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하비 밀크의 시대를 희망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구스 반 산트 감독은 1998년 이미 하비 밀크와 관련한 영화를 기획한 적이 있다. <The Mayor of Castro Street>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를 위해 구스 반 산트는 하비 밀크 역에 숀 펜, 정적인 댄 화이트 역에 톰 크루즈를 캐스팅 물망에 올려놓고 워너브러더스사의 제작 승인을 기다렸다. 하지만 워너브러더스는 어쩐 일인지 제작을 망설였고 그렇게 표류하던 하비 밀크 프로젝트는 2008년 새롭게 <밀크>라는 제목으로 완성되어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와는 다른 연출

<밀크>라는 제목은 미국 최초의 커밍아웃한 게이 정치가 하비 밀크(Harvey Milk)에게서 따왔다. 영화는 하비(숀 펜)가 뉴욕에서 만난 애인 스코트 스미스(제임스 프랭코)와 샌프란시스코에 터를 잡은 1970년부터 전직 시의원 댄 화이트(조쉬 브롤린)에게 살해당하는 1978년까지를 다룬다. 하비가 샌프란시스코의 시의원이 되는 과정과 시의원이 된 후 정치적인 활약상에 집중하는 영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꿰는 건 유서를 녹음하는 하비 밀크의 음성이다.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를 거점 삼은 게이 커뮤니티와 관련한 뉴스클립과 다큐멘터리 화면으로 오프닝을 여는 <밀크>가 보여주는 첫 장면은 죽음을 예감한 하비 밀크가 뒤에 남을 동료들에게 남기는 전언이다. 녹음기를 앞에 두고 “지금 녹음하는 이야기는 내가 죽은 후 듣게 될 것이다.”라고 시작하는 하비 밀크의 차분하지만 단호한 음성은 이 영화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의 이야기임을 알리는 선언에 가깝다. (이와 관련한 얘기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이는 또한 감독의 영화적 선언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밀크>가 구스 반 산트의 최근 몇 작품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구성을 띤다는 점에서 그렇다.

감독은 이미 전작 <엘리펀트>(2003) <라스트 데이즈>(2005)를 통해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구스 반 산트는 죽음을 전후한 순간이야 말로 그 사람에 대한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죽음을 지렛대 삼아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은 <밀크>와 전작들 간에 큰 차이를 보인다.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가 파편화된 이미지로 시어(詩語)에 가까운 영화 언어를 구사한다면 <밀크>의 언어는 인물을 미화하지 않고 신화화하지 않는 객관적인 기록에 가깝다. 아마도 이 차이는 해당 인물(혹은 사건)이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의 성격에서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예컨대,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가 각각 다루고 있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과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진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는 바가 없는 사안에 속한다. 반면 하비 밀크의 공식적인 시의원 활동은 채 1년이 되지 않지만 그가 남긴 유산의 정체는 뚜렷해 관객은 이 영화가 주는 의미를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다. 하여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가 다수의 주관적인 시점과 몇 가지 행적을 토대로 한 재구성에 가깝다면 <밀크>는 사료 고증에 철저한 재현, 즉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숀 펜 생애 최고의 연기

<밀크>는 한편으론 극영화가 다큐멘터리적인 구성을 취할 때 ‘배우는 어떤 연기를 펼쳐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이라 할만하다. <밀크>처럼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작품에서 배우는 배역을 자기화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그 자체가 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구스 반 산트가 하비 밀크 역에 숀 펜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건 그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인물에 깊숙이 개입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있기 때문이다. 구스 반 산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숀 펜 외에는 없었다. 그가 맡아야 했고 실제로 해냈다. 실제 하비 밀크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는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숀 펜은 늘 캐릭터에 동화되는 연기를 펼치는 까닭에 자신을 버리는데 익숙하다. <칼리토>의 ‘곱슬머리’ 변호사나 <아이 엠 샘>의 ‘지체장애’ 아버지처럼 외양의 변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그중 하비 밀크의 외모는 원래 숀 펜이 가지고 있는 선 굵은 외모에 ‘포샵’ 처리를 한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가장 격한(?) 변신에 속한다. 다만 두드러진 외모적 변화만이 아니더라도 소수자인 게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대변자로 나선 하비 밀크에게서 숀 펜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조지 W.부시 정부의 비도덕성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한 숀 펜의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는 그대로 하비 밀크에게로 겹쳐진다.

