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Repul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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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는 장편 데뷔작 <물속의 칼> 완성 이후 폴란드인의 삶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공산당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는 이유로 의회로부터 고발 조치를 당했다. 예술을 옥죄는 환경에 환멸을 느낀 로만 폴란스키는 고국을 탈출해 영국으로 향했고, <쉘부르의 우산>의 카트린 드뇌브를 캐스팅해 <혐오>를 완성했다. 연약한 감정의 틈 속에 똬리 튼 검은 사연을 탐구하길 즐겼던 폴란스키는 <혐오>를 통해 성적 폭력에 따른 강박증으로 무너진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에 주목했다.

뷰티 살롱에서 근무하는 미모의 여인 캐롤(카트린 드뇌브)은 성적으로 억압된 기억에 사로 잡혀 늘 불안에 시달린다. 직장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에게마저 혐오감을 드러내는 그녀는 언니 소유의 아파트에서 거의 칩거하다시피 생활한다. 마침 언니가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며 집에 홀로 남게 되자 캐롤은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들고 급기야 강간당하는 환각에 사로잡힌다.

선명한 플롯이 주가 되는 대다수 영화들과 달리 <혐오>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위에서 광기를 드러내는 캐롤의 심리적 지옥도를 그려낸다. 인간 감정의 깊은 우물 속을 헤엄쳐 문제작을 건져내는 폴란스키의 연출의 특징은 늘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고는 했다. 입버릇처럼 “이야기의 힘에 매혹된다”고 말하지만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연출을 보노라면 그가 추구하는 영화의 개념은 회화에 가깝다. “영화는 그림이나 조각과 같다. 영화는 바라보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혐오>가 극중 아파트와 같은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폴란스키의 영화적 성향을 반영한다. 아파트처럼 일상적인 장소를 환각의 지옥도로 그려내기 위해 그가 추구한 표현주의적 면모는 화가의 손길을 연상시킬 만큼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털이 모두 벗겨진 채 말라비틀어진 토끼 고기랄지, 귀청을 찌르는 초침 소리에 맞춰 벽이 쩍쩍 갈라지는 장면은 단순한 시각적 스타일을 넘어 보는 이의 심리를 동요케 할 정도로 충격을 선사한다. 특히 강간당하는 캐롤의 환각을 표현하기 위해 좁은 복도의 벽을 뚫고 나오는 수많은 손의 이미지는 세계영화사를 바꾼 문제적 장면, 아니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인상적인 이미지뿐 아니라 그 속에는 불안에 잠식당한 개인, 무의식적 폭력에 대항하는 인간의 싸움이라는 주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테넌트> <악마의 씨> <차이나타운> <비터문> <피아니스트> <유령작가>와 같은 걸작을 쉬지 않고 발표했지만 <혐오>가 중요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폴란스키 영화의 원형이라 할 만한 것들을 대부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악마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폴란스키의 영화를 두고 혹자는 그의 비극적인 삶을 이유로 제시하기도 한다. 실제로 로만 폴란스키에게 삶은 거대 악에 맞선 투쟁이자 싸움이었다. “친구들이 서구에서 사는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해할 때 나는 가능한 빨리 폴란드를 탈출하고 싶었다.”는 그의 심리적 압박감은 <혐오>로 보건데 그대로 영화 속에 적용해도 무방하다.

