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는 홈즈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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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셜록 홈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자시사회를 통해 최초 공개했을 때부터 예상된 바였다. <셜록 홈즈>가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탐정 캐릭터를 액션 영웅으로 탈바꿈시킨 영화로 알려지면서 기자들 사이에서 이미 호불호 논쟁이 뜨거웠던 것이다. ‘홈즈는 성룡이 아니다 vs 홈즈는 원래 복싱에 능하다’, ‘왓슨이 언제 그렇게 홈즈와 맞먹었나 vs 홈즈와 왓슨은 주종관계가 아니다’ 라는 식의 구도로 진행된 논란은 결과적으로 영화의 흥행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아바타>와 <전우치>의 압도적인 2강 체제 속에서도 <셜록 홈즈>는 3주 연속 3위를 굳건히 하며 꾸준한 흥행 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홈즈의 변신(?)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못 느끼는 쪽이다. (오히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에서 보였던 가이 리치 감독 특유의 개성이 상당 부분 제거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가이 리치는 영화 시작과 함께 주먹질에 능한 홈즈를 클로즈업하며 변화를 선전포고하고 홈즈와 왓슨의 관계를 거의 동성애자 커플에 가깝게 묘사해 논란을 부추긴다. 셜록 홈즈의 첫 번째 소설 <주홍색 연구>(1887)가 등장한 지 100년도 훌쩍 지난 마당에 현대적인 기준에 맞춰 캐릭터에 변화를 꾀한 것이 불가피했다는 투다. 사실 이 같은 태도는 가이 리치가 처음은 아니다. 이는 셜록 홈즈의 세계에서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닌 것이다.

홈즈 소설은 안작(贋作)으로도 불리고, 모작(模作)이라고도 표기되는 소위 패러디가 가장 발달한 시리즈다. 저자인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4편의 장편과 53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면 홈즈를 사랑하는 작가와 전 세계 산적한 팬들이 완성한 ‘그들 각자의 셜록 홈즈 소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최초의 셜록 홈즈 안작소설로 평가받는 <페그람의 수수께끼>는 코난 도일이 살아생전이던 1892년에 발표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매년 수십 종의 신간 안작소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인데 셜록 홈즈의 안작소설 역사 역시 100년이 넘은 셈이다. 이 같은 배경의 결정적인 계기는 코난 도일이 1893년에 발표한 <최후의 사건>이다. 이 단편은 셜록 홈즈가 ‘범죄의 왕’으로 불리는 모리아티 교수를 스위스 마이링겐의 라야헨바흐 폭포로 유인해 함께 떨어져죽은 에피소드로 유명하다.

그 당시 코난 도일은 홈즈에게로 향하는 팬들의 관심이 자신을 월등히 넘어서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다. 원래 ‘챌린저 교수 시리즈’로 명명된 모험소설에 더 관심이 많았던 코난 도일은 준비과정의 일환으로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집필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자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결국 홈즈의 죽음이라는 초강수를 두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홈즈를 되살려내라는 독자의 항의가 빗발쳤고 코난 도일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후에 코난 도일은 다시 홈즈 소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팬들은 안작소설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이처럼 안작소설의 역사가 깊고 너르다보니 개중에는 유명 작가의 작품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코난 도일 자신부터가 홈즈와 왓슨이 등장하는 두 편의 안작소설을 썼고 마크 트웨인과 오 헨리, 존 딕슨 카 등과 같은 당대의 작가들은 물론 코난 도일의 아들인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도 패러디를 통해 홈즈 소설에 대한 욕구를 채웠다. 또한 <Y의 비극>으로 유명한 앨러리 퀸은 서른 두 편의 안작소설을 모아 <셜록 홈즈 앤솔로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초기의 홈즈 안작소설이 코난 도일이 창조한 이야기와 극중 분위기를 최대한 거스르지 않는 것에 반해 최근의 작품들은 기존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주를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셜록 홈즈의 유언장> 봅 가르시아) 홈즈가 93세라는 노령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며(<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미치 컬린) 심지어 홈즈와 왓슨이 게이 커플로 등장하는 팬픽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역시 최근의 경향을 따르는 일종의 안작영화로써 기능한다고 보면 된다. 다만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홈즈의 안작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까닭에 액션에 능한 그를 두고 유난히 영화에 대한 논란이 크게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가 국내에 들어온 건 이미 백년도 훨씬 전이지만 홈즈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는 채 10년이 넘지 않는다. 지금은 안작소설까지 소개되는 단계지만 채 10종이 되지 않는 까닭에 홈즈는 여전히 추리하는 탐정의 이미지로 견고한 것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독자는 셜록 홈즈 소설의 완전한 판본을 접하지 못했다. 주로 아동용으로 소비됐고 그나마도 일본어 판본을 번역한, 다시 말해 원작을 중역한 작품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 홈즈 소설 시장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은 2002년 1월 출판사 황금가지를 통해 소개된 ‘셜록 홈즈 전집’이었다. <주홍색 연구>를 시작으로 <셜록 홈즈의 사건집>까지 9권이 소개되는 동안 홈즈 소설은 일시적인 붐을 넘어 미스터리 소설이 국내 출판 시장에 단단하게 발을 붙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출간 1년도 되지 않아 8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할 정도였는데 이는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였다.

