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장르영화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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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Moon> 던컨 존스 | 영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더 문>은 <디스트릭트9>와 함께 올해 나온 SF영화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을만하다. <더 문>은 배우 샘 록웰의 열렬한 팬인 감독이 그를 위해 만든 영화. 극중 주인공을 빼면 변변한 캐릭터가 없는 이 영화에서 샘 록웰은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펼친다. 한편으로 샘 록웰의 1인 3역을 비롯해 달기지 사랑을 벗어나지 않는 배경, 7,80년대 SF영화에서나 볼법한 아날로그적인 기지 내부 모습 등 <더 문>은 곳곳에서 저예산의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의미마저 저예산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달에 홀로 남아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의 심리드라마이기도 하며 돈에 눈먼 대기업과 하청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관계를 은유한 사회비판물로도 기능한다. 하여 드라마틱한 감정의 블록버스터를 선사하는 <더 문>은 작은 규모와 달리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 작품인 것이다.


<디스트릭트9 District 9> 닐 블롬캠프 | 미국, 뉴질랜드

사용자 삽입 이미지<디스트릭트9>이 8월 14일자 미국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할 때까지 이 영화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딱 하나. 피터 잭슨이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원래 피터 잭슨은 닐 블롬캠프라는 신예감독과 게임원작 영화 <헤일로>를 준비하던 중 <디스트릭트9>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제작을 결정했다. 인간이 외계인을 슬럼가에 격리시켜 착취하고, 이걸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대체역사물처럼 포장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이는 한편으론 피터 잭슨이 초짜 감독시절 꿈꿨던 영화적 야망을 재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설적인 B급영화로 회자되는 <고무인간의 최후>(1987)를 통해 잔인무도하게 외계인을 살상하는 인간을 다뤘고, ‘페이크 다큐멘터리‘ <포가튼 실버>(1996)에서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조국 뉴질랜드의 영화사를 넘어 세계영화사를 다시(?) 썼던 그에게 <디스트릭트9>은 21세기 버전의 <고무인간의 최후>요, <포가튼 실버>이었던 셈이다.


<마더> 봉준호 | 한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봉준호가 <마더>에서 비트는 장르는 ‘김혜자’다. 김혜자라는 장르는 완벽한 어머니 상을 대표한다. 그녀는 한국의 모성신화다. 하지만 봉준호는 모성애의 극단을 보여주겠다며 국민엄마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지만 이 영화는 진범 찾기보다 진범을 찾은 후 이에 대응하는 엄마의 행동을 통해 모성의 극단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자식 때문에 엄마가 미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이 험한 세상 (혹은 부자들만의 나라)을 살아갈 수가 없다. 아버지까지 부재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자식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혜자, 아니 오로지 ‘엄마’뿐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인(murder)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mother)는 괴물의 다른 이름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라면 망각하는 것일 뿐. 봉준호는 김혜자라는 숭고한 모성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모성신화를 완성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쿠엔틴 타란티노 | 미국, 독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타란티노의 첫 번째 전쟁영화이자, 시대물이란 점에서 관심을 모았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은 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 잠입한 유태계 특공대의 활약상을 담았다. 다만 인용이 창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타란티노는 <바스터즈>를 전쟁영화인 동시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이자 이탈리아의 지알로 무비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전쟁영화 특유의 진지한 자세라든지 숭고함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타란티노가 영화를 엄숙하게 다뤘던 적이 있었나. 영화를 놀이로 대하는 그는 <황야의 무법자>(1964)에서 <와일드번치>(1969)까지, 자신이 열광한 영화의 특정 장면을 ‘모아모아’ <바스터즈>를 구성하는 한편 그 잘생긴 브래드 피트의 외모마저도 ‘주걱턱’으로 만들어 웃음거리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얼마나 재미있냐고? IMDB에 오른 관객 평점을 보면 자신의 영화 중 <펄프픽션>(8.9점/10점)을 빼면 가장 높은 점수(8.6점)를 받았더랬다.


