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Le Quattro Vol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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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영화 팬들에게 <네 번>은 전혀 생소한 영화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의 유로파 시네마 레이블(Europa Cinemas Label) 상을 비롯해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바로 한국의 이광모 감독이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2010년의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힌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이탈리아 출신의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의 두 번째 연출작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장편 데뷔작 <기프트 Il Dino>(2003)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전통에 놓인 작품이라 할만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알려진 칼라브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를 통해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면서 날로 황폐해지는 마을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호평을 받은 것이다. 이때 프라마르티노 감독은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칼라브리아를 돌아다니면서 비보 발렌티아 지방의 목동과 숯장수를 만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시작된 작품이 바로 <네 번>이다.

<네 번>은 제목만 가지고는 이야기나 성격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부제인 ‘늙은 목동, 아기 염소, 전나무와 숯’이 좀 더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네 번>은 늙은 목동, 아기 염소, 전나무, 숯이 각각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염소를 관리하는 늙은 목동은 지병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와 동시에 염소가 태어난다. 이 아기 염소는 무리를 빠져나와 길을 헤매던 중 전나무 아래서 동사하고 만다. 아기 염소의 시체를 자양분 삼은 전나무는 무성하게 자라 사람들의 눈에 띄고 곧 벌목된다. 그리고 벌목된 전나무는 조각조각 해체되어 숯이 되고 사람들은 이 숯을 피워 따뜻하게 겨울을 난다.   

별스러운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네 개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네 번>은 탄생과 죽음이 연계된 자연 순환의 이치에 관한 영화가 된다. 늙은 목동은 죽고 없지만 살아생전 보살폈던 염소가 새끼를 낳아 인간과 동물 간의 삶과 죽음의 선이 연결되고, 동사한 아기 염소는 전나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동물과 식물간의 조화가 이뤄지며, 벌목업자에게 팔려간 전나무가 오랜 시간 타서 숯으로 재탄생되면 식물과 광물 간에도 생과 사는 순환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피타고라스는 오리엔탈 철학에 영향을 받아 영혼의 윤회를 믿었다. 칼라브리아는 이 윤회 사상에 깊게 물들었다. 그곳에서 자연의 질서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거기서는 모든 존재가 영혼이 있다.”고 말했다.

하여 <네 번>은 별개의 존재처럼 느껴지는 인간과 동물과 식물과 광물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순환을 이루는 자연의 리듬을 통해 우주의 조화를 음미한다. 그런 감독의 태도에는 인간이 자연 앞에서 가져야 할 겸손함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을 우주의 중심이 아닌 자연을 이루는 한 요소로 바라보는 겸양의 자세가 배어있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독단에 빠지지 않고 인간을 주인공이 아닌 자연의 한 일부로 묘사하기 위해 고민했다. 인간과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에 균형을 잡고 싶었다.”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 감독의 말처럼 <네 번>은 자연파괴가 일상화된 지금 더욱 더 가치 있는 영화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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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plus
47호

삼인삼색의 작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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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지자.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지만 이 세계에는 엄연히 그런 분류법이 존재한다. 그래서 예술영화는 상대적으로 관객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예술영화에도 화제작이 존재한다. 10월의 개봉작을 살펴보면 그렇다. 지금 소개하는 3편의 작품은 여느 상업영화보다도 더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비우티풀>(10/13 개봉)은 <21그램>(2003) <바벨>(2006) 등으로 이름을 알린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새로운 영화다. 이냐리투는 에피소드식 전개를 통해 다국적 언어와 문화로 이뤄진 영화 만들기를 즐겼는데 이번엔 그런 트레이드마크를 버렸다. 매번 세계 각지를 돌며 그 자신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권의 배우와 연이어 영화를 만들다보니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는 거다. 하여 <비우티풀>의 카메라는 철저히 바르셀로나를 떠나지 않고 암으로 인해 고통 받는 욱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의 사연에만 집중한다. 근데 이 사내가 시한부인생이다 보니 뭔가 의미 있는 일이 하고 싶어진 모양이다. 문제는 불법이민자들을 상대로 가판장사나 ‘짝퉁’ 공장을 연결해주는 무허가 인력브로커인데다가 아내마저 제정신이 아니라 가족부양도 힘겨운 탓에 제 삶 하나 간수하기도 쉽지 않다는 거다. 이건 좀 처절한 얘기다. 근데 그 처절한 연기를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다. 증명사진처럼 그의 얼굴만 떡하니 박아 넣은 포스터를 보라. 한국 수입사 측의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이지 않는가. 

<네 번>(10/20)을 연출한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는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지난 해 유수의 영화평론가들이 꼽은 베스트 목록에서 이 영화는 가장 많이 언급됐다. 얼마나 대단하기에? 뭐, 혹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네 번>의 부제는 ‘늙은 목동, 아기 염소, 전나무와 숯’이다. 그리고 이들이 출연진(?) 전부다. 그러니까 대사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게 어떻게 영화일까 싶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 거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건 탄생과 죽음이 연계된 자연 순환의 이치다. 늙은 목동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그와 동시에 염소가 태어난다. 이 아기 염소는 길을 잃고 전나무 아래서 잠들다 동사한다. 이 전나무는 죽은 염소를 자양분 삼아 무성하게 자라고 사람들은 이를 잘라 숯을 만들어 따뜻하게 겨울을 난다. 거두절미하고, 인간은 자연에 속한다. 자연 파괴가 일상화된 지금 <네 번>은 보는 이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이다.

<레스트리스>(10/27)는 굳이 비유하자면, 구스 반 산트의 <러브스토리>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애나벨(미아 와시코우스카)과 첫 눈에 반해 그녀와 사랑에 빠진 에녹(헨리 호퍼)이 등장하고, 그 위를 수놓는 존 매카트니, 엘리엇 스미스 등 잔잔한 록 넘버가 이들의 눈물겨운 사연을 한 편의 동화로 승화시킨다. <라스트 데이즈>(2005) <밀크>(2008)와 같은 전작을 떠올리면 다소 말랑말랑한 모양새이지만 구스 반 산트의 감각적인 이미지 연출은 여전하다. 빛바랜 필터를 통과한 듯한 <레스트리스>의 장면은 하나같이 지나간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듯 아련하게 다가온다. 다만 그 추억이 마음을 울리는 건 사랑과 죽음 그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인데, 안 그래도 이 영화는 지난해 사망한 데니스 호퍼를 기리며(in memory of)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의 아들 헨리 호퍼가 에녹을 연기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레스트리스>는 삶과 죽음, 극과 현실을 초월하는 러브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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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clare
201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