셜록 홈즈 소설을 기획한 당시 황금가지 편집부의 팀장이었던 최준영 씨(현 번역가)는 “기본적인 독자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베스트셀러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당시에 형성되던 마니아 문화의 증가가 셜록 홈즈 시리즈의 인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그래서 “특별히 한국인들이 셜록 홈즈에 열광한다기보다는 한국에도 셜록키언(sherlockian 홈즈 소설의 열혈 팬들)이 증가했다고 보는 게 맞는 표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홈즈 소설을 청소년용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셜록 홈즈 전집이 원본에 최대한 충실했기 때문에 나온 효과로 보인다. 최준영 씨는 셜록 홈즈 전집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사안에 대해 “무엇보다 원작의 분위기와 내용을 전달하는데 충실하자는 게 제1의 원칙이었다.”며 “완역을 중요시했고 캐릭터나 문체 등의 일관성을 위해 한 사람의 번역자와 작업했으며 가능한 많은 외국의 판본들을 구하여 참조했다.”고 밝혔다. 셜록 홈즈 탄생 한참 뒤에야 이뤄진 제대로 된 번역이었지만 폭발적인 반응은 한편으론 홈즈 소설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이기도 하다.

국내는 물론이고 셜록 홈즈에 대한 인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셜록 홈즈처럼 백년이 넘게 사랑 받아온 캐릭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셜록 홈즈는 추리소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탐정 캐릭터의 원형을 제시한 인물이다. 안 그래도 최준영 씨는 “인류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들 중에서 셜록 홈즈처럼 강력한 이미지를 지닌 주인공은 많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셜록 홈즈가 오랜 세월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의 증거로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는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구체적으로 안작소설을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홈즈 안작소설은 과거 홈즈 팬들의 사랑이 창조적으로 집약된 결과물이면서 또한 미래의 인기를 담보하는 보증서이기도 하다. 이 같은 배경을 이해한다면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가 전혀 허무맹랑한 홈즈 관련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례로, 가이 리치는 홈즈의 액션도 사실은 추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홈즈가 극중 권투경기를 치르면서 주먹을 날리기 전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어디를 가격할지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홈즈의 활약상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캐릭터의 본질적인 성격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홈즈는 홈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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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1.11)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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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캐릭터를 두고 말들이 많다.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캐릭터이자 추리형 탐정인 그를 액션영웅으로 탈바꿈시켰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다. 어느 평자는 ‘이런 농담 같은 영화가 다 있냐’며, 어느 소설가는 ‘홈즈는 성룡이 아니다’라며 셜록 홈즈의 변신(?)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주먹질에 능한 홈즈의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다. 왓슨(주드 로)과 짝을 이뤄 젊은 여자를 비밀 종교의식의 제물로 바치는 연쇄살인마 블랙 우드(마크 스트롱)를 말 그대로 때려눕히는 것. 블랙 우드는 곧바로 사형이 집행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무덤에서 되살아나며(?) 홈즈와 왓슨은 괴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에 홈즈가 평생에 걸쳐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 아이린(레이첼 맥아담스)이 가담하면서 일은 점점 더 꼬여만 간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 등으로 유명한 가이 리치 감독은 코난 도일이 쓴 소설 속 그대로의 셜록 홈즈를 재현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시대가 한참 변한 만큼, 또한 영화가 블록버스터를 지향하는 만큼 셜록 홈즈 역시 현대적인 캐릭터에 걸맞은 위용을 뽐낸다. 액션영웅의 면모는 밝힌바 그대로고 홈즈와 왓슨의 관계 역시 우리가 알던 주인공과 조력자 간의 전통적인 관계를 넘어서 게이 커플이 아닐까 의심을 살만큼 동등한 관계로 급진전을 이뤘다. (왓슨이 홈즈에게 주먹을 날리기까지 한다!)

