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우주를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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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동안 기타쿠슈를 다녀왔습니다. 기타쿠슈 공항을 나오니 출국장에서 가장 먼저 맞이하는 사람은, 아니 캐릭터는 <은하철도999>의 메텔 공주였습니다. 사람 크기의 메텔 공주 모형이 저에게 손을 흔들어주더라고요. 음, 연고가 없는 기타쿠슈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을, 아니 캐릭터를 만나니 무척이나 신기하면서도 반갑더군요. 우연인지, 기타쿠슈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고쿠라 시내로 들어와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은하철도999> 그림이 새겨진 도로 위의 모노레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인솔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은하철도999>의 작가 마쓰모토 레이지가 기타쿠슈 출신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시가 선도적으로 나서 기타쿠슈를 <은하철도999>의 도시로 이미지화하기 위해 바람몰이를 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기념관까지 건립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니라고 하네요.

기타쿠슈는 일본의 유명한 철강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2차 대전 당시에 미국은 일본이 군사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만들게끔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원자폭탄을 겨냥한 곳으로 기타쿠슈를 지정할 정도였다네요. 근데 날씨가 안 좋아 시야가 확보되지 못해서 대신 나가사키로 목적지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기타쿠슈가 철강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피해가 거의 없는 곳이기 때문이랍니다. 지상의 도로 위를 달리는 모노레일이 오사카에 이어 두 번째로 건설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특수성이 반영된 탓이 크겠죠. 그게 벌써 30년도 더 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근데 기타쿠슈 도로를 걷다가 지상 위의 <은하철도999> 모노레일이 달리는 광경을 보면 마치 우주를 달리는 ‘은하철도999’가 연상이 되더군요. 그래서 일부러 해가 진 저녁 늦은 시간에 모노레일이 잘 보이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자니,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달리는 모노레일은 영락없는 은하철도999더군요.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마쓰모토 레이지로 자연스럽게 빙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쓰모토 레이지가 어떻게 <은하철도999>를 상상하게 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이 되더군요. 물론 마쓰모토 레이지가 어렸을 때 기타쿠슈의 모노레일에는 은하철도999의 그림이 새겨져있지는 않았겠지만 우주를 날아다니는 열차를 머릿속에 그리기는 어렵지 않았겠죠. 도시가 상상력을 키우게 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도시의 조형 역시 그 지형에 적합한 형태로 지었을 때 진가가 발휘된다는 것을 이번 기타쿠슈 여행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서울을 물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청계천을 인위적으로 조성했다죠. 또 누군가는 서울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며 새로운 조형물 짓기에 여념이 없다고 하죠. 그런 상황에서 어린 친구들이 배울 수 있는 건 하늘을 나는 열차가 아니라 멀쩡한 빌딩을 파괴하는 불도저일 것입니다. 지금의 서울 시장이 리틀MB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그런 도시의 역사를 반영한 것일 테죠. 음, 쓰다보니까 우울한 얘기로 흘렀는데 기타쿠슈 여행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재미 있는 시간이었답니다. 계속 포스팅 올리도록 할게요. 근데 밑에 사진은 우주를 나는 은하철도999를 연상하기에는 거리가 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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