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의 혜자가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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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의 오프닝은 무척이나 강렬하다. 반듯한 엄마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김혜자가 추레한 몰골로 광활한 갈대밭을 헤매다가 느닷없이 막춤을 춘다. 얼굴을 보면 넋이 나간 표정이 역력하다. 정상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김혜자가 미쳤다! ‘국민엄마’에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봉준호에게 장르는 익숙한 형식의 전형이 아니라 비틀기의 대상이다. <살인의 추억>은 끝내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미스터리 스릴러의 공식을 배반했고, <괴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이 등장해 할리우드와는 차별되는 한국형 괴수물을 창조했다. 봉준호가 <마더>에서 비트는 장르는 ‘김혜자’다. 김혜자라는 장르는 완벽한 어머니 상을 대표한다. 그녀는 한국의 모성신화다. 하지만 봉준호는 모성애의 극단을 보여주겠다며 국민엄마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마더>의 오프닝은 그런 감독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목적은 극중 엄마인 혜자가 미친 이유를 밝히는데 있다. 발단은 아들 도준(원빈)의 여고생 살인 누명 죄다. 엄마에게 도준은 “물방개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애”다. 그녀 입장에서 보건데 아들이 잡혀간 이유는 순전히 좀 모자란 아이이기 때문이다. “항상 만만한 게 우리 도준이지”라고 형사 제문(윤제문)을 원망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권력에 대한,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이 스스로 도준의 무죄를 추적하기에 이른다.

<마더>는 봉준호의 필모그래프에서 가장 추리소설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엄마가 준(準)수사관이 되어 탐문과 추리, 목격담을 통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건에 접근해가는 방식도 그러하거니와 그 과정에서 봉준호 월드 특유의 엇박자스러운 느낌이 상당 부분 배제돼있다. 심각한 순간에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이 영화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더>는 전작과 비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공포를 자아내는 시점이 (도준이 사건에 연루되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엄마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자식 잃은 혹은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어미의 공포가 짙게 배어있는 것이다.

봉준호의 전작들을 보면 자식(과 아이들)은 하나같이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엄마 뱃속에 있거나(<플란다스의 개>),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하고(<살인의 추억>), 납치당한 후 주검으로 돌아온다(<괴물>). 급기야 <마더>에서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기까지 한다. 기본적으로 봉준호 영화의 기저에는 부모의 공포가 깔려있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마더>와 <괴물>은 직접적으로 가족을 다루는 까닭에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두 영화는 모두 가족의 사투를 다루지만 <괴물>은 부성을, <마더>는 모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일종의 상대급부로 기능한다. <괴물>이 아버지의 성장을 다룬다면 <마더>는 엄마의 성장을 그린다. 더 정확히는 주인공 혜자가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이는 엄마를 여자로 인식하지 않는 저변의 의식에서 출발한다. 엄마를 섹스하지 않는 무성의 존재로 바라보는 한국인 특유의 시선이 담겨있는 것이다.

<마더>에서 노골적으로 제시되는 성적인 코드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너 여자랑 자봤어?” “어” “누구?” “엄마” 진태(진구)와 도준이 나누는 얄궂은 대화에서부터 한 이불에서 서로의 몸을 밀착하는 모자간의 잠자리, 진태 집에 몰래 숨어들어간 혜자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질펀한 섹스까지. 그중 어두운 약재상 안에서 좁고 기다란 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는 혜자의 시선은 명백히 여성의 성기를 시각화하는데, 동일한 장면이 수미쌍관을 이룬다는 점에서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첫 장면에선 바깥을 보며 작두질하던 혜자가 손을 베어 피를 흘림으로써 생리가 가능한 ‘여자’로 비추는 것에 반해 마지막엔 안전하게 작두질에 성공함으로써 ‘엄마’가 됐음을 알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혜자가 미친 이유를 밝히는 영화의 목적은 곧 엄마는 왜 섹스와 별개의 존재가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이를 작동시키는 변곡점은 아들 도준의 살인사건이다. 사건 전까지 이들 모자관계는 어쩌면 남녀관계일 수도 있을 만큼 모호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누명을 쓴 줄 알았던 도준이 실은 진범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혜자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오프닝에 제시됐던 그녀의 넋 나간 얼굴을 다시 한 번 클로즈업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표정에서 하나의 질문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가슴 찢어지는 자식의 진실을 마주한 순간, 당신이 엄마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마더>는 진범 찾기보다 진범을 찾은 후 이에 대응하는 엄마의 행동을 통해 모성의 극단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자식 때문에 엄마가 미칠 수밖에 없는 원인을 밝히는 것이 <마더>의 목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말을 빌자면, “<남극일기>의 도달불능점처럼 모성의 최극단에 가보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도준이 진범임을 밝히면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간다. 거기에는 제 새끼의 죄악마저 눈감아 줄 수 있는 이기적 모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결국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함인데 다만 혜자의 모성이 더욱 지독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이를 희생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혜자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시키는 대상이 자신보다 더 약자라는 데 있다.

