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08년은 슈퍼히어로물의 진화를 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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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 전성시대다. <아이언맨>으로 출발한 2008년의 슈퍼히어로물은 <인크레더블 헐크> <원티드> <핸콕> 등을 거쳐 현재 <다크 나이트>로 정점을 찍고 있는 추세다. <아이언맨>은 국내 개봉과 함께 2주 연속, <원티드>와 <핸콕>은 일주일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슈퍼히어로의 위용을 과시했다. 특히 <다크 나이트>의 흥행 기세는 놀랍다. 미국에서 <타이타닉>에 이어 역대 흥행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더니만 한국에서는 4주 연속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하며 여차하면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세웠던 5주 연속 1위도 넘볼 태세다.

슈퍼히어로물의 기세는 이게 끝이 아니다. <헬보이2: 골든 아미> <왓치맨> <스피릿> 등과 같은 기대작들이 개봉 대기 중에 있을 뿐 아니라 작금의 유행을 타고 <플라스틱맨> <그린 애로우> <퍼스트 어벤져: 캡틴 아메리카> <저스티스 리그> <토르>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슈퍼히어로물이 제작을 앞두고 있어 그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쉽게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만큼 슈퍼히어로는 최근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현상이요, 탐내는 소재라 할만하다.

2008년의 슈퍼히어로물이 얻은 성과는 비단 폭발적인 인기에만 있지 않다. 불과 1년 전의 슈퍼히어로와 비교하더라도 올해 등장한 슈퍼히어로물은 장르가 품고 있는 내적인 논리 면에서나 허구를 다루는 형식적인 면, 그리고 그 속에 침전한 정치적인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점에서 변화한 면모를 보여준다.

우선, 태어날 때부터 영웅의 능력을 부여받거나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초인적인 능력을 얻게 된 과거의 슈퍼히어로와 달리 2008년의 슈퍼히어로는 만들어지는 존재로 거듭났다. 이제 슈퍼히어로는 더 이상 하늘이 점지해 주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돈’이다.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와 같은 가난한 고학생 슈퍼히어로는 올해 들어 대기업의 ‘회장님’들로 환골탈태(?)했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와 <다크 나이트>의 브루스 웨인이 대표적이다.

토니 스타크는 대형군수업체 CEO. 신무기 홍보차 방문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신이 만든 무기가 살상용으로 이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후 세계평화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니. 천재적인 과학적 지성과 자본을 바탕으로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이 된다. 브루스 웨인 역시 다르지 않다.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는 복수를 목적으로 초인적 존재로 거듭난다. 아버지가 물려준 천문학적 재산과 마음속에 도사린 두려움을 분노로 승화시켜 고담시를 지키는 ‘밤의 기사’가 된 것.

두 영화와는 다르지만, <인크레더블 헐크>와 <핸콕> 역시 이해 가능한 논리가 슈퍼히어로 탄생 과정의 기저에 깔려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슈퍼히어로로 기능한다. 예컨대, <인크레더블 헐크>의 브루스 배너는 헐크로 변신하는 자신의 분노를 치료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 분노를 억제하는데 성공한다. 이안이 만들었던 <헐크>(2003)가 감마선 실험의 실패로 헐크가 된 것과 비교, <인크레더블 헐크>는 이제 슈퍼히어로의 탄생이 이성(혹은 과학)으로 설명 가능한 텍스트가 됐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핸콕>의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슈퍼히어로가 백인 일색이었다는 점에 비춰 흑인 슈퍼히어로 <핸콕>의 등장은 이제 슈퍼히어로가 백인의 영역을 넘어 누구나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한 사례다.

이렇게 슈퍼히어로가 현실세계에 깊이 뿌리를 내린 만큼 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만화를 연상시키는 허구적인 묘사를 벗어나 사실주의에 기반 한 형태로 변모한 것. 그에 따라, 인물의 내적 고민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와 깊은 연관을 맺게 됐고 세트 차원에서 머물던 공간 묘사는 현장 로케이션으로 그 범위를 넓혔으며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의 활용 역시 느와르와 범죄물로까지 나아가며 더욱 더 현실적인 모습을 취하게 됐다. 허구의 세계를 맴돌던 과거 슈퍼히어로물이 캐릭터의 수와 이야기의 규모, 무엇보다 기술적인 면에서만 진화를 꾀한 것과 비교하자면 실로 획기적인 변화다.

