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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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는 40년 가까운 연출자 생활 동안 모두 89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중 12편이 상영되는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에는 <아내여 장미처럼>(1935) <오누이>(1953) <산의 소리>(1954) <부운>(1955)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 <흐트러지다>(1964)와 같은 잘 알려진 걸작을 비롯해 해외에서 더 좋은 평을 받은 <엄마>(1952), 가족들 각자가 마음을 숨긴 채 소바를 먹는 명장면으로 기억되는 <번개>(1952), 인생의 씁쓸함이 짙게 표현된 <만국>(1954),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출연해 게이샤의 애환을 담은 <흐르다>(1956), 나루세 미키오의 페르소나 다카미네 히데코의 절정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방랑기>(1962), 그리고 유작 <흐트러진 구름>(1967)까지, 모두 12편이 상영됩니다.

나루세 미키오는 ‘가족의 스펙터클’, 즉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가족 구성원의 속마음을 일상의 풍경으로 끄집어낸 연출로 유명합니다. 나루세 미키오 영화 속 인물들은 갈등이 극에 달한 가족도,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남녀도 웬만해선 말이 없습니다. 격렬한 몸짓도 사치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은 겉에서 보면 잔잔하게 일렁이는 수면 같지만 그 아래에는 엇갈리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진흙탕을 이루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나루세 미키오가 다루는 사건은 정적인 형태를 취하지만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적인 인간관계에 침전한 미묘한 의미가 뚜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루는 소재 자체가 가족(<아내여 장미처럼> <오누이> <산의 소리> <흐트러지다> 등)이나 남녀의 사랑(<부운>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흐트러진 구름> 등)과 같은 극히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풀숏으로 보게 되면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지만 나루세 미키오는 여기에 클로즈업과 같은 시선의 연출로 관계의 이면에서 꿈틀거리는 극세사 같은 감정을 영화화합니다.

그러다보니 나루세 미키오가 보여주는 감정의 스펙터클에는 결코 해피엔딩과 같은 완결된 형태의 마무리라는 게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생긴 보험금으로 갈등을 겪는 <번개>의 가족들은 본심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식사를 마쳐야 하고, 전쟁 중에 만난 <부운>의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은 2차 대전 직후 일본의 절망적인 시대상 속에서 비극적으로 끝맺음될 수밖에 없으며, 남편을 잃은 후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의 그녀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홀로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나루세 미키오가 보건데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결코 관계의 보호막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인생을 살아가는데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뿐입니다. 하여 가족도, 남녀 간의 사랑도 모두 쓸쓸하고 애잔한 존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풍경을 품은 인물은 바로 다카미네 히데코입니다. 모두 15편을 함께 작업했던 다카미네 히데코는 나루세 미키오 영화의 여성상을 대표한 배우로 유명합니다. 그녀에게는 감정의 진폭이 아닌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확실히 나루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어떤 역경과 갈등에도 굴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나루세 영화 속 여인들 특유의 강한 생명력이 다카미네 히데코에게서 좀 더 두드러지는 것입니다. 아마 이 점이 가족 이야기를 공유해온 오즈 야스지로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일 겁니다. 오즈 야스지로가 주로 노부부의 회한을 통해 당대 가족의 삶을 보여줬다면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의 인내를 스크린에 새겨 넣은 것이지요. 안 그래도 나루세 미키오는 ‘여성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 만큼 여자의 감정을 포착하는데 남다른 연출력을 보여줬습니다. 다만 오즈 야스지로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쇼치쿠의 가마타 스튜디오 소장 기도시로는 “우리에게 두 명의 오즈는 필요 없다”라는 얘기를 했다죠.) 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그 가치를 인정받은 감독입니다. 이번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역시 그 가치를 확인할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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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2011.7.15~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