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배명훈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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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는 2010년 ‘젊은작가상’을 신설해 수상작 7편을 모은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올해 3월 선보였다. 문학동네 소개에 따르면, 젊은작가상은 ‘등단 십 년 이내 작가들의, 아직 집중적으로 조명되지 않은 개성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한국 문학의 미래와 함께 하고자’ 신설했다. 또한 문학동네의 심사 경위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동안 각종 지면을 통해 발표된 신작 중단편을 대상으로 젊은 평론가들로 구성된 선고위원회가 131명의 작가가 쓴 190편의 작품 중 후보작 18편을 추천해 최종적으로 7편을 선정했다. 그리고 7편의 작품 중에서 대상 수상작을 가리기 위해 투표를 거쳤고 김중혁의 <1F/B1>과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그리고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로 압축됐다. 최종적으로 김중혁의 <1F/B1>가 대상을 차지했지만, 무엇보다 배명훈은 문예지에 처음 발표한 작품으로 대상 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지면(‘시대를 반영한 장르영화가 보고싶다’)을 통해 배명훈과 그의 작품을 언급한 적이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연작소설 <타워>를 발표하며 장르소설 쪽에서는 꽤 유명세를 탔지만 문단에서는 생소한 작가였다. 배명훈은 대학 재학 시절이던 2004년 <테러리스트>로 ‘대학 문학상’을 받았고 <스마트D>로 ‘과학기술창작 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되면서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단편소설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장르문학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가 문단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안녕, 인공존재!>가 계간 <문학동네> 2009년 겨울호에 실리면서부터다. 소위 장르문학 작가로 인식되던 배명훈의 작품이 문예지에 실렸다는 사실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여전히 장르문학의 수준을 순문학 아래에 두는 국내 풍토에서 이는 일종의 사건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꾸준히 읽은 독자라면 문예지에 실린 것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사실 배명훈의 작품은 딱히 SF라고 규정하기 힘들 만큼 장르적 경계가 모호하다. 우주선이 등장하기도 하고(<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 미래가 배경이기도 하며(<타워>) 시공을 초월하기도 하지만(<초록연필>) 장르적 규칙을 따르지도 않고 무엇보다 이미지로 환원할 수 없는 글쓰기를 지향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힘든 과학적인 설정을 소설의 주된 뼈대로 삼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순수하게 소설만의 미학을 추구한다. 배명훈 작품의 독특한 지점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배명훈의 작품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구성은 이질적인 두 요소의 충돌에 따른 예상치 못한 연결점이다.

예컨대, <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는 인도 뭄바이의 현실이 우주여행과 연결이 되고 <초록연필>은 평범한 사무실의 일상이 스페인의 예언자를 매개로 하여 지구 멸망 이야기로 끝맺음되며 <안녕, 인공존재!>의 경우, 자살한 전 여자 친구가 남긴 최첨단(?) 과학 기계 ‘조약’(동그란 돌멩이)에 대한 의문을 품고 우주로 날아간 주인공이 장렬하게 존재 폭발한다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 배명훈의 소설은 짧게 줄거리를 요약할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SF의 외피를 둘렀을지언정 오로지 글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그의 작품에는 소설 특유의 글쓰기 상상력이 빚은 순수한 경지의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다. 배명훈 그 자신이 표현하길,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 각광을 받는 것 같다. 나는 그걸 피한다. 영화에 종속되는 서사가 아니라 텍스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미학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과 글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은 다르다. 영화를 염두에 둔 글쓰기를 하다보면 글의 미학이 점점 사라진다. 그러면 글의 맛을 모르는 세대가 나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를 우선한 작업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배명훈의 글은 한편으로 순문학에 더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모든 장르문학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영화화를 염두에 둔 장르문학이 많아지면서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묘사가 추세인 것에 반해 배명훈은 과학적 지식을 일상적 상황으로 끌고 들어와 글로만 설명 가능한 서사를 지향한다. 하여 장르문학이 사건을 중심에 놓은 전개를 펼쳐 보인다면 배명훈의 작품은 사건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상대적인 비교일 뿐 순문학 모두 이미지 연상 부재의 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배명훈에 대한 평가는 그의 작품이 가진 모호함 혹은 이중성, 궁극적으로는 경계 파괴에 대한 것이 많다.

