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의 딸>(Ryan’s Daughter)


사용자 삽입 이미지<닥터 지바고> 이후 데이비드 린은 영화 만들기에 강한 회의심이 들었다. 흥행에 성공한 <닥터 지바고>를 두고 유수의 평론가들이 서슬 퍼런 비판을 가했기 때문이다. <라이언의 딸>은 그런 린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작품이었다. ‘예술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한 통속물’이라는 비평가 폴린 카엘의 신랄한 평가에 충격을 받아 이후 영화 연출을 중단하고 장기간 칩거에 들어갔던 것이다.

<라이언의 딸>은 <마담 보바리>의 무대를 프랑스에서 세계1차 대전 당시 아일랜드 북부의 작은 마을로 옮긴 작품이다. 선술집을 운영하는 라이언의 딸 로즈는 나이차 많은 교사 찰스와 결혼한다. 하지만 사랑에 적극적이지 않은 그에게 실망하던 차, 젊은 영국군 장교 랜돌프와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린은 <라이언의 딸>이 단순히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하거나 여성의 욕망에 관대하지 않은 시대의 폭력성을 고발하는데 그치길 원치 않았다. 더 나아가 이 작품에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주인공들의 상처받은 감정이 자아내는 마음의 풍경, 이를 깊이 연구하고픈 인문학자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다. 린이 보기에 그것은 강박과 죄책감인데 극중에서 전자가 집단의 신념을 고취하며 광기로 변모하는 사회적 윤리라면 후자는 윤리에 상관없이 개인적인 선택에 따른 결과랄 수 있다. 이에 따라 <라이언의 딸>은 적군의 남자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마을 주민들에게 린치를 당하는 로즈의 사연과 세 주인공이 삼각관계로 엮이면서 드러나는 그들 각자의 내면 갈등이 순환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무기를 운반하는 차, 시체를 실어 나르는 마차 등 유독 <라이언의 딸>에는 바퀴 이미지가 부각되는데 이는 그대로 강박과 죄책감으로 굴러가는 마을의 폭력 구조를 드러낸 것이었다.

결국 영화는 로즈와 찰스가 마을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흥미롭게도 이는 린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는 동시에 앞으로의 행보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차기작 <인도로 가는 길>로 스크린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무려 14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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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 회고전
카탈로그
(2009.4.28~5.17)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랑스 소설 <Le pont de la rivière Kwai>을 영화화한 <콰이강의 다리>는 데이비드 린의 필모그래프에서 분기점 같은 작품이다. <밀회> <올리버 트위스트> 등 소박한 규모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린은 <콰이강의 다리> 이후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등 대작영화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개인사, 이국을 무대로 한 대자연의 스펙터클 등 <콰이강의 다리>에는 이후 린의 영화에서 보이는 원형적인 특징이 다수 목격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중 스펙터클 중심의 영화가 빠질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의 함정을 돌파하기 위해 인물에 입체감을 더하는 린의 솜씨는 곱씹어볼만하다. 

영화는 2차 대전 당시 버마의 포로수용소를 무대로 영국군 니콜슨 대령과 일본군 사이토 소장, 미국군 소령 쉬어스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들에겐 전쟁에 임하는 거대한 명분도 승패에 대한 집착도 없다. 오로지 개인의 영달과 안위에만 관심 있을 뿐. 이를 ‘전쟁에 임하는 그들 각자의 강박적 태도’라고 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포로 처지에도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일념 하 일본군 지휘 아래 다리를 건설하는 니콜슨의 헌신도, 니콜슨이 자신보다 뛰어난 교량건설자라는 점 때문에 남 몰래 눈물을 곱씹는 사이토의 좌절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했다 다리 폭파를 위해 다시 돌아오는 쉬어스의 결심도, 극중 군의관의 대사를 빌리자면 모두 “미친 짓”으로 수렴된다.

<콰이강의 다리>는 세 주인공의 강박적인 행동이 불러온 비극을 통해 인간성의 극단을 탐구한다. 특히 전쟁이 아닌 철저히 개인에 초점을 맞춘 전쟁영화라는 점에서 거대한 이미지를 넘어서는 미시적 관점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린의 소박한 영화를 좋아했던 이들은 대작이란 이유로 <콰이강의 다리>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심리적 접근을 통해 긴장감을 자아내는 솜씨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변한 게 없었다. 그래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데이비드 린의 영화를 일러 ‘심리적 스펙터클’(psychologically spectacle)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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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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