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 류승룡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사람들은 광해와 하선의 1인 2역을 맡은 이병헌의 영화라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이병헌은 이 영화에서 폭군과 선왕의 이미지를 오가며 극단의 스펙트럼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오로지 이병헌 만의 능력일까. 광해와 하선의 최측근에서 이들을 보좌하는 허균 역의 류승룡은 한 발작 뒤로 물러나 이병헌이 맘껏 플레이할 수 있도록 그 자신을 지운 연기를 펼쳐 보인다. 말하자면 캐릭터 간의 조화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절제된 연기를 선보이는 것. 놀라운 건 류승룡이 전작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맡았던 역할이 바로 희대의 카사노바 장성기였다는 사실이다. 안 그래도 그는 이제 장면을 훔치는 배우에서 함께 작업하는 배우와 시너지 효과를 통해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연기를 지향한단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배우에 대한 꿈을 품어온 후 오랜 시간 연기에 전념하며 다다른 어떤 경지다.  

허균이 된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반응이 뜨거워요. 지난해 출연했던 <최종병기 활>(2011)과 <내 아내의 모든 것>까지 출연한 세 작품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했네요.
<최종병기 활>부터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까지 3연타석 흥행에 성공했다는 이런 얘기들을 하세요.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시나리오와 연출 등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것들이 만든 거죠.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대해 제가 ‘흥행메이커’다 이렇게 평가되는 건 부끄럽고 민망해요. 이전 작품들도 마찬가지고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도승지 허균을 연기했어요.
저는 작품을 결정할 때 한다, 안 한다를 빨리 결정하는 편이에요. 오래 끌거나 그러지 않아요.

허균은 어떤 점에 끌려서 맡게 됐나요?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중요했죠. 그 안에서 캐릭터가 어떻게 녹아들었느냐를 봤어요. <내 아내의 모든 것> 촬영 중에 제의를 받았던 걸로 기억해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카사노바 장성기는 영화 한편에서 진지함과 코미디를 오가는 연기의 진폭이 굉장히 넓었어요. 그에 반해 허균은 정중동, 여백, 무엇보다 절제가 많아야 하는 캐릭터였는데 그런 점에 호감이 가 선택하게 됐어요. 만약 <고지전>(2011)을 찍던 중에 허균 제안을 받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중복되는 것을 염려하셨나요?
장성기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센 이미지로 다가갈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내 아내의 모든 것> 차기작으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장성기 캐릭터에서 빨리 빠져나오려는 시도이기도 했고요. 관객들도, 기자들도 장성기 캐릭터가 주는 인상이 강하다보니 여운이 크게 남으셨나 봐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있으셨던 모양인데 제 입장에서는 사실 전혀 고려하지 않았어요.  

관객의 기대치보다 이전 캐릭터와의 관계를 더 따져서 판단하시는군요?
적어도 중복되지 않게는 하죠. 다만 변신에 대한 강박은 없어요. 전략을 짜서 영화를 고르고, 캐릭터를 선택하는 건 아니지만 연달아 비슷한 연기를 하는 건 지양하는 편이죠.

허균은 실존인물이지만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역사적 사실보다 상상력에 더 많은 걸 기대는 작품입니다. 연기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영화의 이런 성격이 어떻게 작용하던가요?
허균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을 할수록 이 영화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상식적일만큼 허균에 대해 알고 있었고, 관련한 소설도 읽었어요. 영화에서는 허균의 일대기 중에서 불과 20여 일간의 행적을 발췌한 거잖아요. 그것이 바로 이 영화에서 필요로 한 허균의 모습이었어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장르를 일러 ‘팩션’이라고 하잖아요. 최소한의 사실을 따와 영화적인 허구로 잘 만든 것이기 때문에 광해에 대한, 허균에 대한 위인전이 아닌 거죠. 조내관(장광)이나 도부장(김인권) 같은 인물도 모두 영화적으로 만든 거고요. 허균이 사실 식탐이 많았어요, 여자도 굉장히 밝혔고요. 부안기생 매창인가요, 그녀가 죽었을 때 시도 쓰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인 거죠. <홍길동>이라는 소설도 썼는데 읽어보면 허균이 혁신적이고 이상주의자라는 인상을 받게 되거든요. 다만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담아내기에는 그런 여지들이 오히려 영화적으로 불필요한 부분이었던 거예요. 

