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라>(Gomor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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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티브’의 미셸 시망은 2008년의 영화를 꼽는 자리에서 마테오 가로네의 <고모라>를 수위에 놓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고모라>는 이탈리아 정치영화의 뛰어난 귀환을 의미한다. 사회 곳곳에 파고든 범죄의 심각성을 모자이크 스타일의 구성을 통해 폭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미셸 시망의 극찬은 동명의 원작 소설가 로베르토 사비아노가 극중 범죄조직 ‘카모라’로부터 위협을 받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영화화를 밀어붙인 마테오 가로네의 용감함에 기초한다.  

<고모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나폴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항의 면모를 품은 곳도, 피자 맛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낭만적인 여행지도 절대 아니다. 죄악과 탐욕으로 몰락한 성경의 ‘고모라’처럼 나폴리 역시 도시 곳곳에 스며든 악의 세포로 빠르게 쇠락해가는 중이다. 특히 마약과 매춘은 물론이고 패션 산업과 심지어 쓰레기 처리까지, 나폴리를 근거지 삼아 이탈리아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카모라의 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카모라의 범죄에 개입된 인물은 특별히 너나 할 것 없다. 위로는 카모라의 수장부터 아래로는 빈민가의 어린아이까지 나폴리는 도시 전체가 카모라가 뿌려놓은 범죄의 거미줄로 카르텔 되어있을 정도다. 그래서 마테오 가로네는 10여 명이 넘는 인물을 통해 이탈리아 범죄 특유의 피라미드 구조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가로축으로는 카모라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난 두 소년을, 세로축으로는 조직을 위해 의상실을 운영하는 중년남자를 위치시키고 그 주변으로 가난하고 평범한 이웃들을 점점이 박아놓아 일상이 범죄인 나폴리의 충격적인 실상을 그려나간다.

이들의 행위는 결국 지독한 가난을 벗고 어떻게 해서든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싶다는 이탈리아의 집단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평범한 이들의 검은 욕망은 카모라와 같은, 시칠리아 마피아의 세력을 훨씬 뛰어넘는 범죄조직이 암약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토양으로 기능한다. 극중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낼 수 있을지언정 결코 성취할 수는 없다. 철저히 카모라의 이득을 위해서만 그 욕망이 존재 가치를 가질 뿐 쓰임새가 없어지는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폭력을 동반한 검은 욕망은 가난으로 대물림되고 그 와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로를 살상하는 현대판 고모라의 신화가 완성하는 것이다.

<고모라>가 소설의 영역에, 영화의 영향력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카모라의 폭력 카르텔이 만 천하에 폭로된 까닭이다. 원작자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수년간의 잠입 취재를 통해 카모라의 조직체계와 핵심인물, 범죄 수법을 폭로하는 탐사저널리즘의 개가를 일궜고 (소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열 살도 안 넘은 꼬마 아이가 카모라에 들어가겠다며 방탄복을 입고 총알을 막아내는 충격적인 신고식의 실상을 알 수 있었을까?)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뛰어난 영화화로 전 세계가 나폴리의 실상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원작자와 감독은 여전히 카모라의 협박으로부터 생명을 위협받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영화가 현실을 뒤바꿀 수는 없겠지만 현실에 관심 갖도록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고모라>는 증명한다. 2008년의 영화일 뿐 아니라 2000년대를 대표하는 범죄영화의 걸작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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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Primo A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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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본질은 만고불변이지만 시간과 공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랑도 ‘조각’처럼 한다. <첫사랑>(2004)의 두 주인공 비토리오(비타리아노 트레비잔)와 소냐(미셸라 세스콘) 역시 조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금속 공예사로 활동하는 비토리오와 화가를 위해 모델을 서주는 소냐는 블라인드 데이트로 만난 사이다. 첫 만남의 서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에 대한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비토리오는 조각 같은 몸매의 소냐가 맘에 들고, 그녀 역시 자상해 보이는 그가 싫지 않다. 그렇게 뜨거운 사랑을 시작한 이들은 곧 동거를 시작하고 비토리오는 소냐에게 좀 더 날씬해질 것을 요구한다. 

<첫사랑> 미국 포스터의 태그라인은 ‘욕망에 대한 공포영화’(A Horror Movie about Desire)다. 즉, 달콤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이 영화는 육체에 대한 집착이 낳은 비극적 사랑에 대해 다룬다. 그것은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비토리오의 유별난 관점에서 기인한다. 정신적인 사랑이 퓨즈를 꽂아야 육체적인 사랑으로 전이된다는 항간의 속설과 달리 그는 상대방의 육체에 혹해야 비로소 정신적인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 남자다. 비토리오의 사랑이 에로스(Eros)와 구별된다면, 소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기보다는 시각적으로 완벽한 형태의 육체를 갈구한다는 점에 있다. 