이는 셜록 홈즈 세계에서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셜록 홈즈는 소위 패러디라 불리는 안작(贋作)소설이 가장 발달한 시리즈다. 홈즈를 사랑하는 작가들이, 팬들이 그들 각자의 셜록 홈즈 소설을 완성한 것. 역사가 아주 깊어서 최초의 셜록 홈즈 안작소설은 이미 코난 도일이 살아생전이던 1892년에 발표된 <페그람의 수수께끼>이다. 그 후 코난 도일이 1893년에 발표한 <최후의 사건>에서 홈즈가 목숨을 잃자 (이때 함께 라이헨바흐 폭포에 뛰어들었던 모리아티 교수는 영화 <셜록 홈즈> 2편의 악당으로 예정된 상태다!) 그 충격에게 헤어나기 위해 팬들이 직접 안작소설을 ‘마구잡이’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셜록 홈즈 소설의 하위 장르가 된 것이다.

<Y의 비극>의 앨러리 퀸은 서른 두 편의 안작소설을 모아 <셜록 홈즈 앤솔로지>를 편집했고 최근 들어 국내 출판계에도 미치 컬린의 <셜록 홈즈의 마지막 날들>, 칼렙 카의 <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등 홈즈 안작소설이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는 실정이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셜록 홈즈 캐릭터의 기본 설정은 갖추되 기존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변주를 꾀한다는 것이다. 공포소설에 가까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셜록 홈즈의 유언장>) 홈즈가 93세라는 노령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며(<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심지어 홈즈와 왓슨이 게이 커플로 등장하는 팬픽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까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역시 전혀 말이 안 되는 영화가 아니다. <셜록 홈즈>는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 안작인 셈이다. 오히려 가이 리치가 이야기의 변주는 꾀하였을지언정 홈즈 캐릭터의 기본 설정에는 굉장히 충실한 편이다. 4편의 장편과 53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대부분 영화 속에 포함되어 있을뿐더러 (개인적으로 베이커가 특공대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주먹질에 능한 모습만 하더라도 실제로 홈즈는 수준급의 복싱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코난 도일의 작품 속에 묘사되고 있다. 더군다나 가이 리치는 홈즈의 액션도 사실은 추리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한다. 홈즈가 극중 권투경기를 치르면서 주먹을 날리기 전 상대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어디를 가격할지 머릿속으로 미리 계산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 다만 셜록 홈즈라고 하면 추리 능력이 더 부각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액션 영웅적 면모가 더 강조되는 까닭에 일부 홈즈 팬들의 불만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느끼는 <셜록 홈즈>의 불만은 굳이 가이 리치여야 했나는 점이다. 이왕 홈즈 소설의 변주를 꾀할 생각이었으면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나 <스내치> 버전으로 갔어도 좋을 듯 했다. 물론 극중 홈즈의 복싱 장면처럼 의도적인 시간 비틀기를 통한 가이 리치만의 장기를 드러내는 부분이 있지만 일부에 그칠 뿐이다. 특유의 베베 꼬인 스토리에 발맞춘 MTV적인 현란한 편집이 더욱 강조됐다면 더 완벽한 가이 리치만의 셜록 홈즈 안작영화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홈즈는 홈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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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0)

