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피투시 감독의 <코파카바나>(2010)에는 제목과 달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세계적인 휴양지 코파카바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삼바 음악을 즐겨 듣고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그 자신만의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코파카바나 해변을 꿈꾸는 중년의 여인이 등장한다.
바부(이자벨 위페르)는 한가롭게 쇼핑을 즐기고 술을 마시다 흥겨운 음악만 들리면 자연스럽게 몸을 흔드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다만 그녀의 딸 에스메랄다(롤리타 샤마)는 그런 엄마가 맘에 들지 않는다. 쉽게 남자를 갈아 치우고 변변한 일자리도 갖지 못한 데다가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바부가 철없어 보이는 것이다. 마침 결혼을 결심한 에스메랄다는 오랜만에 엄마와 속 깊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바부가 못 마땅해 하자 폭발하고야 만다. 급기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겠다고 화를 내고 모녀 관계는 그렇게 서먹해진다.
바부는 여자로서 매력이 넘치지만 엄마로서는 별로 호감 가는 인물이 아니다. 실제로 그녀의 가족 배경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친해지지만 조금이라도 지내본 이들은 어딘가 모르게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유분방한 여자가 아니라 자식에게 헌신하는 엄마가 되어 에스메랄다에게 좀 더 충실할 것을 바란다. 물리적 나이가 아닌 심리적 어른으로서의 성장, <코파카바나>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른 두 모녀의 화해를 통해 바부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과정이 흥미로운 건 마크 피투시 감독이 바부의 고유한 성격을 구태여 교정하려 않는 데 있다. 오히려 인정하는 태도를 기저에 깔고 두 모녀가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는 범위에서 해피엔딩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떠나는 곳은 바로 코파카바나, 가 아니라 벨기에의 오스탕드. 코파카바나와 달리 생기 없는 해변 도시이지만 바부는 새로운 직장을 얻어 콘도 이용권을 팔면서 딸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어 보려 노력한다. 다행히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직장에서의 일도 잘 풀리고 새로운 남자 친구도 사귀지만 그녀의 성격 상 끝까지 버텨내기는 요원하다. 그로 인해 바부는 좌절하는가? 그렇지 않다. 늘 그렇듯 별 일이냐며 툭 털어내지만 대신 관계에서의 성숙을 이뤄내는 데는 성공한다. 짧은 동안이지만 자신과는 성격도, 세계관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관계의 어긋남이 발생했을 때 정면에서 맞부딪히는 대신 우회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비록 가벼운 성격 탓에 주변과 불화하기 일쑤지만 맘에 담아두지 않는 그녀의 삶의 태도는 편견과 오해가 빈번한 이 세계에서 종종 마법을 일으켜 뜻하지 않는 행복을 불러내기도 한다. 그렇게 딸과의 화해에 이르면서 꿈꾸던 코파카바나를 향하게 되는데, 마크 피투시 감독은 바부가 그 전에 마음 속 코파카바나, 그러니까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 속에서 안식을 얻는 과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목이 <코파카바나>이면서 코파카바나가 등장하지 않는 역설의 영화가 가능했던 이유다.
그리고 또 하나. 천진난만한 엉뚱함 속에서 삶의 철학을 길어 올릴 수 있게끔 노련한 연기를 펼친 이자벨 위페르는 이 영화의 세계 그 자체다. 심지어 <코파카바나>에서는 실제 친딸 롤리타 샤마와 모녀 연기를 펼치며 극과 현실의 경계를 무화하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가벼운 코미디로 치부하기에 <코파카바나>가 보여주는 삶의 신비는 단순한 웃음 이상의 깨달음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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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