그럼 가장 중요하게 집중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 영화에서 딱 필요한 허균의 몫이 있었어요. 허균은 이상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 맞게 살았고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한 인물은 아니었어요. 이를 눈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얼굴은 늘 무표정하고 무뚝뚝했지만 하선으로 인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들을 표현해야 했고요. 영화적으로는 하선을 데려다가 꼼짝 못하게 만드는 긴장감을 유발하면서 관객들에게 마냥 진지하지만은 않게 재미를 줘야 했죠. 하선에 의해 허균이 조금씩 변해가는 감정들을 관객이 동조할 수 있게 하는 연기도 중요했어요. 거기에 충실했습니다.

추창민 감독님이 주문한 부분 역시도 마찬가지였나요?
별 디렉션은 없었어요. 내가 워낙 잘 하니까. (기자가 웃자 함께 웃으며) 진짜예요. 나는 테이크를 별로 안 갔어요. 이병헌 씨는 광해와 하선을 오가기 때문에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가 가능했다면 허균은 포커페이스죠. 진지하게 누르고 가는 연기가 필요했어요. 처음에 허균에 대해서 잡는 게 힘들었지, 촬영에 들어가서는 제가 ‘쪼끔’ 개그 욕심을 부리면 감독님이 지긋이 눌러주는 정도. (웃음) ‘허균’스럽게’, ‘문인’스럽게 그 말씀을 가장 많이 했어요.

처음에 잡는 게 힘들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눈을 만드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형형한 눈빛. 같은 사극이라도 <최종병기 활>의 쥬신타와 <평양성>의 무인 남건과 허균의 눈빛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해요. 배우의 변신은 눈이라고 봐요. 그 눈을 만드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눈은 마음의 창이잖아요. 현실에 조금 불만이 있지만 누르고 사는 정치적인 인물로서의, 지식인의, 충신의, 이상가로서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전 눈빛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최대한 거짓말을 안 하려고 집중하는 편이에요. 

<광해, 왕이 된 남자> 역시도 거짓된 정치를 지양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진실 된 정치를 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요.
왕으로만 의미를 한정하고 싶지는 않고요. 리더, 사람들의 소통, 대화, 이런 것들은 집에서도 상식적으로 통하는 가치거든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의사소통 안 되는 경우 우리 주변에는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이 영화는 정치 외에도 가족, 직장, 학교 등등 다양하게 해석될 부분이 많아요. 지금이 대선 전이고 그러다보니 그쪽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를 본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재미있다, 광해를 공부하고 싶다는 얘기를 해요. 이삼십 대는 또 달라질 거고 사십대는 뜨거운 눈물을 흘릴 테고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죠. 이걸 한 줄로 정리하는 순간 마치 교조적으로 가르치는 영화가 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감독님도 그렇고 경계하는 부분이죠.  

천상 배우가 된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진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진짜 왕이 되시던가”라는 허균의 호소에 하선이 “왕이 되고 싶소”로 응답하는 장면인데요. 이 장면을 응용해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언제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나요?
아주 자연스럽게 갖게 됐어요. 중학교 3학년 때 공짜 표가 생겨서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하는 <파우스트>를 보게 됐어요. 너무나 감동을 받았죠.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연극반이 있어서 들어가게 됐고 연기를 하는 순간 너무 행복했어요. 좋아서 즐겁게 연기를 계속 하다보니까 지금까지 왔어요. 물론 내가 연기를 통해 인생에서 대단한 승부를 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재밌어서, 즐거워서, 좋아서, 미쳐서 했지 뭔가를 이루겠다고 연기를 할 생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대개 중학생이라면 영화를 더 많이 보지 않나요, 행보가 남다르셨네요? (웃음)
그전에도 공연물을 많이 본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시기 우연한 기회에 연극을 안 봤다면, 고등학교에 연극반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끔찍해요. 서울예전에 떨어졌으면, 동남극단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그런 여러 가지 갈래 길들이 있었죠. 머리 굴리지 않고 순리대로 갔어요. 지금도 그래요. 억지로 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흥행도, 차기작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상? 요만큼도 안 해봤어요. 재밌어서 하다보니까 흥행도 된 거죠. 안될 수도 있는 거고요. 순서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그런 기로에서 자신이 결정한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두렵지는 않았나요?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얘기들 많이 하시잖아요. 전 완전히 반대에요. 두려움 없이 사는 삶, 그런 인생이 오히려 두려워요. 두려움의 연속인 거죠. 기분 좋은 긴장과는 차이가 있지만 약간의 두려움이 늘 있었어요. 긴장이 극대화되면 그게 두려움이거든요. 긴장과 두려움의 그 경계 있잖아요, 이것들을 잘 끌고 가서 결국에 이겨내는 게 중요한 거죠.
 
