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슬이> 박철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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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서번트를 가진 9살 소녀의 홀로 서기를 다루는 <다슬이>는 이른바 ‘무공해 청정영화’다. 이 영화가 장편데뷔작인 박철순 감독은 여느 신인감독들과는 달리 자극적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그것은 감독의 개인적인 경험이 절대적으로 작용해 나온 영화적 결과물인 까닭이 크다.

초등학교 때 동네 바보 형을 놀린 게 맘에 걸려 <다슬이>를 만들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곱 살 아이들을 데리고 단편영화 <강낭콩 싹 틔우기>(2008)를 만든 적이 있다. 나의 초등학교 1,2학년 당시의 기억이 소재였다. 첫 장편영화를 통해 내가 원했던 건 사춘기 직전의 동심이었다. 내 안에 있는 깨끗한 모습으로 첫 장편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 같은 게 예전부터 있었다. 그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반추해보니 동네 형을 놀린 게 굉장히 마음에 걸렸다. 그 형 별명이 사마귀였다. 가방을 어깨에 제대로 못 매고 절뚝거리면서 다녔기 때문이다. 난 그게 자폐증이나 발달장애 때문이 아니라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만 알았다. 당시는 그런 모습이 이상했다. 근데 수학은 엄청 잘했다. 그 형과 친하게 잘 지냈는데 내가 사춘기가 되자 너무 창피했다. 왜 자신과 안 놀아주느냐며 나를 쫓아다니기에 욕을 했다. 그런 행동이 나이를 먹으면서 되게 미안하더라. 그 기억 때문에 한참동안 너무 힘들었다. 

그럼 <다슬이>는 일종의 반성문인가?
영화로 미안한 마음을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찾기 위해 연관을 지었던 게 <레인맨>(1988)이었다. 자폐증이면서 수학에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더스틴 호프만의 캐릭터가 동네 형과 다르지 않았다. ‘서번트 savant’란 용어는 자폐증이지만 경이로운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15명 중 5~6명이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서번트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서번트에 대해 많이 연구하다보니 그 형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많이 가셨다. 자기반성의 의미가 저절로 생기더라. 주변에서는 죄책감을 가지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서 많은 분들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역시 의미 있는 일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동네 형 이야기를 했는데 극 중 다슬이는 수학이 아니라 미술에 재능을 보인다.
<레인맨>이 수학에 재능 있는 서번트를 다뤘고 서번트는 아니지만 음악에 관한 부분은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가 있어서 차별을 주기 위해 미술을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극 중에 나오는 그림을 직접 그리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되지 않아 미술감독님이 작업하셨다.

다만 다슬이의 재능을 보여주는 정도로만 그림을 보여주지 그 이상으로 노출하지는 않는다.
대개의 영화라면 더 많이 보여줬을 텐데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영상에 신경을 쓴 측면이 있다. 화면이 예쁘게 보여야 다슬이도 관객들에게 더 예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에 재능이 있는 아이의 특성상 직접적인 그림은 아니지만 이를 이미지화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있었겠다. 
미술 서번트는 그림 자체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도 의미가 존재한다. 서번트에 대해 연구하면서 존경심을 느낀 게 이들은 뭘 바라고 예술행위를 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자기만족을 위해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 사람들의 눈을 보면 정말 멋있다. 다슬이도 오로지 미술활동과 연관될 때만 행복해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강하다. 주변의 희생이나 도움 없이도 이 험한 세상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슬이가 우유에 밥을 말아 이를 손으로 집어 하늘로 던져 마치 눈이 오는 것처럼 표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행위도 그림에 속한다는 거다. 

그림 노출을 최소화하는 맥락처럼 영화 역시 다슬이의 시선으로 진행되다보니 주변인물도 많지 않고 별 다른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러티브가 거의 없다. 나중에 다 가지치기를 했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극 중에 다슬이 친삼촌이 나온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친삼촌이 아니었다. 어촌 마을에 다방이 많지 않나. 그들 중에 삼촌이 짝사랑했던 여자 사이에서 나온 아이였다. 다슬이는 그렇게 해서 버려졌는데 이런 줄기를 가지고 콘티까지 진행을 하다 보니 내가 재미가 없더라. 서번트와 관련한 많은 영화를 보면서 느낀 아쉬움이 있었다. 주변 조력자들의 고통과 희생을 부각하고 결국엔 이들이 화합하는 이야기가 뭔가 ‘절충’한 듯해 보였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지만 난 다슬이에게만 집중하는 게 목표였다.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러티브를 최소화하는 게 필요했다. 첫 영화이기 때문에 어떤 색깔을 확실히 갖고 싶었다. 하얀색 영화를 만든다고 했으니까 완벽한 하얀색으로 만들기 위해서 다 쳐내버렸다. 그 때문에 다슬이 캐릭터가 더 살아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다슬이 주변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 없애버렸지만 아이의 행동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몰라서 영화 보는 내내 긴장감이 생기더라.
그렇다. 내러티브를 절제했기 때문에 다슬이 캐릭터로 관객들이 영화를 보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자폐아의 특징을 어느 정도 이용했다. 어떤 행동을 할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보는 사람은 긴장이 된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장치가 있다. 다만 끝에 가면 왜 그런지는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슬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친한 친구의 조카 이름이 다슬이다. 어릴 때부터 그 이름을 들어왔다. 내 단편영화나 시나리오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 이름은 다 다슬이다. 어린 소녀들은 다 다슬이지. (웃음)  

다슬이를 연기한 유해정이라는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정말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현장에서 (유)해정이가 연기하는 걸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현장의 그 어느 누구도 해정이가 이렇게 확실하게 연기할 수 있을지 전혀 몰랐다. 처음 만났을 당시에 해정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지금은 6학년인데 정말 많이 컸다. 3학년 때는 정말 아이 같았거든. 다만 이미지가 세고 무엇보다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해정이 캐스팅에 대해 주변의 반대가 엄청 심했다. 이 영화 전에는 방송 단역을 많이 했다. 당시 제작부의 소개로 만난 경우인데 부리부리한 눈 밖에는 안 보였다. (웃음)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찬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긴장을 했다. 다슬이 캐릭터는 해정이처럼 센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 밀어붙였다.