2010년 젊은작가상의 심사평을 예로 들자면, 소설가 신경숙은 <안녕, 인공존재!>를 두고 ‘다른 별에서 써가지고 온 것 같은 작가의 전문가에 육박하는 지식과 문학 텍스트 안에서 흔히 접하지 못한 서사의 신선함’이라 평했고 소설가 윤대녕은 ‘장르소설이 갖는 진부함과 통속성을 가볍게 극복하면서 존재론적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사유가 결국 이 작품의 주제로 귀결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독창적이고 참신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문학평론가 신형철(<몰락의 에티카>)은 ‘우리 문단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최근 들어 조금씩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종류의 상상력으로 씌어진 기발한 소설이다. (중략) 우리 문학에서 지금 절실한 것은 한 편의 소설을 구성하는 ’발상체계‘ 자체의 확장이라고 보는 시각에서는 배명훈이라는 작가의 등장은 희소식이다.’라면서 ‘성급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한국의 테드 창이 되기를 기대 해봐도 좋을 것 같다.’고 극찬했다.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펼친 지 이제 고작 7년. 그동안 그는 쉽 없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지만 유독 장편소설만은 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더욱 ‘한국의 테드 창’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배명훈의 말에 따르면 올해 11월 정도면 그의 장편소설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지난해 6월 배명훈과 가졌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장편소설에 대해 “15만년 뒤 어느 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긴데 다른 외계행성과 다른 점이라면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을 쓰는 곳이다. 거기에는 신이라고 알려진 행성이 궤도를 돌고 있는 스위치가 꺼져 있는 상태다. 그렇게 잠든 신에게 도달하려는 사람의 이야기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출간일까지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 그 후로 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 전에 먼저 배명훈의 단편집을 만날 수 있다. 다가오는 6월, 2편의 미공개 단편과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안녕, 인공존재!>를 포함해 모두 6편으로 이뤄진 <안녕, 인공존재!> 표제의 단편집이 나올 예정이다. 이 작품들 역시 SF적인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글로써만 표현 가능한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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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5.24)

시대를 반영한 장르영화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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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운이 좋게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SF작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배명훈과 테드 창이었다. 배명훈은 그의 이름을 단독으로 내건 첫 번째 소설 <타워> 출간에 맞춰, 테드 창은 게스트 자격으로 참가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 방문에 맞춰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두 사람은 한국 대중들 사이에서 낯선 이름이지만 장르 팬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작가다. 배명훈의 경우, 소설가 박민규의 표현을 빌자면, ‘아마도 100년 후, 한국 문단은 작가 배명훈이 이 땅에 있었다는 사실에 뒤늦은 감사를 표해야 할’만큼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작가이고, 테드 창은 장편 하나 없이 단편소설 발표만으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SF소설계의 거장 대접을 받는 작가다. (한국에 출간된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2004년 1쇄 출간 후 지금까지 SF로는 이례적인 8쇄 판매를 기록했다!)

사실 배명훈과 테드 창은 SF를 다룬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판이한 작가들이다. 1990년 데뷔한 이후 단 12편의 단편을 발표한 과작의 테드 창과 달리 배명훈은 한 달에 한 편 이상의 단편을 쓸 만큼 다작의 작가다. 또한 테드 창은 소설쓰기를 부업으로 삼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것에 반해 배명훈은 현재 전업 작가다. (그는 조만간 직장을 얻을 계획이란다!) 그러다보니 이 둘은 작품의 스타일도 참으로 상이하다. 테드 창이 과학현상 혹은 수학공식을 풀어나가는 듯한 건조한 문체를 선보인다면 배명훈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 집중하며 따뜻함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배명훈과 테드 창이 비슷한 부류의 SF작가로 기억되는 것은 둘의 작품이 모두 영화화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이들과의 인터뷰에서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 쓰기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 각광을 받는 것 같은데 나는 그걸 피한다. 영화에 종속되는 서사가 아니라 텍스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미학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과 글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은 다른데 영화를 염두에 든 글쓰기를 하다보면 글의 미학이 점점 사라진다.” (배명훈)

“몇 년 동안 소설쓰기를 완전히 포기한 적이 있었다. 대신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다른 방법으로 저예산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그 작업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소설 집필을 하게 됐다.” (테드 창)

