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의 초현실적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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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영화 관람을 방해할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인셉션>을 보고 나오면서 ‘크리스토퍼 놀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피터 트래비스, 로저 이버트 등 해외 유명 평자들의 평가처럼 절대적인 걸작이라거나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라고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극중 생각의 조작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대사를 남발하고 무리하게 장면을 늘이는 등의 무리수가 종종 눈에 띈다.) 다만 기존의 재료를 가지고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무엇’으로 뒤바꿔놓는 그의 연출력에는 특별한 것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인셉션>은 타인의 꿈속에 잠입해 생각을 심거나 혹은 훔쳐오는 이들의 활약을 담았다. 데뷔작 <미행>(1998) 이후 놀란 최초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인셉션>의 이야기는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새롭지 않다. 꿈의 세계에 접속해 생각을 읽는다거나 조작한다는 내용은 이미 타셈 싱의 <더 셀>(2000),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2004) 등이나 소설 쪽에서는 로저 젤라즈니와 윌리엄 깁슨이 각각 <드림 마스터>와 <뉴로맨서>에서 다뤘던 것이다. 팀원 각자의 장기를 살린 치밀한 계획을 통해 임무를 완수한다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2001) 시리즈와 닮았다. 심지어 <인셉션>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제3자를 끌어들인 후 상황을 ‘조작해’ 뒤집어씌우는 <미행>의 이야기를 꿈의 구조로 번안한 것에 가깝다. (두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코브인 것과 그들의 극중 역할이 도둑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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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형식 속에 쌓아올려 새롭게 만들기를 즐겼다. 시간과 공간을 교란한 편집으로 비선형적 서술을 선보였던 <미행>,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처지를 관객에게 이입시키기 위해 7개의 에피소드를 10분씩 시간 역순으로 진행한 <메멘토>(2000), 허구의 코믹스에 사실주의를 접목한 <배트맨 비긴즈>(2005)와 <다크 나이트>(2008)까지, 놀란의 연출은 설계자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았다. <인셉션>도 내용이 아니라 형식과 구조로 승부를 보는 영화다. 꿈속을 탐구하는 영화답게, 그것도 꿈속의 꿈, 더 나아가 꿈속의 꿈속의 꿈으로 확장하며 아예 다중의 꿈을 통해 영화적인 미로를 설계해버린다.

극중 미로의 구조는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꿈을 통해 드러나는 강박관념, 불안감, 무의식 등 심리적인 상태로 구획 지어진다. 자칫 관객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인셉션>은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한 영화다. ‘꿈의 미로’라고 했을 때 우리는 흔히 장자, 프로이트, 니체 등을 이정표삼아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꿈의 시각화를 감안했을 때 <인셉션>은 개념정리와 해설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극중에서 충분히 설명되기도 한다.) 놀란이 참조했음이 명확해 보이는 두 명의 화가 M.C. 에셔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 익숙한 구도가 <인셉션>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힌트다. 이는 이 영화의 지향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입구와 출구가 동일한 미로

놀란 감독이 <인셉션>으로 설계한 미로는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출구가 동일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태다. 코브가 경찰에 쫓기는 수배자 신분인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그로인해 집을 떠나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만날 수 없는 코브는 기업 총수 사이토(와타나베 켄)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합병을 위해 라이벌 기업의 후계자 피셔(킬리언 머피)의 생각을 개조해달라는 것. ‘생각 추출자’ 코브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수배 혐의를 풀어줄 것을 조건으로 건다. 다시 말해, <인셉션>은 집 떠난 코브가 누명이라는 ‘이상한 고리’를 풀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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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누명을 소재로 한 영화는 오인 받은 주인공의 꼬인 사연을 풀기 위해 알리바이, 증거, 과학적인 수사 등과 같은 이성적인 개념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인셉션>은 이성의 영역을 무너뜨려 꿈이라는 가상 세계 속으로 침투한다. 물론 현실의 시간이 꿈속에서는 12분의 1의 단위로 흘러간다는 등의 꿈과 관련한 나름의 과학적인 현상을 접목하기도 한다. 다만 어쨌든 인간의 심리는 과학이나 이성으로 그리 쉽게 증명되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런 탓에 수학적인 연출로 정평이나 난 크리스토퍼 놀란이 꿈의 ‘설계’를 통해 코브의 심리를 드러낸다는 설정은 확실히 이율배반적으로 비친다. 

이런 이율배반의 미학이 가능한 세계는 예술이 유일하다. 특히 에셔는 공간의 구획을 무화함으로써 현실과 가상의 벽을 무너뜨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수학적인 계산에 따라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균등하게 구획이 분할되고, 경계가 존재하지 않아 여러 세계가 공존하며, 그럼으로써 그림 속 세계는 무한대로 확장한다. 이는 놀란이 <인셉션>에서 보여주는 꿈의 개념과 조응한다. 극중 꿈과 현실의 경계는 희미하고, 현실에서 꿈으로, 꿈에서 꿈으로, 다시 꿈의 꿈에서 꿈으로 무한히 증식하며, 그럼으로써 늘어나는 세계를 신(scene)별로 교차(혹은 분할)하는 연출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실제로 <인셉션>에는 에셔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장면들이 종종 튀어나온다. 일례로, 에셔가 즐겨 그렸던 거울에 비춘 상은 설계자로 영입된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가 처음으로 꿈의 세계를 경험할 때 활용된다. 거대한 거울로 현실과 가상의 테두리를 지워 세계를 확장하는 장면에서 제시되는 것. 코브의 오랜 친구 아서(조셉 고든 레빗)가 (역시 꿈속에서!) 그들의 임무를 방해하는 추격자를 따돌리기 위해 계단의 구조를 조작, 끊어지지 않는 선처럼 만드는 것이 또한 그렇다. 이처럼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이상한 고리는 화가 에셔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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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은 앞서 언급했듯이 뫼비우스의 띠를 이야기의 구조로 삼는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직선을 이루지 않고 원을 그려 서술의 궤도가 돌고 돈다. 현실이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고, 출발점이 귀환점이 되고, 다시 귀환점이 출발점이 되는 등의 상반되는 두 가지 가능성의 공존 혹은 순환. 하여 <인셉션>의 결말은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무한대의 길이 열리는데 이 영화를 보고 느끼게 되는 모호함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래서 <인셉션>을 지배하는 영화적 정서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초현실주의’가 될 텐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역시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인용된다.

