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티밋 수퍼맨 콜렉션 DVD


수퍼맨은 태생부터가 미국, 그 자체다. 외계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인물 설정은 과거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입성한 이주민과 겹쳐지고, 클라크가 지구를 지키는 영웅으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는 세계 경찰국가로 거듭난 현재의 미국이 추구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영화는 그런 수퍼맨을 1978년부터 무려 다섯 번에 걸쳐 스크린에 재현했다. 이를 모두 한자리에 모은다면, 우리는 그 속에 담긴 미국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회가 생겼다. 수퍼맨과 관련한 모든 영화를 모은 <수퍼맨> 박스세트 ‘얼티밋 수퍼맨 콜렉션(Ultimate Superman Collection)’이 발매된 것.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박스세트에는 리처드 도너, 리처드 레스터, 시드니 J 퓨리에 의해 4탄까지 영화화된 초기 <수퍼맨> 시리즈와 올 2006년 무려 19년 만에 다시 돌아온 브라이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까지, 그리고 이에 더해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케빈 번즈가 연출한 ’Look Up In The Sky: The Amazing Story of Superman’이 더해져 수퍼맨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남다른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무엇보다 많은 수의 디스크로 구성이 되어 있다 보니 ‘얼티밋 수퍼맨 콜렉션’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평소와는 다른 조금 남다른 자세가 요구된다. 모, 별 거 아니다. 가급적 시대에 맞춰 차례대로 보라는 것. 우리의 주인공이 악의 무리를 처단한다는 결과는 매한가지이지만, 시기를 달리하여 개봉한 각각의 <수퍼맨>에는 당시 미국이 처한 상황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이들의 80년 이후를 추론하기에 적역이다.

가령, 1978년의 <수퍼맨>에는 80년대 거품경제의 주범이었던 악당 재벌이 악역으로 등장하며, 1983년 작에는 도스의 등장을 통해 컴퓨터의 발달로 야기된 프로그래밍과의 대결이 주요 스토리가 되고, 가장 졸작으로 평가받는 <수퍼맨4>에는 핵무기 반대를 기조로 내세우며 핵에 대한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가장 압권은 <수퍼맨 리턴즈>. 이제 미국은 내부 문제도 모자라 외부 문제로 골치를 썩으니 수퍼맨은 메시아, 즉 세상을 구원하는 예수로 탈바꿈한다.

다시 말해, 수퍼맨은 미국의 신화인 셈. 미국처럼 역사가 일천한 나라는 영화가 이를 읽어낼 수 있는 아주 좋은 텍스트가 된다. 미국을 대표하는 코믹스가 어찌 신화의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고? ‘얼티밋 수퍼맨 콜렉션’이 그 해답이다.


(2006. 11. 16. <스크린>)

<오멘>(The Omen)





1.

오컬트(occult:비밀스러운, 불가사의한) 영화는 일반적인 공포영화와는 달리 종교라는 배경 속에서 특정집단이 주는 일종의 초자연적 경외감과 인간의 가녀린 심성을 자극하는 악마주의를 소재로 삼고 있다. 그래서 개봉전부터 영화 내외적인 즉각 반응은 물론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짭짤한 수입까지 올리는 실익을 취하고는 하였다. 그런 까닭에 헐리웃은 종교적인 사건을 다룬 오컬트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왔다. 1968년에 만들어진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 Rosemary’s Baby>와 윌리엄 프리드킨의 <엑소시스트 The Exorcist>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이 계열의 대표작이다. 지금 소개할 <오멘> 또한 가장 성공한 오컬트 영화 중의 하나이다.


<오멘>은 영화와 소설이 모두 1976년 같은 해에 발표가 되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설 역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미국에서만 발행 1년 만에 800만 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성서의 인용을 통한 이야기의 설득력은 독자를 두려움에 빠뜨렸고 그만큼 데이비드 셀쳐의 소설은 사실에 근거한 것처럼 보여져 더욱 인기를 모았다.


이미 영화 <오멘>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이 20년 간의 시간 속에 수많은 매체를 통해 노출이 되었으니 이 지면에서는 소설 <오멘>과의 비교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영화를 본 관객 중 상당수가 의아하게 여기는 부분은 뜬금 없이 쏘온(그레고리 펙 분)에게 접근하여 다미엔(하비 스테픈 분)의 실체를 폭로하는 브렌난 신부(패트릭 트루톤 분)의 정체이다. 소설에서는 태손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브렌난 신부는 스필레토(쏘온에게 아이의 입양을 주선한 신부)의 인도를 받아 악마교를 숭배한 인물로 쏘온의 실제 아이를 탄생과 동시에 돌로 머리를 짓이겨 살해한 장본인이다. 그는 이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죄를 사하기 위해 스필레토(마틴 벤슨 분)의 감시를 피해 하느님께 귀의하며 쏘온을 찾아 사건의 전말을 알리고 악마의 부흥을 막으려고 애쓴다.