영화도 잘 되고 있고 연기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는데 아직도 그런 근원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나요?
내가 이 캐릭터를 잘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연기를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이건 긴장이면서 적당한 두려움이고 그래서 도전이기도 해요. 난 다 할 수 있어, 이런 자만 혹은 기고만장과는 차이가 있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만 했다면 연기 자체가 재미없었을 거예요. 해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도전이 생기고, 내 안에 뭐가 있을까 나를 찾아보고 거기서 생기는 긴장과 두려움을 극복할 때 저는 보람을 느껴요.
 
이전 작품과는 다른 캐릭터를 보여지기 위해 노력을 하세요. 필연적으로 모든 배역에 두려움이 따르겠군요?
두려웠죠. 이준익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배우는 24시간 강박에 시달린다고. 맞아요, 배우들은 캐릭터를 잡기 위해서 잠도 못잘 정도에요. 내 몸을 빌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건데 얼마나 괴롭겠어요. 이 배역을 잘 맞이할 수 있을까, 이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배우이기 때문에 갖는 적당한 두려움이 있죠. 처음 찾는 게 힘들지 주파수만 맞으면 쭉 가게 돼요. 처음 프리단계나 첫 촬영에서 어떻게 잡느냐, 그리고 끝날 때까지 어떻게 잘 유지하느냐, 이게 가장 힘든 거죠.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는 류승룡이라는 배우를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인식시켜준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전 작품의 캐릭터와는 다르게 정말 다양한 면모를 보여줘야 했는데요, 그 때문에라도 느끼는 부담감은 컸을 것 같아요.
기술적으로 연마해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짧은 순간 비치지만 스페인어와 불어를 촬영 전 한 달 넘게 정말 몇 천 번을 들었어요. 제가 몸치인데 맘보춤은 뮤지컬 안무하시는 분께 배웠고 (직접 노래를 부르며) ‘매일 그대~와’ 이 노래는 촬영 당일에 불러달라고 해서 그날 관계된 분을 모시고 연습을 했죠. 그런 기술적인 부분을 습득하고 장성기를 표현하면서 보람을 느꼈지만 당시에는 스트레스가 대단했어요. 

허균의 경우는 어땠나요?
장성기와 비교해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허균이 더 많았어요. 왜냐면, 장성기처럼 기술적으로 할 게 많았던 연기는 물리적인 시간을 투자하면 습득이 되기 때문에 성실하고 많이 하면 돼요. 그런 반면에 허균은 눈빛을 바꿔야 하고 별로 세거나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묵직한 힘을 줘야 했기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허균의 목적은 결국 이병헌 씨와 연기의 관계를 잘 이뤄나가면서 그를 조력해주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어요. 전 다른 배우와 부딪히지 않아요. 도부장과는 전혀 부딪히지 않았죠, 조내관과 함께 있는 장면도 한두 개 빼면 없어요. 독대하는 장면은 모두 이병헌 씨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광해와 하선, 1인 2역을 한 이병헌 씨의 연기가 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이 영화에서 허균과 이를 연기한 류승룡의 목적이었죠.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장성기가 정인(임수정)과 못 먹는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1차원적 편견을 깨니까 먹어지더라고요.”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었어요. 배우의 입장에서 누구보다 화면에 많이 잡히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텐데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허균의 목적성을 들어 보니 결국 류승룡 씨에게 연기도 1차원적 편견 깨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지금도 어떤 현장에서든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요. 그 전에는 인지도가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세게 하고 오버라도 해서 어떤 배우보다 도드라지고 싶은 편견이 있었어요. 허균은 그에서 벗어난 여유로움을 표현한 것이거든요. 일부러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게 배우의 입장에서 표현하기에 더 힘들더라고요. 제가 영화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기자 주_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2004)에서 강도 역할로 영화 연기 데뷔) 연기 생활 초반에 ‘신스틸러’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저는 당시만 해도 이게 연기를 잘하는 건지 알았어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부끄러워요. 지금은 ‘심’스틸러, 그러니까 마음 심(心). 관객의 마음을 훔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같은 배우들인데 어떤 장면을 뺐어먹었다, 오버해서 따먹었다 이런 표현이 나오면 부끄러워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movieweek
NO. 547