<퍼블릭 에너미 Public Enemies> 마이클 만 | 미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퍼블릭 에너미는 올해 나온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지만 국내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마이클 만이 존 딜린저를 영화화한 이유는 현실이 영화가 되고 영화가 현실이 된 세상에 살았던 첫 번째 인물이기 때문이다. <퍼블릭 에너미>를 보고 있자면 1930년대와 200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불안한 시대는 징후를 부른다. 할리우드의 최근 영화적 전략은 시대의 징후를 포착해 혁신적인 대중영화로 체화하고 이를 체험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마이클 만은 오락성과 예술성을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하는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작가다. 그는 이전부터 장르영화를 다루면서도 영화의 현실성(reality)에 대한 자각을 결코 놓지 않으면서 필모그래프를 발전시켜왔다. <퍼블릭 에너미>는 시각적 체험을 넘어 감정의 체험까지 그대로 재현한 작품이다. 할리우드 대중영화의 첨단을 이끄는 마이클 만이 이후 작품에서 도달하게 될 영화의 경지가 어디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차우> 신정원 | 한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차우>는 국내외를 통틀어 올해 등장한 장르영화 중 가장 별나다. 식인 멧돼지의 실체는 영화의 중반이 한참 지나서야 공개되고 CG로 구현된 그 모습 또한 조악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차우>에는 괴수의 출현이 야기하는 경이로운 공포감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기상천외한 캐릭터를 앞세워 무질서한 세계를 조장하면서 B급영화의 면모를 과시한다. 애초부터 차우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미션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치환하려는 상황에서 <차우>는 웃음을 유발한다. 차우의 존재를 알리려할수록 사회의 갈등은 더 커지고, 차우를 쫓을수록 피해는 늘어나며, 차우를 잡는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차우를 잡으려고 하는 걸까? 극중 인물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것을 잘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사회는 왜 이 지경일까? <차우>는 정확히 우리의 자화상을 겨냥하고 있다.


<아바타 Avatar> 제임스 카메론 | 미국, 영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바타>는 영화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아바타>는 우리가 영화를 본다는 것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3D영화 <아바타>는 관객을 스크린 앞에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뤼미에르 형제가 활동사진을 최초로 상영한 이후 영화가 꿈꾸는 최종 목적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의 꿈을 이룬 ‘세상의 왕’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그가 이룬 성과는 단순히 기술력에만 있지 않다. 기술력의 최첨단에 있는 <아바타>지만 메시지는 자연과의 융합이다. 이 영화가 수정주의 서부극을 끌어와 SF로 개비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영화란 결국 인간을 말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는 늘 인간과 자본의 대립을 다뤄왔다. 오히려 인간 이외의 미지의 존재는 인간의 친구인 경우가 많았다. <아바타> 역시 다르지 않다. 첨단의 기술이 인간과 결합할 때 나타날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가 바로 <아바타>다. 


<박쥐> 박찬욱 | 한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쥐>는 <하녀>로 대변되는 1960년대 한국영화의 불균질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한다. <박쥐>의 미학은 <테레즈 라캥>과 뱀파이어의 대척점에서 한국영화사에 존재하는 불균질함과 충돌할 때 생기는 경계의 텍스트에서 발생한다. 그 경계의 특정 지점을 잘 살펴보면 언젠가부터 명맥이 끊긴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녀>를 비롯해 한국의 공포영화들이 즐겨 사용해왔던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갈등을 다룬 이용민 감독의 <살인마>(1965) 같은 작품도 있고(이용민 감독은 <흡혈화 악의 꽃>(1961)을 통해 일찍이 ‘한국판 흡혈귀’를 내세운 적이 있다!), 흑백화면 속에 유독 흰 이미지가 강조되는 서양식 병원을 무대로 옛 애인을 향한 여자의 복수를 다룬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1964)도 있다. 서양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뱀파이어물에 대한 전형을 한국적인 토양 위에서 새롭게 꽃피우려는 박찬욱 감독의 의지가 <박쥐>에는 짙게 배어있는 것이다.