현장에서의 연기 지도는 어떻게 이뤄졌나? 
상황을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그림을 보여줬다. 극 중 다슬이가 울다가 뚝 그치는 연기가 있다. 처음에는 그 연기가 안 나왔다. 그래서 내가 해정이와 함께 보드게임을 하면서 막 웃다가 표정을 확 바꾸었다. 그리고 촬영할 때 보드게임 당시의 경험을 상기시켰더니 연기가 나오더라. 나와 해정이가 서로 지내면서 찾은 방식이다. 친해지고 마음이 통하면서 서로의 성향에 맞춘 거다. 누구나 걱정을 했는데 해정이가 현장에서 너무 잘해줬다. 또 하나 예를 들면, 대나무를 잡고 흔드는 장면은 다슬이의 감정이 실려 있어야 했기 때문에 20번 정도의 테이크를 생각하고 스케줄을 길게 잡았다. 근데 해정이가 경이롭게도 단 두 컷에 해냈다. 앞으로 더 이상 아역 원 톱 영화는 못할 것 같다. 해정이와 같은 아역 배우를 만나기 힘들지 않겠나. (웃음)

사실 데뷔작을 준비하는 감독의 마음가짐이라면 많은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좀 더 자극적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데 <다슬이>에는 그런 의지가 읽히지 않아 신선했다.
당연히 관객의 시선을 끌고 싶다. 관객이 많이 들어서 다음 작품을 수월히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자극적인 걸 좋아하지만 첫 영화가 내게 주는 느낌은 경건함이었다. 몇 편의 단편 작업을 통해 영화의 성격에 따라 나를 더욱 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몰랐던 내 안의 감정이나 재능을 깨달으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영화는 나를 보여주는 경건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의 첫 시작은 무조건 내 안의 깨끗함을 드러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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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슬이>(The Lovely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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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번트 증후군 Savant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 뇌 장애를 가진 이들 가운데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레인맨>(1988)에서 자폐증 환자이지만 숫자를 모조리 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더스틴 호프만의 역할이 정확히 이에 해당한다. 박철순 감독의 <다슬이>는 말하자면, 한국판 <레인맨>이다. 자폐증이지만 그림 실력이 뛰어난 서번트 증후군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캐릭터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은 <레인맨>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슬이(유해정)는 할머니, 삼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인적 드문 어촌 마을인데다가 또래 친구도 없고 할머니와 삼촌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폐증이 심한 다슬이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심심할 새가 없다. 낮에는 마을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저녁에는 눈사람이 나오는 TV만화를 보느라 정신이 팔린 까닭이다. 9살 소녀의 미술치고는 꽤나 근사하지만 이웃들의 눈에는 담벼락을 어지럽히는 눈엣가시로 비칠 뿐이다. 다슬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크레파스 대신 페인트를 가지고 온 동네에 칠을 하기 시작한다.

<레인맨>을 비롯해, 직접적으로 서번트 증후군을 다루지 않지만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아이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 핏줄 영화로 이어지는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 <어거스트 러쉬>(2007) 등은 재능의 발현을 중심에 두고 이를 가능케 하는 주변인들의 노고에도 고루 시선을 분산한다. <다슬이>는 좀 차별된 경우인데, 다슬이의 재능을 의도적으로 폭발시켜 감동을 자아내지도, 이를 돕는 친지들의 자기희생을 칭송하는 낯 뜨거운 전략도 취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슬이의 재능 주변으로 무성하게 꽃을 피울만한 인물과 에피소드는 최소화한 채 오로지 다슬이에만 집중한다. 그녀를 소개하는 첫 장면을 제외하면 (다슬이가 등대의 벽에 그림을 그리자 감시원이 제지하고 이에 맘 상한 그녀가 마구잡이로 덤벼듦으로써 캐릭터가 설명된다.) <다슬이>는 온전히 그녀의 시선만 좇을 뿐이다. 다슬이의 눈과 마음이 가는 대로 관객 역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연출의 의도는 내려다보는 동정이 아닌 수평적인 이해를 전제한다. 거리를 둔 바라보기가 아니라 다슬이가 되어 그 처지를 직접 경험해보자는 거다.

여기에 바로 <다슬이>의 진가가 존재한다. 그런 불편한(?) 조건으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일방적인 동정심 따위 철저히 배제한다. 극 중 다슬이의 입장이 되어보면 세상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다. 영화의 배경은 거친 파도가 난무하는 어촌 마을이지만 다슬이에게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드넓은 캔버스가 되니 그 위에 다양한 상상의 이미지들을 그려 넣을 수가 얼마나 좋은가. 다슬이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은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색깔이 넘실대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데 벽에 낙서하지 말라며 불평을 토로하는 이들의 각박함이라니.

이런 세상의 ‘다슬이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결국 응원이다. 영화는 결국엔 홀로 남겨지는 다슬이의 모습을 비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결코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는다. 여전히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는 모습에서 흐뭇해지는 건 우리 자신이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박철순 감독이 다슬이를 대하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한 편으로 감독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슬이를 연기한 유해정에 대한 응원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유해정은 <다슬이>가 영화 데뷔작이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다. ‘천재 배우’라는 홍보문구가 한낱 수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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