눈에 비친 세상과 사랑의 소중함이 일상의 나른함을 넘어서면서 시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이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현대사회에서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는 인간과 인간간의 교류, 즉 소통이다. 공기인형 노조미가 자신의 몸을 산화해 세상에 소통의 바람을 불어넣는 마지막 장면은 동화의 성격이 짙지만 그만큼의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결국 현대사회가 잊은(혹은 잃은)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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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기봉(조니 토)의 <복수>는 남자들의 의리에 관한 이야기다. 왜 아니겠는가. 홍콩느와르는 의(義)와 협(俠)에 치중한 남자들의 얘기를 통해 홍콩의 지정학적 상황을 은유했다. 홍콩의 중국반환 이후 이를 가장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감독은 두기봉이 유일하다. 두기봉이 90년대 후반부터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그의 영화는 결국 남자란 이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매번 대륙(중국)에 대한 욕망을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복수>의 경우, ‘따거’(큰형님)를 배신한 조직원들이 프랑스에서 온 이방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모습을 통해 홍콩느와르에서의 전통적인 의리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안 그래도 두기봉은 <복수>를 홍콩느와르의 큰형님 격인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작품을 구성했다. 딸의 복수를 위해 홍콩을 찾은 전직 살인청부업자 코스텔로(조니 할리데이)의 이름을 멜빌의 <사무라이>(1967)에서 알랭 들롱이 연기한 주인공 제프 코스텔로에서 가져온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한편으론 과거에 대한 향수라고 해도 무방하다. <복수>를 비롯해 두기봉 영화의 저변에 흐르는 노스탤지어의 감성은 강호의 도가 급격하게 땅에 떨어진 작금의 상황을 아쉬워하고 개탄하는 감독의 세계관을 그대로 투영한다. 그런 점에서 <복수>는 두기봉 필모그래프의 또 하나의 수작으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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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영화들이 비교적 구체적인 소통의 형상을 구현한다면 박찬옥 감독의 <파주>는 소통의 모호함을 부각하는 작품이다. <파주>는 형부와 처제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섹슈얼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죄의식 속에 살아가는 형부 중식(이선균)과 그에게 끝없이 의심을 품는 처제 은모(서우)의 관계 속에 도사린 모호한 심리 묘사에 치중한다. 가령, 중식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씻어내기 위해 언니 잃고 방황하는 처제를 헌신적으로 보살피지만 은모는 그런 형부의 태도가 언니의 살해를 숨기기 위함이라고 의심한다. 그렇게 각자가 다른 방향을 바라보지만 그럴수록 본심은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화해 이들의 방황은 더 길어지고 깊어진다.

박찬옥 감독은 중식과 은모의 마음속에 내재한 감정의 이중성이 서로에게 어떻게 왜곡되고 상처가 되는지를 묵묵히 지켜본다. 이렇게 감정의 경계에서 머뭇거리는 중식과 은모의 심리적인 상황은 극중 배경으로 등장하는 파주와 정확히 조응한다. 서울의 주변도시이자 재개발이 한창이라 헐벗은 파주의 지역성이 이들 주인공의 심리상태와 묘하게 공명하는 데가 있는 것이다. 사실 주인공의 특정 심리를 특정 공간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발화하는 박찬옥 감독의 능력은 데뷔작 <질투는 나의 힘>(2003)에서 이미 증명된 바다. 다만 뛰어난 서사성에도 불구하고 평가가 망설여졌던 것은 영화적이라 할 만한 그 ‘무엇’이 결여된 탓이었다.

<질투는 나의 힘>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파주>는 이야기에 걸맞은 영화적 화법에 대한 박찬옥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전작의 성과를 훌쩍 뛰어넘는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안개가 짙게 깔린 파주의 지방 국도를 푸른 빛 감도는 영상으로 구현해낸다. 영화가 주요하게 부각하는 모호함이라는 테마를 이와 같은 톤으로 구성한 상당 부분의 공로는 김우형 촬영감독에게서 기인한 것이지만 영화는 결국 감독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박찬옥의 역할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결국 <파주>는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복합적인지, 그럼으로써 얼마나 불안정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인간의 조건에 관한 매우 성찰적인 작품이라 할만하다. <파주>는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가장 뛰어난 영화에 속하는 동시에 올해 가장 중요한 한국영화로 언급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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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