<불신지옥> 이용주 | 한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매년 여름이면 양산되는 수준 이하의 국산 공포영화를 바라보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건 <불신지옥>과 같은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불신지옥>은 맹목적 믿음이 만들어낸 불신의 지옥도를 한국적인 풍경 위에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는 공간의 배경은 물론 공포를 발현하는 방식까지도 ‘현실’이라는 범위를 넘지 않는다. 사실 이 영화는 공포물보다 추리물의 성격이 더 짙다. 추리물로의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 거시적인 공포를 자아낸다고 할까. 그러니까 실종된 주인공 여동생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은 곧 공포의 정체를 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 <불신지옥>은 실종된 아이라는 공포분자를 추적함으로써 불신이 어떻게 발생하고 전이했는지를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결국 여동생의 실종은 불안한 시대의 황폐한 정신이 야기한 필연의 산물이다. 영화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현실은 상식을 뛰어넘은 우리 사회의 각종 광신의 총합이 빚어낸 비극의 총체다.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샘 레이미 | 미국

사용자 삽입 이미지샘 레이미의 <드래그 미 투 헬>은 2009년 버전의 <이블 데드2>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종류의 공포, 즉 관객에게 비명을 선사하면서 폭소까지 제공하는 놀이동산의 유령의 집 같은 작품인 것이다. 샘 레이미는 공포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에게 공포영화는 표피적인 무서움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의 집단적인 무의식에 스며든 고통의 장르적 발현이다. <드래그 미 투 헬>를 기획하면서 세 편의 <이블 데드> 시리즈를 두고 유독 <이블 데드2>를 염두에 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만 <이블 데드2>와 <드래그 미 투 헬> 사이의 시간 동안 현실은 더욱 무시무시해졌다. (그에 비례해 웃음도 그만큼 늘어났다.) 그러니 샘 레이미가 자기 복제를 통해 도달한 지옥문에는 아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지 않을까. ‘공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샘 레이미가 가학적인 공포영화가 난무하는 지금에 20년 전의 구식 공포영화로 돌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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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2009.12.31)

<드래그 미 투 헬> 자기 복제를 통해 진화하는 샘 레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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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레이미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르로 돌아왔다. 아니, 가장 자신있어 하는 영화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편이 옳겠다. 많은 이들이 샘 레이미의 신작 <드래그 미 투 헬>을 두고 <이블 데드> 시리즈로의 귀환을 언급한다. 하지만 <이블 데드>(1981)와 <이블 데드2>(1987)는 전략을 달리한 작품이었다. <이블 데드>가 저예산의 한계를 (그 유명한 악마의 시점 숏과 특수 분장을 통해) 저비용 고효율로 극복하며 온전히 공포를 전달하는데 주력한 작품이었다면 <이블 데드2>는 전편보다 예산이 넉넉한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종류의 공포, 즉 관객에게 비명을 선사하면서 폭소까지 제공하는 놀이동산의 유령의 집 같은 작품이었다.

샘 레이미는 <드래그 미 투 헬>의 연출 의도에 대해 “최근의 공포영화에 별 매력을 못 느끼겠다. 가학적인 방식으로 관객을 질리게 만드는 것은 내 장기가 아니다. 나는 그저 재미있는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무섭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그런 구식(Old-Fashioned) 공포영화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드래그 미 투 헬>은 <이블 데드2>의 속편이라고 할만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야기의 얼개부터 공포와 웃음을 유발하는 디테일한 묘사, 심지어는 포스터의 구도까지, 두 영화는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은 면에서 닮았다.

<드래그 미 투 헬>의 주인공 크리스틴(앨리슨 로먼)은 인생의 사면초가에 빠졌다. 대출상담원으로서 승진할 기회를 잡았지만 동양계 동료직원과의 경쟁이 힘겹기만 하고, 촌스럽고 가난한 크리스틴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대학교수 남자친구 클레이(저스틴 롱)의 엄마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러던 차, 집을 차압당할 처지에 놓인 불쌍한 노파 가누쉬(로나 레이버)의 대출상환 연기 상담을 맡게 된다. 허나 승진 누락이 두려웠던 크리스틴은 가누쉬의 청을 거절하기에 이르고 급기야 본의 아니게 망신까지 주게 되니. 이에 분노한 노파가 악마 라미아의 저주를 퍼붓자 크리스틴은 곧 수난의 연속에 빠진다.

