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키드>(Na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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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는 영국사회의 보수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면서 밑바닥 삶의 불안함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특히 정해진 각본 없이 배우들과 협업하는 즉흥 연출과 더불어 영국민의 변두리 삶과 생활 태도에 근거한 자기반영적 유머에서 나오는 풍자적 연출은 그만의 장기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네이키드>는 전작까지 이어지던 블랙 유머가 완전히 휘발됐다는 점에서 마이크 리의 가장 어두운 작품이라 할만하다.

그런 조짐은 이미 오프닝에서 선언적으로 제시된다. 주인공 조니(데이비드 두윌스)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강간에 가까운 섹스를 마친 후 도망치듯 고향 맨체스터를 떠나는 것. 곧이어 카메라는 런던으로 향하는 운전석의 조니에게로 옮겨가지만 그의 시선에서 한없이 이어지는 메마른 도로 풍경은 목적지도 없고 희망도 없는 삶을 강하게 은유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가 묘사하는 조니의 이틀간의 행적에는 목적의식이 철저히 결여돼있다. 마침 런던에 헤어진 여자 친구 루이스(레슬리 샤프)의 거처가 있어 찾아갈 뿐이고 우연히 그곳에 그녀의 룸메이트가 있어 감정 없는 섹스를 나눌 뿐이며 결국 거리로 나와 정처 없이 방황, 또 방황할 뿐이다.

그것은 배회하는 길에서 조니가 만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진창 같은 현실에서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서로 동정심을 베풀지도 않으며 인생을 개선하고픈 의지도 없는 이들에게서 인생의 의미 따위 거론할 게재가 아니다. 마이크 리는 극중 인물들의 머무를 곳 없는 처지를 곧 희망 없음으로 동일시한다. 예컨대, 루이스 또한 주인집에 얹혀사는 형편이고 주인조차 부재중인 상태이며 결국 집에 모였던 이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기에 이른다. 표피적인 관계의 지형도, 즉 농담 일색의 대화와 메마른 웃음소리, 그 속에서 언뜻 비치는 분노조차 곧 증발하고 마는 현실은 <네이키드>가 거처 없는 이들, 즉 ‘벌거벗은’ 이들의 이야기임을 증명한다.

조니와 주변 인물들이 처한 현실보다 더욱 인상적으로 <네이키드>의 공기를 지배하는 것은 부유(浮游)와 고립의 이미지다. 극중 인물들이 어둠에 쌓인 도시의 빈민가를 홀로 먼지처럼 부유하는 구도와 좁은 골목길에 포박 당한 듯한 고립의 장면화는 마이크 리의 이전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감각적인 장면으로 기능한다. 섬뜩하도록 텅 빈 빌딩에서 조니가 (마이크 리 작품의 단골 배우인 피터 와이트가 연기한) 경비원과 미래에 대해 논쟁하는 장면은 대표적이다. 창문 밖 풍경과 대조를 이뤄 실루엣처럼 제시되는 이들의 모습에는 비관적인 패배주의가 여실히 묻어나는 것이다.

마이크 리는 그런 조니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는다. 방황을 거듭하던 조니가 끝내 루이스와 관계 개선을 이루는가 싶더니만 다시 거리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 1993년에 발표된 <네이키드>는 포스트 대처(a post-Thatcher) 보수주의 정부 하에서 하층민과 노동 계급이 겪는 불안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세기말적 풍경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2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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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카탈로그

<해피 고 럭키>(Happy-Go-Lucky)


사용자 삽입 이미지<해피 고 럭키>를 개봉한지 세 달이나 지나서야 우연한 기회로 보게됐다. 개봉하자마자 봐야지 한 게 회사 일에 치여 해를 넘기게 됐다. 마이크 리 감독님 영화라면 의무감을 갖고 봐주는 게 예의지 암. 아무튼 의무감을 가지고 보게 된 <해피 고 럭키>는 <베스트셀러극장>에나 등장할법한  스케일의 이야기였지만 놓쳤으면 후회할 뻔했다.

<해피 고 럭키>의 주인공 포피(샐리 호킨스)는 제목처럼 매사가 즐거운 서른 즈음의 여자다. 낯선 사람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고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도 무안해 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방금 타고 온 자전거를 잃어버려도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자기 것에 대한 미련도 없다. 행복전도사 포피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코믹하던지 보는 나까지도 기분이 마구 좋아지더라. (그런 포피 당신은 ‘내추럴 본 낙천주의자’ 우후훗!)

근데 모두 포피의 전도에 넘어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극중 운전강사는 운전 연수생인 주제에 교통안전엔 아랑곳없이 농담 따먹기나 하려는 포피가 한심해 보이고, 그녀의 동생은 서른이 되도록 집 장만도 못하고 결혼에도 관심이 없는 포피가 철없어 보인다. 그래도 포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말고 이 빡빡한 일상 나랑 함께 작은 것에 의미 두고 웃으면서 살아봐요. 제가 위로해주고 즐겁게 해드릴께요. 함께 해Boa요. ^^ 이것이 바로 포피의 삶인 것이다.

영화는 포피의 삶을 중심에 놓고 진행이 되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인 포피가 옳고 그녀의 삶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긴 나조차도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 그런 여자를 만난다면 좀 히껍할 것 같더라. ^^;) 대신 그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 즉 우리네 삶이고 삶의 신비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포피의 낙천주의가 대단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하여 마이크 리 감독은 소통의 방식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인 만큼 서로를 평가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문형으로 영화를 마친다.

좋은 영화는 모름지기 결말을 단정 짓지 않고 생각하게 만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감님도 그렇지만 마이크 리 영감님도 존재 자체가 거대한 가르침처럼 느껴지는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