<혐오>와 함께 곧잘 ‘아파트 삼부작’으로 소개되는 <테넌트>와 <악마의 씨>는 극단적 감정의 세계를 넘어 거대 악의 탐구로 옮겨간 폴란스키의 영화적 진화의 형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악마의 씨>에서 악마의 자식을 낳은 로즈마리(미아 패로우)가 엄마의 본능으로 아이를 품는 장면은 폴란스키의 악에 대한 견해를 잘 보여준다. 일개 개인의 악마성이 ‘씨’가 되어 세상에 폭력과 악을 퍼뜨린다는 것. 이처럼 그의 필모그래프는 인간의 악마성, 그리고 거대 악에 맞선 개인의 비극적 싸움,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모두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성의 극단으로 귀결되는데 <혐오>는 그의 영화적 주제가 가장 명징하게 드러난 경우라 할 만하다. 더군다나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심리를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된 회화적 이미지는 그의 영화가 여전히 영화 팬들을 사로잡는 결정적 이유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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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2011.5.31)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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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6월 10일부터 6월 19일까지 2개의 특별전을 준비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과 시네마테크 필름라이브러리 컬렉션이 그것으로, 모두 9편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물속의 칼>(1962) <혐오>(1965) <궁지>(1966)입니다. 지금 로만 폴란스키는 존경받는 연출자와 성적으로 타락한 난봉꾼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인물로 전락한 처지입니다. 하지만 데뷔작 <물속의 칼>부터 최근작 <유령 작가>(2010)까지, 소재불문, 장르불문하고 수작을 양산해온 영화계의 거장 감독입니다. “그 어떤 것보다 나는 이야기의 힘에 매혹된다. 이야기만이 나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인다.”는 그의 영화적 철학은 초기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하였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연약한 감정의 틈 속에 똬리 튼 강박증의 사연에 관심을 집중하며 필모그래프를 쌓아왔습니다. 영화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차고 넘치던 시절의 작품 세계가 궁금하시다면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을 통해 진면목을 확인해보세요.

시네마테크 필름라이브러리 컬렉션은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보유하고 있는 필름 중 현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들로 평가받는 마테오 가로네, 고레에다 히로카즈, 필립 그랑드리외, 브루노 뒤몽의 작품들로 구성하였습니다. 우선 마테오 가로네의 작품으로는 올해 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소개한 <박제사>(2002) <첫사랑>(2005) <고모라>(2008)를 상영합니다. 가로네는 나폴리의 범죄조직 ‘카모라’의 악행을 고발한 <고모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1996년 장편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을 발표하며 20년 가까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견감독입니다. 필모그래프 초기만 해도 그는 이탈리아 민초들의 실제 삶에 주목한 세미다큐멘터리를 통해 ‘1990년대에 되살아난 네오리얼리즘’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극영화로 완전히 돌아선 <박제사> <첫사랑> <고모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작품처럼 보이지만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한 가로네의 영화인 것입니다.

이와 함께 상영하는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1995)과 필립 그랑드리외의 <솜브르>(1998), 그리고 브루노 뒤몽의 <휴머니티>(1999)입니다. 이미 10년도 더 전의 작품이지만 지금도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의 대표작임을 상기하면 중요하게 언급해야할 영화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기간 중에는 로만 폴란스키와 마테오 가로네의 영화에 대해 토론을 갖는 시네토크 시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창호 영화평론가와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가 참여해 그들의 작품 세계를 심도 깊게 살펴볼 예정입니다. 1960년대의 로만 폴란스키 작품부터 1990년대를 대표하는 3인의 시네아스트 대표작, 그리고 마테오 가로네의 2000년대 영화까지,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로만 폴란스키 초기 걸작선과 시네마테크 필름라이브러리 컬렉션을 주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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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2011.6.5)

로만 폴란스키, 영화로 써내려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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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에 열렸던 60회 베를린영화제의 화제작은 단연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 작가>(2010)이었다. 영화가 훌륭해서? 그런 배경도 있지만 폴란스키 감독이 스위스에서 수감된 상태라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던 이유가 더 크다. 1977년 미국에서 13살의 미성년자 소녀와 성관계를 맺은 혐의였다. 불구속상태에서 프랑스로 도피한 후 30년 넘게 유럽 망명 생활을 지내다 2009년 9월 취리히영화제 공로상 수상을 위해 스위스에 입국 도중 긴급 체포된 것.