<불신지옥> 시네토크

사용자 삽입 이미지
봇물처럼 풍선 터지듯 관객석 여기저기서 와 하는 함성소리가 쏟아졌다. <불신지옥>의 이용주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예정되어있던 전주시네마타운 1관에 남상미, 심은경, 김보연, 류승룡 등 주연배우까지 모두 참가했기 때문이다. <불신지옥>은 집 나간 동생을 찾는 언니의 고군분투 속에 한국 사회에 독버섯처럼 침투해있는 빗나간 믿음에 대한 정체를 일상에서 건져내는 작품이다. 비록 개봉 당시에는 <해운대>와 <국가대표>에 밀려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작품성에 있어서 전혀 뒤지지 않는 영화였던 까닭에 이용주 감독은 물론 출연한 배우들 역시 애정이 대단했다. 감독과 배우, 그리고 관객까지 <불신지옥>에 대한 애정을 무한대로 확인했던 시간,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의 진행으로 시네토크에서 오간 대화의 일부를 공개한다.

어떻게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나?
(이용주 감독) 이야기적인 측면과 현실적인 측면이 있었다. 이야기적인 측면에서는 영매와 믿음에 관심이 있었다. 이 두 가지를 고민하다보니까 무속신앙과 기독교라는 얼개가 나오게 됐고 자연스럽게 공포영화와 연결됐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전에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고 나서 어떻게 하면 입봉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공포와 저예산으로 돌파구 삼으려했고, 세트비중이 높은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불신지옥>이 나오게 됐다.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처음 본 후 어떤 인상을 받았나?
(남상미) 희진이라는 역할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감독님과 처음 미팅할 때 소진이를 하면 안 되겠느냐고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근데 아시겠지만 내가 나이가 많아서 포기했다. (웃음) 내가 맡은 희진은 매력적인 인물인데다가 관객에게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내레이터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캐릭터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연기를 했고 처음 시나리오 상에 나왔던 이야기보다 영화에서 더 좋게 나와 기쁘다.

(심은경) 시나리오를 보고 굉장히 욕심이 많이 났다. 지금도 애착이 많은 작품이다. 평소에도 강한 역할에 관심이 많은데 <불신지옥>의 소진은 첫 느낌이 굉장히 신비스럽고 묘한 느낌을 주는 소녀 같았다. 오디션을 보면서도 감독님에게 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비쳤다.

(김보연) 이용주 감독님께서 내가 연기할 수 있게끔 좋은 역할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영화를 끝으로 앞으로는 공포영화를 안 할 생각이다. <불신지옥>에서 내가 맡았던 역할보다 더 좋은 역할을 다른 공포영화에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류승룡)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과 대화하고 싶어서 이렇게 오게 됐다. 그만큼 영화를 만들 때도 패밀리쉽이 있었던 현장이었다. <불신지옥>은 불운의 작품 중 하나다. <해운대>와 <국가대표>의 틈바구니 속에서 이십만 명의 관객이 보았다. (웃음)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굉장히 퀼리티 있고 색다른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고는 구원이라든지, 잘못된 믿음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하고 싶어 이 영화를 선택했다. 

