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赤壁之戰)


사용자 삽입 이미지서기 208년, 위, 촉, 오 삼국이 대립하던 중국 한 왕조 말기 혼란의 시대. 위나라 조조(장풍의)는 천하를 통일할 꿈에 젖어 있다. 이미 대륙의 반 이상을 차지했으며 촉나라 유비 군마저 물리친 상황. 손권(장첸)의 오나라 인근으로 피난 간 유비 군은 남은 병력을 추슬러 위나라에 대응하려 한다. 이를 위해 오나라와 손을 잡으려 하지만 전쟁을 기피하는 손권 때문에 일이 쉽지 않다. 유비는 책사 제갈량(금성무)을 보내 손권의 마음을 바꿔보려 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결국 제갈량은 오나라 명장 주유(양조위)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마침내 손권의 마음을 돌려 동맹을 맺기에 이른다. 때마침 조조의 백만 대군이 적벽으로 쳐들어오고 이에 맞서 촉과 오는 십만 대군을 이끌고 적벽으로 향한다.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하 <적벽대전>)은 오우삼 감독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영웅본색>(1986) 이후 촬영에 들어가려 했으나 거대한 예산과 부족한 기술력, 그리고 원활하지 못한 중국 로케이션 문제로 20여 년 가까이 기다려온 꿈의 프로젝트였다. 또한 <첩혈쌍웅2: 첩혈속집>(1992) 이후 16년 만에 홍콩으로 돌아와 작업한 컴백 작품이고,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역사극이자 한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다섯 국가가 참여한 제작비 800억 원의 아시아 최초 초대형 블록버스터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적벽대전>은 오우삼에게 한 편의 영화를 넘어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만한 작품이다.

<적벽대전>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전쟁이자 나관중 원작 <삼국지연의>의 하이라이트인 ‘적벽’ 부분에 집중한다. 총 2부로 나뉘어 개봉될 이 시리즈에서 1부 <적벽대전>은 말 그대로 거대한 전쟁의 시작, 즉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바로 전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오나라 손권 군의 제일 명장 주유와 촉나라 유비의 최고 지략가 제갈량이 손잡고, 천하를 통일하겠다며 적벽의 해상으로 쳐들어온 위나라 조조의 80만 대군과 맞선다는 이야기가 1부와 2부의 이야기다. 이번에 개봉하는 1부 <적벽대전>은 아직 본격적인 적벽의 대전이 벌어지기 전 육상전을 비중 있게 다뤘다. 촉과 오의 연합군이 ‘구궁팔괘진’으로 위의 기선을 제압한 후 적벽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끝을 맺는 <적벽대전>은 시쳇말로 2부의 예고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쟁의 스펙터클을 전시하기보다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주요 캐릭터 묘사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화끈한 전쟁 장면을 기대한 관객은, 그래서 1부가 심심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역으로 말한다면 <적벽대전>은 시리즈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는 주인공으로 으레 기대할 법한 유비, 관우, 장비 같은 친숙한 캐릭터나 이인항 감독의 <삼국지: 용의 부활>의 조자룡 같은 장수 대신 지략가인 주유와 제갈량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확연해진다. 특히 <적벽대전>의 경우, ‘주유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주유의 ‘원맨쇼’가 두드러진다.(2부에서는 최소 1부보다는 두드러진 제갈량의 활약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일찍이 주윤발이 캐스팅됐다가 하차, 양조위로 바뀌면서 주유는 장수의 모습에서 부드러운 지략가의 모습으로 자연스레 변모했다. 결과적으로는 치열하고 처절했던 적벽대전을 소재로 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의도에 더욱 맞아떨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전쟁을 다루고 있다 보니 <적벽대전>에서 두드러지는 감정은 오우삼 감독의 영원한 테마, 남자들 간의 우정이다. 원작에서는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주유와 제갈량이지만 극중 서로에게 호의를 품은 사이로 등장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영화는 두 캐릭터의 지략과 인품, 그리고 관계를 보여주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조조의 천하통일 야욕을 뿌리치기 위해 손을 잡은 주유와 제갈량의 모습에는 <영웅본색> <첩혈쌍웅>에서 경험한 오우삼 영화 특유의 세계관이 잘 녹아들어가 있다.