감독상에 호명되었음에도 불구, 프로듀서가 대리수상하자 호사가들은 극중 섬에 갇힌 주인공 대필 작가와 폴란스키의 처지가 닮았다며 연일 입방아를 찧어댔다. 물론 유명 인사의 사생활을 소재 삼은 가십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존경받는 감독과 난봉꾼 사이에서 폴란스키가 보여준 인간성의 극단은 그가 탐구해온 영화적 세계와 닮았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극단적인 감정에 주목하다

데뷔작 <물속의 칼>(1962)부터 <유령 작가>까지, 로만 폴란스키는 소재불문, 장르불문하고 수작을 양산해왔다. “그 어떤 것보다 나는 이야기의 힘에 매혹된다. 이야기만이 나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인다.”는 그의 말처럼 폴란스키의 영화는 특정한 분류로 귀속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연약한 감정의 틈 속에 똬리 튼 강박증의 사연에 관심을 집중하며 필모그래프를 쌓아왔다.

폴란드인의 부정적인 삶을 소재 삼았다는 이유로 의회로부터 고발 조치 당했던 <물속의 칼>에서는 중년의 남편과 아내 사이에 끼어든 젊은 남자를 통해 부부 관계의 허약함을 드러냈고, 고국 폴란드를 탈출해 영국에서 찍은 <혐오>(1965)에서는 반복된 삶과 외로움으로 무너진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에 주목했다. 할리우드로 옮겨 작업한 <악마의 씨>(1968)에서도 폴란스키는 우리 이웃과 가족에까지 침투한 광신을 통해 당대 미국인의 불안 심리를 우회적으로 묘사했다.

인간 감정의 깊은 우물 속을 헤엄쳐 문제작을 건져내는 연출의 특징은 그의 작품에 대한 수사학적 비유가 아니다. 폴란스키는 그 속을 헤아리기 힘든 물의 이미지를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상징으로 즐겨 사용했다. 이미 제목에서 언급되듯 <물속의 칼>은 겉으론 별 문제없는 부부 사이에 내재한 불안을 암시하고, <차이나타운>(1974)은 물 부족을 겪는 LA의 추악한 수로 산업을 통해 허황된 욕망을 폭로하며, 망망대해의 유람선이 배경인 <비터문>(1992)은 탈출구 없는 부부의 비뚤어진 성적 욕망을 통해 비극적 말로를 보여준다.

안 그래도 그가 추구하는 영화의 개념은 회화에 가깝다. “영화는 그림이나 조각과 같다. 영화는 바라보는 것이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곧잘 ‘아파트 삼부작’으로 소개되는 <혐오><악마의 씨><테넌트>(1976)가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그런 폴란스키의 영화적 성향을 반영한다. 아파트처럼 일상적인 공간을 환각의 지옥도로 그려내기 위해 그가 추구한 표현주의적 면모, 예컨대 복도를 뚫고 나오는 수많은 손(<혐오>)이나 창문 밖으로 유령처럼 스윽 훑고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테넌트>) 등은 화가의 손길을 연상시킬 만큼 당시로선 획기적인 것이었다.

<박쥐성의 무도회>(1967)는 폴란스키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이질적이지만 파격이란 측면에서 그의 관심사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 경우다. 저예산 B급 영화의 정취를 고스란히 장식한 <박쥐성의 무도회>는 기존 흡혈귀 영화에 사드-마조히즘, 관음증, 동성애를 끌어들여 상식과 도덕을 의도적으로 교란한다. 전작까지 회화적인 면모를 거쳐 드러나던 극단적 감정의 실체가 이 시기에 이르러 더욱 대담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후에 나올 <맥베드>(1971)의 피에 굶주린 맥베스나 <차이나타운>의 근친상간 등 파격의 소재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개인을 넘어 거대 악을 쫓다