이처럼 캐릭터의 모습에는 배우의 특징적인 이미지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외모일수도, 평소 성격일수도 있지만 숀 펜에게는 활동가적인 기질에서 드러나는 자기 확신에 찬 신념이다. 다만 “나의 정치적 감정이 극중 하비 밀크와 연결되는 것을 경계했다.”는 숀 펜의 말처럼 그는 특정 영화의 출연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하는 쪽이다. 다시 말해, 하비 밀크를 연기했다는 이유로 게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하비 밀크가 되려했을 뿐.   

<칼리토> 이후의 숀 펜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기억된다. 맡은 배역에 대한 존중과 이해심을 전제한 그의 변신은 캐릭터적인 볼거리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인물이 가진 배경을 넘어 아예 우주를 끌어안으려는 태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소수자 캐릭터가 1990년대부터 집중된 건 우연이 아니다. 그 정점에 바로 <밀크>가 있다. 숀 펜은 하비 밀크의 페르소나로 완벽히 변신하여 연기로써 대중을 압도하고 감동을 준다. (그리고 2009년 숀 펜은 <미스틱 리버>에 이어 생애 두 번째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밀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글머리에 스치듯 언급했지만 <밀크>는 이미 미국에서 2008년 개봉이 이뤄졌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2년 늦게 찾아온 셈인데 오히려 비상식이 판을 치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겨냥한 것 마냥 꽤나 적절한 시기에 찾아온 모양새다. 안 그래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하비 밀크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 나와 촛불 행진을 벌이는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거쳤던, 그리고 ‘다시’ 거쳐야할 행보를 떠오르게 한다. 이 장면 위로 흐르는 하비 밀크의 내레이션은 <밀크>가 보편적인 이야기이면서 현재진행형인, 즉 국경과 시간을 초월한 바로 지금 여기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지난 주 펜실베니아에서 전화가 왔다. 앳된 목소리의 청년이 고맙다고 말했다. 게이 정치가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 그와 같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갖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 (중략) … 이건 개인의 성취 문제도 아니고 자아나 권력의 문제도 아니다. 이건 ‘우리’의 문제다. 게이 뿐 아니라 흑인과 동양인, 노인과 장애인, 바로 우리의 문제다. 희망이 없으면 ‘우리’는 무너진다. 희망만 갖고는 살아갈 수 없지만 희망이 없으면 삶은 가치가 없다. 그리하여 당신이 그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밀크>는 전기(傳記)영화의 형태를 띠지만 결국엔 산 자의 이야기다. 하비 밀크의 죽음으로 그의 육체는 산화했지만 그가 뿌린 저항과 연대의 씨앗은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으로 뿌리내렸다. 다만 그 기록이랄 수 있는 <밀크>가 한국과 미국에서 점하는 사회적 지표는 각국의 대통령이 꿈꾸는 이념적 지향만큼이나 거리감이 크게만 보인다. 사실 <밀크>의 미국 개봉은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이었지만 이미 유력한 상황에서 소수자의, 소수자에 의한(구스 반 산트 감독이 게이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소수자를 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오바마 시대에 대한 영화였다. 

그런 <밀크>가 MB시대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국내에서 개봉하는 <밀크>는 ‘MB시대를 이겨내는 방법’ 혹은 ‘MB시대를 근절하는 방법’에 대한 영화라고 할만하다. 젊은 세대에게 상식이 통하고 대화가 통하는 사회를 물려주기 위한 희망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MB시대를 버티는 이유이고 또한 버텨야 하는 당위다. 비상식과 일방적인 명령에 맞선 연대와 저항은 기득권의 폭력을 불러올지언정 그로 인해 흘린 피와 죽음은 지금 이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언젠가 <밀크>와 같은 영화를 만들 날이 오지 않을까. 다만 오래 걸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딴지일보
(2010.3.3)

숀 펜, 연기를 인간의 경지로 끌어올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8년 칸국제영화제 취재차 프랑스 칸을 방문했다가 숀 펜을 본 기억이 있다. 음, 직접 대면한 건 아니고 경쟁부분 심사위원들의 공개 기자회견 장소에서였다. 그 해의 심사위원장은 바로 숀 펜이었는데 나탈리 포트먼, 알폰소 쿠아론 등 쟁쟁한 심사위원들 가운데서도 스포트라이트는 유독 그에게로만 모아졌다. 그 자리에 모인 많은 기자들은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는 숀 펜에게서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부시에 대한 ‘독설’을 듣고 싶어 했다. 

숀 펜은 기자들의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았다. “부시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치라는 용어를 야만스럽게 만든 부시가 부끄럽다.”고 얘기했다. 이에 “그것이 이번 영화제의 경쟁부문 심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으냐?”는 우문에 대해서는 “세상이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소통이 단절되면서 영화는 더욱 중요한 매체가 됐다.”고 현답으로 응수했다.