초현실적인 꿈의 세계

꿈의 세계는 현실을 초월한다. 이성과 상식을 넘어선 세계다. 초현실적인 세계의 묘사에 관한한 할리우드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들이 가상의 천지창조를 밥 먹듯이 이뤄내는 배경에는 CG의 힘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하여 티가 난다. 허황한 맛이 없지 않다. 놀란은 좀 다르다. 그는 CG보다 여전히 특수효과를 신봉하는 고전주의적 연출가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묘사한 꿈속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한 눈에 보면 현실인데 현실에서 통용되는 물리력이 갑자기 무너지는 순간, 그제야 꿈이라는 실체가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인셉션>의 꿈의 세계는 개별적이지 않고 현실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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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360°도 회전하는 호텔 복도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단적인 예다. 아서의 꿈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인데 복도가 회전을 하는 이유는 잠을 자는 현실의 피셔의 육체에 충격이 가해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촬영은 세트로 지은 복도를 전기모터를 이용해 회전시켰다고 한다.) 이처럼 꿈과 현실의 연관성을 이용해 놀란이 창조한 꿈의 풍경은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파리 시내가 반으로 접혀 하늘을 가리고 도시에서나 볼법한 첨단의 건물들이 파도치는 해변에 즐비하며 ‘킥’(kick)이라 하여 현실에서 잠든 신체에 추락을 가하거나 특정음악을 들려주면 꿈속은 무중력 상태로 돌변해 잠을 깨게 된다. 

이질적인 요소의 하나 됨, 즉 인식의 경계를 허물어 기이함을 부여하는 기법을 들어 미술계에서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라고 부른다. 르네 마그리트는 데페이즈망의 대가다. 에셔 그림의 주제가 <인셉션>의 구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면 마그리트의 그림은 극중 꿈속 장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활용된다. 영화의 첫 장면, 파도치는 해변 위에 쓰러져있는 코브의 이미지는 <집학적 발명>이, 이동하는 차속에서 복면을 쓰고 잠이 든 인물들은 <연인들>이, LA 시가지 도로 한가운데 별안간 출몰하는 기차 장면은 <피레네 산맥의 성체>가, 그리고 코브의 ‘림보’(원초적인 무의식의 세계) 속 허물어진 빌딩 사이에서 홀로 제 모습인 집은 <빛의 제국>이 연상되는 것이다.

이 장면들의 공통된 특징은 ‘낯섦’이다. 낯선 광경은 이목을 끌기 마련이다. 놀란은 굳이 알록달록한 이미지를 동원하지 않고도 일상을 낯설게 함으로써 꿈의 효과와 더불어 그 정체에 대해 보는 이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마그리트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그 자신의 예술적 장기다. 이를 위해 마그리트가 동원한 방법을 들어 위에 언급한 <인셉션>의 장면들이 의도한 바를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해변 위에 쓰러진 코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복면을 쓴 이들은 혹시 죽은 것이 아닐까? 도로 위에 나타난 기차는 코브 이하 팀원들 앞으로 닥칠 파괴의 전조인가? 폐해 속 집은 불안정한 코브의 심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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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와 에셔 모두 초현실주의를 지향하지만 마그리트는 철학적이고, 에셔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점에서 주제를 다루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그중 크리스토퍼 놀란이 마그리트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뽑아낸 장면의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불길하거나 암울한 기운을 뽐낸다. 그것은 현실의 물리력이 파괴됨으로 인해서 꿈이라는 공간을 상기시키기 때문일 터. 극중 꿈을 침투 당하는 당사자 코브(아리아네드는 코브가 가진 불안한 심리의 정체를 풀기 위해 코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의 꿈에 수시로 잠입한다.)와 피셔의 현실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이들의 꿈의 내용은 더욱더 초현실적으로 변모한다.

현실이 더 초라해지고 끔찍해질수록 그에 맞춰 꿈도 합을 맞추니, 꿈속에 현실이 ‘실재’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게다. 그렇다면 현실은 현실의 세계뿐 아니라 꿈에도 속하는, 일종의 ‘증강현실’이 된다. 이렇게 꿈과 현실이,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무한으로 확장해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진짜 세계다. <인셉션>은 꿈의 침투라는 오래된 설정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은유한다. 그러니까 놀란 감독은 <인셉션>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발을 딛고 있는 세계는 꿈인가? 현실인가? 실제인가? 가상인가? <인셉션>은 여기에 대해 답하지 않는다. 답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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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10.8.1)

<인셉션>(In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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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쇼(이하 ‘야후’)
 <메멘토>, <다크나이트> 등을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번에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선보였습니다. 어떤 내용을 담은 영화인지 소개 부탁 드릴께요.
허남웅(이하 ‘허’) ‘인셉션’은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주입하는 작전을 말하는데요.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쳐오는 조직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극중 주인공 코브를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바로 이 조직의 리더 격인 인물인데요, 한 기업 총수로부터 라이벌 기업 후계자의 정보를 빼내오라는 제안을 받고 팀 동료들과 함께 후계자의 꿈속에 침투합니다.