인간의 악마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폴란스키의 영화를 두고 혹자는 그의 비극적인 삶을 이유로 제시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삶은 충격적인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었다. 8살 때 독일의 유대인 집단수용소에 억류되어 어머니를 잃었다. 1969년에는 <박쥐성의 무도회>에서 만나 결혼에 골인한 배우 출신의 아내 샤론 테이트가 임신한 상태로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이후 찍은 <맥베드>가 셰익스피어의 피의 버전이 된 연유에는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개연성 없는 분석은 아니지만 로만 폴란스키에게 삶은 거대 악에 맞선 투쟁이자 싸움이었다. “친구들이 서구에서 사는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해할 때 나는 가능한 빨리 폴란드를 탈출하고 싶었다.”는 그가 극단적 감정의 세계를 넘어 거대 악의 탐구로 관심을 서서히 옮겨간 것은 자연스럽다. <악마의 씨>에서 악마의 자식을 낳은 로즈마리(미아 패로우)가 엄마의 본능으로 아이를 품는 장면은 폴란스키의 악에 대한 견해를 잘 보여준다. 일개 개인의 악마성이 ‘씨’가 되어 세상에 폭력과 악을 퍼뜨린다는 것.

그런 점에서 <차이나타운>과 <피아니스트>(2002), <유령 작가>는 ‘거대 악 삼부작’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성 싶다. 무려 36년의 세월 동안 이뤄진 작품들이라 미묘한 태도의 변화가 감지되는데 <차이나타운>이 거대 악 앞에서 허무하게 무릎 끓는 개인을 보여준다면 <피아니스트>는 세계2차 대전의 죽음을 뛰어넘은 피아니스트의 삶을 응시한다. 그리고 <유령 작가>는 폴란스키의 개인적인 경험을 투영한 <피아니스트>와 달리 순수하게 현존하는 사회악의 실체에 접근해 들어간다.

<유령 작가>는 영국 전 총리 애덤 랭(피어스 브로스넌)의 대필 작가(이완 맥그리거)가 전임 대필 작가의 의문의 죽음을 쫓는 과정을 그린다. 극중 애덤 랭은 고문당할 것을 알면서도 테러 혐의자를 미국 CIA에 넘긴 혐의로 국제인권재판소에 고소당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폴란스키가 주목하는 현시대의 악의 존재는 어렵지 않게 추측가능하다. 그보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여전히 세상에 대해 비관적인 폴란스키의 시선이다. <피아니스트>에서 인간의 삶을 긍정하던 그의 견해는 <유령 작가>에 이르러 다시 부정으로 원상 복귀(?)했다. 이를 가지고 스위스에 갇힌 폴란스키의 심정을 읽어내는 건 얄팍한 처사다. 그의 삶은 늘 세상의 날카로운 날 위에서 줄타기를 했고 베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영화를 놓지 않았다. 비록 그 상처는 아물 것 같지 않지만 삶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적 탐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Tip!  배우 로만 폴란스키를 아시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로만 폴란스키는 연출에 앞서 19살 때인 1954년 안제이 바이다의 <제너레이션>을 통해 공식적인 연기 데뷔를 갖았다. 폴란드영화학교 재학 시절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연기를 병행했다. 행위를 통해 표현한다는 점에서 연기에 재미를 느낀 폴란스키는 서방 세계로 넘어간 이후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펼쳤다. 자신의 연출작인 <박쥐성의 무도회>와 <테넌트>에서는 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쳤고 특히 악당으로 출연해 주인공 잭 니콜슨의 코를 베는 <차이나타운>에서의 연기는 아직까지 회자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30편이 넘는 작품에서 주연과 카메오를 넘나들며 화려한 연기 경력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영화에 출연했던 4명의 배우, 루스 고든(<악마의 씨>)과 잭 니콜슨, 페이 더너웨이(이상 <차이나타운>), 그리고 애드리언 브로디(<피아니스트>)를 오스카 연기상 후보에 올렸고 그중 고든(여우조연)과 브로디(남우주연)는 수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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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2010년 6월호