브렌넨 신부가 쏘온에게 찾아가라고 말한 버겐하겐이란 존재도 그 중요성에 비해 영화에서는 굉장히 축소되어 있다. 단지 악마를 없애는 방법만을 아는 인물로 단순하게 그려진 영화와는 달리 소설에 의하면 버겐하겐의 조상은 사탄의 악령을 처음 발견한 이로 이를 퇴치한 사람이다. 쏘온이 지하도시에서 만난 버겐하겐은 악마를 제거하는 방법을 유일하게 아는 버겐하겐 가(家)의 마지막 자손으로 악마의 출현을 알고 있지만 힘을 쓰지 못한 채 동굴에 숨어 죽음을 기다리는 인물로 묘사된다.



2.

<오멘>은 전체적인 공포분위기를 구현하는데는 성공하였지만 인물의 내면을 포착하는 데는 적잖아 미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쏘온의 부인인 캐시(리 레믹 분)가 다미엔의 기이한 행동을 목격하면서 겪게되는 심각한 정신착란증세라든지 아들의 유모인 베일록 부인(빌리 와이틀로 분)과 다미엔을 사이에 둔 팽팽한 대립의 긴장감, 다미엔의 실체를 알아가며 겪는 남편과의 갈등 등에 대해서는 소설에 비해 간결히 처리되거나 아예 표현이 되지 않고 있다.

이렇듯 리차드 도너 감독은 이야기의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누락시켜가며 <오멘>을 가능한 가장 날씬하게 연출하였다. 그래서 소설 <오멘>을 읽은 독자(혹은 관객)들은 영화가 소설의 방대한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매우 숨 차 하는 듯한 인상을 쉽게 간파한다. 다시 말해 1시간 50분에 달하는 시간 안에 이야기를 집어넣으려다 보니 <오멘>은 설명이 불친절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간단하다. 리차드 도너는 철저한 상업영화 감독이기 때문이다. <슈퍼맨 Superman>과 <구니스 The Goonies> 그리고 <리셀 웨폰 Lethal Weapon> 시리즈의 감독이 바로 그였음을 상기하였을 때, <오멘> 역시 영화의 질적인 면보다 빠른 전개를 축으로 관객의 구미에 맞는 볼거리를 통한 연출력에 승부를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도너는 인물보다 사건을 충실하게 재현하는데 연출의 초점을 맞춤으로서 <오멘>을 말 그대로 군살 없이 매끈하게 잘 빠진 상업영화로 만들었다.


3.

리차드 도너가 상업영화 감독으로써 재능이 있음을 잘 드러내는 부분은, 유일하게 소설과는 다르게 약간의 변화를 준, 죽음을 예언하는 사진 속의 표시이다. 소설 속에는 이 모양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반점인데 반해 영화에서는 선으로 대체되어 있다. 이는 죽음의 실제 모습을 사진 속 선의 방향과 일치시킨 상징으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예언을 통해 관객의 불안을 더욱 극적으로 증폭시키려는 일종의 영화적 표현이다. 바로 이 점이 리차드 도너가 유능한 상업감독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이다.

하지만 <오멘>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철저한 관객위주라는 치명적인(?) 한계로 인해 선배 격인 <악마의 씨>나 <엑소시스트>에 비해 ‘깊이’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것은 필시 이야기의 몸집을 줄이다 생긴 설명의 부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엑소시스트>는 레건(린다 블레어 분)이 악령에 씌우기 전까지의 과정을 1시간 이상 할애함으로써 불길한 기운을 최대한 조성하며, <악마의 씨>는 로즈마리(미아 패로우 분)가 새집으로 이사를 온 후, 악마의 씨앗을 잉태하는 순간에서부터 악마를 낳기까지의 과정을 지루할(?)정도로 세심하게 설명한다. 반면 <오멘>은 이야기를 급하게 마무리하려는 조급함(?)이 돋보인다. 이는 <악마의 씨>와 <엑소시스트>가 아직도 유효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데 반해 <오멘>이 푸대접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하지만 2006년 6월 6일 리메이크 되어 개봉했다).