오우삼 감독은 역사(혹은 판타지)를 소재 삼은 대형 블록버스터영화란 점에서 <반지의 제왕>과 비견되는 <적벽대전>을 두고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었다. “영상을 다루는 기술이나 CG를 다루는 능력으로 볼 때 영화의 질감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단순히 액션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동양의 정신이나 문화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원작 <삼국지연의>에서 일부 묘사만 가져오고 대부분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역사적 사료에 기반을 두어 구성한 건 이 때문이다. <삼국지연의>가 구전되고 후세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너무 신화화된 까닭에 인간에 대한 묘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오우삼은 <적벽대전>이 신화로 작용하는 걸 원치 않는다. 신화에는 인간이 다가서지 못할 경외의 감정이 숨겨져 있기에 자칫 전쟁을 옹호하고 승자를 영웅시하는 논리를 경계한 탓이다. 적벽대전을 다루면서 굳이 두 편으로 나눠 한 편을 캐릭터 묘사에 통째로 할애한 것이나, 군주나 장수 대신 지략가인 주유와 제갈량을 내세운 의도는 어렵지 않게 설명이 된다. 이에 덧붙여, <적벽대전> 2부가 궁극적으로 반전(反戰)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오우삼 감독은 내한 인터뷰에서 “관객들에게 적벽전쟁의 참혹함을 지옥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여주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적벽대전>에는 오우삼이 과거 구축한 홍콩 누아르의 영기를 넘어서는 지점이 존재한다. 홍콩 누아르 시절에 보여준 의리와 <적벽대전>에서 드러나는 의리 사이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홍콩 누아르의 그것이 철저히 자신이 속한 남자라는 세계 안에서만 기능했다면 <적벽대전>은 그 울타리를 훨씬 뛰어넘어 전 세계를 겨냥한다. (서양 관객을 고려해 최대한 등장인물을 줄여 몰입도를 높였다고 오우삼은 말했다.) 이는 오우삼이 홍콩(을 넘어 아시아) 귀환 작품으로 아시아 초대형 블록버스터 <적벽대전>을 택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원작보다 사실에 기초해 신화의 기운을 최대한 덜어내려 했다지만 오우삼은 오히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신화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이는 많은 이야기를 남겨둔 2부에서 곧 밝혀질 것이다.


Tip! 숫자로 보는 <적벽대전>

4 4년. 영화 제작 기간. 2004년 여름, 서안(西安)이 촬영 주 무대로 결정되면서 본격적인 제작 돌입.
5 5개국. <적벽대전> 제작을 위해 참여한 아시아 국가 수. 홍콩에 기반을 둔 Three Kingdoms 제작. 한국의 쇼박스, 일본의 Avex Entertainment Inc, 대만의 CMC Content Corporation, 중국의 China Film Group Corporation 투자.
18 18년. 오우삼 감독이 <영웅본색>(1986) 이후 2004년까지 <적벽대전>을 영화화하기 위해 기다린 시간.
35 35개국. 개봉 전 <적벽대전>이 판매된 국가의 수.
36 36미터. 적벽 장면을 위해 실제 제작한 배의 높이.
40 40피트. 장대한 스케일의 적벽을 위해 서안에 재건한 언덕의 높이.
300(+) 300필 이상. <적벽대전>에 사용된 실제 말의 수.
2,000 2,000척. 적벽에 주둔한 위나라 조조 군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띄운 실제 배의 수.
2,000(+) 2,000명 이상. <적벽대전>에 참여한 기본 스탭 숫자. 세트 공사를 위한 인부와 마부 등 단기 계약직까지 포함시킬 경우, 3,000명 이상으로 추정.
100,000 10만 대군. 촉과 오 연합군이 적벽에서 위의 백만 대군과 맞서기 위한 군사의 수
1,000,000 100만 대군. 위나라 조조가 적벽대전을 위해 이끌고 온 군사의 수.
80,000,000 8천만 달러. <적벽대전> 총 제작비. 우리 돈으로 약 800억 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필름2.0 395호
(2008.07.15)