하비 밀크의 페르소나가 되다

숀 펜은 삶의 가치관이 그대로 영화의 필모그래프에 나이테처럼 새겨지는 배우다. 영화의 안과 밖 행동이 전혀 구별되지 않는 그는 배우 생활이 곧 정치임을 증명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밀크>(2008)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숀 펜의 수상 소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자신이 연기한 극중 게이 정치가 하비 밀크의 목소리와 몸짓을 빌려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이들이 반성해야할 시간이군요. 계속 동성결혼 반대를 지지할 생각이신가요? 후손들이 당신들을 부끄럽게 여길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평등할 권리를 가지고 있거든요.”라고 피력한 것.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한 <밀크>는 미국 최초의 커밍아웃한 게이 정치가 하비 밀크가 샌프란시스코 시장으로 활동하다 살해당하기까지의 정치적 이력을 다룬다. 소수자인 게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대변자로 나서고 이들의 인권을 제한하는 보수주의 기독교 세력에 맞서는 하비 밀크에게서 숀 펜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이라크 전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조지 W.부시 정부의 비도덕성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한 숀 펜의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는 그대로 하비 밀크에게로 겹쳐진다. 

그런 점 때문에 <밀크> 출연이 당연히 하비 밀크와의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쉽게 분석할 수 있겠지만 숀 펜의 속내는 좀 더 복잡하다. “나의 정치적 감정이 극중 하비 밀크와 연결되는 것을 경계했다. 다만 내가 도전해볼만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출연을 승낙한 결정적인 이유라면 구스 반 산트다. 구스와 같은 예술가와의 환상적인 작업을 두고 이리저리 재는 연기자는 없을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숀 펜의 필모그래프에서 진보적인 성향의 캐릭터는 의외로 적다. 오히려 타락한 정치인(<올 더 킹즈 맨>(2006))이나 대통령 암살 모의자(<대통령을 죽여라>(2004)), 부패한 변호사(<칼리토>(1993))와 같은 사회악에 기반을 둔 캐릭터가 더 눈에 띈다.

그럼에도 숀 펜이 연기한 캐릭터마저 진보적인 인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옹호하고 지켜내는 급진적 성향이 그의 연기 속에 고스란히 배어나는 탓이다. 구스 반 산트가 할리우드를 통틀어 연설에 가장 능한 배우로 숀 펜을 꼽고 하비 밀크 역에 캐스팅한 사실은 유명하다. 실제로 <올 더 킹즈 맨>에서 정치인 윌리 스탁으로 출연한 숀 펜이 펼치는 연설은 내용을 떠나 감동적이고 호소력이 넘친다. 그것은 극중 윌리 스탁의 특징이면서 영화 바깥에서의 숀 펜의 장기이기도 하다. 2008년 칸영화제에서의 기자회견이나 2009년 아카데미에서의 수상 소감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배우가 영화 안팎에서 쌓은 이미지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으로 작용한다. 선한 역할이든, 악한 역할이든 캐릭터의 모습에는 배우의 특징적인 이미지가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외모일수도, 평소 성격일수도 있지만 숀 펜에게는 활동가적인 기질에서 드러나는 자기 확신에 찬 신념이다. 그가 연기한 배역은 게이 정치가(<밀크>), 전직 갱단 출신의 딸을 잃은 아버지(<미스틱 리버>(2003)), 지적 장애인(<아이 엠 샘>(2001)), 사형을 앞둔 죄수(<데드맨 워킹>(1995)) 등 스펙트럼이 천차만별이지만 의지를 굽히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에서는 한결 같았다.

이처럼 숀 펜은 특정 영화의 출연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그의 연기 이면에서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의지와 신념은 그의 활동가적인 면모를 더욱 고결한 차원으로 승화한다. <밀크> 역시 다르지 않다. 숀 펜은 하비 밀크를 연기했다는 이유로 게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하비 밀크가 되려했을 뿐. 숀 펜은 하비 밀크의 페르소나로 완벽히 변신하여 연기로써 대중을 압도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다.


예술가의 피를 물려받다

숀 펜이 가진 연기관은 조지 클루니와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해진다. 조지 클루니는 숀 펜과 함께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반골 기질의 배우로 유명하다. 앞장 서 부시를 반대했고 오바마의 당선을 누구보다 기뻐했으며 요즘도 연일 수단 다푸르 지역의 난민 인권을 위해 도움을 호소하는 조지 클루니의 입장을 숀 펜에게 치환하더라도 전혀 어색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적인 태도를 영화로 가져오는 방식은 판이하다. 숀 펜은 앞서 밝힌 바, 연기와 정치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 것에 반해 조지 클루니는 어느 정도 삶과 정치를 구분해 영화에 임하는 자세를 보인다.

