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하녀><시> 칸 진출 한국영화 삼인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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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의 한국영화 구도를 보면 지난해와 거의 판박이다. 홍상수(<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박찬욱(<박쥐>), 봉준호(<마더>) 등 한국의 대표감독들이 극장가를 이끌었던 것처럼 2010년 역시 홍상수(<하하하>), 임상수 (<하녀>), 이창동(<시>)의 영화가 주도한다. 앞선 세 영화가 한국을 넘어 칸영화제에 진출했던 것처럼 <하녀>와 <시>(이상 경쟁부문), 그리고 <하하하>(주목할 만한 시선) 또한 2010년 칸에 동반진출 해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떨칠 기세다.

특히 홍상수는 <하하하>가 벌써 여섯 번째 칸영화제 진출작이다. 칸에서 수상한 적은 없지만 그의 신작이 발표되면 으레 칸영화제 진출은 기정사실화된다. 홍상수의 영화는 인간탐구를 즐기는 프랑스 영화와 흡사한 구석이 많다. 이번 영화 <하하하>의 경우, (역시나!) 남녀 연애담을 다루면서 연애의 속성을 가식 없이 까발린다.

영화감독 문경(김상경)과 영화평론가 중식(유준상)은 얼마 전 여름(夏) 각자 통영에 갔다 온 일에 대해 수다를 떤다. 문경은 해병대 출신 정호(김강우)의 방해를 뚫고 관광가이드 성옥(문소리)을 만나 커플이 된 사연을, 중식은 후배 정호를 만나러 갔다가 부인 몰래 사귀는 애인 연주(예지원)를 만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공교롭게도 문경과 중식은 조우하지 못했을 뿐 같은 사람을 만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하하하> 속 연애의 세계는 ‘우연’이 지배한다. 그 우연을 인식하지 못한 채 떠들어대는 두 남자의 이야기는 얼마나 유쾌한지.

프랑스인들에게 홍상수는 (어떤 면에서) 얼마 전 타계한 에릭 로메르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에릭 로메르 또한 연애담을 통해 남녀의 속성을 지적이지만 코믹하게 드러냄으로써 사랑을 받았다. 홍상수는 <해변의 여인>을 기점으로 음습함과 조롱의 시선을 걷고 남녀 사이의 가식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쪽을 택하면서 더욱 대중적으로 변모했다. 그래서 비록 칸의 수상은 박찬욱이 앞설지언정 (<올드보이> 당시 칸의 심사위원장은 미국의 쿠엔틴 타란티노였다!) 장르영화에 호의적이지 않은 프랑스인들은 홍상수의 영화를 더욱 높이 평가한다.

임상수 감독 최초의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하녀>는 칸 패밀리의 후광을 빼고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이다. 신자유주의시대, 빈부격차와 계급 간의 갈등이 불러온 한국사회의 풍경을 대저택에 고용된 하녀라는 설정으로 은유하는 이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리메이크로도 유명하다. 김기영의 <하녀>는 마틴 스콜세지가 수장으로 있는 세계영화재단의 첫 번째 디지털 복원 작품으로 선정돼 2008년 칸에서 상영되며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칸은 <하녀>의 리메이크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경쟁부문에 올리기 위해 제작 단계부터 예의주시했고 현재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의 프랑스판 리메이크 연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임상수의 <하녀>에서 하녀 은이를 연기한 전도연은 칸이 사랑하는 배우중 하나다. 2007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전도연에 대한 현지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초특급 게스트만 묶을 수 있는 최고급 호텔을 영화제 측으로부터 배정받았을 뿐 아니라 영화제의 골든타임에 상영시간을 확정했다. 더군다나 극중 전도연의 과감한 연기가 벌써부터 화제에 오르면서 <하녀> 또한 주목받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기자시사회를 통해 나온 평가를 보면 ‘훈(이정재)과 해라(서우) 부부로 대표되는 상류층의 부와 지위를 유지하는 방식에 맞서 은이로 대변되는 하층민 계급의 존재증명이 비슷한 주제를 공유하는 <로빈후드>보다 낫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2007년과 2010년 각각 <밀양>과 <시>의 경쟁부문 초청으로, 2008년에는 경쟁부문심사위원으로 3년 연속 칸을 밟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부장관을 지낸 전력 때문에 종종 ‘한국의 앙드레 말로’로 소개되는 이창동은 명실상부한 칸의 패밀리다. 이번 칸에서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히는 <시>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다소 철없어 보이는 할머니 미자(윤정희)가 시를 쓰는 과정을 묘사한다. 외손자의 성폭행 사건으로 세상의 추(醜)를 경험하면서 그녀는 시를 통해 피해자를 위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시>는 국내에서 <만무방>(1994) 이후 연기 활동을 중단했던 ‘왕년의 은막 여신’ 윤정희의 15년 만의 출연으로 관심을 모이기도 했는데 이는 칸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유럽에서 명성이 높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아내라는 점에서도 윤정희를 향하는 관심은 높다. 이창동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희로애락을 품은 감정의 등고선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주름살로 만개한 배우다. 그녀의 존재는 최근 몇 년 사이 정치적인 논쟁보다 삶의 단면을 드러내는 영화에 높은 평가를 주저하지 않았던 칸으로써도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만약 이번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수상하게 된다면 <시>의 가능성을 가장 높게 점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칸영화제는 올림픽처럼 경쟁을 중요하게 다루는 국가대항전이 아니다. 하지만 칸에서의 성과를 국내 흥행으로 이어가려는 시도 또한 꿈틀거리는 게 사실이다. 이맘때면 집중되는 한국 국가대표 감독들의 영화 개봉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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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rie
2010년 6월호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Bewitching Attraction)