야후 한 마디로 정리를 하자면 ‘꿈을 해킹한다’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보면 단순하면서도 쉽지 않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전 영화인 <메멘토>도 쉬운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어떠한 방법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나요?
사실 관객들에게 어렵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인데요, 그렇다고 이 소재가 딱히 새롭지도 않은 게 말씀하신 것처럼 ‘꿈을 해킹한다’는 설정은 다른 작품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거든요. 단적인 예로, 타셈 싱 감독의 <더 셀>은 연쇄살인마의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 납치당한 여자의 소재를 찾기 위해 단서를 구하고요, 그 외에도 <매트릭스>나 <아바타>나 <이터널 선샤인>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등이 있겠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은근히 익숙한 소재가 이 ‘꿈’과 관련한 영화이고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강탈영화처럼 구성이 되어있어요. 마치 은행에서 돈을 훔치듯이 꿈속에서 생각을 훔치는 영화인데 팀원 각자의 장기를 살린 치밀한 계획을 통해 임무를 완수한다는 설정은 <오션스 일레븐>나 <이탈리안 잡> 같은 영화와 닮아있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즐기기에는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야후 이 영화의 주인공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국내에서도 아주 잘 알려진 배우이며,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 중 하나인데요, 1990년 중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저 잘 생긴 꽃미남 배우였습니다. 그러다가 확실히 배우라는 느낌이 났던 영화는 바로 작년에 개봉한 ‘셔터 아일랜드’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번 영화 <인셉션>에서 디카프리오의 연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하기 위해 엄청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요. <인셉션> 만들기 몇 년 전부터 디카프리오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번번히 거절을 했데요. 그래도 지금과 같은 완성본의 시나리오를 보여주니까 그제야 수락했다고 하네요. 사실 <인셉션>도 그렇고 <셔터 아일랜드>도 결국엔 주인공의 분열증을 탐구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분야 연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해도 될 텐데요. 놀란 감독이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나 디카프리오에게서 덜 자란 어른의 모습을 보는 듯해요. 실제로 <갱스 오브 뉴욕>부터 계속해서 마틴 스콜세지 영화에 출연하는 디카프리오는 두 개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연기를 하고 있거든요. <셔터 아일랜드>만 봐도 정상인과 정신병자 사이를 오가는 연기를 보여주잖아요. <인셉션>도 그렇거든요, 꿈과 현실에서 방황하는 연기를 펼치는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꽃미남 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로 평가받는 것은 그만이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연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야후 만약 한국영화에서 비슷한 ‘인셉션’ 분위기가 나오는 영화가 개봉한다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는 누가 있을까요?
누가 있을까요, 이런 분열증적 연기에 능한 배우가. 일단 <올드 보이>의 최민식이 생각이 나는데요, 아버지와 애인의 입장에서 분열하는 연기를 보여줬는데, 너무 나이가 많아 보이죠. 그럼 젊은 배우들 중에서는 최근 <이끼>에 나온 박해일도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저는 박해일 배우를 볼 때마다 묘한 이중성이 느껴지는데요. <살인의 추억>이 그랬잖아요. 앳된 용모를 지녔지만 연쇄살인도 저질렀을 것만 같은 악마적인 기운도 희미하게 느껴지고 말이죠. 나이대도 디카프리오와 비슷하니, 디카프리오보다 세 살이 어린 걸로 아는데, <인셉션>과 같은 영화에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야후 영화 러닝타임이 142분이라고 들었어요. 굉장히 러닝타임이 긴 영화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나요?
개인적으로 꿈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흥미로웠거든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웬만해서는 CG를 쓰지 않는 감독인데요. 대신 특수효과를 신봉하는 감독입니다, <다크 나이트>에서도 트럭이 뒤집어지는 장면을 실제로 촬영했다고 하잖아요. <인셉션>에서는 꿈속에서 벌어지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와요. 근데 대부분 실제 촬영인 게 360도로 돌아가는 호텔 복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액션 같은 경우, 현실에서는 잠을 자는 이들에게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단순히 상상력에 의지한 게 아니라 현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흥미가 동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야후 제일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장면이 있다면?
뒤로 갈수록 <인셉션>은 꿈속 뿐만 아니라, 꿈속의 꿈, 꿈속의 꿈속의 꿈, 심지어 무의식의 세계까지 들어가는데요, 말로 하면 참 어려워보여도 놀란 감독은 장소와 의상 등을 달리해서 구별할 수 있도록 해놓거든요. 근데 이게 사실 보면 꿈을 통해 드러나는 강박관념, 불안감, 무의식 등 심리적인 상태로 구획 지어놓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놀란 감독을 보면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설계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바로 그런 연출력을 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운 것 같아요. 

야후 반면 흥미롭지 못 했거나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피터 트래비스, 로저 이버트 등 해외 유명 평자들의 평가처럼 절대적인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게 극중 꿈의 침투, 생각의 조작이란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대사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영화 속 규칙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심지어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무리하게 장면이 길어지고 잡아먹는 등의 무리수가 종종 눈에 띕니다. 더군다나 꿈과 현실의 모호함이 이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이데 이는 여러 가지 해석의 곁가지를 뻗겠지만 결말이 확실하게 딱 떨어지지 아니라는 점에서도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약점으로 다가갈 만합니다. 

야후 압도적인 스케일과 CG 등이 볼거리로 꼽혔는데요, 사실 다른 영화들도 개봉 전에는 이러한 홍보문구들로 관객몰이를 하다가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이 있거든요? <인셉션>은 어떤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화의 시각적인 효과는 압도적이죠. 파리 시내가 반으로 접히는 장면도 그렇고 LA 시가지에 불쑥 기차가 튀어나오는 장면들도 굉장히 생소한 볼거리라 눈을 떼기 힘들거든요. 게다가 이런 장면들을 대부분 실제 촬영을 했다고 하니까 더 놀라운 거죠.