한때 영화기자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으로서, 장르소설 애호가로서 이들의 작품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진한 아쉬움을 느꼈더랬다. 내가 알고 있는 장르 지식 범위 안에서 SF문학은 많은 이들이 영화화를 바라지만 실제로 영화화가 가장 힘든 장르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알프레드 베스터다. 그의 대표작인 <파괴된 사나이> <타이거! 타이거!>는 많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이 스크린으로 옮기겠다며 호방하게 달려들었다가 금방 꼬리를 내린 ‘비운의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타이거! 타이거>의 경우, 박찬욱 감독이 해외로 진출하게 되면 가장 먼저 연출하고 싶은 작품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는 조만간 다룰 예정이다!) 속마음을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 ‘음악’으로 심리를 조작한다는 설정(<파괴된 사나이>), 소리를 시각으로, 움직임을 소리로 지각한다는 설정(<타이거! 타이거!>)을 영화의 이미지로는 어떻게 묘사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알프레드 베스터 역시 배명훈이나 테드 창과 같은 입장과 다르지 않아서 소설 자체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욕망으로 절대 영화화되지 않도록 구성하는데 많을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이들의 발언에서 영화매체의 보수성을 읽는다. 영화는 대중들이 가장 즐겨 찾는 오락일 뿐 아니라 문화의 전위(前衛)를 자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매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백년의 역사가 넘는 영화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진보하고 있다지만 그것은 단순히 관객들이 보고 경이감을 느낄만한 시각적인 측면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영화가 자본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막강한 산업으로 군림하면서 보다 안전한 수익창출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지양하고 오로지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볼거리에만 치중하는 풍토가 영화의 보수성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테드 창은 그날 인터뷰에서 영화 시나리오 집필 경험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얻은 단 하나의 깨달음이라면, 말이 되는 소재와 보기에 좋은 소재 사이에서 선택이 주어졌을 때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곧 시나리오 작업을 접고 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문학 쪽에서는 흥미로운 SF소설이 계속 등장하는 것에 반해 영화 쪽에서는 국내외를 통틀어 인상적인 SF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한국의 SF영화는 신태라 감독의 <브레인웨이브>(2006) 이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제작이 거의 유일하다!) <스타트렉: 더 비기닝>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등이 등장하긴 했지만 SF라는 장르적 특성만 사용됐을 뿐 실제적으로 변화하는 시대를 담지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SF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한 모습이었다.

테드 창은 이번 부천영화제가 마련한 강연회에서 “SF는 반드시 변화하는 것을 다뤄야한다.”고 말했다.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좋은 SF”라면서 “진보야말로 SF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장르는 소위 시대의 산물이다.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아서 적극적으로 시대를 반영하고 내부 규칙을 업데이트하면서 진화해온 까닭이다. 그중에서 SF는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장르다. 그래서 좋은 SF를 발견하기 힘든 요즘 극장가에서 시대를 반영한 영화를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 관객의 취향에 영합한 오락영화도 분명 필요하지만 시대를 외면하고 반쪽짜리 역할만 하는 영화계가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전 세계적으로 시대가 하수상하기 때문일까. 시대를 반영한 장르영화가, 특히 잘 만든 SF영화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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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09.8.12)

<타워> 배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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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가 화제다. <타워>는 674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이자 독립국가인 ‘빈스토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 물론 발매와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지만 과학소설(Science Fiction)치고는 비교적 판매량도 높은데다가 그동안 장르소설에 무관심했던 일간지의 인터뷰가 쇄도할 정도로 관심이 높은 것이다.

과거와 달리 장르소설에 대한 독자의 저변이 넓어졌다지만 유독 과학소설에 대해서만큼은 무관심했던 이들이 <타워>를 향해 이례적인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타워>를 읽었다는 이들의 의견을 샅샅이 그러모은 결과, 설정이 재미있어서, 한국사회를 재미있게 풍자해서, 원래 재미있게 글을 쓰는 작가라서 등등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재미있다’는 사실 하나에서만큼은 의견 통일을 보았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타워>가 궁금해졌고, 작가 배명훈이 궁금해졌다.

배명훈과의 인터뷰는 과학소설전문출판사이자 <타워>를 출간한 ‘오멜라스’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주로 <타워>에 대한 것이었지만 결국 작가 배명훈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됐다.