1.
 
당 영화의 포스터부터 살펴보자. 석규(지진희 분)가 영어 제목이 적힌 책을 거꾸로 든 채 한눈이 팔려있다. 야리야리한 S라인 몸매를 꽈배기튼 채 그를 유혹하고 있는 은숙(문소리 분). 아마도 애정행각 직전인가 보다. 근데 웬걸 장소가 심상치 않다. 서가에 책이 잔뜩 꽂혀 있는 걸 보니, 더군다나 제목에 여교수라고 박혀 있는 것이 교수실정도 되는갑다.

아니 교수가 하라는 학문연구는 안하고 그 신성한 교수실에서 연애질이나 하고 자빠져있다니. 겉으로는 교수인 척 위엄을 떨면서 이렇게 뒤로 콩까는 모습, 참으로 위선적이고 꼴깝스럽다. 그렇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바로 그런 남녀의 위선과 꼴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다.


은숙은 심천 전문대학교 교수. 그러나 가르치는 일에는 별 관심 없고 그녀를 추종하는 뭇남성들의 껄떡임을 받으며 겉으로는 아닌 척 이 남자 저 남자와 놀아나기에 바쁘다. 그런 은숙과 찐하게 한빠굴하고 싶은 김PD(박원상 분)는 출장명목으로 일본 도피행각을 준비 중이고, 은숙과 사귀고 싶어 안달 난 유선생(유승목 분)은 그녀와 뭔가 썸씽이 있는 듯한 석규와 신경전이 대단하다.


그래서 당 영화가 재미를 주는 부분이라면 은숙과 그녀를 따르는 남자들의 애정행각에서 벌어지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모습이다. 예를 들자면, 뿔테 안경을 낀 은숙의 지적인 모습에 반한 김PD는 다음 날 아침 여관 침대에서 그녀가 잃어버리고 간 안경을 발견한다. 다음에 이들이 만나자 나누는 대화.


“안경 혹시 잃어버리시지 않았나요?”
“안경이라뇨? 아~ 안경”
“근데 눈 나쁘시지 않나요?”
“(당황해하며 버럭 큰소리로) 저 지금 콘택트렌즈 꼈단 말예요”


은숙이 안경을 꼈던 건 실은 눈이 나빠서가 아니었나 보다. 근데 이렇게 이성을 앞에 두고 위선을 떠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다. 남자들도 마찬가지. 김PD는 사명감에 젖어 일대 사활을 건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며 회사에 일본 출장을 강력히 요구하지만 실은 남들의 눈을 피해 은숙과 빠굴여행을 다녀오고 싶어서 일뿐이다.


당 영화 속 그녀와 그놈들 사이의 애정 줄다리기에서 보이는 모습은 이렇게 매사가 찌질하고 졸렬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이런 연애풍경이 우리네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신사인 척 교양 있게 굴다가도 경쟁자라도 나타날라 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졸렬해지는 수컷, 겉으로는 조신한 척 아무 것도 몰라여를 내세우면서도 이 수컷 저 수컷 은근히 유혹하며 연애를 즐기는 암컷.


결국 은숙과 석규, 김PD와 유선생의 욕망과 본능에 관한 모습은 딴 나라 딴 별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얘기인 셈이다.


2.

물론 영화는 대학과 시민단체라는 먹물사회를 그 무대로 하고 있는 만큼 이들 먹물들의 허영심과 위선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허나 이는 은숙과 상대 남성들과의 러브질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이중성을 더욱 데코레이숑하기 위한 새끼 플롯일 뿐 감독이 실질적으로 말하려는 바는 아니다.