<시리아나>(2005)와 <굿나잇 앤 굿럭>(2005)처럼 노골적으로 미국의 부시 정부를 겨냥한 영화에 출연(하고 감독)하는 한편으로 ‘오션스’ 시리즈처럼 절친한 동료들과의 화합과 재미를 위해 연기를 하기도 하는 것. 그와 달리 숀 펜은 일시적인 외도의 차원으로라도 영화를 스스로의 재미를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깊은 속사정까지야 헤아릴 수 없는 노릇이지만 숀 펜의 가정사는 이에 대한 하나의 단서가 되어줄 만하다. 그는 영화의 피를 물려받았다. 아버지 레오 펜(Leo Penn)은 TV와 영화를 넘나들며 1990년대 중반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친 연출자였고 어머니 에이린 라이언(Eileen Ryan)은 지금도 활동 중인 현역 연기자이며 동생 크리스 펜은 <저수지의 개들>(1992), <트루 로맨스>(1994), <퓨너럴>(1996)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배우였다. (2006년 심장 비대증으로 사망했다.) 

사실 숀 펜의 꿈은 연기보다 연출에 있었다. 아버지를 보며 연출의 꿈을 키웠던 그는 배우 활동 중간 중간 <인디언 러너>(1991)를 시작으로 <인투 더 와일드>(2007)까지 4편의 장편을 연출하고 1편의 옴니버스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숀 펜이 아버지 레오 펜에게서 직접적으로 배운 가치라면 자신의 신념을 굳히지 않는 강인한 정신이다. 러시아 혈통을 물려받은 레오 펜은 매카시 시절 타협하지 않는 정치적 신념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는데 그가 견디었던 고생에 대해 숀 펜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곤 했던 것이다. 1960년 캘리포니아 산타 모니카에서 태어나 플라워 파워(Flower Power 히피족 사상의 중심인 사랑과 평화의 슬로건)의 세례를 듬뿍 받으며 자란 그에게 더해진 아버지의 영향은 그대로 지금에 남았다. 

하비 밀크의 정치 활동은 겉보기엔 우연한 기회로 이뤄졌다. 사랑하는 애인의, 친구의, 이웃의 인권이 유린당하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정치에 뛰어든 건 하비 밀크에게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비 밀크의 사랑에 대한 실천이 정치라는 형태로 이뤄진 것처럼 숀 펜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기 확신은 자연스럽게 신념에 찬 연기로 승화했다. 그에게 연기는 삶도, 정치도, 그리고 재미도 초월한 예술의 한 종류다. 예술의 목적이 천변만화한 형태로 대중을 놀라게 하는 것이라면 숀 펜이야말로 예술가의 전형이라 할만하다.

그는 감독 불문, 장르 불문, 국적 불문, 그리고 역할 불문 자신의 예술혼을 자극하는 역할이라면 까다롭게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밀크> 이후 4편의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거나 촬영을 앞두고 있는데 덕 리먼의 <페어 게임>은 이라크 전의 비리와 관련한 정치 스릴러물이고 브래드 피트와 함께 출연하는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는 거장 테렌스 멜릭의 작품이며 <디스 머스트 비 더 플레이스 This must be the Place>는 <일 디보>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탈리아 출신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 작품이다. 그리고 <쓰리 스투지스 The Three Stooges>는 그 악명 높은(!) 패럴리 형제의 코미디인 것이다.


