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의 역 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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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는 가족판타지물을 빙자(?)한 영화에 대한 (특히 조르주 멜리아스를 향한) 애정 고백이다. 누가 영화광 감독 아니랄까봐, 마틴 스콜세지는 휴고(아사 버터필드)와 이자벨(클로이 모레츠) 두 아이를 앞세워 <열차의 도착>(1895)으로 시작된 고전영화에 대한 모험물을 구성한다. <달나라 여행>(1902)의 조르주 멜리아스의 사연을 중심에 두고 (<휴고>가 3D인 이유인데 연극무대처럼 극 중 배경을 두 세개로 겹쳐놓아 입체감을 준 멜리아스의 영화는 당대의 3D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영화의 과거와 현재의 만남. 휴고는 마치 어린 시절의 마틴 스콜세지 같기도 하다!) 해롤드 로이드의 <마침내 안전!>(1923), 버스터 키튼의 <제너럴>(1926),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 등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연이어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휴고>에는 무성영화 스타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인용이 유독 많은데 휴고가 역 검사관(사차 바론 코헨)을 피해 시계탑의 초침에 매달린 장면이나 제너럴 호를 연상시키는 열차를 자주 노출하는 방식은 각각 해롤드 로이드와 버스터 키튼을 그대로 겨냥한다. 하지만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을 극중에 녹이는 방식은 해롤드 로이드와 버스터 키튼과는 달리 변칙적이다. 찰리 채플린과 관계가 있을까 얼핏 봐서는 연결되지 않지만 도상이라 할 만한 것들을 종합해보면 그것이 찰리 채플린의 인용이자 더 나아가 패러디임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휴고>에서 찰리 채플린이 겹쳐져있는 인물은 바로 역 검사관이다. 그게 말이 되냐고?

사실 역 검사관의 파란 제복은 찰리 채플린의 아이콘인 떠돌이 복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단서는 역 검사관이 짝사랑하는 역내의 꽃집 여인이 쥐고 있다. 말없이 꽃을 팔다가 역 검시관이 용기 내어 다가가자 그제야 입을 여는 그녀와의 로맨스는 <시티 라이트>(1931)의 결말과 닮아 있다. 게다가 역 검사관은 수상한 낌새를 보이는 아이들을 잡아다가 고아원에 넘기는 임무를 주로 삼고 있는데, 그래서 휴고와의 관계는 <키드>(1920)의 비틀기이고 항상 개를 끼고 움직이는 업무 역시 <개의 삶>(1918)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역 검사관의 제복도 어느 정도 떠돌이와 이어지게 된다. 비록 옷의 색깔은 다르지만 모자와 재킷과 바지로 이뤄진 복장 구성은 동일하고 떠돌이의 지팡이의 경우, 역 검사관의 부상당한 다리를 고정해주는 기구와 역할이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처음 캐스팅된 사차 바론 코헨의 캐스팅은 이로써 설명이 가능해진다. 현대의 서구 영화에서 가장 코믹하게 몸을 잘 쓰는 배우일 뿐더러 (설마 <보랏>(2006)을 벌써 잊은 것은 아니겠지.) 콧수염까지 붙여놓으면, 그럭저럭 찰리 채플린과 겹쳐지지 않는가. 극 중 시계를 만드는 휴고의 아버지(주드 로)는 “시계에 들어가는 부품 중에 불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아들에게 말한다. 영화 역시 시계 만들기와 다르지 않다. 인용과 오마주는 현대 영화에서 필수의 부품 중 하나다. <에비에이터>(2004) <셔터 아일랜드>(2010) 등 마틴 스콜세지는 요 몇 년 새 인용과 오마주에 더욱 집착하며 자신의 영화에 반영하고 있다. <휴고>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인용과 오마주는 물론 찰리 채플린을 재료 삼은 패러디를 통해 고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패러디는 일종의 창의적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휴고>는 가족판타지 원작을 가져와 영화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개비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창조적인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셔터 아일랜드> 분열이여, 내 손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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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셔터 아일랜드>는 역시나!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순수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장르의 쾌감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원작의 주제와 아우라를 전혀 훼손하지 않는 일급 스릴러로 기능하는 것이다.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각종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반전이 도사린 결말에 대해서만큼은 약점으로 지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듯하다. 나는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결말은 지극히 ‘스콜세즈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의 감옥

<셔터 아일랜드>는 현대 하드보일드 소설의 최전선을 점하고 있는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을 원작 삼았다. 데니스 루헤인은 <미스틱 리버>(클린트 이스트우드 연출), <가라, 아이야, 가라>(벤 애플렉 연출), <기븐 데이>(샘 레이미 영화화 중) 등 할리우드가 현재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을 하나로 꿰는 주제는 정신적 분열 증세를 보이는 미국인의 초상이라 할 만한데 이는 마틴 스콜세지에게도 익숙한 테마다.