<상성: 상처받은 도시>(傷城: Confession Of Pain)


5월의 홍콩은 덥다, 라는 데 생각이 미치기도 전 바라본 고층빌딩이 즐비한 풍경은 30도를 훌쩍 넘긴 날씨를 한방에 잊게 해줄 만큼 시원했다. <무간도> 시리즈 이후 3년 만에 다시 뭉친 유위강, 맥조휘 감독과 양조위의 신작 <상성: 상처받은 도시>(이하 <상성>)은 빅토리아 파크에서 내려다본 시원스러운 풍경으로 문을 연다. 그런데 두 감독이 바라보는 홍콩의 화려한 모습은, 애절하게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캐럴과 느리게 이동하는 카메라 움직임 속에 쓸쓸함을 자아낸다. 외부인과 내부인의 시선 사이에 생긴 관점의 차이일까. 아니면 이게 진짜 홍콩의 모습일까.

지난 5월 13일과 14일, 이틀간에 걸쳐 <상성>의 주연배우 양조위와 유위강, 맥조휘 감독의 기자회견이 홍콩에서 열렸다. 첫 장면과 달리,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과장된 동작을 섞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유위강 감독과 회견장에 들어서자마자 “한국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한국을 찾아뵙겠다”라며 환하게 미소 지은 양조위. 본색을 숨긴 채 다른 삶을 사는 <무간도>(2002)의 유건명(유덕화)과 진영인(양조위)이 그들 위에 겹쳤다면 과장일까?


상처 받은 도시의 상처 받은 남자들


<상성>의 유위강, 맥조휘 감독은 <무간도>에 이어 다시 한 번 깊은 시름에 잠긴 두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은 오랫동안 형사로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절친한 선후배 사이.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아방은 그 충격을 못 이겨 형사생활을 접고 술에 절어 산다. 유정희는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고 결국 아방은 사립탐정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유정희의 장인어른과 집사가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 미심쩍게 여긴 유정희의 아내 숙진(서정뢰)은 남편 몰래 아방에게 사건을 재수사해줄 것을 요구한다. 비밀리에 수사에 들어간 아방은 몇 가지 단서를 포착하고 이 사건에 유정희가 연루되었음을 알게 된다.

거대한 운명에 휘말려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만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상성>과 <무간도>는 닮아 있다. 하지만 “가장 전형적인 홍콩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맥조휘 감독의 바람처럼 <상성>은 도시와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10년간 홍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침체의 연속이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기점으로 홍콩 사람이 떠난 자리에 본토 동포가 대거 유입됐지만 상이한 환경에서 자란 탓에 오해가 빚어졌고, 2003년 홍콩을 할퀴고 간 사스의 창궐은 오랜 시간 소통단절을 불러왔다. ‘상처 받은 도시’를 뜻하는 <상성>은 홍콩의 사연을 유정희와 아방이 처한 상황과 쓸쓸한 감정을 도시의 풍광 속에 담아낸다. 유위강의 카메라는 젊음의 거리 소호에서 옛 홍콩을 머금은 금정까지, 중심 주룽반도에서 변방 마카오까지, 홍콩에서 담아낼 수 있는 모든 풍경을 훑는다. 특히 영화의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초반 야경 장면의 경우, 고공 촬영을 금지한 정부를 설득해 홍콩영화사상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감정을 공간 속에 구현한다는 점에서 <상성>은 코넬 울리치로 잘 알려진 윌리엄 아이리시의 추리소설 <환상의 여인>이나 <상복의 신부>를 연상시킨다. 축축한 재즈가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1940~50년대 뉴욕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고독한 도시인의 정서를 잡아낸 서술방식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런 상관성 덕분인지, 이 영화는 추리적 요소가 유난히 강하게 부각되는 작품이다. 사건을 쫓는 자와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의 대결구도 속에 ‘누가 죽였을까?’가 아닌 ‘왜 죽였을까?’에 집중하는 이야기 방식이 그렇고, 극중 인물의 사연이 하나하나 단서로 쌓여가며 마지막 순간, 한방에 비밀이 폭로되는 구조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추리극의 익숙한 구조를 차용한 듯 보이지만 <상성>의 재미는 그 구조를 비트는 데서 나온다. 극 초반에 범인의 정체를 노출하고 그런 가운데서 범인의 사연을 추리해가는 것. 이는 추리를 활용한 영화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상황에서 관객에게 새로운 충격을 제공하려는 맥조휘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보기에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범인을 미리 밝힌다는 것은 장르적으로 신선한 시도임에는 분명하지만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추리극은 관객의 흡인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상성>의 경우, 범인을 알게 된 관객들이 그 뒤의 사연을 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관객이 시선을 놓지 않을 만한 전개로 끌고 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유위강의 말처럼 중반 이후 <상성>의 극적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또한 유정희와 아방의 비밀이 밝혀지는 결말부 역시 <무간도>로 기대치가 높아진 관객의 기대감을 채우기엔 2% 모자란 감이 있다.