이렇게 남녀의 연애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면과 속사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홍상수의 영화와 닮아있다. 홍상수 감독은 이미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 등을 통해 빠굴담과 연애담을 다루며 그 안에 숨겨진 본심, 즉 남녀의 위선에 대해 졸라 냉소적으로 썰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영화가 그런 남녀의 심리를 밝혀가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홍상수 감독, 그에게는 특유의 형식이 있다. 먼저 한 사건(또는 상황)에 처한 쥔공을 보여준 다음 곧 바로 동일한 사건에 빠진 쥔공의 또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쥔공의 이중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거다. 가령,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김상경 분)는 춘천으로 놀러갔다가 대책 없이 껄떡대는 명숙(예지원 분)이 귀찮아서 부산으로 피신 간다. 근데 웬걸 그곳에서 경수는 명숙이 꼴이 나버리고 만다. 유부녀 선영(추상미 분)을 만나 한눈에 꽂힌 경수가 무지하게 껄떡대지만 그녀가 피해버리는 거다.  


이처럼 홍상수 영화가 사건 ‘뒤’에 사건이 있는 구조라면 당 영화는 사건 ‘속’에 또 하나의 사건이 들어가 있는 구조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이야기를 좀 더 밝혀보자면, 석규는 심천 전문대학교 만화과 교수로 발령이 난다. 그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은숙. 그녀가 석규를 바라보는 표정이 예사롭지가 않다. 왜일까. 그와 얽힌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그 과거란 건 이렇다.    


은숙은 사실 중딩 시절 석규의 형의 여자친구였다. 근데 여간 까진 게 아니라서 빠굴까지 한 사이다. 그런 석규의 형은 은숙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걸 동생과 친구에게 자랑하는 걸로 모자라 이들에게 제안까지 한다. 둘이 싸워서 이기는 사람은 은숙과 빠굴뛰게 해주겠다고. 그러던 와중에 형의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당 영화에는 성인이 된 은숙과 석규가 만나게 되기까지의 사건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은숙과 석규를 멀어지게 만들었던 중딩시절의 또 하나의 사건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이 사실이 은숙과 석규의 사이를 질투한 유선생에 의해 까발려지면서 은숙은 교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불량했던 과거를 숨겼다는 것이, 석규 역시 중딩시절 양아치 전력을 숨기기 위해 박필이라는 가명으로 활동을 했다는 것이, 유선생은 부인과 자식이 있으면서 이를 숨기고 은숙에게 결혼하자며 껄떡거렸다는 사실이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 홀라당 발라당 사정없이 드러나는 거다. 당 영화에서 구조가 가지는 중요한 이유.


그래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당 영화와 홍상수 영화는 주제를 드러내는 구조에 있어서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건 속에 사건, 사건 뒤에 사건. 하지만 그 구조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는 두 영화 다 별반 차이가 없다. 니들은 모두 위선적이고, 속물이고, 이중적이며, 가식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3.

그렇다고 본 우원이 당 영화와 홍상수 영화가 같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님은 다들 잘 아실 테고. 이왕 비교한 김에 한 번 더 비교하자면, 두 영화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야기를 다루는 감독의 스타일에 있다.

무슨 얘기냐면, 홍상수 감독은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있어 주인공에게 시점을 부여하여 자신의 주관은 최대한으로 배제하고 있다.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가 명숙과 선영이라는 두 가지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철저히 경수의 시점에서 진행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으로써 감독은 이와 같은 경수의 행동을 한 발짝 떨어져서 관찰하고 있다는 효과를 얻을 수가 있다. ‘녀석 참 꼴깝떨고 자빠졌네’. 홍상수의 영화가 졸라 냉소적으로 느껴진다면 바로 이와 같은 효과 때문일 거다.


하지만 당 영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는 감독의 주관적인 시점이 영화 내내 적극 개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영화 첫 장면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신부님이 수녀님들의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근데 벙찐 표정을 지은 채 정지된 화면처럼 모두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가 있다. 방파제 앞에서 지적인 안경을 낀 채 야리야리한 각선미를 뽐내고 있는 은숙. 우스꽝스럽다. 이 말은 은숙의 행동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이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우스꽝스럽다는 얘기다.


이처럼 인물의 멈춘 듯 한 표정을 통해 반응을 먼저 보여준 후 그 다음 장면에서 이유가 밝혀지는 감독의 스타일은 영화 내내 유지된다. 그 의도는? 앞썰했듯 주인공의 이중적인 행동을 함께 조롱하고 웃어보자는 것.

그렇다면 그런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다가오느냐 하면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안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영화에 몰입하기 힘든 것이 사실. 왜? 조롱하고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것이 인물의 행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나는 이 장면에서 쥔공들을 조롱하고 있으니 니들도 조롱해!’라고 호통개그하듯 의도적으로 마구 강요하며 주입식 교육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독의 주관이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니 당 영화는 여러 장면에서 생뚱맞고 뜬금없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홍상수 영화를 기타노 다케시가 어설프게 만들었을 때 드는 엇박자스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를 두고 많은 재래식 언론들은 당 영화가 독특하다느니, 스타일이 참신하다느니, 신인감독이 타협하지 않았다느니, 올해의 문제작이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는 거다)      


그 결과 구조가 드러남으로써 주제가 베일을 벗는 당 영화 특유의 형식은 그것이 드러나기도 전에 산만하게 흩어져있는 감독의 조롱의 시선에 묻혀 힘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 제대로 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한마디로 말해 감독의 스타일이 지나쳐 이야기와 구조를 모두 잡아먹은 경우라고 하겠다.