봉준호 영화에서 약자는 늘 주인공이었고 약자를 도와주지 않는 사회의 시스템과 사투를 벌였으며 그래서 약자끼리 연대했다. <마더> 역시 약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강자에 대항하기는커녕 약자와 약자끼리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작들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더욱 어두워졌다. 약한 자를 밟고, 약한 자의 지분을 빼앗아야만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이 험한 세상 (혹은 부자들만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엄마=괴물’이라는 등식은 전작 <괴물>에서 이미 등장했었다. 한강에 방류된 독극물, 즉 한국에 존재하는 온갖 부조리를 씨앗삼아 태어난 괴물은 강두(송강호) 가족에게 부재한 엄마의 상징이었다. 단적인 예로, 강두가 괴물의 입에서 딸 현서를 꺼내는 장면은 출산에 다름 아니었다. 다만 강두는 현서(고아성)를 잃는 대신 세주(이동호)를 얻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괴물>은 ‘가족의 탄생’이었던 셈이다. <마더>는 ‘가족의 유지’다. 아버지까지 부재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자식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혜자, 아니 오로지 ‘엄마’뿐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인(murder)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mother)는 괴물의 다른 이름이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라면 망각하는 것일 뿐.

한국영화사에 명장면으로 회자될 관광버스 장면은 망각을 방패삼은 모성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뒷자리에 앉은 혜자는 허벅지에 침을 놓음으로써 도준의 살인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그럼으로써 동시에 혜자는 여자라는 자신의 성도 망각하고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제 엄마는 아들에게 가슴을 내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들 또한 엄마와 잔다는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는 것만이 그녀의 임무이자 의무가 됐다. 이는 곧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의 비극이요, 운명이다. 그래서 오프닝에서 혼자 춤추던 혜자는 엔딩에 이르러 관광버스 막춤을 추며 동네 엄마들과 한데 뒤섞인다. 봉준호는 김혜자라는 숭고한 모성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모성신화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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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8)

대륙에 출몰한 <괴물>, 반응도 괴물급



<괴물>이 중국과 미국에 출몰했다. 중국에선 첫 주말 박스오피스 1위까지 차지했다. 미국에선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대륙을 강타한 <괴물>, 어떤 반응을 얻고 있는지 정리한다.


지난 9일(현지 시각) 뉴욕과 LA를 비롯한 전미 71개관에서 개봉한 <괴물>은 첫 주 박스오피스 23위를 기록했다. 높다고는 할 수 없는 성적이다. 그러나 20개 도시의 제한적인 상영이었다는 점과 극장 평균수입이 4,429달러로 비교적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무엇보다 개봉을 전후해 속속 나오고 있는 미국 언론의 리뷰가 호평 일색이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 가운데는 “최근 본 가장 만족스러운 괴수영화“ ”고전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위대한 영화“라는 극찬까지 있다.