그 시작은 <배트맨 비긴즈>(2005)에서 있었다. 허구의 이야기에 사실주의를 접목한 <배트맨 비긴즈>는 전례 없던 형식의 진화를 꾀하며 새로운 슈퍼히어로물의 전범이 됐다. 그때부터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슈퍼히어로물의 영화적 재미를 떠나 변모한 형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그건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슈퍼히어로물을 준비 중이던 관계자들도 <배트맨 비긴즈> 이후 이 영화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 반영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슈퍼히어로물은 늘 진화해왔다. <배트맨 비긴즈>도 의심의 여지없는 진화의 한 사례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실주의(realism)가 무엇을 겨냥하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좀 더 기다려 봐야할 것 같다.” 당시 <스파이더맨 3>를 준비 중이던 샘 레이미 감독의 말이었다.

그에 대한 답변은 2008년에 이르러서 밝혀졌다. 그것은 물론 <배트맨 비긴즈>를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이뤄졌다. 속편 <다크 나이트>는 사실주의 노선을 유지하면서 이야기의 심화를 꾀해 전편의 성취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야기의 심화를 이룬 부분에는 명백히 지금 미국이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크 나이트>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배트맨의 명성이 더 강한 적을 부른다.’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9.11 이후 ‘적’을 소탕하겠다며 전쟁을 일상화한 미국이 더 큰 재앙에 직면한 현실세계의 정치학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물은 결국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사실주의적인 묘사가 겹쳐진 <다크 나이트>는 미국의 현실에 대한 은유로 작용하기 안성맞춤인 구조다. 공교롭게도 <다크 나이트>의 성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이언맨>에서도 슈퍼히어로물을 통한 미국의 정치학을 감지할 수 있다. 극 초반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이 9.11의 주범으로 지목한 빈 라덴을 제거하겠다며 무모한 전쟁을 감행한 곳이다. (1963년 선을 보인 원작만화에서는 베트남이었다!) 영화는 이곳을 배경 삼아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을 통해 테러리스트를 응징하고 약자를 지킨다는 논리를 은연중에 구축하며 전쟁에 대한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처럼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은 미국 주도하의 국제 정세에 대한 자국의 입장을 반영한 알레고리로 작용해왔다. 하여 슈퍼히어로의 진화는 흥미롭게도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이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을 때마다 있어왔다. 슈퍼히어로물의 장르 공식을 창조한 것으로 평가받는 리처드 도너 감독의 1978년 작품 <슈퍼맨>은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강한 미국에 대한 상징에 다름 아니었다. 이후 이에 영향 받은 대부분의 슈퍼히어로물은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를 적으로 상정해 무찌르는 ‘미국 만만세’ 영화로 전락(?)하며 지극히 단순화되어갔다.

이에 변화가 생긴 건 9.11을 전후해 슈퍼 국가 미국의 위상에 의문부호가 달린 2000년대부터다. 브라이언 싱어, 샘 레이미 등과 같은 비주류 성향의 감독들이 <엑스맨> <스파이더맨>과 같은 작품을 만들면서 슈퍼히어로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1989년 등장한 팀 버튼의 <배트맨>은 이런 흐름의 시초라 할 수 있지만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건데 너무 앞서간 슈퍼히어로물이었다) 우리의 슈퍼히어로는 더 이상 주류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이 아닌 타자였으며 돌연변이였고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그래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고 책임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특히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이전에 없던 슈퍼히어로에 대한 내적 고민을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징후적이었다. 스파이더맨은 미국의 평화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에 앞서 자신조차 추스르기 힘든 상황이었다. 슈퍼 파워를 가지고 있음에도 집세도 내지 못하는 가난뱅이였고 변변한 일거리도 얻지 못하는 백수신세였다. 그렇게 미국은 외부의 적에만 신경 쓰는 사이 내부적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그 결과, 슈퍼 파워에 대한 강한 의문부호가 따라붙었고 그에 따르는 책임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언맨>과 <다크 나이트>는 그에 따른 고민의 결과가 각각 어떤 형태로 구체화됐는지 잘 보여준다. <아이언맨>은 내부의 환부를 도려내고 (더 이상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토니 스타크의 결심에 불만을 품은 오베디아 사장과의 마지막 대결!) 슈퍼히어로의 역할을 긍정했다. 그에 반해 <다크 나이트>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 적의 정체(극중 조커는 ‘악’일뿐 그 어떤 부연설명도 없다!)에 혼란스러워하며 자신을 ‘어둠의 기사’라고 명명하곤 현실을 뒤로 한 채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렸다. 이제 더 이상 감출 것이 없어진 2008년의 슈퍼히어로물은 허구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리얼리즘을 끌어와 또 한 번의 진화를 꾀했다. 9.11 이후 미국 사람이 체감하는 불안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변화다.