그런 욕망은 소냐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비토리오의 요구를 차치하고, 그녀도 현재 자신의 몸매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비토리오와의 첫 만남 당시 소냐가 그에게 던진 첫 말은 “제 몸매가 맘에 들지 않나요?”다. (이에 비토리오는 “좀 더 날씬한 줄 알았어요.”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감독 마테오 가로네는 촬영에 능한 감독답게 비토리오와 소냐가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3분간의 롱테이크를 담당했다. 그때 카메라는 마치 상대방의 몸매를 훑듯이 장면을 찍어나간다. 

이는 음흉한 남자의 눈빛이라기보다는 오브제를 관찰하는 조각가의 시점에 더욱 가깝다. 아닌 게 아니라, 비토리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카메라는 등장인물, 특히 소냐를 조각하듯이 촬영한다. 처음엔 고정된 구도로 지긋이 바라보다가 이내 덩어리를 깎아가듯이 온 육체를 내지르고, 마지막 순간엔 미술품을 감상하는 양 섬세하게 소냐를 지켜보는 식이다. 이렇게 비토리오는 조각가의 마인드로 모델을 물색하듯 여자 친구를 고르고 완벽한 형체를 빚듯이 사랑을 나눈다. 

다만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지 못하는 조각과 달리 인간의 사랑에는 자유의지가 작용한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육체 역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법이다. 비토리오가 소냐의 몸매를 가장 완벽한 형태로 구현하겠다며 먹을 것을 관리하려들수록 그를 향한 그녀의 거부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리고 이들의 사랑이 종국엔 파국을 맞이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측 가능하다.

비토리오의 사랑은 비록 육체가 결부되어 있지만 이상주의적이며 관념론적인 사랑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플라토닉 러브’를 연상시킨다. <첫사랑>도 그렇지만 마테오 가로네는 전작 <박제사>(2002)에서도 육체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남자를 내세웠었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 드러난 마테오 가로네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정신과 육체의 균형이고 무엇보다 자유의지의 발현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랑은 결국 공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첫사랑>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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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사>(L’imbalsama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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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영화의 결말에 대한 결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박제사>(2002)는 마테오 가로네의 필모그래프에서 전환점 같은 영화다. 네오리얼리즘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서 실제적인 삶을 영화화했던 그가 <박제사>에 이르러 완전히 극영화의 세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박제사>는 마테오 가로네가 이후 만든 <첫사랑>(2004)과 함께 사랑의 엽기성을 탐구한다. 사실 엽기성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는 빗나간 사랑의 풍경이라고 할만하다. 더 정확히는, 동물 박제가 주업인 페피노(에르네스토 마이어)가 인간의 아름다움까지 소유하려 들면서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다. 

페피노가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는 대상은 발레리오(발레리오 포그리아 만질로)다. 나이 들고 추레한데다가 심지어 난쟁이이기까지 한 페피노에게 젊고 키도 크고 잘생긴 발레리오는 그야말로 완벽한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발레리오를 곁에 두고 지켜보고픈 페피노는 돈을 많이 주겠다며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하고 둘은 붙어 다니는 사이로 발전한다.

마테오 가로네가 <박제사>와 같은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의 취향이 유별나서가 아니다. <박제사>를 발표하기 전까지 주로 다큐멘터리적인 영화 만들기에 몰두했던 가로네가 주목했던 현실의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잔인함이었다. (<고모라>와 <첫사랑>에서도 가로네의 관심사는 줄곧 이어진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공작새의 시점으로 페피노와 발레리오의 첫 만남을 바라본다. 그들은 공작새를 앞에 두고 박제 얘기를 나누며 서로의 인연을 확인한다. 아무리 동물이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박제 얘기를 거리낌 없이 나눈다는 것, 공작새 시점의 카메라는 인간의 잔인함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안 그래도 페피노는 박제 일 외에도 마피아를 위해 시체에 마약을 숨겨 운반하는 유통책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페피노의 박제에 대한 욕망은 단순히 동물에게만 한정하지 않는다. 원하는 바가 생기면 인간까지도 박제할 기세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첫사랑>은 관객의 예상에 부흥하는 듯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비틀어버리는 일종의 반전을 선보인다. 발레리오에게 미모의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페피노의 그를 향한 애정은 급기야 집착의 형태로 변모한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노출한 바대로 페피노의 배경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객들은 앞으로 그가 발레리오를 박제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게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를 예상하는 것이다.