허남웅 기자(이하 ‘허’) <타워>는 오멜라스에서 처음 출간한 한국 작가의 소설이라고?
배명훈(이하 ‘배’) 이들과 서로 공감을 이룬 상황에서 작업을 했던 게 너무 좋았다. 편집부터 표지 이미지까지, 내가 개념을 설명하고 이미지를 설명한 게 아니라 설정을 동의한 상태에서 이뤄진 게 편하면서 쾌감이 있었다.

반응도 좋은 편이다.
출판사에서 관심을 갖고 잘 해주고 있다. 기획 단계부터 출판사 편집자 분들과 함께 고민했다. 나 혼자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분들과 많이 공유했던 책이다. 

‘그분들’ 말씀으로는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서 차기 소설 준비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고? (웃음)
애로사항까지는 아니다. 다만 <타워>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현재 쓰는 글을 진행할 수 있는데 인터뷰가 <타워>와 관련되다보니 현재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

<타워>뿐 아니라 지금 준비 중인 작품에 대해서도 물어볼 거다. 물론 살짝. (웃음)
(웃음)


<타워>는 어떤 이야기?

<타워>의 배경인 빈스토크(Beanstalk)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하늘까지 솟은 콩줄기 이름에서 차용했다. 높이 2,408m에 이르는 지상 최대의 마천루로 설정된 빈스토크는 일견 현대판 바벨탑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설국열차>를 수직으로 세운 버전으로 이해하는 편이 옳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발가벗겨 교훈을 설파하는 대신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 더 정확히는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설국열차>와 다르다면, 유머를 이야기의 주요한 동력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타워>의 핵심은 유머가 기능하는 방식이다. 극중에서 밝히길 빈스토크는 ‘어느 나라의 수도에 위치해 있다’지만 <타워>를 구성하는 여섯 편의 단편이 발판삼은 배경은 의심할 바 없이 현재의 서울이요, 실제 대한민국이다. 다만 정색하지 않고 유머로써 현실을 관통하는 필력에는 비관이나 슬픔보다 감동과 웃음이 넘쳐난다. <타워>의 재미와 매력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버즈 두바이’(필자 주_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에 건설되고 있는 높이 810m 높이의 160층 빌딩)를 보고 <타워>를 구상했다는 인터뷰를 봤다.
TV를 보다가 생각했다는 의미에서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이라는 말을 쓴 거다. 발상 자체가 버즈 두바이에서 얻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어떻게 ‘타워’를 배경으로 할 생각을 하게 됐나?
‘타워’를 큰 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문명을 좁은 데 집어넣는다고 상상했다.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사회를 이루는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을 크게 했다.

높이 2,408m, 674층, 인구 50만이라는 수치는 어디에 근거를 둔 건가?
숫자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러니까 마지막 단위까지 밝히는 게 의미가 있다. 674라는 숫자에 의미가 있지는 않다. 의미 있는 숫자는 일부러 피하려 했다. 666층을 할까도 했는데 뻔해서 일부러 안 했다. (웃음)

구체적인 살은 어떻게 붙이게 됐나? 빈스토크는 허구의 타워지만 실제로는 서울을 옮겨놓은 것 같은 인상이 짙더라.
도시를 넣은 거다. 문명을 집어넣은 건데 자연을 뺐으니 도시인 거다. 도시 문명을 집어넣은 거니 서울이 맞지 않을까?

<타워>가 현 한국사회에 대한 풍자소설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안 그래도, MB정권의 표현자유 억압이 심각한데 그 때문에 서울에 대한, 한국에 대한 풍자라고 단정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웃음)  
그건 오해다. 난 절대 <타워>가 서울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 적 없다. 공식입장은 ‘서울이 아닙니다.’다. (웃음)

현 시국을 겨냥해서 쓴 소설은 아니지만 출판시기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용산참사가 터졌을 당시에 지금이 타이밍인가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물론 MB정권 하에서는 계속 타이밍일 것이다 생각했다. 그것이 지금과 맞물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MB정권 하에서는 <타워>의 소재가 무궁무진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
그렇다. (웃음) 세상이 평화로우면 작가들이 적을 발견하기 힘들다고 해야 하나. 안 보이는 적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보이는 갈등요소들이 많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수월하다. 

