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카페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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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도착해서 본 가장 신기했던 광경은 바로 카페였다. 방글라데시의 인구밀도를 재현한 듯 답답할 정도로 따닥따닥 늘어서있는 원형의 테이블들. 그런 발 디딜 틈 없는 좁은 간격에도 아랑곳없이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파리지앵들. 듣자하니, 프랑스에는 6만여 개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그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1만 여개의 카페가 파리에서 성업 중이란다. 파리의 면적이 대략 100평방km니, 1평방km당 100여개의 카페가 있는 셈이다.

왜 이렇게 카페가 많은 것일까? 파리지앵에게 카페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왜 특별한 걸까? 파리의 카페가 특별하기 때문이란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카페는 그저 음료 한잔 시켜 놓고 수다를 떠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파리의 카페는 특별해진 것일까? 나도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잔 시켜 마셔봐야겠다.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라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제르맹 데 프레(Saint Germain des Pres) 거리는 문학인의 공간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에 밀집한 카페들을 수시로 드나들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레 되 마고는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온 선두주자라 할만하다.

레 되 마고는 지금으로부터 124년 전인 1885년에 문을 열었다. 원래 중국산 비단을 판매하는 가게였는데 그래서 레 되 마고는 ‘2개의 중국인형’을 뜻한다. 입구 주변에 진을 치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 무리들을 뚫고 카페에 들어서니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벽 위에 조각상 하나가 떡하니 걸려 있다. 실존주의로 유명한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이곳에서 대표작 <구토>를 저술했다고 한다.

“아니 사르트르는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었단 말입니까?”라고 나는 갸르송(Garcon, 프랑스에서 웨이터를 지칭하는 말)에게 묻고 싶었지만 불어 실력이 형편없어 동행한 친구에게 대신 부탁했다. 갸르송 왈, 글 쓰는 틈틈이 여자 친구와 사랑을 나누었단다. 음, 사랑의 힘을 빌려 글을 썼군.

문인은 아니었지만 피카소도 이곳에서 사랑을 나누었다고 전해진다. 피카소가 처음 도라 마르를 보았을 때 옆 테이블에서 한쪽 손을 테이블 위에 펴고 주머니칼로 손가락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장난을 치고 있더란다. 그러다가 손을 베어 피를 흘렸는데 이 광경에 넋을 잃은 피카소가 대뜸 작업을 걸었고 그래서 이들은 레 되 마고에서 피처럼 강렬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음, 유명인의 사랑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그리고 피카소가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시를 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글을 쓰는 이들이 모두 그런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닐 게다. 계속해서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일개 카페에서 글을 쓰게 한 걸까? 나는 “공짜 커피가 아닐까?”라고 동행한 친구에게 진지하게 말했다가 물 컵의 물을 뒤집어 쓸 뻔했다.

레 되 마고는 파리에서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인 동시에 ‘레 되 마고 문학상’으로 또한 유명하다. 1933년에 제정된 이 상은 첫 해 100프랑의 상금을 내걸고 신진작가를 발굴한 이래 지금까지 70년이 넘도록 문학상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는 상금 액수가 무려 8,000유로라고 하는데 물론 중요한 건 액수가 아니다. 일개 카페에서 주관한 문학상이 신진작가의 등용문이 되고 프랑스 문단에서 주목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으며 프랑스 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작가를 꿈꾸는 이가 레 되 마고를 찾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카푸치노를 한 점의 거품도 없이 모두 핥아 마신 후 레 되 마고를 떠나려는 찰나 갸르송이 내게 물었다. “당신도 글을 쓰신다고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유창한 불어로 답해주고 싶었지만 미소 한 번 지어주고 서둘러 레 되 마고를 떠났다. 대신 마음속으로 이렇게 답해줬다. ‘정말 너무합니다. 카푸치노 한잔이 8유로라니요. 너무 비쌉니다. 저는 글쓰기를 포기하렵니다.’ 과연, 파리의 카페는 특별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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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