<불신지옥>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영화제, 뉴욕의 트라이베카 영화제 등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직접 경험한 해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이용주 감독) 국내에서라면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관객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데 내가 영어가 짧아서 (웃음) 해외에서는 상영관의 반응만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개봉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적인 공포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점집이나 아파트와 같은 한국적인 분위기에 대해 외국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외국관객들은 공포영화를 즐기는 습관이 돼있다고 할까, 의외로 재미있게 보시더라. 

배우 입장에서 가장 찍기 어려웠던 장면은 무엇이었나?
(남상미) 가위 눌리는 장면. 가위를 경험하신 분들이 많을 텐데 나는 한 번도 없다. 그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다. 콘티가 워낙 좋아 고민에도 불구하고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던 장면이다.

(심은경) 의자 위에 올라가 돼지고기를 씹으면서 신들린 장면을 연기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앞 상황을 먼저 찍었다면 감정이 연결돼서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의자 연기를 먼저 찍고 이전 상황을 연기했다. 이 때문에 감독님과 의견 차이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세게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했는데 영화로 나온 걸 보니 감독님 말이 맞았다. (웃음)

(김보연) 영화 결말부, 옥상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그랬다. 진짜 떨어졌다. (웃음) 당시에 사실 내가 왼쪽 장을 수술했다. 그 때문에 이용주 감독님한테 굉장히 미안했다. 실제로 매달려서 연기를 해줬으면 요구했는데 수술을 한 부위가 너무 많이 당겨서 와이어를 못하겠더라. 그래도 감독님이 잘 찍어주셨다. 다만 감독님 요구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게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류승룡) 진지하게 연기했는데 웃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끝에 가면 희진에게 극중 나의 딸이 빙의가 되는 장면이 있다. 항상 귀신같은 것은 없다고 관객과 비슷한 감정으로 연기를 하다가 일순간 아버지로써 무너진다. 그런 연약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그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을 정도다. 원래는 원 컷 원신으로 한 번에 이어서 찍는 거였는데 투자사와 제작사의 압박 때문에 중간 중간 자르게 됐다. 감독님이 내게 굉장히 미안해하는 부분 중 하나인데 시사회 때였나, 거기서 무릎을 꿇으니까 모두 웃었다. 그 때문에 힘들었다.  

영화 초반, 희진은 꿈속에서 놀이터에 앉아있다. 그때 새가 와서 희진의 손바닥에 놓인 이빨을 쪼는데 무슨 의미인가?
(이용주 감독)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게 ‘어떻게 하면 새로운 공포를 조장할 수 있을까?’이었다. 기존의 공포와 달리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렇게 해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일상적이되 어느 한 구석이 낯선 느낌이었다. 딱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는 상황에서 공포가 유발되는 느낌이 하나의 룰이었다. 새만 보면 이상하지 않지만 아파트 놀이터에 새가 있으면 이상하다. 그 새가 뭔가를 쪼아 먹으면 좋겠는데 무엇이 좋을까.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 꿈이니까 몽환적이었으면 하고 생각했고 그것이 공포로 둔갑하기를 바랐다. 꿈에서 이빨이 빠지면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대표적인 흉몽이다. 가족의 불상사, 그리고 난데없는 공포를 주는 소재를 생각하다가 이빨이 떠올랐다.

지금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영화는 무엇인가?
(이용주 감독) <해운대>나 <국가대표> 같은 영화? (웃음) 그런 작품처럼 흥행이 되는 영화를 찍지 않으면 앞으로 영화를 만들기 쉽지 않다. 얼마 전에 시나리오를 끝냈다. 물론 영화로 제작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깨끗해서 더러움 같은 것은 범접할 수 없는 밝고 경쾌한 첫 사랑의 멜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1th JIFF daily
(2010.5.6)

<불신지옥>(Possessed)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근 십년 가까이 여름시즌을 장식했던 국산 ‘피(血)무비’는 매년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배출하며 극장가의 대표적인 지뢰밭으로 악명을 드높였더랬다. 올해 기세 역시 만만찮아서 여름 피무비 시장의 서막을 열어젖힌 <여고괴담5:동반자살>의 경우, ‘여고괴담’ 시리즈가 쌓아왔던 명성을 한 큐에 말아먹으며 혹시나 하던 기대를 역시나로 마무리하는 놀라운 살상능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올해 역시도 ‘볼짱 다 봤다’는 불신감이 영화판에 팽배할 때쯤 홀연히 등장한, 관객을 피 보게 만든다 하여 피무비가 아닌 말 그대로의 공포영화가 한편 있으니, 바로 바로바로 이용주 감독의 데뷔작 <불신지옥>되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목이 심상찮다. <불신지옥>이란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에서 가져왔나보다. 그럼 일부 빗나간 종교인을 향해 똥침 놓는 영화? 아니다. <불신지옥>은 단순히 특정종교인을 겨냥한 작품이 아니다.