50만이 거주하는 곳이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겠으며 더군다나 MB정권인데, 1년 후면 또 얼마나 많은 얘깃거리가 생기겠나. <타워> 시즌2도 기대할 법하다.
다른 책 쓰다가 다시 돌아와 <타워> 시즌2, 시즌3처럼 30년간 써먹을 생각이다. (웃음) 처음 구상했을 때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모두 담을 수 있을 만큼 소재가 많았다. 다만 책의 주제와 연관이 되는 소재에 집중했다. 이야기 하나하나의 독립된 플롯과 서로 연결이 되게 구성한 건데 <타워>는 실린 이야기보다 훨씬 풍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소재다. 

편지체, 대화체 등 서술의 형식이 다양하다. 다양한 소재에 따라 접근한 형식인가?
이게 대하장편소설로 가도 될 정도로 풀 수 있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했다. 하지만 처음 들어갈 때는 옴니버스 형식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타워>가 굉장히 큰 공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시점에서 들어가고 싶었다. 다양한 분석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다양한 서술방식으로 들어가야 그럴수록 더 풍부해지는 소재라고 생각한 거다.

3차원적 공간 구성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인가?
할리우드나 일본 영화를 보면 시가전이 등장하는데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그걸 안 하는 것 같다. 건물의 높이나 그 위에서 보는 외부시점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내부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된다. <괴물>이나 <김씨 표류기>도 서울이 배경이지만 도시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다. 왜 그런지 의문이다. 우리에게 도시라는 공간이 고향처럼 느껴지지 않는 걸까. 낯선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타워>도 내부의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내부 시점에서 보는 3차원적 공간으로 절충했다. 그게 한국적인 것 같다. 

머릿속에 그린 빈스토크의 모습은 어떤 형태였나?
처음엔 길쭉한 형태였다. 쓰면서 좀 두꺼워진 건 풍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동원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이하 <동원박사 세 사람>)에서 빈스토크의 공간구조를 권력구조로 재해석한 것처럼 갈수록 3차원적 공간이 강해졌다. 길쭉한 형태면 바벨탑 신화처럼 비판적인 성격이 강해지는 거라 욕만 쓸 것 같아서 넓은 형태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직설적인 현실 비판이 아니라 유머가 있는 우화라는 점에서, 게다가 책 속에 부록으로 ‘타워 개념어 사전’도 있고 <동원박사 세 사람>에 등장하는 개와의 인터뷰도 있고, 본지의 패러디 정신과 흡사한 측면이 많더라.
그런 코드로 연결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재미있자고 풍자하는 건데 유머를 감출 수는 없지. 옛날 세대 같으면 싸우거나 저항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이용하는데 우리 세대는 투쟁의 의미가 좀 다르다. 우리는 놀이로써 투쟁하는데 ‘그쪽’에서는 정색하고 달려드니 웃기지 않나. (웃음) 그게 우리만의 문화적인 정치생활이고 사회생활 방식인 거 같다.


<타워>의 배명훈은 누구?

배명훈은 놀이로써 글을 써왔다. 그에게 글쓰기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놀이다. 그러다보니 그는 여기저기 많은 곳에서 글을 발표해왔다. 대학 재학 시절 <테러리스트>(2004)로 ‘대학 문학상’을 받았고 <스마트D>로 ‘과학기술창작 문예 단편 부문’에 당선되면서 이후 환상문화 웹진 ‘거울’(http://mirror.pe.kr), 장르잡지 <판타스틱> 등을 통해 활발하게 글을 발표해왔다. 이제야 그의 이름을 단독으로 내건 책이 나온 것도 글쓰기를 직업이 아닌 놀이로 접근한 탓이 크다. (그는 김보영, 박애진과 함께 <누군가를 만났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오랫동안 읽어온 독자라면 ‘배명훈 월드’의 문법에 익숙하다. ‘은경’이라는 캐릭터의 잦은 출연, 전편에서 등장했던 상황이 다음 작품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등 작가와 그의 독자들만이 알 수 있는 코드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작가에게 그만의 세계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면 배명훈은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배명훈 월드’는 어떻게 축조된 것일까. 

<타워>가 더욱 남다른 건 본인의 이름을 단독으로 내건 첫 번째 책이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느낌이다. 그 전에는 책을 냈어도 마치 석사학위 있는 사람이 논문을 발표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작가라고 하기 애매한 게 있었는데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오니까 보는 시선이 여러 모로 달라졌다.