정확한 이야기를 밝힐 수 없지만, 오히려 페피노가 위기에 빠지면서 상황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진행된다. 결국 박제라는 것은 힘의 권력에 따른 약육강식의 논리에 수반됨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 대상이 동물이 됐듯, 인간이 됐듯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형태이지만 그것을 소유하려들 때 늘 문제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현실은 늘 그런 식으로 운행한다는 것이 마테오 가로네가 최근 영화에서 주목하는 세상의 법칙이다. 하여 힘없는 자들은 갖은 애를 써도 원하는 바를 손에 넣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는 선에서 그치거나 심한 경우에는 죽음으로 세상과 안녕을 고하기도 한다. 

<박제사> 이후 일련의 마테오 가로네 작품에서는 현실의 차가운 비극 한편에서 희미하게 감지되는 미열의 동정심이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무엇보다 약자의 위치에 발을 디디고 세상을 조망하는 이유가 크다. 가로네는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1996)에서부터 가난한 이민자, 나폴리 극빈층, 난쟁이 등 계급 피라미드의 최하층 사람들을 주로 다뤄왔다. 그것은 한편으로 세상의 비극을 더욱 강조하려는 가로네 감독의 노림수로 보인다. 감독이 동정을 보내든 관객이 그에 동조하든 세상은 늘 하층민들에게만 비수를 꼽기 때문이다. 난쟁이 페피노의 최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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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여름>(Estate Rom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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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출신의 마테오 가로네가 고향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든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그에게 지역성은 가로네의 영화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만 <로마의 여름>(2000)에서 감독이 바라보는 로마의 풍경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그것은 극중 변호사 출신의 예술 감독 로셀라(로셀라 오르)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탓이 크다.

정확한 사연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지만 로셀라는 인생에 혼란을 느껴 어딘가에서 요양을 하다가 돌아온 인상이 짙다. 로셀라가 보기에 로마에 있던 친구들도, 풍경도 어딘가 많이 변한 것 같다. 다만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오기 전 어느 수도사로부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는데 너무나 변모한 로마의 모습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가로네는 <로마의 여름>에서도 여전한 네오리얼리즘의 면모를 포기하지 않지만 현실의 풍경보다 로셀라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데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가미하지 않은 무정형의 필터는 <로마의 여름>에 이르러 빛과 그림자를 적절히 활용해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고 주관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감정을 포착하려 든다. 그뿐이 아니다. 사실주의에 가까웠던 전작과 달리 <로마의 여름>에서는 극중 인물들의 관계에 입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은유적인 상황도 마다하지 않는다.

로셀라가 로마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살바토레(살바토레 산소네)는 연극무대에 쓰일 지구모형을 제작 중에 있다. 완성 후 연극 스태프들과 함께 이를 옮기려 하지만 방문보다 큰 까닭에 빼는데 애를 쓴다. 그리고 결국엔 감정이 폭발하여 지구모형 사용은 없었던 일이 된다. 근데 그 광경은 꼭 지구에 발붙여 사는 우리들이 사는 풍경과 다르지 않다. 아마도 로셀라가 로마에 돌아와서도 여전한 혼란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건 자신을 포함한 그런 인간들의 반목과 갈등 때문이다. 그렇게 지구는, 세상은 흘러가는 법이다. 그것 역시 우리네 삶의 풍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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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Osp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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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1998)은 <이민자들의 땅>(1996)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두 명의 알바니아 소년 겔티(줄리안 소타)와 지니(라자 소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영화 한 편을 끌고 간다. 삼촌과 함께 조그만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두 형제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혼잡한 로마에서 자리 잡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불만이 있다면, 이제 나이도 좀 먹었겠다 한 방에서 형제가 함께 묵으려니 불편한 게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간의 사정을 파악한 삼촌은 알고 지내던 젊은 사진사의 집에서 두 조카가 지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지만 겔티는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다.

<손님들> 역시 <이민자들의 땅>에서처럼 실제 인물이 등장해 연기를 펼치는 등 리얼리즘의 면모를 과시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극영화적 요소를 드러내며 가로네가 일관되게 유지해왔던 다큐멘터리적 연출에 분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시 말해, <손님들>은 두 소년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와중에 성장영화의 형태를 강하게 내비친다. 굳이 <이민자들의 땅>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인물을 다시 전면에 내세워 장편을 시도한 것에는 가로네가 극영화로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의도가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이다.