“195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고지라> 또는 <로저 코먼의 괴물 게의 공격 Roger Corman’s Attack of the Crab Monsters>과 같은 괴수영화와 닮았다”는 릴닷컴(www.reel.com)의 언급처럼 대부분의 현지 언론들이 <괴물>과 할리우드 B급 괴수영화와의 유사점을 가장 먼저 지적하고 있다는 게 우리로선 먼저 눈길을 모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야기를 풀어낸 봉준호 감독의 접근법이 차별성을 확보할 만큼 영리하다고 평가하며 장르의 진화적인 측면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괴물>을 평범한 공포영화와 차별화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설정뿐만 아니라 이를 제대로 풀어가는 연출력의 힘”이라며 이것이야말로 “한국에서 크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라고 평했다.

미국의 모든 영화리뷰가 총망라돼 있는 로튼토마토닷컴(www.rottentomato.com)에서 <괴물>의 신선도가 93%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살론닷컴(www.salon.com)의 경우, <괴물>에 쏟아지는 지나친 찬사가 거북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살론닷컴은 그러나 그것이 영화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며 “휴머니티와 영화적인 힘, 그리고 당신이 생각해낼 수 있는 그 어떤 요소에 있어서도 <괴물>은 동시대의 호러영화 중 가장 빛난다”는 상찬을 빼놓지 않았다. “북한이 문제라고? 하하! 서울에는 더 큰 문제가 존재한다”는 재치 있는 제목으로 말문을 연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조지 A.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을 예로 들며 “TV 뉴스 때 브라운관 하단에서 흘러나오는 자막처럼 사회적인 언급으로 가득 차 있는 <괴물>은 긴장감이 넘치는 B급영화이자 호러영화인 동시에 이 장르에서 오랜 세월 동안 토론과 논쟁, 해석이 거듭될 수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며 입체적으로 구성된 영화의 다층적인 메시지를 높이 샀다.

<괴물>이 취하고 있는 반미적 설정에 대해서도 현지 언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또 하나의 장점으로 떠받드는 분위기다. 살론닷컴은 “철옹성처럼 뻣뻣한 미군기지와 이에 아첨하는 한국정부를 통쾌하게 풍자하고 있다”고 칭찬했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한미 양국에 대한 부조리한 관계를 논리적으로 이끌어내지 않는 대신 재기 넘치면서 은근한 방식으로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고 호평했다.

무엇보다 미국 언론은, <괴물>이 기존의 괴수물이 가지고 있던 익숙한 공식을 배반하고 스스로가 장르의 공식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초반 20분 사이에 봉준호 감독은 공포영화 제작지침의 기초(the first lesson in Horror Filmmaking 101)를 부정한다. 괴물의 모습을 감칠맛 나게 보여주며 관객의 애를 태우는 할리우드의 뻔한 괴수물과 달리 영화 초반부터 사람들이 몰려 있는 대낮의 한강에 괴물을 풀어 놓는다”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뉴욕타임스’는 “서서히 진행되던 이야기가 괴물의 출현으로 갑작스럽게 공포감에 휩싸이는 방식이 봉준호 감독의 장인다운 연출력 속에 다양한 템포로 변주되며 진행된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릴닷컴은 “영화가 줄 수 있는 모든 장르적 재미를 주면서도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감정적인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전하면서 “<괴물>은 상영시간 내내 어딘가 나사가 빠진 가족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심지어는 가족 중 한 명인 막내 현서(고아성)가 괴물에게 납치되기 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며 강두(송강호) 가족의 반(反)영웅적인 면모가 영화에 미치고 있는 특수성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호의적인 평가로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현지 언론들은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을 스티븐 스필버그와 비교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봉준호 감독은 굉장히 눈에 익은 속임수를 구사하고 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새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재능이 뛰어나다”며 고전적인 연출력의 효과를 높이 사고 있다. 릴닷컴은 “스필버그처럼 봉준호 감독 역시 카메라 움직임이나 편집을 하는 데 있어 한 치의 오차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액션 장면은 최소한의 시간 동안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며 두 감독의 꼼꼼하고 경제적인 연출력의 유사함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그 가운데는 “<괴물>은, 거대한 뇌를 가진 해빙된 외계인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묵시록적 경고를 전하는 영화(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을 지칭하는 듯)처럼 요즘 미국 극장가를 어지럽히는 평범한 스플래터 무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강두 가족을 “한국에서 온 <미스 리틀 선샤인> 가족들”이라고 묘사한 살론닷컴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비유처럼 자연재앙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과 <괴물>을 비교한 ‘뉴욕타임스’의 리뷰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큰 스크린으로 보는 앨 고어의 강의처럼 <괴물>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담보한 자연훼손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와 큰 재앙으로 괴롭힐 것임을 경고한다”며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도.