<타워> 발표 전까지는 특정 독자층에게 어필했다면 이번엔 일반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간 느낌인데?
동료작가가 이때까지 접하지 못한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지점으로 갔다는 말을 해줬다. 그 얘기는 나의 글 쓰는 과정이 변한 게 아니라 내 이름으로 책을 발표했기 때문에 이전과는 달라진 효과 중에 하나다.

과학소설 작가로 알려졌지만 <타워> 홍보에서는 ‘SF’란 단어를 철저히 사용하지 않았다고?
내 작품들은 꽤 스펙트럼이 넓다고 본다. 장르 속에 들어간 글도 있고 농도가 쫙 빠진 글들도 있었다. <타워>의 경우, 특정 장르를 염두에 두고 쓴 게 아니다. 장르의 선이 어디인지 알지만 넘어 다니는 게 자유롭다는 의미다. 특정장르에 얽매여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처음부터 ‘SF작가’ ‘장르작가’로 불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었나?
고민한 지 몇 년 됐고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그걸 넘어서는 글쓰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작품이건 국내에서 SF라고 과감하게 홍보하는 책은 없는 것 같다. (웃음) SF에 대한 편견인데, 그게 제대로 된 이미지가 아니면서 악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빼려고 하는 거다. 나도 처음에 이에 대한 신경을 쓰고 장르의 문법이 무얼까 고민도 하고 그랬다. 근데 지금은 선입견을 가지고 플롯을 끌고 가는 방법도 있으니까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과학소설은 현실을 토대로 미래를 내다보는 장르 아닌가. 그런 점이 한국에서는 무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상상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고 다만 수습하는 게 문제다. 설득하는 게 문제다. 회사에서 참신한 생각을 요구하지만 참신하게만 생각해오면 싫어하지 않나. (웃음)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럴싸한 가설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단편으로 시작해 연작소설을 발표했고 현재는 장편을 준비 중이다. 굉장히 체계적인 성장과정으로 비쳐진다.
의도한 건 아니다. 단편은 예전부터 한 달에 한 편 정도 계속 써왔고 그걸 묶을 수 있을 때가 되면 책으로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워> 이후 장편소설이 출간되면 처음이지만 이번이 장편을 처음 쓰는 건 아니다. 예전에도 썼다. 물론 나 혼자만 가지고 있지만. (웃음)

원래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나? 아니면 소설이 좋아서 쓰기 시작했나?
글쓰기를 좋아한다. 취미가 읽는 게 아니라 쓰는 거다. 책은 일반인보다는 많이 읽는 편이지만 동료작가에 비해서 워낙 안 읽으니까 그걸 이해 못하는 주변 분들이 많다.

그래서 단편 작업이 월등히 많은 건가?
단편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근데 한 작품을 몇 개월을 두고 완성도를 높이는 게 아니라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글을 쓰는 스타일이다. 베타버전을 내놓는다는 생각으로 한 편을 완성한 후 그걸 다시 발전시키는 형태로 연습한다. <동원박사 세 사람>의 경우, 그 전에 발표한 <초록연필>을 발전시켜 다음 단계로 나아간 거다. <초록연필>이 어떤 현상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추적했다면 <동원박사 세 사람>은 그걸 이론화시킨 거다. 그렇게 발전시키면서 글을 쓰고 있다.

맨 처음에 썼던 작품은 어떤 이야기였나?
십년 전이었나, 대학 재학 시절 여름방학이었는데 러브스토리였다. 러브스토리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쉽다. 서로 만났는데 제약이 생기면 갈등구조가 커지고 결말은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어떤 형태로든 가능하니까. 이렇게 구조가 명확해서 글을 쓰기 좋았던 것 같다.

<타워>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게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이었는데 러브 스토리다.
처음엔 지금 실린 것보다 더 말랑말랑하게 가려고 했다. 근데 사랑의 의미가 더 확장됐다. 처음에 하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사랑이 돼버렸다. 어느 공간인지에 상관없는 러브 스토리를 구상했다면 작게 갔을 텐데 빈스토크라는 소재의 무게가 개입을 하자 더 큰 잠재력이 보였다.

<스마트D>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웹진 ‘거울’에서 활동했다. 그러면서 장르의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발표했던 <이웃집 신화>는 장르의 클리셰로 전개를 하지만 결국 클리셰가 아닌 이야기로 귀결된다. 비로소 이 작품을 쓰고 나서 장르의 선을 넘을 수 있었다. 