물론 광적인 기독교인이 등장한다. (무속신앙인도 등장하지만 너무 자세하게 밝히면 명랑관람에 지장 있는 바, 이 부분은 생략하기로 한다!) 주인공 희진(남상미)의 마더(김보연)다. 딸 소진(심은경)이 실종됐음에도 찾을 생각 없이 기도에만 올인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찾아준다나 모라나. 희진은 그런 마더의 행각에 복장 터진 나머지 경찰에 신고하지만 형사 태환(류승룡)은 단순 가출을 이유로 수사에 소극적이다. 바로 그때, 윗집에 사는 소진의 친한 언니가 목매 자살을 하면서 상황은 급변, 태환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다. 하지만 소진을 목격했다는 이웃주민들이 하나둘 이유 없이 죽어나가기 시작한다.

보신 바와 같이 <불신지옥>은 종교적인 이야기와는 코딱지만큼도 연관이 없다. 다만 소진 정도를 제외하면 <불신지옥>의 등장인물들은 종교적이다 싶을 정도로 어딘가에 집착하는 모습이 강하다. 희진과 소진 시스터즈의 마더는 말할 것도 없고 옆집에 사는 시한부인생의 수경(장영남)은 병만 낫는다면 뭔 짓인들 벌일 기세며 5공 독재시절의 향수에 푹 절어 사는 아파트 경비원 귀갑(이창직)은 자기 기준에 벗어나면 누가 죽어도 별 상관없다는 투다. 태환 역시 다르지 않아, 딸이 죽을병에 걸려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이렇듯 <불신지옥> 속 대부분의 인간들은 광신도에 다름 아니다. 감독이 보기에 극중 기독교인이나 무속신앙인은 별 반 다를 것이 없는 인물이다. 오로지 자신의 믿음만을 신봉하며 그 믿음에 반하는 이들은 모두 경계하고 해를 입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들의 믿음에서 보는 건 종교의 교리가 아니라 빗나간 믿음이 주는 공포다. 문제는 그것이 그 둘에만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 내 삶은 물론, 당신 주변의 모습도 다르지 않으며 우리가 처한 상황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을 영화는 말하는 듯 보인다. 다시 말해, <불신지옥>은 맹목적 믿음이 만들어낸 불신의 지옥도를 한국적인 풍경 위에 그려낸 작품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는 <장화, 홍련> 이후 국산 피무비들이 베껴먹고 또 베껴먹길 주저하지 않았던 알록달록 꽃무늬 벽지 풍의 숲속의 대저택스러운 공간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불신지옥>의 배경은 지방소도시의 아파트를 웬만해선 떠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아파트는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이다. 오로지 ‘잘사니즘‘을 앞세운 개발논리의 첨병이자, 성냥갑을 도미노처럼 배열한 천편일률적인 만듦새에, 별 특징 없는 공간 속에서 목격되는 특유의 잡스러움까지. 예컨대, 극중 아파트는 교인을 드러내는 교회 명패와 함께 동네무당집 간판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한국 외 전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혹자는 이용주 감독이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란 점을 들어 ’<플란다스의 개>의 오마주‘, ’봉준호에게 받은 영향‘ 등 플란다스의 개 같은 사운드를 내기도 하는데, <불신지옥>은 지금의 한국, 그중에서도 우리네 평균적인 현재 삶이 만드는 무지막지한 풍경에 대한 영화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영화는 공간의 배경은 물론, 귀신의 존재나 공포를 발현하는 방식까지도 ‘현실’이라는 범위를 넘지 않는다. 귀신의 공식복장이랄 수 있는 하얀 소복과 긴 머리는 저 멀리 나빌레라 흔적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 도리어 말끔한 복장에 긴 머리까지 모자로 감춘 이가 귀신이라고 등장할 지경이다. (물론 존나게 무섭다!) 더욱이 가위눌림과 신들림, 그리고 지하실의 어둠과 같은 현실적인 소재로 공포를 자아내는 솜씨는 과연 <불신지옥>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현실적인 공포를 목격하는 건 아마도 윤종찬 감독의 <소름>(2001) 이후 실로 오랜만의 일이 아닌가 한다.