<드래그 미 투 헬>은 한마디로 크리스틴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Drag Me To Hell) 악마와 이를 저지하려는 그녀의 투쟁기다. 그건 봉인에서 해제된 악마와 그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의 사투를 다룬 <이블 데드2>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친구와 깊은 산 속 외진 별장으로 놀러간 애쉬(브루스 캠벨)가 우연히 죽음의 책에 갇혀있던 악마를 부르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싸움을 벌이는 것. <드래그 미 투 헬>과 <이블 데드2>는 그렇게 주인공들이 저주를 당하는 과정이나 이후 대응하는 태도가 놀라우리만치 닮아있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구식 공포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살리기 위한 샘 레이미 감독의 의도적 설정처럼 보인다. 거친 손의 노파가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치는 장면이랄지, 크리스틴이 가누쉬와의 격투 끝에 머리카락이 뜯기고 온갖 오물과 심지어는 튀어나온 눈알까지 삼키는 장면, 그리고 바닥에서 튀어나온 악마의 손에 잡혀 들어가는 장면까지, <드래그 미 투 헬>은 시대적 배경은 다를지언정 공포를 유발하는 디테일은 <이블 데드2>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사실 샘 레이미는 특정장르에 천착하는 감독이 아니다. <이블 데드> 시리즈가 워낙 유명세를 탄 탓에 영화광들 사이에서 공포영화의 특정 브랜드처럼 인식돼온 것이 사실이다. 한편, <이블 데드>를 접하지 못한 팬들 사이에서 <스파이더맨>의 성공 이후 그는 또한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유명해졌다. 샘 레이미의 필모그래프를 살펴보면 그가 실은 꽤 다양한 장르를 경유했음을 알 수 있다. <다크맨>(1990)을 통해 안티 히어로를 다뤘고, <퀵 앤 데드>(1995)로 서부극을 연출했으며 <심플 플랜>(1998)과 <사랑을 위하여>(1999)로 각각 스릴러와 멜로의 세계에도 발을 디뎠었다.

다만 샘 레이미에게 공포영화의 장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이유는 공포를 조장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샘 레이미는 공포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에게 공포영화는 표피적인 무서움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의 집단적인 무의식에 스며든 고통의 장르적 발현이다. <드래그 미 투 헬>를 기획하면서 세 편의 <이블 데드> 시리즈를 두고 유독 <이블 데드2>를 염두에 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추정된다).

<이블 데드>와 <이블 데드2>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코미디적 요소가 두드러진 것 외에도 전편에서 나약하기 그지없었던 애쉬가 굉장히 과감한 저항을 보여준다는데 있다. 그것은 단순히 악마와 맞서는데 적극적일뿐만 아니라 현실을 은유하는 장치로써의 적극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블 데드>에서 죽어가는 친구의 도움 요청에도 겁에 질려 소극적이었던 애쉬는 <이블 데드2>에 이르러 ‘람보’를 연상시키는 전사로 거듭난다. (팔에 전기톱을 들고 머리띠를 두른 모습은 영락없는 람보다!) 그러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 세력에 공격당한다는 설정은 곧 당시 레이건 정부하의 미국을 상징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애쉬의 저항은 곧 공산권을 향한 미국민의 불안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의 크리스틴이 느끼는 공포 또한 현실에서 기인한다. 사실 크리스틴이 라미아의 저주를 받는 이유는 그녀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죄가 있다면 그저 남자친구에 어울리는 신분을 획득하기 위해 부지점장이 되려는 목표 하나로 상사의 지시에 따라 노파의 청을 거절한 것뿐이다. 물론 상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노파의 대출상환 연기를 승인했더라면 저주를 피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올발랐을 것이다. 문제는 현실이 그녀에게 도덕적 선택을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것.

시골 출신으로, 여자의 몸으로, 더군다나 미국 내 동양인의 지위 상승에 따라 과거의 영광을 잃은 백인으로써 크리스틴이 현실에서 넘어야 할 장벽은 너무나 높다. 그건 가누쉬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너무나 견고한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변변한 일자리도 얻기 힘든 노인의 몸으로 신용불량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결국 대출기한연장을 거절당한 그녀는 죽고 만다!) 다만 자본주의가 생색조로 흘린 콩고물이라도 얻기 위해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짓밟는 수밖에 없다. <드래그 미 투 헬>이 크리스틴과 가누쉬의 대결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는 건 이 때문이다.