이 같은 호의적인 리뷰가 대거 양산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괴물>의 단점을 지적하고 있는 리뷰는 주로 정치색이 짙어 순수오락영화의 재미가 반감된다는 쪽과 어색한 결말부의 특수효과 장면에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릴필름(www.reelfilm.com)은 “오락적인 이야기가 정치적인 상황으로 치중될수록 지루해진다”며 감독의 정치성향을 꼬집었고, ‘인디펜던트 크리틱스닷컴(www.independentcritics.com)’은 “특수효과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뛰어나지만 괴물이 불에 타는 장면만은 예외”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호평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가운데 <괴물>은 개봉 2주차인 3월 23일을 맞아 볼티모어, 밀워키와 같은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개봉관을 늘려갈 예정이다. 한편 <괴물>의 제작사 청어람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보다 하루 이른 지난 3월 8일 중국에서 <한강괴물(漢江怪物)>이라는 제목을 달고 개봉한 <괴물>은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역대 한국영화 중 최대 규모인 250개 스크린에서 상영돼 520만 위안, 우리 돈 약 6억 원의 흥행수입을 올렸다.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시장인 미국과 중국 박스오피스까지 넘보는 한강 괴물의 활약, 우리로선 기분 좋게 지켜볼 일만 남았다.






FILM2.0 327호
(2007. 3. 27)

<괴물> DVD 한정판


<괴물>의 한정판이 나왔다. 2006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만큼 구성도 화려하다. 본편 외에 300분이 훌쩍 넘는 부가영상이 2장의 디스크에 빼곡히 담겨 있다. 특히 한국 영화사상 전대미문의 캐릭터인 괴물의 창조과정 및 연출 작업에 집중한 서플먼트는 과연 기대했던 바를 ‘지대로’ 충족시켜준다.


한강에 나타난 괴생물체와 사투를 벌이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괴물>에서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괴물은 영화의 시작이자 존재의의. 이를 위해 류성희 미술감독의 권유로 참여하게 된 장희철 크리처 디자이너는 괴물을 ‘디자인’하였고, 이를 토대로 <반지의 제왕><킹콩>으로 유명한 웨타 워크샵이 괴물의 ‘모델링작업’을 담당했으며, <쥬라기 공원><맨인블랙2>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캐빈 래퍼티의 총감독 하에 <해리포터와 불의 잔><슈퍼맨 리턴즈>의 오퍼너지가 ‘CG 작업‘을 맡아, 현실에는 없는 그러나 스크린 속에 살아 숨 쉬는 생물체를 창조하였다.


두 번째 디스크에는 이와 같은 괴물 제작 과정이 ‘괴물 탄생’과 ‘괴물 제작’으로 나뉘어 스케치에서부터 실제 영상까지 19개의 챕터 속에 세세히 소개된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스크린 속 괴물의 영상만을 따로 모아 봉준호 감독이 직접 코멘터리를 첨부한 ‘괴물은 왜 그랬을까’  괴물의 변천과정은 물론 잡아온 사람을 왜 은신처에 모아두는지, 왜 이 시점에서 뼈를 토하는지 등 해부학적으로 분석한 이 코너를 통해 영화에서는 알 수 없었던 괴물의 심리와 행동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괴물>에 출연한 배우, 연출진들이 CG로 창조된 괴물과 실제상황으로 호흡을 맞출 수는 없는 법. 그 비밀은 세 번째 디스크에서 풀린다.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괴물의 움직임을 임의로 상정해 봉준호 감독의 지시에 따라 ‘허공에 삿대질하듯’ 배우는 연기하고, ‘맨땅에 헤딩하듯’ 촬영 팀은 카메라를 돌린 것. 웃음이 터지는 광경이지만 이들은 얼마나 힘들었던지 제작부의 가장 절망적이고 억울했던 순간이 ‘한강 한풀이’에 가감 없이 표현된다. 1,300만 관객이 본 영화는 이런 과정 끝에 탄생하게 되었다.