야후 영화 뿐만 아니라 “극”의 형태를 지닌 것들에는 들을 거리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관객들의 눈 뿐만 아니라 귀까지도 사로잡은 많은 영화음악들이 사랑 받고 있는데요, 가끔씩은 정말 저희 같은 사람들이 생각해도 영 안 어울리는 영화음악들을 접할 때가 있어요. 정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이번 영화 <인셉션>의 OST들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한스 짐머가 맡았는데요, 그래도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남는 음악은 <라비앙 로즈> 주제곡일 거예요. 이 영화에는 마리온 코티아르도 출연을 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라비앙 로즈>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이 흐르는데, 한편으로 일종의 조크이기도 하면서 이 주제곡은 Non, je ne regrette rien라는 곡으로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라는 의미를 갖는데 극중 마리온 코티아르의 행동과 관련해 연관을 갖는 복선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야후 영화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서 먼저 영화를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시사회가 끝난 후 함께 시사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어떤 평가들을 내리셨나요?   
대체적으로 놀라워하는 분위기였고요, 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것이 꿈인가 현실인가 애매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결말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야후 실제로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 5분이라도 자신의 목적을 주입시킬 수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칼럼리스트님은 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가지고 다른 사람 무의식 속에 들어가실 건가요?
모 당연히 지금 같은 사회 분위기라면 당연히 나랏님의 머릿속 아니겠어요. 저 같은 빈자들을 위한 정책도 펼쳐주시고 4대강 사업도 그만 멈춰주시고 무엇보다 잠 좀 푹 주무시라고 생각을 주입하고 싶습니다. 

야후 <인셉션>이란 영화에 평점과 한 줄 평을 남겨주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전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다 라는 평으로 별점을 대신하고 싶고요, 한줄 평으로 이 영화를 평가한다면, ‘기억과 마술, 슈퍼히어로에 이머 꿈마저도 설계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은 욕심쟁이 우후훗!’으로 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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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7.22) 

<셔터 아일랜드> 분열이여, 내 손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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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결정적인 스포일러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신작 <셔터 아일랜드>는 역시나!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순수한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장르의 쾌감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원작의 주제와 아우라를 전혀 훼손하지 않는 일급 스릴러로 기능하는 것이다. <셔터 아일랜드>에 대한 각종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반전이 도사린 결말에 대해서만큼은 약점으로 지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듯하다. 나는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결말은 지극히 ‘스콜세즈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속의 감옥

<셔터 아일랜드>는 현대 하드보일드 소설의 최전선을 점하고 있는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을 원작 삼았다. 데니스 루헤인은 <미스틱 리버>(클린트 이스트우드 연출), <가라, 아이야, 가라>(벤 애플렉 연출), <기븐 데이>(샘 레이미 영화화 중) 등 할리우드가 현재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을 하나로 꿰는 주제는 정신적 분열 증세를 보이는 미국인의 초상이라 할 만한데 이는 마틴 스콜세지에게도 익숙한 테마다.

보스턴 항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외딴 섬 ‘셔터 아일랜드’는 정신 질환을 앓는 범죄자들의 특수 감옥 병동으로 악명이 높다. 며칠 전 여죄수가 쥐도 새도 모르게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척 아울(마크 러팔로)이 급파된다. 폭풍우가 몰아칠 것만 같은 섬의 분위기도 심상찮지만 테디의 상태는 더욱 불안하다. 심각한 두통 증세를 겪으면서 정체 모를 악몽에 시달리는 것. 더군다나 병동 관계자들의 비협조 속에 수사는 난항에 빠지고 설상가상 파트너 척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마틴 스콜세지와 데니스 루헤인은 그들이 각각 태어나고 자란 뉴욕과 보스턴을 하나의 캐릭터처럼 상정하고 극중에서 두드러지게 강조해온 터다. 마틴 스콜세지의 극영화는 뉴욕이 주 무대였고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은 보스턴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니까 뉴욕도 아니고 보스턴도 아닌 작은 섬 셔터 아일랜드는 이 둘에게 모두 새로운 장소인 셈이다. 다만 새롭되 낯설지는 않다. 그들은 늘 폭력이 판을 치는 세계를 다뤘다. 특정 지역을 벗어난 좀 더 보편적인 폭력의 세계, 즉 상징적인 무대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데니스 루헤인의 얘기를 들어보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보스턴 북부의 외곽 지역인 리비어(Revere)는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 같았다. 그곳에 발을 들인다는 건 전혀 다른 나라를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리비어는 거의 섬 같았다. 외부인에게 그렇게 적대적일 수가 없었다.” 사는 지역은 달랐지만 그것은 마틴 스콜세지에게도 해당 되는 이야기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부모를 둔 그가 토박이들에게 겪은 텃새의 추억은 대표적으로 <갱스 오브 뉴욕>(2002)의 암스테르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처지에 가감 없이 묻어난다. 다시 말해, 극중 셔터 아일랜드는 루헤인과 스콜세지가 보스턴과 뉴욕에서 목격하고 경험했던 미국의 폭력의 역사만 따로 떼어 섬이라는 고립된 지역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과 진배없다.

이를 전제한다면, <셔터 아일랜드>는 단순 추격물에 머무는 장르영화로 기능하지 않는다. (애초 <퍼펙트 스톰>(2000)의 볼프강 피터슨이 액션물을 염두에 두었다가 이 프로젝트에서 나가 떨어졌다지 아마.) 테디가 병동을 탈출한 환자를 쫓는 과정은 그의 정신적 외상이 그려나가는 미로의 궤적과 정확히 일치한다. 병동 입구에서 흉측한 몰골의 정신병자를 만나 두려움을 느끼고 단서가 떨어진 막다른 길목에서 먼저 떠난 아내와 딸의 혼령을 만나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등 테디가 겪는 마음 속 분열 증세는 초현실적인 세계로 화한다. 그래서 고립된 섬 혹은 밀폐된 병실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데 있어 논리적 사고는 무의미하다. 다만 극단적 감정의 조각들로 덕지덕지 기워 건설한 테디의 심리적 공간인 셔터 아일랜드의 ‘진실 혹은 거짓’에 대해서는 그 자신만이 밝히고 해명할 수 있을 뿐이다.