4.


결론 때려보자.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특히 그것이 성과 욕망, 본능에 관한 것이라면 그 흥미는 배가 된다. 당 영화가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 먼저 이야기가 있고, 그 다음에 구조가 있으며, 스타일이 있다. 그리고 이 삼박자가 착착 아다리가 들어맞을 때 비로소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 반대로 이 세 요소가 균형이 맞지 않고 어느 한 부분만 두드러지게 강조되면 영화는 이해하기 힘들어지며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진다. 스타일적인 측면에 쓸따리없이 너무 많은 힘을 쏟아 부은 당 영화가 그렇다.  


과욕은 금물, 당 영화가 주는 교훈이다.


(2006. 3. 20. <딴지일보>)

<효자동 이발사>(The President’s Barber)


제목과 포스터만으로는 그 정체를 눈치 까기 힘든 당 영화 <효자동 이발사>로 말할 것 같으면, 4.19 혁명, 5.16 쿠데타, 10.26 대통령 살해사건 등 격동의 시기인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정치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한 아버지의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부성애를 그린 작품이다.

역사를 동화로 구성한 점에서 <포레스트 검프>, 비극적인 역사 속에 피어나는 부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생은 아름다워>라 할 만한 당 영화. 좀 더 보충설명을 하자면,

효자동 소재 청와대 앞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깍새 성한모(송강호 분)가 우연한 기회에 청와대 전속 이발사로 재직하던 중 ‘마루구스’라는 설사병이 창궐하는데 이것이 무장공비에 의해 퍼진 전염병으로 알려지면서 정부는 이 병에 걸린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마루구스의 공포는 한모의 집안에까지 그 위력을 떨치는데…

물론 당 영화 속 마루구스 병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도 아니거니와 무장공비가 퍼뜨린 전염병도 아니다. 다만 당 영화는 이와 같은 허황된 설정을 통해 정형그니나 김용개비가 잘 써 먹는 수구꼴통식의 트집을 잡아 성한모와 같은 소시민을 탄압했던 당시를 풍자하고 있음이다.

이처럼 당 영화는 부조리했던 시대를 직접적으로 걸고넘어지는 것이 아닌 효자동 이발사라는 허구의 인물과 허구의 설정에 빗대 현대사의 그늘을 들춰내는 우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역사를 이렇게 다루는 영화는 울나라에서 거의 처음 있는 시도인지라 꽤 참신해 보이는데 그래서 당 영화는 무거운 역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 속에서 소시민적 웃음과 부성애의 감동을 통해 관객에게 쉽게 접근하고 있는 가운데 당시 살벌했던 시대의 공기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비유띄 벗뜨! 영화 속 특정인물, 특정 역사와 관련된 인사가 지금에 실재한 까닭인지 우화의 비중이 커지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당 영화의 이야기는 해당 역사 속에 똥꼬 깊쑤키 개입한다기보다는 그저 재현 수준에서 조심스럽게 피해 가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시대는 잘 포착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보여주는 우화는 그닥 힘있지 못하다는 얘기.

일례로, 한모의 아들 낙안(이재응 분)이 전기고문을 당하는 장면에 이르면 당 영화는 피와 비명으로 점철된 역사의 부조리함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몸속에 흐르는 전기로 오색빛깔의 전구를 켜는 낭만적인 판타지로 업종전환을 감행한다. 우화로써 역사를 말하는 당 영화에 있어 이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닌데 문제는 환상성이 너무 강해 이 지점에서부터 현실과 우화간의 균형이 깨져 지루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별 감흥없는 낙안의 판타지처럼 후반부를 장식하는 성씨 부자의 감동 에피소드는 감독이 의도한 만큼 관객의 정서를 깊이 파고들지 못해 멕이 빠지며, 위와 같은 애매한 모습으로 인해 풍자의 칼날은 그리 날카롭지 못하니 당 영화의 우화가 관객에게 미치는 힘은 그리 강한 편이 아니다.

그 결과, 신인감독의 입봉작치고는 무난한 만듦새를 보이고 있고 또한 쥔공 한모의 희노애락을 담아내고 있는 송강호의 연기는 관객의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임펙트를 발하고 있지 못하는 바, 본 특위는 당 영화를 뮝기적에 봉한다. 끝.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