거장감독과 배우 사이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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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위 거장이라 부르는 감독들의 연출력을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다. 그저 몇 가지 특징을 두고 가늠해볼 수 있을 뿐인데 그럴 때 배우들과의 호흡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마틴 스콜세지가 불안정한 초상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분열된 정신을 탐구하듯(<셔터 아일랜드>), 팀 버튼이 안개 자욱한 조니 뎁의 얼굴 위로 무지개를 쏘아 올리듯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배우들과의 남다른 인연을 과시하는 거장들의 신작 소식이 있어 화제다.

사실 이 같은 주제를 생각하게 된 건 순전히 피나 바우쉬가 속했던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내한 공연 소식과 때마침 들려온 빔 벤더스의 신작 <피나>(Pina) 소식을 접하고서다. 피나 바우쉬는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무용수로 지난여름 암으로 사망해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특히 빔 벤더스는 생전의 피나 바우쉬와 공동으로 그녀의 공연을 스크린에 담기로 했던 터라 충격은 더했다. 대신 빔 벤더스는 영화를 통해 그녀를 되살리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피나>는 3D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영화다. 피나 바우쉬는 가고 없지만 <카페 뮐러> <봄의 제전> 등 대표작을 통해 스크린에서나마 실재하는 그녀의 춤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장 뤽 고다르의 신작 <소셜리즘>(Socialisme)에서 만날 수 있는 배우(?)는 패티 스미스다. 펑크록의 대모로 유명한 패티 스미스가 전면에 나서 연기를 펼치는 것은 처음이다. 고다르가 워낙 비밀리에 영화를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해 알려진 정보는 많지 않지만 그녀는 전직 프랑스 경찰로 출연한다고 한다. 고다르의 말을 빌자면, <소셜리즘>은 ‘세계 속의 흐름’에 관한 영화다. 고다르의 특성상 정치적인 경향을 띌 이 영화에서 패티 스미스는 록의 전설로써, 페미니즘 전파자로써 자기반영적인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두기봉의 <복수>(復仇)는 홍콩영화지만 주인공은 음반을 8천만장이나 팔아치우고 100회의 투어기록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의 록큰롤 스타이자 국민가수인 조니 할리데이가 맡았다. 살해당한 딸의 복수를 위해 홍콩을 찾은 프랑스인 아버지 역할을 맡은 것. 극중 이름 코스텔로는 알랭 들롱이 출연했던 걸작 범죄영화 <사무라이>(1967)의 주인공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두기봉 감독은 코스텔로 역에 알랭 들롱을 캐스팅하려했다. 하지만 알랭 들롱은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거절했고 결국 조니 할리데이가 출연하게 됐다.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 작가>(The Ghost Writer)는 영국 총리와 그의 대필 작가 간에 벌어진 살인을 다룬다. 특히 과거 미국에서의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구속된 이후 스위스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감독의 처지가 묘하게 겹친다. 극중 섬에 갇힌 대필 작가의 신세가 폴란스키의 지금을 연상시키는 것. 실제로 로만 폴란스키는 <유령 작가>의 포스트 프로덕션 도중 체포되어 한동안 감금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영화사는 출연 배우들에게 로만 폴란스키의 체포와 관련한 발언을 자제할 것을 권유했는데 피어스 브로스넌은 “필름도 깡통 속에 담겼고 감독도 깡통 속에 감금됐다.”고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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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2010년 4월호

<차이나타운>(Chinatown)




고전영화 많이들 보셨습니까? <반지의 제왕>, <디 아더스> 보느라 시간이 없었다고요, 쯧쯧 딱하기는. 그거 아십니까, 피터 잭순이 <반지의 제왕>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1933년에 발표된 <킹콩 King Kong>과 1963년에 만들어진 판타지 <제이슨 앤 아거노츠 Jason and the Argonauts>가 있었기 때문이고, 피 한 방울 보여주지 않고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는 <디 아더스> 역시 고전공포영화의 법칙을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

각설하고, 본 우원 벌써 두 번째 기사임다. 독자제위들의 벌떼와 같은 공격적 응원메일이 아니었다면 다시 만나기 힘들었더랬습니다. 이렇게까지 친근감을 표시해주니 본인 그저 가슴이 벅찰 뿐임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안면도 익히고 그랬으니, 말 트는게 어때, 우리 딴지가 맺어준 친구 아이가?  