보스턴 항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는 정신 질환을 앓는 범죄자들의 특수 감옥 병동으로 악명이 높다. 며칠 전 여죄수가 쥐도 새도 모르게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척 아울(마크 러팔로)이 급파된다.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은 섬의 분위기도 심상찮지만 테디의 상태는 더욱 불안하다. 심각한 두통 증세를 겪으면서 정체 모를 악몽에 시달리는 것. 더군다나 병동 관계자들의 비협조 속에 수사는 난항에 빠지고 설상가상 파트너 척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마틴 스콜세지와 데니스 루헤인은 그들이 각각 태어나고 자란 뉴욕과 보스턴을 하나의 캐릭터처럼 상정하고 극중에서 두드러지게 강조해온 터다. 마틴 스콜세지의 극영화는 뉴욕이 주 무대였고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은 보스턴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니까 뉴욕도 아니고 보스턴도 아닌 작은 섬 셔터 아일랜드는 이 둘에게 모두 새로운 장소인 셈이다. 다만 새롭되 낯설지는 않다. 그들은 늘 폭력이 판을 치는 세계를 다뤘다. 특정 지역을 벗어난 좀 더 보편적인 폭력의 세계, 즉 상징적인 무대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데니스 루헤인의 얘기를 들어보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보스턴 북부의 외곽 지역인 리비어(Revere)는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 같았다. 그곳에 발을 들인다는 건 전혀 다른 나라를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리비어는 거의 섬 같았다. 외부인에게 그렇게 적대적일 수가 없었다.” 사는 지역은 달랐지만 그것은 마틴 스콜세지에게도 해당 되는 이야기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부모를 둔 그가 토박이들에게 겪은 텃새의 추억은 대표적으로 <갱스 오브 뉴욕>(2002)의 암스테르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처지에 가감 없이 묻어난다. 다시 말해, 극중 셔터 아일랜드는 루헤인과 스콜세지가 보스턴과 뉴욕에서 목격하고 경험했던 미국의 폭력의 역사만 따로 떼어 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과 진배없다.

이를 전제한다면, <셔터 아일랜드>는 단순 추격물에 머무는 장르영화로 기능하지 않는다. (애초 <퍼펙트 스톰>(2000)의 볼프강 피터슨이 액션물을 염두에 두었다가 이 프로젝트에서 나가 떨어졌다지 아마.) 테디가 병동을 탈출한 환자를 쫓는 과정은 그의 정신적 외상이 그려나가는 미로의 궤적과 정확히 일치한다. 병동 입구에서 흉측한 몰골의 정신병자를 만나 두려움을 느끼고 단서가 떨어진 막다른 길목에서 먼저 떠난 아내와 딸의 혼령을 만나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등 테디가 겪는 마음 속 분열 증세는 초현실적인 세계로 화한다. 그래서 고립된 섬 혹은 밀폐된 병실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논리적 사고는 무의미하다. 다만 극단적 감정의 조각들로 덕지덕지 기워 건설한 테디의 심리적 공간인 셔터 아일랜드의 ‘진실 혹은 거짓’에 대해서는 그 자신만이 밝히고 해명할 수 있을 뿐이다.


자기 방어라는 섬

이렇듯 <셔터 아일랜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스릴러의 범주와는 거리가 멀다. 테디의 흐트러진 정신 상태는 결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심리적으로는 단단하게 자기 논리를 갖춘 세계다. 테디는 결코 감옥이나 병동에 갇히는 일은 없지만 영화의 카메라는 줄곧 갇혀있는 구도로 그를 바라본다. 테디를 심각한 편집증적 환자로 몰아넣는 카메라의 구도는 현실에서 철저히 고립된 그가 마음이라는 섬에 유배되어 정신적 수감 생활을 겪고 있는 처지를 상징적으로 증명한다. 결국 섬의 구조나 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불가사의한 사건들은 정신적 분열을 숨기기 위한 테디의 견고한 방어논리에 가깝다.

<셔터 아일랜드>는 원작 <살인자들의 섬>에 충실하다. 각색을 맡은 래타 카로그리디스(Laeta Kalogridis)는 테디의 내적 논리를 훼손치 않으려 사소한 대사 하나까지도 원작을 그대로 따랐다. “원작은 견고하게 쌓은 성과 같아서 어느 한 두 개의 벽돌만 옮겨도 무너져버린다.”는 그의 말처럼 사소한 설정 변경이 자칫 다른 성격의 이야기로 변질시키지 않을까 우려했던 탓이다. 실제로 데니스 루헤인은 36장(章)으로 구성된 <살인자들의 섬>의 대강의 줄거리를 단 하룻밤 사이에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다. 루헤인 왈,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생각하지 못했다면 결코 이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셔터 아일랜드>의 무대는 시작과 끝이 기괴하게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의 세계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블랙홀이고 벗어나기 힘든 탈출 불가능의 섬이다.