슈퍼히어로물은 어느 날 갑자기 진화를 이룬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의 변화에 맞춰, 그에 따른 장르의 역사가 쌓이면서 그렇게 자가 증식해왔다. 2008년은 슈퍼히어로물의 진화가 어디까지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해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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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404호
(2008.9.9)

배우에게 목적지는 없다 – 킬리언 머피


킬리언 머피는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좀비의 공격에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워하는 연약한 인간에서부터 옆 좌석 승객의 목숨을 우습게 아는 악당까지 변신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플루토에서 아침을>에서는 여장남자로 등장, 전작의 연기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킬리언 머피는 극중 인물에 자신을 철저히 녹이는 배우다. 커피에 녹아든 설탕처럼 어떤 배역을 맡든지 간에 그 속에서 자연인 킬리언 머피의 모습을 끄집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알 파치노와 브래드 피트가 연기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캐릭터가 대변된다면 킬리언 머피는 천차만별의 배역을 그야말로 천차만별로 연기한다. 그의 필모그래프는 굴릴 때마다 전혀 다른 번호가 나오는 주사위와 같다. <28일 후>(2002)에서 연기한 짐은 원초적인 공포와 삶에 대한 본능이 충만한 인물이었고 <배트맨 비긴즈>(2005)의 크레인은 사악함을 뽐내는 악역이었으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의 데미안은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특히 <배트맨 비긴즈>가 발표된 2005년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 <나이트 플라이트>(2005)와 <플루토에서 아침을>(2005)에 출연,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웨스 크레이븐의 스릴러 영화에서는 테러리스트 잭슨 리프너로 출연, 충혈 된 눈(Red Eye)을 부라렸고 닐 조단 감독의 퀴어 영화에서는 여자를 꿈꾸는 남자 패트릭을 맡아 부드러운 여장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함을 믿을 뿐”이라는 <배트맨 비긴즈>의 크레인의 대사처럼 킬리언 머피는 동일한 얼굴, 같은 육체라 할지라도 출연하는 영화마다 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게 킬리언 머피가 보여주고 있는 다채로운 표정은 그만의 기준이 만들어낸 의도적인 결과물에 다름 아니었다. 그는 영화에 ‘포인트’가 존재하지 않으면 절대 배역을 맡지 않는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출연한 것도 단순히 켄 로치라는 감독의 명성과 조국 아일랜드의 역사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치적 혼돈 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감동을 받았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들어온 데미안이라는 인물이, 평범한 연기자가 펼치는 비범한 연기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출연을 결심했다. <28일 후>에도 그랬고, <플루토에서 아침을>도 그랬다. 사실 그의 얼굴은 꽃미남과 몸짱이 판을 치는 영화계에서 그리 눈에 띄는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아우라가 존재한다. 영화지 ‘인디펜던트’는 킬리언 머피의 눈을 일컬어, “쉽게 변할 듯 불가사의한 깊고 푸른 눈”이라고 묘사했다. 그의 눈은 평범한 외모에 비범함을 선사하는 킬리언 머피만의 꼬리표다. <배트맨 비긴즈>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경우, 어떻게 하면 안경을 벗기고 그의 눈을 더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킬리언 머피의 눈이 머금고 있는 표정은 과연 몇 가지일까. 그의 연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니 그의 눈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의문과 비밀만이 증폭된다.