인간을 연기하다

숀 펜은 늘 캐릭터에 동화되는 연기를 펼치는 까닭에 자신을 버리는데 익숙하다. 이는 외양의 변화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칼리토>의 ‘곱슬머리’ 변호사부터 <스윗 앤 로다운>(1999)의 ‘콧수염’ 기타리스트, <아이 엠 샘>의 ‘지체장애’ 아버지, <올 더 킹즈 맨>의 ‘시골뜨기’ 정치인까지, 그중 하비 밀크의 외모는 원래 숀 펜이 가지고 있는 선 굵은 외모에 ‘포샵’ 처리를 한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가장 격한(?) 변신에 속한다. 사실 20대 시절의 숀 펜은 각종 타블로이드로부터 ‘인간 폭풍우’(human tempest)라고 불릴 만큼 영화 안팎으로 악동 취급을 받던 배우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숀 펜은 모든 배역을 ‘숀 펜化’하는 것에 능했지 그 자신이 역할에 깊이 빠져드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는 숀 펜이 영화 바깥에서 보여준 악동의 면모와 정확히 일치했다. 마돈나와의 광란에 가까운 연애와 결혼 생활, 파리 떼처럼 몰려드는 기자를 상대로 한 기행에 가까운 폭력 등 각종 스캔들의 내용처럼 그의 역할은 단 두 가지, 반항아(<배드 보이즈>(1983)) 아니면 문제아(<리치몬드 연애 소동>(1982))였다. 심지어 첫 장편영화 출연작 <생도의 분노>(1981)에서는 전혀 다른 재능의 연기를 보여준 톰 크루즈가 명성을 얻은 것에 반해 숀 펜은 친구의 성공을 지켜봐야 했을 만큼 주목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후에 <스윗 앤 로다운>에서 숀 펜을 장고 라인하르트(Django Reinhardt)에게서 영감을 얻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멧 역에 캐스팅했던 우디 알렌은 그의 섬세한 연기의 원천으로 20대 시절의 불안정했던 삶을 지목했다. “숀 펜이 겪은 고통은 그의 고차원적인 예민함에서 비롯됐다.”며 자신의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를 펼쳤다고 평가한 것. 또한 “자신을 보호하려는 강박에서 드러나는 섬세함이 최고의 배우로 만들었다.”는 팀 로빈스의 표현처럼 숀 펜은 딸을 지키지 못해 실의에 빠져 친구를 범인으로 오인, 살해하고 마는 <미스틱 리버>에서의 지미 역으로 첫 번째 오스카를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의 대다수 영화 저널들은 숀 펜을 두고 데니스 호퍼와 잭 니콜슨의 계보를 잇는 ‘열혈 연기 클럽’(hot-blooded actor club)의 자랑스러운 일원이라고 종종 소개한다. (숀 펜은 둘째아들 이름을 두 배우의 이름에서 따와 ‘호퍼 잭 펜’이라 지었다!) 데니스 호퍼의 광란에 가까운 연기와 수십 년째 지치지 않는 열정을 과시하는 잭 니콜슨처럼 숀 펜은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극한의 연기와 장수하는 경력으로 할리우드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하여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대가의 이름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흥미롭게도 숀 펜이 외모에 두드러진 변화를 주면서 역할에 자신을 철저히 맞추는 식으로 연기 패턴을 갖기 시작한 건 대가들을 만나면서부터다.

브라이언 드 팔마(<칼리토>)를 시작으로 닉 카사베츠(<더 홀 She so Lovely>(1997)), 올리버 스톤(<유 턴>(1997)), 데이비드 핀처(<더 게임>(1997)), 줄리앙 슈나벨(<비포 나잇 폴스>(2000)),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21그램>(2004)), 시드니 폴락(<인터프리터>(2005)) 등 숀 펜은 매 영화마다 변화한 모습과 새로운 표정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왔다. 어떤 계기가 그를 배우로써 각성을 이끌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숀 펜이 가진 연기의 철학은 <밀크>에서 어느 정도 가늠케 한다.

숀 펜은 하비 밀크 역을 제안 받기 전 이미 <밀크>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 지구를 모두 둘러본 후였고 (15년 전 구스 반 산트는 <The Mayor of Castro Street>라는 제목으로 하비 밀크에 관한 영화를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미 숀 펜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감독과의 첫 미팅이 있던 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하비에게 동화된 상태였다. 구스 반 산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숀 펜 외에는 없었다. 그가 맡아야 했고 실제로 해냈다. 실제 하비 밀크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는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숀 펜은 이렇게 얘기한다. “연기는 거짓이 아니다. 사실 그 자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모두 그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퍼포먼스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칼리토> 이후의 숀 펜은 늘 여러 가지 모습으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맡은 배역에 대한 존중과 이해심을 전제한 그의 변신은 캐릭터적인 볼거리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 인물이 가진 배경에 한정하지 않고 아예 우주를 끌어안으려는 그의 태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의 필모그래프에서 소수자 캐릭터가 1990년대부터 집중된 건 우연이 아니다. 그 정점에 바로 <밀크>가 있다. <밀크>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지만 하비 밀크로 분한, 아니 하비 밀크가 된 숀 펜의 이미지로 기억될 영화다. 그는 앞으로도 연기를 할 것이고 또 다른 변신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테지만 지금 이 순간, <밀크>는 숀 펜이라는 인간의 (배우라고 표현하지 않았다!) 삶에서 어떤 상징성을 지니는 작품이라 할 만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비스트
(201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