사족. 악마를 소재로 삼은 영화가 종종 실제 촬영현장에서 악마의 저주(?)로 보이는 듯한 사고로 화제를 모으듯 <오멘>도 그러한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 하였다. 촬영 중 작가인 데이비드 셀처의 비행기는 갑작스런 번개로 인해 파괴가 되었고, 감독인 리차드 도너가 묶고 있던 호텔은 IRA의 테러공격으로 인해 폭발사고가 일어나는 등 일련의 굵직굵직한 사고들이 발생함으로 해서 관계자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이에 스튜디오는 원 제목이었던 <적 그리스도의 모반 The Antichrist to the Birthmark>에 원인이 있다고 판단하여 제목을 지금의 <오멘>으로 변경하였다. 하지만 변화를 준 이후에도 원인 모를 차 사고가 촬영 중 발생하는 등 화제가 끊이지 않았다.


(2001. 11. 2. <무비클래식>)

<식스틴 블럭>(16 Blocks)


<리썰 웨폰>과 <다이 하드>의 두 갑빠가 만났다! 액숑무비 연출의 어르신 리차드 도너와 마초의 큰성아 브루스 윌리스가 바로 그들.  

아마 그런 전력땜시롱 화끈뻑쩍지근한 액숑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짐작되는데.. 가는 세월 그 누가 막을 수 있을랴~ 알랑가 몰겠지만 브루스 윌리스 성아의 연세가 벌써 액숑배우로서 무기 징역에 가까운 오십 줄. 그래서 <식스틴 블럭>은 액숑 하나로 정면 돌파하는 영화가 아님이다. 대신 연륜으로 밀어붙이는 작품 되겠다.

왕년에 뉴욕을 주름살 잡았던 짭새 잭 모슬리(브루스 윌리스 분). 지금은 술에 쩔어사는 구제불능 늙다리다. 그에게 간단한 임무가 떨어진다. 죄수 에디 벙커(모스 데프 분)를 열여섯 블럭 떨어진 법원까정 이송하라는 것. 남은 시간은 고작 118분. 근데 이송중 이들을 가로막는 천하의 나쁜놈덜이 나타나니…

당 영화의 특징은 2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과 뉴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 그래서 영화는 차이나타운처럼 따닥따닥 밀착한 건물 미로 속을 전전긍긍하며 아기자기한 상황을 연출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이에 더해 남은 시간을 찔끔찔끔 흘림으로써 더욱 쪼여드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그 결과, 이 두 가지 상황이 합해져 당 영화는 똥꼬 벌렁벌렁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벌렁할 정도의 긴박감을 조성하는 데는 나름 성공하고 있다.

이처럼 당 영화의 검소하지만 닫힌 스케일이 의미를 갖는 건 이제는 머리 훌렁 벗겨지고 배 출렁거리는 잭의 활동반경상, 무엇보다 그의 캐릭터를 드러내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 영화가 계속해서 좁아터진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건 퇴물경찰이 된 잭을 통해 삶의 애환과 후회가 섞어찌개된 씁쓸한 감정을 드러내고자 하는 설정에 어울리는 탓.

하지만비유띄벗뜨! 근데 뭔놈의 영화가 그렇게 말이 많아. 그런 잭의 감정을 밀폐된 공간의 도움을 받아 드러내는 설정은 좋지만 당 영화는 그걸 스토리를 통해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대사로만 해결하려 자빠졌다.

잭이 과거에 배드 캅이었다고 고백하는 것도 말, 그걸 시방 후회하고 있다는 것도 말, 그래서 앞으로 굿 캅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말.

아무리 그게 영화의 주제라고는 하지만 꿀꿀한 공간에서, 꿀꿀한 꼬라지를 한 자가, 꿀꿀한 얘기를 주딩이 한 번 열었다 하면 기본안주 10분 이상으로다가 썰 푼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꿀꿀할지. 더군다나 그런 꿀꿀한 분위기를 업시키려 에디의 흑인 특유의 수다를 잭의 고백 뒤에 바로 낑궈넣는 치밀함을 보여주긴 하지만 꿀꿀한 대세를 역전시키기에는 한없이 부족해보이니 이를 어쩔쏘냐..

그러다보니 영화는 잭과 에디 커플이 나쁜놈들에게 쫓기는 그 과정까지의 액숑은 스릴넘치지만 대치형국만 이루면 총보다는 말을 앞세우는 까닭에 후끈 달아올랐던 긴장감이 빤스끈 끊어지듯 허벌 풀어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딱 뮝기적하다는 얘기.

한마디로 당 영화는 리차드 도너와 브루스 윌리스의 전작 <타임 라인>, <호스티지>보다는 나은 모습이지만 대표작이랄 수 있는 <리썰 웨폰>과 <다이 하드> 시리즈의 영광에는 한참 못 미치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전차로 본 특위는 <식스틴 블럭>을 뮝기적에 봉한다.



(2006. 4. 17.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