안 그래도 영화의 첫 장면은 이 비틀린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던진다. 테디와 척이 갑판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배경의 질감은 매트 페인팅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장과 스튜디오의 촬영이 뒤섞인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가 기 싸움을 벌이듯, 현실과 꿈이 서로의 자리를 탐하듯, 하지만 스콜세지와 루헤인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맞춰 강조한 “허구의 세계로 수렴되는 이야기”임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이와 같은 영화적 기법은 194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 그중 필름누아르에서 주로 사용된 촬영이기도 했다. 마틴 스콜세지는 오프닝 자막을 통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1954년으로 확정했다. 당시는 매카시즘에서 비롯된 도덕적 공황상태, 핵에 대한 공포, 새로운 의학기술에 따른 정신 개조의 피해망상이 만연했던 시기로, 할리우드는 이를 스크린 속에 구현하기 위해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극단적으로 강조한 필름느와르를 적극 차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틴 스콜세지가 <셔터 아일랜드>에서 오마주한 작품의 목록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정확히 반영한다. 스콜세지가 수차례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발 류튼 제작의 <죽음의 섬>(1945)에서 분위기와 정서를 가져왔고, <현기증>의 계단 장면을 그대로 따와 테디의 분열증적 증세를 나타냈으며, 로만 폴란스키의 <혐오>(1965)에서처럼 밀폐 공간을 활용해 주인공의 내면을 기괴하게 상징했다. 그 외에도 음악활용(<사이코>(1960)), 이야기 구성(<충격의 복도>(1963)), 심리적 표현의 구체화(<샤이닝>(1980)) 등 그 자신이 영화적으로 분열증에 걸린 것 마냥 <셔터 아일랜드> 곳곳에 할리우드 클래식의 흔적을 어지럽게 펼쳐 놓는다.


아메리칸 사이코

사실 마틴 스콜세지는 데니스 루헤인에 훨씬 앞서 미국의 분열증을 탐구해왔다. 배우에 따라 2기로 나눠야할 듯한데 <택시 드라이버>(1976)부터 <카지노>(1995)까지, 스콜세지가 선택한 첫 번째 ‘아메리칸 사이코’는 로버트 드 니로였다. (<비열한 거리>(1973)에도 드 니로가 출연하지만 오히려 하비 카이텔이 분한 찰리가 범죄와 종교 사이에서 더한 혼란을 겪는 인물이었다.) <택시 드라이버>(1976)의 트래비스는 베트남전에서 입은 심리적 충격으로 사회악을 처단하겠다며 뉴욕에서 소동을 부렸고, <분노의 주먹>(1980)의 라 모타는 권투선수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지만 주변의 기대와 압박에 제멋대로의 행동으로 일관하다 몰락을 자초했다.

<갱스 오브 뉴욕>(2002)부터 <셔터 아일랜드>까지, 스콜세지의 두 번째 선택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다. 그는 현재와 미래의 야망 사이(<에비에이터>(2004))에서, 갱과 경찰 사이(<디파티드>)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분열증 환자였고 또 다른 트래비스였으며 라 모타였다. 스콜세지가 그랬듯이 데니스 루헤인 또한 좀체 드러나지 않는 미국인 이면의 정신세계를 범죄물로 특화해온 작가다. 범죄물이라는 게 그렇다. 사회의 썩은 공기가 개인을 짓눌러 파괴하고 그것이 일그러진 형태로 발화하는 것이 범죄다. 스콜세지가 주로 역사적인 사실에서 분열의 원인을 찾았다면 데니스 루헤인은 유년 시절 어른에게서 입은 정신적 외상에 주목한다.

<미스틱 리버>의 데이브는 어린 시절 납치당한 기억을 끝내 떨치지 못해 운명이 바뀐 인물이었고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지금까지 모두 다섯 편이 발표됐는데) 모두 아이의 유괴와 관련이 있든가 아이에게 가해진 어른의 마수가 범죄의 뇌관으로 작용했다. 심지어 주인공 켄지는 전직 소방관인 아버지에게 학대 받은 경험을 트라우마처럼 안고 사는 인물인데 공교롭게도 <살인자들의 섬>의 테디 역시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상처처럼 지니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스콜세지는 <셔터 아일랜드>를 통해 이 부분을 한마디 대사로만 언급하는 대신 테디가 2차 대전 참전 당시 독일 다카우 수용소에서 목격한 참혹한 광경의 폭력성을 부각해 개인사와 연결한다.

원작과 영화를 구별하는 미묘한 태도의 차이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데니스 루헤인이 테드의 분열을 비교적 개인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에 비해 마틴 스콜세지는 국가적인 차원으로 좀 더 확실히 한다. 원작의 테디가 세상을 떠난 아내와 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고통 받는다면 영화 속 테디가 겪는 내면 갈등의 성격은 보다 넓다. 매카시즘과 핵에 대한 공포를 떨치기 위해 타자를 희생양 삼는 미국인의 불안감은 고스란히 테디에게 적용된다. <셔터 아일랜드> 공개 후 찬반 논란을 빚고 있는 영화의 결말은 개인의 분열증마저 통제하려드는 국가의 빗나간 태도를 겨냥한 스콜세지의 노림수다. 그것은 장르적 장치를 남용해 관객을 깜짝 놀래려는 얕은 속임수가 아니다. 하물며 마틴 스콜세지의 그간의 작품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를 상기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셔터 아일랜드>를 걸작이라 부르기 망설여지지만 (마틴 스콜세지가 매 작품 걸작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영화의 장인이 만든 수준 높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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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