그 감독의 그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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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극장가는 흔히 비수기로 꼽힌다. 1년에 한두 번 연례행사로 극장을 찾는 관객 대신 좋은 작품이면 연중무휴의 자세로 극장 순례에 나서는 관객들의 시즌이란 얘기다. 하여 여름 시즌의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이벤트성 영화가 휩쓸고 간 그 자리에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연기파 배우들로 중무장한 작품들이 넘쳐난다. 여기에는 뚜렷이 감지되는 하나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감독의 존재감. 지금 소개하려는 <디스트릭트9>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 <솔로이스트>는 감독의 이름 없이 성립될 수 없는 영화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디스트릭트9>(10/15 개봉)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영화다. 8월 14일자 미국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할 때까지 이 영화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딱 하나. 피터 잭슨이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원래 피터 잭슨은 닐 블롬캠프라는 신예감독과 게임원작 영화 <헤일로>를 준비하던 중 <디스트릭트9>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제작을 결정했다. 인간이 외계인을 슬럼가에 격리시켜 착취하고, 이걸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대체역사물처럼 포장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이는 한편으론 피터 잭슨이 초짜 감독시절 꿈꿨던 영화적 야망을 재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설적인 B급영화로 회자되는 <고무인간의 최후>(1987)를 통해 잔인무도하게 외계인을 살상하는 인간을 다뤘고, ‘페이크 다큐멘터리‘ <포가튼 실버>(1996)에서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조국 뉴질랜드의 영화사를 넘어 세계영화사를 다시(?) 썼던 그에게 <디스트릭트9>은 21세기 버전의 <고무인간의 최후>요, <포가튼 실버>이었던 셈이다. <디스트릭트9>의 외계인이 생체실험에 차출되고 기업에게 기술력을 착취당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고무인간의 최후>를 닮았고 닐 블롬캠프 감독이 자신의 고향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를 배경삼아 뉴스릴처럼 구성한 화면에는 <포가튼 실버>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 닐 블롬캠프가 2005년에 만들었던 단편 <Alive in Joburg>를 장편으로 확장하며 시나리오와 연출을 도맡았지만 피터 잭슨의 이름을 지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10/22)는 <디스트릭트9>의 돌풍을 잠재우며 감독의 이름값을 톡톡히 한 경우다. 타란티노의 첫 번째 전쟁영화이자, 시대물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바스터즈>는 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 잠입한 유태계 특공대의 활약상을 담았다. 다만 전작을 통해 인용이 창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타란티노는 <바스터즈>를 전쟁영화인 동시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엔니코 모리오네의 스코어가 대거 채택이 됐는데 <바스터즈> 이전 제목으로 고려됐던 것이 <옛날 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를 패러디한 <Once Upon a Time in Nazi-Occupied France>이었을 정도다. (결국 극중 챕터 제목으로 채택됐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전쟁영화 특유의 진지한 자세라든지 숭고함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타란티노가 영화를 엄숙하게 다뤘던 적이 있었나. 영화를 놀이로 대하는 그는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와일드번치>(1969)까지, 자신이 열광한 영화의 특정 장면을 ‘모아모아’ <바스터즈>를 구성하는 한편 그 잘생긴 브래드 피트의 외모마저도 ‘주걱턱’으로 만들어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얼마나 재미있냐고? IMDB에 오른 관객 평점을 보면 자신의 영화 중 <펄프픽션>(8.9점/10점)을 빼면 가장 높은 점수(8.6점)를 받았더랬다.

<디스트릭트9> <바스터즈>와 달리 <솔로이스트>(10월 중)는 감독의 이름보다 배우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하는 제이미 폭스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그들. 사실 이들은 <솔로이스트> 출연에 회의적이었다.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노숙자와 그의 실력을 알아보고 도움을 주는 신문기자의 우정을 다룬 이 영화의 배역이 자신들이 전작에서 연기한 캐릭터와 겹친다는 이유에서였다. 제이미 폭스는 <레이>(2004)에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조디악>(2007)에서 각각 시각장애인 가수와 신문기자를 연기했던 것. 하지만 조 라이트가 감독으로 결정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제이미 폭스가 출연하겠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제이미 폭스의 출연을 조건으로 걸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승낙의사를 밝혔다.

조 라이트가 누군가. 그 힘들다는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2005)의 영화화를 데뷔작에서 성공적으로 이루고 두 번째 작품 <어톤먼트>(2007)로 그 해 아카데미에서 코엔 형제, 폴 토마스 앤더슨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감독이 아닌가. 조 라이트의 여성적 감수성이 배우들의 날카로운 연기력과 만난 <솔로이스트>는 미국 개봉과 함께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감동스토리를 쉽게 질리지 않도록 만든 조 라이트의 예민한 연출’(LA타임스), ‘2009년에 본 최고의 앙상블 연기’(롤링 스톤) 등 감독과 배우는 서로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가을바람에 물들어가는 색색의 단풍만큼이나 10월에 만나게 될 영화 역시 이렇게 다채로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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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2009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