지난 시간 <말타의 매>라는 훌륭한 골동품 한 점 소개해 줬으니 이번에는 이름난 마을 한 곳 알려주고 싶은데, 뭐 어디냐구, 서두르긴. 자! 이번에 안내해 줄 마을은 <차이나타운> 되겠다.

요 마을 이름에서 풍기는 대로 쪼매 위험한 곳이니 본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잘들 따라온나. 한 눈 팔고 딴 데로 샜다간 바가지쓰니깐.

1.

1941년 존 휴스턴에 의해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가 선을 보인 이후, 필름 느와르의 외피를 둘러싼 하드보일드는 숫총각이 불꺼진 여관방에서 홀인원을 하지 못해 골프채를 헛 휘두르는 상황을 방불케 하는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전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 그리고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 듯한 어두운 흑백 화면으로 인해 하나의 유행이 되기에 충분하였더랬다.

게다가 하드 보일드가 영화사적으로 얼매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는 이 장르의 부분적인 특징들이 현재까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증명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 꽃 같은 몽타를 보유한 쭉빵한 걸이 한 명 있다. 그 걸은 자신의 외적자산을 백분 활용, 상대남성의 단물만을 쪼∼옥 빼먹고 파멸의 길로 유도한다. 그렇다면 이는 하드보일드가  배출한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다. 그뿐인가 흑(黑)과 암(暗)이 불안한 기운을 조성하는 어두운 화면이 등장하는 날에는 하드 보일드를 논하지 않고는 정확한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작금의 사태가 이럴진대 <말타의 매>가 등장했던 당시 하드 보일드를 향한 관객제위들의 맹목적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때 만들어지던 영화의 경향을 지금의 문구를 빌어 표현하자면, ‘하드 보일드인 것과 하드 보일드가 아닌 것’으로 구분 지어 설명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하드 보일드는 1940년대 헐리웃시장을 지배하는 주도적인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한창 잘 나가던 하드 보일드 영화들은 1950년대 초반을 전성기의 마지막 정점으로 그 세를 조금씩 잃어가게 된다. 유행이라는 시대적 조류를 등에 업고 끊임없이 양산되던 하드 보일드 영화에 관객들이 식상함을 느낀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하드보일드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긴 생명력을 갖기에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개상황을 예측하기 힘든 미로와 같은 글을 계속해서 창조해 낸다는 것이 딴지라면 모를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결국 정통 하드보일드 영화는 스크린에서 종적을 감추게 되었고, 그나마 TV를 통해 탐정장르라는 이름의 옷으로 갈아입고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긴 동면의 시간을 갖던 하드보일드는 1960년대 중반에 들어, 모 영화학자의 표현을 빌자면 “흥미롭지만 대중적 반향은 없었던 얼마간의 무용담 영화”로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3년 로버트 알트만(Robert Altman)은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표작가 레이몬드 챈들러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The Long Goodbye>로 실로 오랜만에 영화귀족들인 평론가와 변덕이 들 끊는 관객의 호응을 동시에 이끌어내며 가볍게 잽을 날리기 시작했고, 1974년 드디어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의 <차이나타운 Chinatown>에 의해 하드 보일드는 신 느와르(neo-noir, 국내 비평가들은 수정주의라고 함)라는 재건의 이름을 달고 원투 펀치를 작렬함으로써 올만에 영화계 사각의 링에 승리의 두 팔을 번쩍 올리게 된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쓰”

2.

