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Dr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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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는 평단에서 특히 좋아할만한 영화다. 낮에는 할리우드 엑스트라, 밤에는 뛰어난 운전 기술을 이용해 범죄자들의 탈출을 돕는 무명의 드라이버는 뭐랄까,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장 피에르 멜빌의 느와르에 나오는 살인청부업자(주로 알랭 들롱이 연기했다!)의 현대판 버전을 연상시킨다.

시종일관 감정의 동요를 눈치 챌 수 없는 무표정, 처음의 계획이 어긋나는 상황에 아랑곳없이 지극히 말을 아끼는 냉정함, 상대방에 대한 동정을 허락하지 않는 결단력까지, 덴마크 출신의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은 라이언 고슬링, 캐리 멀리건, 론 펄먼과 같은 할리우드 배우를 기용해 낯설면서도 익숙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같은 결과로 <드라이브>는 범죄와 액션이라는 B급의 정서에도 불구하고 칸영화제 경쟁부문의 감독상 수상이라는 예상외의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쉽게 즐길만한 오락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카체이스가 중요하게 두각 됨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관객의 쾌감을 자극하는 연출로 가져가지 않는다. 오히려 LA 도로사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기에 가능한 도주처럼 주인공의 캐릭터와 능력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쪽으로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이브>에서 시각적 쾌감을 주는 쪽은 고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잔인한 상해 묘사에 있다. 이건 뭔가 이질적이고 낯설지만 그만큼 새롭게 다가온다. 할리우드처럼 보수적이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프렌치느와르처럼 깔끔하지도 않은 제3의 무엇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제작과정은 즉흥과 우연에 따른 낯선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드라이브 역에 캐스팅된 인물은 휴 잭맨이었다. 라이언 고슬링은 그를 대신해 참여했다가 (역시 하차한 닐 마셜 감독의 자리에) 니콜라스 윈딩 레픈까지 끌어들였다. 윈딩 레픈은 원 시나리오를 존중하는 대신 상당 분량의 카체이스 장면을 8분여로 줄이면서 영화의 성격을 바뀌어버렸다. 이질적인 조합이 충돌하면 때론 이렇게 흥미로운 결과물이 도출되기도 한다.

국제영화제 화제작과 바람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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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태풍이 여름 극장가를 휩쓸고 간 자리를 세계국제영화제를 통해 화제작으로 급부상한 작품들이 메울 기세다. 2011년 베를린영화제 작품상과 남녀주연상을 휩쓴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를 필두로, 칸영화제 작품상 수상작 <트리 오브 라이프>와 감독상 수상작 <드라이브>, 그리고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각국의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은 <르아브르>가 자극적인 볼거리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개봉 대기 중에 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10월 6일 개봉)를 연출한 이란 출신의 아스가르 파르허디 감독은 전작 <불꽃놀이>(2006)에서 부부 문제로 이란 사회의 단면을 포착해 좋은 평가를 얻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역시 이혼을 앞두고 별거 중인 부부 씨민과 나데르가 전면에 나선다. 다만 남편 씨민이 가사도우미와 실랑이가 붙은 끝에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이 영화는 종교적, 윤리적,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야기를 확장해 좀 더 복합적으로 이란 사회를 바라본다. 남녀가 유별한 종교국가에서 치매로 고생중인 씨민의 아버지를 위해 선의로 베푼 가사도우미의 행동이 씨민의 공분을 사고, 씨민은 법정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며, 그럼으로써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말하자면 이란 중산층의 위기를 다루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폐쇄적인 이란 사회를 읽은 수 있는 텍스트로 작용하며 베를린에서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트리 오브 라이프>(10월 27일)의 테렌스 말릭 감독은 과작의 작가로 통한다. 부자(父子)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트리 오브 라이프>는 전작 <뉴 월드> 이후 6년 만의 신작이며 1973년 <황무지>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고작 5편의 영화만 만들었을 뿐이다. 공개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칸영화제 작품상도 제작자가 대신 수상했을 정도. 하지만 그가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경쟁적으로 출연을 자처하기로 유명하다. 브래드 피트와 숀 펜도 그렇게 해서 <트리 오브 라이프>에 캐스팅된 경우다. 브래드 피트가 엄격한 아버지를, 숀 펜이 그런 아버지에 증오심을 품고 자란 아들(의 성인 모습)을 연기하는데 서로 평행선을 그으며 만나지 않다가 마지막 순간에 딱 한 번 만나 화해하는 광경은 마치 자연의 순환을 연상시킨다. 테렌스 말릭의 영화는 늘 그렇다. 자연과 문명, 전쟁과 평화, 증오와 화해가 대립하는 이분법의 세계지만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테렌스 말릭은 그것이 세계의 조화라는 것을 매 영화 강조한다.

테렌스 말릭의 영화에 작품상으로 노장을 예우한 칸영화제는 감독상에 <드라이브>(10월 개봉)의 니콜라스 윈딩 레픈을 선정하며 새로운 영화의 발굴에도 힘을 썼다. 할리우드의 무명 스턴트맨이 강도의 도주를 돕기 위해 택시 운전사 부업을 나섰다가 위험에 빠지는 과정을 다룬 <드라이브>의 감독상 수상은 이변으로 평가받는다. 이야기나 메시지보다 액션이 더 눈에 띄는 작품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으로 모자라 다르덴 형제, 라스 폰 트리에 같은 감독을 제치고 감독상까지 수상한 사례는 칸영화제 역사상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드라이브>의 탄생 과정도 극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원래 <디센트>의 닐 마셜 감독과 ‘엑스맨’ 휴 잭맨이 참여하기로 했다가 계획이 무산되면서 <드라이브>는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니콜라스 윈딩 레픈이 메가폰을 잡고 할리우드의 젊은 연기파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캐스팅되면서 칸영화제 감독상까지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르 아브르>(10월 개봉)는 칸에서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영화제 기간 동안 가장 강력하게 거론된 작품상 후보였다. 핀란드 출신의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시침 뚝 떼고 조롱한다고 해서 블랙코미디의 대가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표작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1989)로 국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모았지만 <르 아브르>에서는 예상외의 면모를 과시한다. ‘르 아브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무역항이자 불법 이민이 빈번한 곳이다. 이곳에서 구두닦이로 연명하던 노인은 아프리카에서 밀입국한 소년을 만난다. 소년은 어머니가 있는 영국으로 가기 위해 도움을 청하고 노인은 대가없이 돕는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르 아브르>를 보기도 전에 이민자에 적대적인 유럽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영화로 예상했지만 웬걸, 이렇게 가슴 따뜻한 작품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르 아브르>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새로운 출발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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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re
201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