소수자의 페르소나


닐 조단 감독의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아일랜드의 여장남자 이야기다. 킬리언 머피는 이 영화에서 패트릭이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태어나자마자 교회 앞에 버려진 패트릭은 한 가정에 입양되고 그때부터 엄마와 누나의 옷을 즐겨 입는 등 여자가 되고 싶은 성적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고아라는 점에서, 남자의 육체를 가졌지만 여자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패트릭은 소수자고 약자다. 독립문제로 영국과 무력 대립이 계속된 아일랜드의 남성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이에 굴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인물들은, <플루토에서 아침을>의 패트릭처럼 소수자거나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8일 후>에서는 전 세계가 분노바이러스에 오염된 가운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였고 곧 개봉할 대니 보일의 신작 <선샤인>(2007)에서는 꺼져가는 태양을 재 점화할 수 있는 유일한 물리학자로 등장한다.


이에 대해 아일랜드 출신의 킬리언 머피가 할리우드 내에서 갖는 소수자의 위치를 갖다 붙이는 건 너무 뻔할 뿐더러 재미도 없다. ‘엘에이 타임스’의 평론가 케네스 튜란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연기에 대해 광적일 정도로 훌륭했다고 평하며 그 이면에 아일랜드 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 덧붙였다. 하지만 킬리언 머피는 자신을 아일랜드 배우로 규정하는 것을 못 마땅해 한다. 자신은 아일랜드 인을 연기하는 배우일 뿐이지 아일랜드 출신 배우로 평가받기는 싫다는 얘기다. 그래서 동향이라는 점을 들어 콜린 패럴과 비교하는 것에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하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점을 빼면 이 둘은 전혀 다른 유형의 배우다. 킬리언 머피는 콜린 패럴처럼 외모와 사생활로 어필하는 배우가 아니다. 게다가 콜린 패럴과 달리 영웅을 연기한 경험도 없다. 영웅은 스타의 다른 말로 치환되는 영화계에서 킬리언 머피는 참으로 유별난 배우다.


한 개의 얼굴, 두개의 감정


그래서 그에게는 원형이라고 할 만한 배우를 찾기가 힘들다. 지난 2005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할리우드의 여름 시장을 정리하며 ’2005년 여름을 빛낸 연기자(The Most Valuable Players of Summer 2005)‘로 테렌스 하워드, 맷 딜런에 이어 킬리언 머피를 3위에 올렸다. <사냥꾼의 밤>(1955), <케이프 피어>(1962) 등에서 인상 깊은 악역 연기를 펼친 로버트 미첨과 비교하며 <배트맨 비긴즈>와 <나이트 플라이트>에서의 연기에 높은 점수를 준 것. 악역 연기만 놓고 본다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마초적인 이미지가 강한 로버트 미첨과 달리 그에게는 강한 남성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같은 악역이라도 킬리언 머피가 연기하면 악당답지 않은 유약함이 묻어난다. 겉은 사악한 눈과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야수지만 껍질을 까보면 두려움과 미숙함 등으로 범벅된 연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배트맨 비긴즈>의 크레인은 라스알굴(와타나베 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하수인에 불과했고 <나이트 플라이트>에서 국토방위부 차관 암살을 노리는 잭슨의 계획을 방해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미모의 호텔리어였다. 이건 평생 백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던 로버트 미첨도 표현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연기다.


다시 말해, 이런 이중성이야말로 연기자 킬리언 머피를 규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다. 그가 맡은 역할의 대부분은 분열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두 개의 성격 혹은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거나 두 갈래 선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루토에서 아침을>은 말할 것도 없고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상냥한 의학도지만 전사가 된 데미안을 통해 보여주는 연기는 그 정수다. 처형해야 하는 밀고자가 친구라는 사실 앞에 의무와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조국을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거겠지?”라는 표적을 상실한 대사를 내뱉으며 근사한 내적 연기를 보여준 것. 킬리언 머피의 이중적인 이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감독은 바로 대니 보일이었다. 대니 보일은 <쉘로우 그레이브>(1994)<트레인스포팅>(1996)<비치>(2001) 등을 통해 환경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를 모색하며 파괴돼 가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해온 감독. 그리 길지 않은 필모그래프지만 킬리언 머피가 한 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감독은 대니 보일이 유일하다. <28일 후>에서는 좀비로 변한 아이 하나 죽이지 못하다가 분노의 화신이 되어 인간을 잔인하게 난도질하는 짐을 연기했고 <선샤인>에서는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서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채 선과 악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카파를 연기했다. 킬리언 머피는 인간의 이중성을 파고드는 대니 보일 감독의 페르소나인 셈.