물론 샘 레이미가 정색을 하고 현실 비판에 목매다는 건 아니다. 그의 최우선 과제는 구식 공포영화의 장르적 재미다. 단지 주인공의 무의식을 잠식한 공포의 실체를 위해서 현실이 필요했을 뿐. 샘 레이미의 공포영화가 주는 묘미의 상당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인한다. 공포영화는 살아 숨 쉬는 생물 같아서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드래그 미 투 헬>과 <이블 데드2> 간의 차이를 살피는 건 곧 시대를 통해 장르의 내적변화를 살피는 것과 같다.

<이블 데드2>에서 애쉬는 결국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악마의 손에 이끌려 중세시대로 뚝 떨어졌다.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애쉬에겐 현실로 돌아가기 위한 유예기간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결국 중세시대를 탈출하는데 성공하지만 그가 돌아간 곳은 미래다!) 하지만 크리스틴에게는 최소한의 희망조차 없다. 지옥으로 끌려가자마자 영화는 끝. <이블 데드2>와 <드래그 미 투 헬> 사이의 시간 동안 현실은 그렇게 무시무시해졌다. (그에 비례해 웃음도 그만큼 늘어났다.) 그러니 샘 레이미가 자기 복제를 통해 도달한 지옥문에는 아마 이런 문구가 적혀 있지 않을까. ‘공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샘 레이미가 가학적인 공포영화가 난무하는 지금에 20년 전의 구식 공포영화로 돌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레시안
(2009.6.18)

거대 로봇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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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트랜스포머’ 인간이 스크린을 주름살 잡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은 갔다. 2년 전 거대 로봇 시대를 활짝 열어 젖혔던 <트랜스포머>가 다시 한 번 스크린을 정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다. 이에 맞서 작은 규모의 영화로 중무장한 인간들의 역습도 만만치 않은 전차로, 6월은 가히 ‘다윗vs골리앗’의 대결이라 할만하다.


절대강자 <트랜스포머2>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하 <트랜스포머2>)은 6월 25일 나 홀로 개봉할 정도로 일찌감치 2009년 상반기 기대작으로 자리 잡은 터. 전편에서 만화 상에만 존재하던 로봇들이 뿅~ 실사로 구현돼 많은 팬들을 흥분의 도가니탕에 빠뜨렸던 만큼 벌써부터 로봇들의 사자후가 전 지구에 울려 퍼지누나. 

<트랜스포머2>는 오토봇과의 로봇전쟁에서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 ‘다구리’ 당한 디셉티콘이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디셉티콘은 나쁜 로봇 놈들을 규합해 좋은 로봇 분들과 전쟁을 펼치니, 1편에서 12놈이었던 트랜스포머가 2편에선 40놈으로 늘어났단다. 싸우는 장소도 미국을 넘어 상하이에, 파리에,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 전 세계적 규모로 확장된 바, <트랜스포머2>는 전편보다 더 많아진 로봇들이 더더 거대한 전쟁을 펼치는 더더더 똥꼬 긴박한 상황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렇게 로봇들이 감 놔라, 배 놔라 판을 치는 형국이라 샤이어 라보프와 메간 폭스 등 우리의 비정규 인간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할 일이 많이 줄어들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림이다. 갈수록 설 자리를 잃는 작금의 일자리 위기를 반영하듯 <트랜스포머2>는 1편에 비해 더욱 어두워진 비전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다만 로봇들이 막간을 이용해 연료를 보충하는 동안 마이클 베이 감독께서 쭉하고 빵한 메간 폭스의 몸매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특별히 마련해 인간 배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고. 단, 가족영화라 수위 조절이 이뤄졌다고 하니 서서쏴 관객들이여, 과도한 기대는 금물!


작은 영화의 역습

볼거리 면에선 비할 바 못 돼지만 작품성 면에선 <드래그 미 투 헬> <로나의 침묵>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이 <트랜스포머2>를 약 깻잎 1.2장 차이로 능가한다. <드래그 미 투 헬>은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가 메가폰을 잡은 등골 오싹하고 오줌 찔끔하고 모골 송연한 공포영화라는 점에서 기대가 모아진다. 벨기에 영화 <로나의 침묵>은 예술영화계의 지존무상 다르덴 형제의 작품이란 점에서,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은 <친절한 금자씨> 이후 오랜 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홈한 최민식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입장료 투자가 아깝지 않은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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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OOK
(2009년 6월호)