당 영화 <차이나타운>의 두드러진 특징은 감독의 업적보다 시나리오 작가인 로버트 타우니(Robert Towne)의 공적에 더 큰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드보일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시나리오라는 평가와 함께 <차이나타운>은 로버트 타우니의 영화라고 주장하는 극성파도 있었으며, 그를 하드보일드 소설의 창시자인 대쉴 해미트와 레이먼드 챈들러와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성미 급한 아덜도 생길 정도였다.

본 우원 일정부분에 대해서는 수긍의 고갯짓을 약간 ‘도리도리’ 해 보일 수 있지만 시나리오의 획기적인 완성도만을 앞세워 <차이나타운>을 타우니의 것이라고 한 주장에는 뒷골이 땡겨 심히 불만이 밀려오는도다. 대통령이 나라의 왕이라꼬 대한민국이 김데충이꺼 아니자너.  

시나리오 작가의 크레딧에는 분명 로버트 타우니의 이름만이 새겨져 있다. 바뜨 그러나 실은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와의 투톱 시스템 하에서 이루어진 산물이 바로 <차이나타운>의 뛰어난 각본이었던 것이다. LA의 화려함과 대조되는 불쾌한 이미지의 차이나타운을 끌어들여 상반된 분위기를 설정한 것은 로만 폴란스키였으며, 상실감으로 끈적거리는 비극적 결말을 유도한 것 역시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플레이메이커 로만 폴란스키의 쓰루 패스를 받은 타우니가 골키퍼까지 제치고 네트를 흔들었다고 해야할까.

당 영화 <차이나타운>은 하드보일드에서 제시된 주요 특징들을 모두 배치해 놓음으로써 고전 하드 보일드 영화들에 존경(오마쥬)을 바치고 있다. 주인공이 사립 탐정인 점, 별 일 아닌 것 같던 의뢰가 핵심에 다가설수록 더 큰 음모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음모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매력적인 뇨(女).

하지만 이전 하드보일드 영화들은 허황한 욕망을 좇는 인간의 추악한 악을 표현하는데 있어 여러 인물이 연루되는 복잡한 상황임에도 불구, 일방적으로 전개하여 독자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와 달리 <차이나타운>은 동일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건해결의 열쇠가 되는 단서를 여기저기 살포시 흩뿌려 놓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가령, 자살인지 타살인지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없는 시체의 없어진 오른쪽 구두와 물 공격에서 간신히 살아 나온 주인공의 없어진 오른쪽 구두를 통해 눈썰미가 있는 관객이라면, 앞선 그 시체가 살해당한 것임을 단박에 눈치 깔 수 있다. 또한 차이나타운에서 지방검사로 지낸 기티스(잭 니콜슨)의 전력은, 본인처럼 총명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결말을 어렴풋이 추론해 볼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는 아주 촘촘히 엮어져 있어 집중하여 보지 않을 경우 많은 단서들을 놓치게 될뿐더러 작가와 벌이는 1:1 두뇌게임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인터렉티브 영화의 원조를 <차이나타운>에 두는 업계의 추측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무엇보다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이유는 LA를 배경도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아는가 모르겠지만, 텍사스처럼 LA 역시 모래 반, 자갈 반에 황량한 바람만이 지랄맞게 극성을 부리는 훵한 황무지였드랬다. 그런데 이 불모지에 불과한 LA가 개척자의 침입에 따른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급속히 거대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범죄와 음모에 노출되었드랬다. 바로 그 타락하는 모습을 물 부족과 연관지음으로써 생기가 말라 가는 도시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대해 로버트 타우니는 단순히 물과 얽힌 이야기를 하고 싶어 별 의도 없이 이런 소재를 택하였다는 겸손한 필을 가장한 다소 김 빠지는 의견을 밝혔음에도 불구(그렇지만 실은 자신의 식견을 뽐내는…. 그래 너 잘났다 쓰바야), 시나리오 작가로써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특출 난 장점들로 인해 <차이나타운>의 각본은 영화학과의 시나리오 강의 시 교재로 채택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시나리오 소개서와 작법서에도 누락되는 일이 없을 정도다.  시나리오 하나로 영화판권뿐 아니라 출판계에서 로열티까지 받아먹는 일타이피의 득도의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각본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 한가지를 소개하자면, 로버트 타우니는 암울하게 끝맺음되는 결말부에 대해서 노골적인 실망감을 표시했드랬다. 왜냐, 자신은 관객을 계몽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임으로 당연히 해피엔딩의 결말을 취함으로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의 똥꼬집으로 인해 악이 승리(?)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는 것이다.