자기 방어라는 섬

이렇듯 <셔터 아일랜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스릴러의 범주와는 거리가 멀다. 테디의 흐트러진 정신 상태는 결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심리적으로는 단단하게 자기 논리를 갖춘 세계다. 테디는 결코 감옥이나 병동에 갇히는 일은 없지만 영화의 카메라는 줄곧 갇혀있는 구도로 그를 바라본다. 테디를 심각한 편집증적 환자로 몰아넣는 카메라의 구도는 현실에서 철저히 고립된 그가 마음이라는 섬에 유배되어 정신적 수감 생활을 겪고 있는 처지를 상징적으로 증명한다. 결국 섬의 구조나 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불가사의한 사건들은 정신적 분열을 숨기기 위한 테디의 견고한 방어논리에 가깝다.

<셔터 아일랜드>는 원작 <살인자들의 섬>에 충실하다. 각색을 맡은 래타 카로그리디스(Laeta Kalogridis)는 테디의 내적 논리를 훼손치 않으려 사소한 대사 하나까지도 원작을 그대로 따랐다. “원작은 견고하게 쌓은 성과 같아서 어느 한 두 개의 벽돌만 옮겨도 무너져버린다.”는 그의 말처럼 사소한 설정 변경이 자칫 다른 성격의 이야기로 변질시키지 않을까 우려했던 탓이다. 실제로 데니스 루헤인은 36장(章)으로 구성된 <살인자들의 섬>의 대강의 줄거리를 단 하룻밤 사이에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다. 루헤인 왈,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생각하지 못했다면 결코 이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셔터 아일랜드>의 무대는 시작과 끝이 기괴하게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의 세계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블랙홀이고 벗어나기 힘든 탈출 불가능의 섬이다.

안 그래도 영화의 첫 장면은 이 비틀린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던진다. 테디와 척이 갑판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배경의 질감은 매트 페인팅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장과 스튜디오의 촬영이 뒤섞인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가 기 싸움을 벌이듯, 현실과 꿈이 서로의 자리를 탐하듯, 하지만 스콜세지와 루헤인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맞춰 강조한 “허구의 세계로 수렴되는 이야기”임을 은연중에 강조한다. 이와 같은 영화적 기법은 194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 그중 필름누아르에서 주로 사용된 촬영이기도 했다. 마틴 스콜세지는 오프닝 자막을 통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1954년으로 확정했다. 당시는 매카시즘에서 비롯된 도덕적 공황상태, 핵에 대한 공포, 새로운 의학기술에 따른 정신 개조의 피해망상이 만연했던 시기로, 할리우드는 이를 스크린 속에 구현하기 위해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극단적으로 강조한 필름느와르를 적극 차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틴 스콜세지가 <셔터 아일랜드>에서 오마주한 작품의 목록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정확히 반영한다. 스콜세지가 수차례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발 류튼 제작의 <죽음의 섬>(1945)에서 분위기와 정서를 가져왔고, <현기증>의 계단 장면을 그대로 따와 테디의 분열증적 증세를 나타냈으며, 로만 폴란스키의 <혐오>(1965)에서처럼 밀폐 공간을 활용해 주인공의 내면을 기괴하게 상징했다. 그 외에도 음악활용(<사이코>(1960)), 이야기 구성(<충격의 복도>(1963)), 심리적 표현의 구체화(<샤이닝>(1980)) 등 그 자신이 영화적으로 분열증에 걸린 것 마냥 <셔터 아일랜드> 곳곳에 할리우드 클래식의 흔적을 어지럽게 펼쳐 놓는다.


아메리칸 사이코

사실 마틴 스콜세지는 데니스 루헤인에 훨씬 앞서 미국의 분열증을 탐구해왔다. 배우에 따라 2기로 나눠야할 듯한데 <택시 드라이버>(1976)부터 <카지노>(1995)까지, 스콜세지가 선택한 첫 번째 ‘아메리칸 사이코’는 로버트 드 니로였다. (<비열한 거리>(1973)에도 드 니로가 출연하지만 오히려 하비 카이텔이 분한 찰리가 범죄와 종교 사이에서 더한 혼란을 겪는 인물이었다.) <택시 드라이버>(1976)의 트래비스는 베트남전에서 입은 심리적 충격으로 사회악을 처단하겠다며 뉴욕에서 소동을 부렸고, <분노의 주먹>(1980)의 라 모타는 권투선수로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지만 주변의 기대와 압박에 제멋대로의 행동으로 일관하다 몰락을 자초했다.

<갱스 오브 뉴욕>(2002)부터 <셔터 아일랜드>까지, 스콜세지의 두 번째 선택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다. 그는 현재와 미래의 야망 사이(<에비에이터>(2004))에서, 갱과 경찰 사이(<디파티드>)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분열증 환자였고 또 다른 트래비스였으며 라 모타였다. 스콜세지가 그랬듯이 데니스 루헤인 또한 좀체 드러나지 않는 미국인 이면의 정신세계를 범죄물로 특화해온 작가다. 범죄물이라는 게 그렇다. 사회의 썩은 공기가 개인을 짓눌러 파괴하고 그것이 일그러진 형태로 발화하는 것이 범죄다. 스콜세지가 주로 역사적인 사실에서 분열의 원인을 찾았다면 데니스 루헤인은 유년 시절 어른에게서 입은 정신적 외상에 주목한다.

<미스틱 리버>의 데이브는 어린 시절 납치당한 기억을 끝내 떨치지 못해 운명이 바뀐 인물이었고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시리즈는 (지금까지 모두 다섯 편이 발표됐는데) 모두 아이의 유괴와 관련이 있든가 아이에게 가해진 어른의 마수가 범죄의 뇌관으로 작용했다. 심지어 주인공 켄지는 전직 소방관인 아버지에게 학대 받은 경험을 트라우마처럼 안고 사는 인물인데 공교롭게도 <살인자들의 섬>의 테디 역시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상처처럼 지니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스콜세지는 <셔터 아일랜드>를 통해 이 부분을 한마디 대사로만 언급하는 대신 테디가 2차 대전 참전 당시 독일 다카우 수용소에서 목격한 참혹한 광경의 폭력성을 부각해 개인사와 연결한다.