장르작가는 특정 장르에 구애를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신 역시 <355 서가>라는 공포물도 썼고 <이웃집신화>처럼 러브스토리와 미스터리, 공포가 뒤섞인 작품도 발표했으며 <누군가를 만났어>처럼 특정장르라고 지칭하기 힘든 작품도 있다.
나는 다양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고집할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미리 정할 수 없다. 쓰면서 풀어 나가는데 그런 식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물론 공모전에 응모했던 <스마트D>는 심사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춰 글을 썼다. 그때 처음으로 이야기에 맞는 방식의 글쓰기를 제대로 공부한 것 같다.


<타워> 그 후

배명훈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영화화하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단순히 제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과학적인 설정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순수하게 소설만의 미학을 추구한다. 배명훈 소설의 독특한 지점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배명훈의 작품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구성은 바로 이질적인 두 요소의 충돌에 따른 예상치 못한 연결점이다. <우주로 날아간 마도로스>처럼 인도 뭄바이의 현실이 우주여행과 연결이 되고 <초록연필>처럼 평범한 사무실의 일상이 스페인의 예언자를 매개로 하여 지구 멸망 이야기로 끝맺음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이미지로 환원할 수 없는 소설 특유의 글쓰기 상상력이 빚어낸 설득력이 있다. 그의 작품이 발산하는 카타르시스는 오로지 글의 힘에서 나온다. 배명훈이 현재 준비 중이라는 장편 역시 글로써만 표현 가능한 작품이 될 예정이다.

<스마트D> 이후 벌써 5년이 지났는데 글 쓰는 환경은 많이 나아졌나?
본질적으로 변한 게 없다. 내 경우는 공모전이 있었고 장르잡지도 나오고 장르 관련 단행본 기획도 늘어나면서 마치 문단의 작가들이 신춘문예 데뷔하고 잡지에 글 발표하고 단행본 내는 등의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못하고 있다. 데뷔 기회가 생기긴 했지만 제도화돼있지가 않다. 작가로 데뷔하더라도 앞으로도 좋아질 거라고, 현 상태를 유지할 거라고 보장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20대 초반까지 소설 습작을 하다가도 취직하면 거의가 절필한다는 점이다. 회사가 여섯 시 퇴근만 지켜줘도 작가도 많이 생기고 책 판매량도 확 늘어날 텐데 그게 불가능한 거다. 본질적으로 암울한 문제인 것 같다.  
 
그럼 작가를 직업으로 갖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게 아닌가?
소설가를 직업으로 갖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돈이 안 된다는 면도 있지만 사실 그게 문제라기보다 직업으로 가는 경로가 없지 않나. 운이 좋아서 작가로 풀린 거지 작가가 될 거라고 결심한 건 아니었다.

이제는 직업작가인 셈인데?
나는 자리를 잡더라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앉아서 글만 쓴다면 나중에 쓸 얘기가 별로 없을 것 같다. <타워>도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글이었다.

직장을 다녔다고?
작년까지 연구원으로 직장을 다녔다. <동원 박사 세 사람>을 보면 연구원 얘기가 나오는데 연구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 때문에라도 직장을 그만 두고 계속 이 상황이 되면 나중에 오십 살이 돼서 뭘 써야 하나, 지금부터 이십 년간 남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 그때 가서 뭘 쓸 수 있을까 고민이다.

그럼 다시 직장을 알아볼 계획인가?
지금 당장은 아니다. 더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뭔가 마련을 해놓고 회사를 다녀야 할 것 같다.

그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장편인가?
홍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SF를 쓰고 있다. (웃음) 15만년 뒤 어느 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긴데 다른 외계행성과 다른 점이라면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을 쓰는 곳이다. 거기에는 신이라고 알려진 행성이 궤도를 돌고 있는 스위치가 꺼져 있는 상태다. 그렇게 잠든 신에게 도달하려는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적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강렬한 이미지인데 당신의 작품은 지금 준비 중인 장편도 그렇고 어느 작품 하나 영화화가 쉽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 각광을 받는 것 같은데 나는 그걸 피한다. 영화에 종속되는 서사가 아니라 텍스트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미학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영화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과 글에서 잡아낼 수 있는 미학은 다른데 영화를 염두에 든 글쓰기를 하다보면 글의 미학이 점점 사라진다. 그러면 글의 맛을 모르는 세대가 나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텍스트를 우선한 작업을 해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사진 편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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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2009.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