양조위, 악한이 되라


<상성> 역시 요즘 유행하는 반전을 쓰고 있다. 하지만 반전을 위한 영화가 아닌, 철저히 영화에 복무하는 반전을 만들어냈다는 건 신선하다. 유위강과 맥조휘 콤비는 기존 홍콩영화에서 무한 반복했던 요소뿐 아니라 장르영화의 습관적인 룰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데 인색하다. <무간도>는 그런 이들의 방식이 가장 최대치로 발휘된 경우였다. 그리고 <상성>은 <무간도>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맥조휘의 표현을 빌자면 “스토리와 감정 선의 변화에 더욱 신경을 쓴 영화”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유정희로 분하는 양조위의 변신이다. 20년이 넘도록 양조위의 연기를 지켜봐왔던 유위강은 유약한 이미지의 그에게서 악한 모습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양조위의 연기 중 <상성>보다 악랄하고 간사한 건 없었다. 그런 역할을 맡겨 놓고 흥분했다”는 유위강의 호언은 영화 속에서 그대로 증명된다. 단순한 악의 모습이 아닌 악한 행동마저 정당성을 획득하는, 기존 단세포적 악한과 사뭇 다르게 유정희를 묘사한 것이다.

인물을 통해 스토리의 변화를 주었다면 감정 선의 변화를 가져온 건 이제는 변한 홍콩 사람들의 감성이다. 이전까지 우리가 ‘홍콩 누아르’라고 칭한 일련의 영화들은 의(義)와 협(俠) 등 인간관계를 극도로 강조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무간도>를 기점으로 홍콩영화 속 인물들은 개인의 안위에 따른 욕망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홍콩을 가로지르는 시대의 감수성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가령, 홍콩 반환을 앞둔 시점에서 홍콩영화는 한 치 앞을 모르는 불안한 시대적 감성을 묘사하기 위해 끈적끈적한 남자들의 의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홍콩이 중국으로 편입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제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무의미해졌고 친구와 적을 규정하는 선 역시 희미해졌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간파해 먼저 영화에 반영한 것이 <무간도>였고 신작 <상성>에서는 가장 극대화된 형태로 드러난다. 유정희와 아방은 절친한 파트너 이상의 유사 형제관계를 이루면서, 또 한편으론 한 사건을 사이에 두고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가 된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보기에 지금 홍콩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는 대부분 유정희와 아방처럼 애매한 삶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래서 인연의 끈은 희미해지고 사람 사이의 소통은 주파수가 안 맞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홀로 파열음을 낼 뿐이다. 그 결과, 도시를 가득 매운 건 상대방을 잃은 채 말없이 부유하는 인간들. <상성>의 첫 장면에서 빌딩 창 밖으로 흘러나온 빛들이 뭉치지 않고 흩어져 보이는 건, 선에서 점으로 변한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아닐까. <상성>은 상처 받은 도시를 채우는 건 상처 받은 인간이라는 지당한 사실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필름2.0 336호
(2007.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