원작과 영화를 구별하는 미묘한 태도의 차이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데니스 루헤인이 테드의 분열을 비교적 개인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에 비해 마틴 스콜세지는 국가적인 차원으로 좀 더 확실히 한다. 원작의 테디가 세상을 떠난 아내와 딸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고통 받는다면 영화 속 테디가 겪는 내면 갈등의 성격은 보다 넓다. 매카시즘과 핵에 대한 공포를 떨치기 위해 타자를 희생양 삼는 미국인의 불안감은 고스란히 테디에게 적용된다. <셔터 아일랜드> 공개 후 찬반 논란을 빚고 있는 영화의 결말은 개인의 분열증마저 통제하려드는 국가의 빗나간 태도를 겨냥한 스콜세지의 노림수다. 그것은 장르적 장치를 남용해 관객을 깜짝 놀래려는 얕은 속임수가 아니다. 하물며 마틴 스콜세지의 그간의 작품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를 상기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셔터 아일랜드>를 걸작이라 부르기 망설여지지만 (마틴 스콜세지가 매 작품 걸작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영화의 장인이 만든 수준 높은 작품임에 틀림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비스트
(2010.3.18)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


사용자 삽입 이미지샘 멘더스가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가족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아메리칸 뷰티2>를 만들었는지 알았다. 샘, 아카데미상이 그렇게 그리웠던 거야, 라고 비웃음 약간 섞어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하여 다섯 개 부문을 수상했던 <아메리칸 뷰티>(1999)와 달리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주요 부문에 후보조차 올리지 못했다!) 근데 영화를 보니 중산층 가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사실 중산층 가족이라기보다는 ‘부부’라고 해야 될 정도로 남편과 아내 둘의 관계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애초 <아메리칸 뷰티>와는 선을 긋고 출발한다. 

휠러 부부는 뉴욕 인근에 위치한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선망의 대상이다. 부부 모두 선남선녀인데다가 동네에서 최고로 치는 새하얀 이층집까지! 그야말로 당시 미국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에 다름 아니었더랬다. 문제는 이들의 삶이 미국인 모두가 바라마지않는 꿈이라는 것. 모든 사람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 똑같은 길을 걷는다는 건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인가. 깔끔한 중절모와 슈트를 입고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회사로 출근하는 남편, 남편과 자식을 출근시킨 후 집안일에 몰두하는 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비추는 카메라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꽉 막혀 있는 인상을 준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이 같은 장면을 극 초반 전면적으로 노출하며 영화의 주제가 일상(日常)과 이상(理想) 사이의 갭이 만들어내는 가족의 붕괴를 주제로 삼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에 따라, 이 영화의 배경이 2차 대전이 끝난 1950년대 중반이란 사실은 중요하다. 소비와 풍요의 시대, 즉 미국에서는 ‘현대’가 시작된 것이다. 하여 여성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른바 ‘신여성’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니. 반복된 일상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의문에 휩싸이는 여자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에이프릴 휠러(케이트 윈슬럿)가 배우를 꿈꾸는 인물로 등장하는 건 그래서다. 더군다나 재능이 받쳐주지 못해 배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얼마나 컸을지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파리’에 가본 적 있다는 이유만으로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자신이 만나본 가장 흥미 있는 남자라며 결혼까지 하지 않던가. 결혼과 함께 미국을 떠나기로 약속했지만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기고(그것도 둘이나!) 남편은 일에 치여 꿈이 뭔지 잊은 것 같고 배우의 꿈은 종치고. 휠러 부부의, 아니 에이프릴의 유일한 해결책은 단조로운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벗어나 총천역색의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것.

허나 에이프릴처럼 특별한 사람들에게 삶은 외로운 법. 1950년대 중반이라는 미국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일탈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두가 선망하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새하얀 이층집을 버리고 파리로 떠난다? 그것은 정신이상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이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휠러 부부에게 멋진 집을 소개해준 기빙스 부부에게는 정신이상자 아들 존(마이클 셰넌)이 있는데 그만이 휠러 부부의 계획을 찬성할 정도로 파리 행은 당시 정서로 보건데 미친 짓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잘 살겠다는 삶의 종착역이 같았음에도, 이를 향하는 무수한 다양한 길이 있었음에도 하나의 길 이외의 길은 인정하지 않는 집단적인 무의식이 휠러 부부의 파국을 잉태했던 것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샘 멘더스 감독이 이를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남녀의 문제, 즉 러브스토리의 화법으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앞서 살짝 언급했듯, 그 당시 가족의 해체는 가족 전체의 문제가 아닌 남녀의 위상 변화에 따른 결과였다. 한마디로 신여성의 도래에 따른 남성의 심리적 불안감 표출이라고 할까. 샘 멘더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남녀가 만나 완벽한 가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판타지의 상실과 비루한 현실의 긴장관계를 다루고 싶었다.”고 했는데 안 그래도 직장 상사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20년간 한 회사에서 근무해온 아버지를 일종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프랭크의 삶의 태도는 정확히 에이프릴과 대척점에 위치한다. 다시 말해, 현실에 안주하려는 프랭크와 이상을 꿈꾸는 에이프릴 사이에 좁혀지지 있는 간극이 결국엔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를 만들고 만 것이다.