<괴물> 한정판이 중요하게 평가받는 건 단지 역대 흥행 1위의 작품이 출시됐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한국영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지만 여전히 취약한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의 길을 개척한 <괴물>은 그런 의미에서, 연출 과정을 체계화해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이 땅에는 여전히 제2, 제3의 <괴물>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괴물>의 귀환이 아주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2007. 1. 11. <스크린>)

넌 영화를 극장에서 보니? – 한국영화 스토리북


이제는 영화를 책으로 본다. 영화가 스크린을 뛰어넘어 언어로 관객과 조우하고 있다. <형사>와 <비열한 거리> 등 이전에도 영화의 시나리오를 소설화하여 책을 출판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처럼 활발하게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현재 서점에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 해도 <각설탕> <괴물> <한반도> <왕의 남자>까지 무려 네 종류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답게 책의 구성도 천차만별이다. 임수정 주연의 <각설탕>(예림당)은 개봉 전에 소설로 먼저 나왔다. 인지도를 널리 알리겠다는 전략이다. 동물과 인간의 따뜻한 우정을 그린 영화답게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유명 동화작가 이미애가 이정학과 이환경 감독의 시나리오를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다시 썼다. 그런 만큼 판형도 일반 소설에 비해 크고 사진도 매 페이지에 삽입되어 있는 등 동화책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괴물>(홍익)은 책만 따로 놓고 본다면 일반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 흔한 감독의 말 하나 없이 300페이지가 이야기 일색이다. 더군다나 봉준호 감독의 시나리오에 더해 소설에서만 구현 가능한 디테일한 부분을 판타지 작가 홍정훈이 상상력을 보탠 결과, 독립적인 콘텐츠로서 소장 가치가 꽤 높은 편이다. 그런 까닭에 영화를 본 후 책을 읽든, 책을 읽은 후 영화를 감상하든 순서가 문제될 것은 없다.

그에 반해 <한반도>(랜덤하우스)는 ‘영상 시나리오 북’이다. 김희재 작가가 집필한 시나리오는 기본이고 팩션에 대한 정의부터 영화화 과정 중에 발생한 에피소드 및 캐스팅에 얽힌 이야기까지 <한반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대중성을 최선으로 삼는 강우석 감독의 평소 지론처럼 책 역시 최대한의 대중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시나리오에 대한 챕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전문가들만이 알 수 있는 50여 개에 달하는 시나리오 용어를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사전식으로 편집해 놓은 것이 좋은 예이다.

‘무비 스토리 북’으로 명명된 <왕의 남자>(예담)의 경우, 한국 최고 흥행영화답게 손이 많이 간 흔적이 돋보인다. 날개 형태로 이뤄진 커버에 원색의 색감을 최대한 살린 이미지 컷, 그리고 손 닿으면 스르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듯 부드러운 종이의 질 등이 그렇다. 외관뿐만이 아니다. <씨네21>의 취재기자 김현정이 맡은 글은 시나리오상에서는 무미건조했을 지문들에 산소를 불어넣어 생명력 있게 재탄생하였다. 시나리오에는 있으나 스크린에 미처 구현되지 못했던 비공개 이야기까지 담겨 있어 영화의 감동을 한 뼘 정도 더 늘리기 원하는 독자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이처럼 영화는 영화 한 편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를 소스로 한 다양한 변주상품이 영화의 감동을 다시금 갈무리한다. 이미 열쇠고리, 캐릭터 인형과 같은 팬시상품들이 이 시장을 주도한 바가 있다. 국내영화의 활성화에 맞춰 이 시장에도 변화가 불어오기 시작했다.

영화의 ‘원 소스 멀티 유즈’에 대한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요즘, 그 선두는 책이다!


(2006. 8. 4. <스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