타우니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말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부> 이후 선의 가치가 전복된 결말이 하나의 경향이 되어 <차이나타운>이 그 유행을 따랐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또 한편에서는 당 영화가 만들어지기 5년 전,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Charles Manson)에 의해 부인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은 로만 폴란스키의 개인적 이력을 끌어들여 감독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을 내어놓기도 하였다.

그래서일까, 맨슨에 대한 분풀이를 할 요량이었는지 로만 폴란스키는 악당 역으로 출연 기티스의 코를 베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3.

이 영화의 특징이 단지 시나리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진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주는 진한 갈색톤의 음울한 영상을 만들어낸 촬영감독 존 A. 알론조의 카메라도, LA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방이 막힌 것 같은 폐쇄감을 창조한 리처드 실버트(production designer), 스튜어트 캠벨(art director), 루비 레빗(set designer)의 공로도 <차이나타운>을 논하는데 있어 빼 먹어서는 안될 요소이다.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

거의 매 장면마다 등장하는 잭 니콜슨은 기티스가 뿜어내는 냉정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우스꽝스러움을 예의 그 속알머리없는 마빡 카리스마와 빛나는 반창고로 감싼 코에 담아 열연함으로서 험프리 보가트가 창조한 느와르 탐정 역의 전형을 최초로 넘어선 배우라는 찬사를 받았다.

에버린 멀웨이 역의 페이 더나웨이(Faye Dunaway)역시 부자집 자재의 품위를 잃지 않으며(이영애의 그것과는 다른) 요부의 도발미까지 풍기는 균형잡힌 연기로 느와르의 팜므 파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반전효과와도 맞먹는 부도덕한 관계로 희대의 아버지 상을 보여준 노아 크로스는 <말타의 매>의 감독인 존 휴스턴이 맡았다. 이를 두고 의미부여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평론가 선상들께서는 그가 등장하였다는 점에 착안 <차이나타운>을 소개하기를 ‘고전 필름 느와르의 마감’이라는 마빡기사로 신 느와르의 출현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기가 막힌 작문솜씨를 뽐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각본과 뛰어난 연출력, 인상적인 영상, 배우들의 열연을 고루 갖추고 있는 <차이나타운>은 그 다음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음에도 고작 로버트 타우니만이 각본상을 수상하는 초라한 결과를 낳았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꼴려오네 패밀리들이 그들보다 강했던 탓이다.  

그래도 <차이나타운>이 주도한 신 느와르의 흐름은 그 후 변주영화들의 득세를 불러왔다. 그 중에서도 탐정이라는 소재는 짜바리로 대체되어 짭새 장르의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요부 역시 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되어 많은 남성캐릭터들의 오줌보를 지리게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정통 하드 보일드의 플롯을 갖춘 영화를 찾아보기는 매우 힘들어서 그것을 만나기까지 하드 보일드 팬들은 23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 영화가 뭔지 궁금하신가, 그럼 몇 주만 기둘려 보시라. 더 이상의 영진공 업무중단은 없을 터이니 곧 그 실체가 밝혀질 것이다. 그 때까지 고전영화 많이들 찾아 좀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