이는 한편으론 그동안의 국산 피무비들이 얼마나 무뇌아적인 방식으로 이 장르를 다뤄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공포영화는 오락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그 기반은 현대인의 심연 깊숙한 곳에 짱박힌 불안 심리를 바탕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치로써의 공포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이러한 현실이 뒷받침되어야 하거늘 오로지 놀람과 사지절단으로 오해한 부류들로 인해 국산 공포물이 피무비의 불명예를 뒤집어썼다는 얘기다. <불신지옥>이 그 자체로 좋은 공포영화인 것은 사실이지만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면에는 피무비들의 활약이 한몫했다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엇보다 <불신지옥>에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미스터리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영화는 공포물보다 추리물의 성격이 더 짙다. 사건은 소진의 실종에서 시작되고 이야기 전개는 대부분 태환의 수사로 이뤄지며 결국 소진을 찾음으로써 끝맺음되기 때문이다. 추리물로의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거시적인 공포를 자아낸다고 할까. 그러니까 소진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은 곧 공포의 정체를 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앞서 밝힌 바, 이 영화가 다루는 공포의 정체는 맹목적 믿음이 야기한 불신이다. 즉, <불신지옥>은 소진이라는 공포분자를 추적함으로써 불신이 어떻게 발생하고 전이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그런 점에서 <불신지옥>은 대만 에드워드 양의 <공포분자>(1986)를 연상시킨다. <공포분자>는 경찰이 소년 갱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사건이 주변 인물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지를 탐구한 작품이다. 이를 에드워드 양은 굉장히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것에 반해 <불신지옥>은 장르로 접근하는 방식을 택한다. 좋은 장르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순수하게 오락적인 형태로써 현실과 유리된 듯 보이지만 그 형식을 좇다보면 그 끝은 항상 현실, <불신지옥>과 같은 공포영화의 경우, 현실의 어두운 이면과 맞닿아있다.

그에 비춰, <불신지옥>이 품고 있는 영화적 메시지는 가볍게 넘길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소진의 실종은 불안한 시대의 황폐한 정신이 야기한 필연의 산물이며, 영화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소진은 상식을 뛰어넘은 우리 사회의 각종 광신의 총합이 빚어낸 비극의 총체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가슴 찢어지는 자식의, 동생의, 이웃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불신지옥>은 뜬금없게도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을 모성의 기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이 영화가 내세우고 있는 도발적인 화두에 비해 결말의 야심이 부족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기야 감독에게도 뾰족한 해답은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기 위해서 감독이 감당해야 할 모험의 위험성이 너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특정종교를 비판했을 때 닥쳐올 반발은?) 그런 상황에서 모성에 책임을 지운 지금의 결말이야말로 <불신지옥>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불신지옥>의 결말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가 내세우는 메시지는 유효하다. 정작 <불신지옥>이 처한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찾는 관객이, 별로 ‘엄따’ <해운대>는 천만 관객 초읽기요, <국가대표>는 3주 만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승승장구한다는데 <불신지옥>은 지난 한 주 동안 1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물론 ‘한국 공포영화가 그 정도면 많이 든 거 아니야’ 이렇게 나오시면 할 말 없지만서도 다만 <불신지옥>은 그간의 국산 피무비가 쌓아온 한국 공포물에 대한 관객의 불신을 한 방에 날려버릴 만한 작품이다. 그러니 <해운대>와 <국가대표>도 좋지만 이 영화에도 관심 좀 가져주면 안되겠니? <불신지옥>을 부탁해~


사용자 삽입 이미지
딴지일보
(2009.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