이는 극중 두 형제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정신적인 성숙을 이루는 것처럼 가로네도 여러 시도를 통해 자신이 나아갈 바를 모색하는 듯이 보여 흥미롭다. 그런 사실을 감안한다면, 겔티는 감독의 심정이 간접 투영된 분신처럼 새롭게 느껴진다. 사진사의 집을 나와 얼마간 방황하던 겔티는 30년 전 로마로 상경한 리노라는 노인을 만난다. 리노는 몇 년 전 집을 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는 중인데 겔티는 그런 노인을 보며 지니를 생각하고 그 자신의 삶을 생각한다. 그리고 가로네 감독은 또한 겔티(와 지니)에게서 앞으로의 영화적 활동을 모색한다. 그렇게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고 현실은 또한 영화를 모방하는 법이다. 적어도 가로네의 영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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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의 웨딩 사진사>(Oreste Pipolo, fotografo di matrim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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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애매한 <이민자들의 땅>과 달리 <나폴리의 웨딩 사진사>는 명백한 다큐멘터리다. 원제는 <Oreste Pipolo, fotografo di matrimoni>, 즉 ‘웨딩 사진사 오레스테 피폴로’인데 영화는 웨딩 사진 촬영으로 나폴리의 유명인사가 된 피폴로의 작업을  따라간다.

나폴리에서 결혼을 결심한 남녀들이 피폴로를 찾는 이유는 촬영 능력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신랑, 신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다. “신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신조는 부모세대에서 자식세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변함없이 피폴로가 명성을 유지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편으로 마테오 가로네가 최우선으로 삼는 영화적 철학이기도 하다. 가로네가 굳이 결혼 사진가를 주인공 삼아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극중 피폴로가 웨딩 사진을 찍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영화 촬영 현장을 연상시킬 정도다. 연기자를 대하듯 신랑, 신부의 심리를 최대한 고려하고, 로케이션 하듯 촬영 장소를 신중하게 고르며, 조명의 각도에 대해서도 민감하리만치 반응하는 피폴로의 모습은 아무래도 영화감독과 닮아있는 것이다.

가로네는 <나폴리의 웨딩 사진사>를 통해 영화의 본질에 대해 추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작품을 비롯해 부분일지라도 직접 촬영을 겸한다.) 허구보다 사실을,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를 선호하는 초창기의 그에게 지역성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중에서도 나폴리처럼 낙후된 지역을 줄곧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런 지역을 선택하는 건 이탈리아의 실상을 드러내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삶을 이기기 위한 지역민들의 삶에 대한 애착은 이미 전작 <이민자들의 땅>에서부터 가로네가 관심 갖던 주제다. 이탈리아의 현실은 비토리오 데시카, 로베르토 로셀리니, 루키노 비스콘티 등 네오리얼리즘 태동 때부터 늘 하층민들의 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삶을 긍정하는 이들의 자세가 가로네의 영화에 담겨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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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의 땅>(Terra di Mez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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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라>(2008)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마테오 가로네의 초기작은 최근작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박제사>(2002) <첫사랑>(2004) 등 원작소설을 끌어와 극영화를 만드는 최근과 달리 초기작들은 실제 삶에 초점을 맞춰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마테오 가로네의 장편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1996)은 이민자들이 이탈리아에 터를 잡고 생활하는 모습을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나이지리아 매춘부, 알바니아 소년 노동자, 그리고 이집트에서 온 주유소 직원 등 이민자 자신이 직접 출연, 인공성이 가미되지 않는 일상을 카메라 앞에 그대로 노출한다. 다만 그들이 발붙인 땅은 모든 것이 풍요로운 도시와 거리가 먼 메마르고 황량한 곳으로 그들의 이탈리아 내 삶이 얼마나 힘든지는 배경의 척박함으로 증명이 된다.

그 때문에 <이민자들의 땅>은 ‘가로네 버전의 네오리얼리즘’ 혹은 ‘1990년대에 되살아난 네오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틀린 평가는 아니지만 그것이 가로네가 자국을 바라보는 비극적인 관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감독은 이탈리아 내 이민자들이 결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순간에서도 동정의 시선 대신 질긴 삶의 생명력을 긍정하는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다.

이는 가로네가 이후 영화에서도 줄곧 유지하는 극중 인물과 소재를 대하는 윤리이자 영화적인 태도다. 그는 자신이 다루는 소재를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해당 인물 속으로 들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986년 예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촬영감독 보조로 영화 일을 시작한 가로네는 카메라가 비추는 현실 그 이면까지 바라보는 방식을 일찍이 터득했다. <이민자들의 땅>을 발표하고 나서도 극중 인물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는 이 영화에 출연했던 알바니아 소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손님들>(1998)에서 다시 다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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