그가 연기에 입문한 계기도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연기한 영화 속 인물들과 닮아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배경인 아일랜드 코크에서 태어난 킬리언 머피는 학창시절을 줄곧 고향에서 보내며 코크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의 전공은 연기가 아닌 법학. 대신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결성한 ‘Sons of Mr. Greengenes’라는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했다. 킬리언 머피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처럼 낮과 밤을 가르며 법학 공부와 기타 연습에 몰두했다(<플루토에서 아침을>의 사운드트랙에 쓰인 ’Sand’에서 직접 기타를 연주했다). 음악으로 연기 활동의 예열을 마친 후 연극으로 기어를 넣었다. 무정부주의적인 십대로 출연한 <디스코 피그>(1996)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이를 각색한 커스틴 셰리던(짐 셰리던의 딸)의 동명 영화로 화려한 연기 생활의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을 희망했으나 거절당하고 이완 맥그리거마저 떠난 <28일 후>의 짐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앤소니 밍겔라 감독의 <콜드 마운틴>(2003), 피터 웨버 감독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단역을 거쳐 <배트맨 비긴즈>와 <나이트 플라이트>로 이제는 할리우드가 열렬히 구애하는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다.


국적을 가리지 않는 연기


<플루토에서 아침을>에는 패트릭의 성격을 단 한칼에 규정짓는 인상적인 아역 시절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총싸움을 하자며 장난감 총을 건넨 친구에게 자신이 왜 아일랜드를 위해 죽어야 하냐며 함께 놀기를 마다한 것. 영양가 없는 명분에 개인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과 같다. 킬리언 머피의 연기관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배트맨 비긴즈>의 출연을 두고 혹자는 킬리언 머피처럼 재능을 가진 배우가 왜 할리우드 영화의 작은 배역에 등장해 재능을 소진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의 생각은 다르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 하에서도 독립적인 환경과 적은 예산을 가지고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감독과 좋은 작품이라면 할리우드 영화든 아일랜드 영화든 영국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이든 출연을 마다하지 않는다.


<배트맨 비긴즈>의 출연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제안이 있기 전 킬리언 머피가 자발적으로 배트맨 오디션에 참가해 이루어졌다. 배트맨 역은 최종적으로 크리스천 베일에게 돌아갔지만 그를 눈여겨본 감독은 크레인 역할을 제안했고 보잘것없는 역의 비중도 높여줬다. 감독은 영화가 코믹스 원작이지만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킬리언 머피의 티 없이 맑고 푸른 눈을 보며 포대를 뒤집어써도 전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20분 분량도 되지 않았지만 킬리언 머피의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해 벌어진 ‘MTV 무비 어워드’ 최고의 악당 부문에 노미네이트(<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의 헤이든 크리스텐슨 수상)되는 영광을 안았고, <나이트 플라이트>에서의 연기가 시너지를 발휘해 “완벽한 악당”(뉴욕 타임스) “최근 영화 중 가장 우아하고 매혹적인 악당 연기 중 하나”(뉴요커)라는 찬사를 받았다.


주목할 점은, 출연하는 영화마다 ‘갈지자’ 행보의 역할을 보여주는 그의 연기에 대해 누구하나 ‘변신’이라는 잣대를 들어 평가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 워낙에 출연하는 작품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배우기 때문에 변신을 기본 전제하에 킬리언 머피의 연기를 논한다. 현재 촬영중이거나 촬영을 마친 작품 역시 이전에 출연했던 작품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우선 런던의 웨스트엔드로 잠시 무대를 옮겨, 존 콜벤바흐의 ‘Love Song’이라는 작품에서 뮤지컬을 경험했고 영화계로 돌아와 이번엔 루시 루와 호흡을 맞춰 <탐정을 찾아라(Watching the Detectives)>(2007)라는 작품에서 코믹연기에 도전한다. 이처럼 변신이 실상인 킬리언 머피에게 연기의 최종 목적지는 없어 보인다. 늘 새로운 역을 찾아 길을 헤매고 쉬지 않고 연기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킬리언 머피는 아직 갈 길이 먼 배우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완성되지 않음으로써 완성에 다다르는 흔치 않은 배우다. 그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새로운 경지의 연기를 지금 킬리언 머피는 펼쳐 보이고 있는 중이다.








FILM2.0 328호
(2007.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