이는 시대가 만들어낸 러브스토리이지만 샘 멘더스 감독은 시간 묘사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투의 태도를 취한다. 그로 인해 시대와 이야기의 상호작용이 주는 사회학적 밀도가 헐거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도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바로 현대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현대 역시 모든 이들이 출세와 돈, 성공이라는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시대다. 미국의 1950년대 중반과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제목이 주는 뉘앙스는 의미심장하다.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 혁명적인 길.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다. 하지만 다른 꿈을 꾸는 것은 이상이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삶의 혁명일 수 있다. 삶보다 더 큰 무엇, 즉 에이프릴이 꿈꾸던 파리.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이상을 실현하는 길은 멀지 않다고 말한다. 문만 열면 바로 밟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길. 하지만 승진, 임신, 아이 등등 안주하는 생활이 어깨에 축적된 일상의 무게는 혁명의 길을 희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거기에 파멸의 함정이 있다. 그것은 1950년대 중반이나 현재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가까이 두고도 밟지 못한 길, 그것이 바로 <레볼루셔너리 로드>다.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시에라리온을 무대로 노동착취와 인권탄압으로 얻어진 다이아몬드가 어떻게 밀수되어 세계 시장에 진입하는지 피로 얼룩진 과정을 고발하는 영화다.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은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범죄와 마약으로 얼룩진 브라질 빈민촌의 이야기를 담은 <시티 오브 갓>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말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이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보여주다 말미에 이르러  동명소설의 원작자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폴로 린스가 직접 출연한 TV화면을 삽입, 이것이 사실이었음을 밝혀 충격을 자아낸다. 다시 말해 할리우드식의 이야기와 영상을 통해 브라질이 처한 현실의 처참함을 강조한 것.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이와 반대되는 연출을 보여준다. 시에라리온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허구의 인물인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솔로몬(디몬 하운수)을 넣어 둘 간의 관계 묘사를 통해 우리 눈에 익숙한 할리우드 영웅이야기로 채색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연출 방법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보여주고 있는 시에라리온의 현실,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 벌이는 잔혹한 전쟁과 이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람들, 이에는 아랑곳없이 다이아몬드를 밀수하여 배를 불리는 선진 국가들의 자본가를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를 외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사실에 비추어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우리가 흔히 ‘생각 없이’ 보아왔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는 달리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영화가 자신이 보여준 이야기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불편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령, 영화가 끝나면 감독은 자막을 통해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나오는 다이아몬드를 구매하지 말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관객의 행동을 요구한다. 그런데 영화 내내 비인간적이던 아처가 마지막 순간 솔로몬을 위해 영웅적으로 산화한 뒤 나오는 자막이라는 점에서 이는 시에라리온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요구라기보다는 할리우드 영웅주의에 관한 강요로 비춰진다.

<시티 오브 갓>과 <블러드 다이아몬드>, 아니 느끼게 하는 것과 강조하는 것, 그 차이는 이렇게 크다.


(2007. 1. 14. <스크린>)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1.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대구리에 피도 안 마른 17세의 나이에 사기 하나로 미국의 금융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FBI를 농락하며 천재 칭호를 얻은 프랭크 윌리엄 에버그네일 2세(Frank W. Abagnale Jr)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그래서 서두에 ‘야부리 아님’이라는 자막을 깔고 시작하는 당 영화는 희대의 미성년 사기꾼 에버그네일 주녀(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경력은 쫌 되는데 하는 행동은 어리버리해 보이는 FBI 수사관 칼 핸래티(톰 행크스 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기본 뼈다구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음이다.

하지만 아무리 당 영화가 사실에 바탕을 둔 동명의 평전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서도 스필버그가 이것을 그대로 영화화하지 않았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최근 들어 더 노골적으로 어떤 소재든 만졌다하면 가족을 결부시켜 지겹도록 가족이념을 썰 푸는 그의 행보를 상기해 보라.

그래서 필립 K. 딕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 소설임에도 불구 스필버그는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이를 희석시키고 가족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풀어 넣었듯이 당 영화에서도 역시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가족주의를 대입하고 있다.

그런 관계로 당 영화는 표면상 사기꾼 VS FBI의 열라 박진 추격전을 예고하는 액숑의 모냥새를 띄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보다 고아나 다름없는 에버그네일과 가정이 없는 핸래티가 대립을 통해 새로운 부자(父子)관계를 성립하며 대체가정의 결합 수순을 따르는 드라마적 성격이 더 강하다.

이제 눈치들 다 까셨나? 그러니 만약 당 영화의 포스터와 마빡 카피만을 보고 우리가 흔히 아는 범죄물을 예상 때리고 관람에 임한다던가 스필버그가 감독이라는 이유만으로 휘황찬란한 볼꺼리 가득, 말초적 재미 충만한 영화 기대했다간 정신 건강 나빠져 육체적 피로 동반돼 애정전선까정 이상 생겨, 불신지옥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2.

우짰든 감독은 에버그네일의 실화를 바탕에 깔고 자신의 일관된 생각을 주입하는데 꼭 그의 개인사 및 핸래티와의 관계에서만 ‘가족’을 보는 것은 아니다. 스필버그는 에버그네일을 희대의 사기꾼으로 만든 1960년대라는 특정시기에도 주목하고 있음이다.

당 영화에 따르면 그 당시는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물질(돈)과 외양에만 집착하게 만든 시기로써 내적인 가치가 그 힘을 잃으며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당 영화에서도 보면 아버지 에버그네일(크리스토퍼 월켄 분)과 한 지루박을 땡기시며 단란한 한 때를 보내던 어머니가 집안이 쫄딱 망하자 뒤돌아보지도 않고 돈 많은 변호사와 재혼을 하지 않나.