프랫 팩의 매력에 푹 빠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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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랫 팩’의 돌풍이 거세다. 프랫 팩(Frat Pack)은 벤 스틸러를 필두로, 오웬 윌슨과 빈스 본, 윌 패럴, 잭 블랙 등 핵심 멤버에 세스 로건, 마이클 세라, 저스틴 롱 등 신예들이 뭉친 할리우드 내 ‘사교클럽’(Fraternity)을 일컫는다. <트로픽 썬더> <박물관이 살아있다> 등 이들이 출연한 영화는 박스오피스 1위는 물론, 1억 달러 안팎의 수익을 올리는 까닭에 프랫 팩의 위상은 하늘을 찌른다. 하여 이들을 섭외하려는 할리우드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 이번 여름 시즌만도 <박물관이 살아있다2> <드래그 미 투 헬> <더 이어 원> 등 프랫 팩의 활약은 놀랍다.

전편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스미스소니언으로 배경을 옮긴 <박물관이 살아있다2>(6/4 개봉)에는 벤 스틸러, 오웬 윌슨 두 명의 프랫 팩이 등장한다. 그중 깜찍한 카우보이 제레디야 역을 맡은 오웬 윌슨의 등장은 무척이나 반갑다. 지난해 자살시도로 우울한 소식을 전했던 그가 드디어(!) 주특기인 코미디를 통해 예의 그 멍청하지만 귀여운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오웬 윌슨은 프랫 팩 사단에서 가장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쥬랜더> <스타스키와 허치> 등 벤 스틸러와 짝을 이뤄 콤비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던 그는 앞에 나서는 법 없이 ‘뒤끝 개그’로 새로운 유형의 코믹 연기를 창조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 오웬 윌슨의 창조력은 프랫 팩 무비의 원형처럼 인식되고 있는 웨스 앤더슨의 <바틀 로켓>과 <로얄 테넌바움>의 각본에서도 빛을 발하며 벤 스틸러와 함께 프랫 팩 사단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프랫 팩의 활약은 코미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스틴 롱이 출연한 <드래그 미 투 헬>(6/11)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한 공포영화다. 롱은 노파의 저주를 받아 지옥을 경험하는 여주인공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남자친구 역할을 맡아 웃음기 쪽 빠진 연기를 펼친다. 저스틴 롱은 <다이하드 4.0>의 해커 역으로 우리에게 알려졌지만 할리우드에서는 <피구의 제왕> <짝퉁 대학생> 등을 통해 코믹한 이미지로 친숙하다. 특히 케빈 스미스의 <잭과 미리의 포르노 만들기>에 포르노 영화 제작 스태프 중 한 명으로 출연하면서 프랫 팩의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다만 그는 평범해 보이는 인상을 무기로 다양한 장르를 섭렵함으로써 프랫 팩 일원 중에서도 가장 폭넓은 연기를 구사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드래그 미 투 헬> 이후 차기작으로 옛 연인 드류 베리모어와 함께 로맨틱코미디 <고잉 더 디스턴스>의 출연을 확정하며 전 방위적인 연기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주노>의 얼뜨기 남자친구 역할로 혜성같이 등장한 마이클 세라는 프랫 팩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이라 할만하다. 총각파티 소동을 다룬 <수퍼배드>(2007)를 통해 프랫 팩 멤버로 인정받은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지만 가장 ‘핫’한 이름이다. ‘코미디의 왕’ 잭 블랙과 함께 공동주연을 맡은 <더 이어 원>(7월 중)이 그 증거다. 그는 이 영화에서 고대세계를 여행하는 게으른 원시시대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항간엔 잭 블랙을 능가하는 코믹연기를 펼친다는 소문이 돌만큼 마이클 세라를 향한 기대치는 상상 이상이다. 그래서일까, <더 이어 원> 외에도 <젊음의 반항>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 등 영화의 드라마를 종횡무진 하는 그는 현재 프랫 팩을 넘어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젊은이다.
 
이처럼 프랫 팩은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주류집단이자 권력집단으로 손색이 없다. 역할은 주로 루저, 찌질남, 얼꽝 등 ‘비호감’에 집중되어 있지만 영화팬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열광적으로 호감을 드러낸다. 프랫 팩은 현재 전 세계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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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ire
(200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