게다가 그렇게 붕괴된 가정을 재결합시키기 위해 우리의 쥔공 에버그네일 주녀 역시 뽀다구만으로도 먹고 들어가는 파일럿, 의사 등의 제복을 입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아이러니를 보이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겉모습 위주의 시대상을 강조하기 위해 당 영화는 뉴욕 양키스가 승승장구하는 배경에 대해 선수들의 실력보다 오히려 양키스의 줄무늬 유니폼이 상대방 선수를 주눅들게 하는 마빡이라고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전차로 당 영화는 60년대가 물질 숭배로 표면화된 외양에만 집착하다 보니 헛된 환상에만 들떠있는 시대라고 정의 내린다. 그런 느낌을 잡아내기 위해 야누스 카민스키 촬영감독은 인물을 잡는데 있어 창문을 통해 투영되는 빛으로 인물을 비추고 그 주위를 감싸는 등 몽롱한 화면을 보여주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썩어도 참치라고 천하의 스필버그가 독창적인 문화와 예술이 활개치던 60년대를 가지고 가족과 관련된 메시지만을 뽑아 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고 본다. 스필버그의 주특기, 다 알잖어…

하지만 당 영화에서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이나 <A.I.>,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눈에 확 띄는 비주얼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대신 당 영화에서 시대를 드러내는 주요한 방법으로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문화요소, 즉 TV 프로와 영화, 만화 등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당 영화를 보면 이전 스필버그 영화와는 달리 상상력이 돋보인다거나 비주얼에 압도당한다는 감이 들지 않아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스케일이 작게 느껴져 결론적으로 소품스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본 우원이 보기엔 이렇게 규모를 크게 부풀리지 않고 소박하게 간 것이 영화의 주제를 확고히 하는데 더 부합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당 영화는 결국 두 쥔공이 서로의 정신적인 아버지, 자식이 된다는 스또리인데 만약 시끌벅적한 추격씬에 눈에 띄게 부풀려진 세트, 씨쥐 등이 전면에 나섰다면 감독의 의도가 잘 살지 않았음은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왜 <A.I.>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그런 경험 있잖나, 영화의 스케일과 현란한 씨쥐, 그리고 긴장감 도는 상황전개에 막 몰입해 있다가 갑자기 튀 나온 가족 우짜구 저짜구에 대한 장광설 부분에서 영 적응하지 못했던 분위기… 그게 당 영화에는 얼마간 감소되었다는 얘기다.


3.

근데 당해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는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부분이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 보다보면 정말로 그랬을까, 라고 의심 때려지는 부분을 지적하려 하는 것인데,

TV 메디컬 드라마를 보고 수술과정을 익힌 의사(?) 에버그네일 주녀가 병원 사기를 무사히 마친다든지, 수백 명의 수사관으로 둘러 쌓인 공항을 그들의 눈을 홀리기 위해 고용한 미녀 승무원 사이에 숨어 탈출에 성공하고 또한 결혼할 여자의 부모가 어리숙하게 그의 의도에 너무나 쉽게 속아넘어가는 부분들 말이다.

물론 사실일 수 있다. 당 영화 실화라고 하지 않았냐. 그럼에도 위의 예를 든 몇 가지 경우는 관객에게 실소만을 자아낼 가능성 농후해 보인다. 이런 모습들은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알려진 에버그네일 주녀의 천재적인 면을 부각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주위에 있는 사람들, 특히 그를 쫓는 핸래티 이하 FBI를 존나게 무식한 바보로 보이게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묘사들을 보면 에버그네일 주녀를 제외한 당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전부다 바보멍충이똥개다.

하지만 핸래티가 에버그네일을 교묘하게 체포하는 모습을 보면 FBI는 전혀 바보스럽지 않음이다. 그만큼 당 영화는 인물에 대한 묘사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스필버그는 이런 인물들을 끌어안고 영화를 진행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쥔공 에버그네일의 사기행각이 결손된 가정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리고 그가 얼마나 가족을 갈구하는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 이데올로기를 전하는데 있어서 스필버그는 존나 단순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점은 특히 에버그네일과 핸래티와의 성탄절 이브의 전화통화에서 두드러짐이다.  

에버그네일은 매년 크리스마수 이브에 핸래티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을 체포하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핸래티는 구라치지 말라며 무시한다. 그래서 에버그네일은 계속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그의 사기행각을 막는 유일한 인물은 핸래티다. 에버그네일을 체포해서가 아니다. 핸래티가 그의 대체 아버지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니까 스필버그가 종국에 말하는 메시지 모냐? 간단하다. ‘결손가정이 문제아를 낳는다’ 모 그런 거다. 왜 중간에도 보면 에버그네일이 화를 내면서 아버지에게 “내가 범죄자인걸 알면서 왜 그만두라고 하지 않느냐며” 성내지 않냐.

그렇다고 혹시 오해는 마시라. 메시지가 단순하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니까. 다만 이를 설득하기 위한 중간과정이 깊이가 없다보니 메시지 역시 큰 울림을 전달하지 못하고 스필버그의 단순함은 그저 단순함으로 비춰진다는 얘기다.


4.

결론 때려보자.

당 영화 ‘잡아 볼 수 있음 함 잡아봐’라고 수사관을 비웃는 17세 사기 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스필버그 손에 들어간 결과, 가족에 대한 의미에 더 집중을 한 관계로 ‘잡혀줄테니 제발 잡아줘’로 바뀌었다.

액숑과 뭐 그런 오락꺼리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좀 더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렇다고 재미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역시 대가답게 스필버그의 이야기를 풀어 가는 연출력이며 관객의 감정을 조였다 푸는 실력은 여전함이다. 게다가 <비치> 이후 얼굴보기 힘들었던 디카프리오 보는 재미도 쏠쏠하구.

하지만 스필버그가 당 영화를 통해 표현했던 가족에 대한 메시지는 가슴팍에 팍 와닿지 않았음이다. 아직 인간탐구에 대한 수련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해서 본 우원은 당 영화를 뮝기적에 봉하려 했으나 며칠 안 있으면 구정인데 영화 한 편 안 보고 걍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냐. 그렇다고 썰만 무성했지 내용물은 별로 튼실하지 않은 <영웅>이나 <이중간첩>을 추천하자니 그렇고…

그나마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화제작이 즐비한 이번 주 가장 볼 만한 영화라는 판단 하에 당 영화를 베스트 주녀의 반열에 올려놓는 바이다.


<딴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