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Steve Jobs)

stevejobs

제목처럼 <스티브 잡스>는 이제는 ‘신화’적인 인물이 된 애플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를 다룬다. 잡스를 다루되 그의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 1984년 매킨토시, 1988년 넥스트 큐브, 1998년 아이맥 런칭을 지켜보며 역사적 인물의 면모에 가려진 무대 뒤의 평범한 모습에 관심을 보인다.

이는 <소셜 네트워크>(2010)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머니볼>(2011)의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 빌리 빈 등 실재 인물을 영화로 다루는 데 있어 탁월한 접근법을 보여준 각본가 아론 소킨의 아이디어였다. 아론 소킨이 보건대, 잡스는 신화라는 동굴에 갇힌 인물이다. 이는 잡스가 자초한 것이었다. 잡스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자신이 의도한 바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영되어야 했다.

예컨대, 매킨토시 런칭에서는 전원을 켜면 컴퓨터가 반드시 ‘안녕 Hello’이라고 인사해야 했다. 잡스에게 매킨토시는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었다. 기존의 틀을 모두 깨버리는 하드웨어 디자인과 소프트웨어를 갖춘 혁신적인 컴퓨터이었다. 이전까지 그 어떤 컴퓨터도 사용자에게 ‘안녕’ 인사한 적이 없다. 런칭 무대에서 이 기능이 말썽을 부리자 잡스는 엔지니어를 잡아먹을 기세로 다그쳐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고야 만다.

애플에서 잡스는 독재자였다. 현재의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 형태를 개발한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세스 로건)은 잡스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것이 불만이다. 프레젠테이션이 시작하기 전 워즈니악은 잡스에게 무대에서 자신의 팀원들을 소개해달라며 읍소하지만, 늘 거절당한다. 잡스의 입장은 확고하다. 프레젠테이션은 혁신적인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이지 애플 직원들의 업적을 치하하는 무대가 아니다.

그렇게 치밀하게 애플(의 제품)을, 그리고 자신을 포장한 잡스를 다루기 위해서는 영화도 완벽한 형태의 구성이 필요했다. 아론 소킨과 <스티브 잡스>를 연출한 대니 보일이 프레젠테이션 현장을 연극 무대처럼 꾸며 3막의 형태를 취한 건 그래서다. 그 와중에 영화가 관심을 두는 건 무대 앞이 아닌 무대 뒤의 잡스다. 아이콘의 무대에 갇혀 신화화된 잡스를 인간의 자리로 해방 하려는 의도가 짙게 배어있다.

프레젠테이션을 얼마 앞두고 잡스를 곤혹스럽게 하는 건 워즈니악도, 매킨토시 런칭 후 그를 해고한 애플의 전(前) CEO 존 스컬리(제프 다니엘스)도 아니다. 오랫동안 존재를 부정해 온 딸과의 관계다. 매킨토시 런칭에 찾아온 딸의 엄마와의 설전에서 잡스는 자신이 딸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결국, 딸임을 인정하게 되지만, 그 어떤 묘사보다 이 관계가 흥미로운 건 잡스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그가 통제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매력은 통제의 틀을 벗어난 상황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지점에서 발생하기 마련이다. 잡스 같은 이는 워낙 대외적인 이미지를 철저히 관리한 탓에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데 그래서 약점(?)은 더 커 보일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가 잡스와 딸의 관계를 집요하게 물고 넘어지는 이유다. 잡스 본인은 딸과의 관계가 자신의 경력에 오점을 남길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영화는 오히려 딸을 잡스의 구원자 같은 존재로 그린다.

실은 잡스도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했다. 매킨토시의 매출이 예상과 다르게 저조하자 잡스는 그가 영입했던 존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났다. 이 영화가 다루는 넥스트 큐브 프레젠테이션은 잡스가 애플에 다시 복귀하기 위해 세운 전략이었다. 일종의 복수극이었던 셈인데 이는 인간 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디지털 시대를 이끈 잡스가 신경 썼던 건 ‘안녕’, 즉 소통과 관계의 방식이었다. 그 바탕은 결국 인간이었다. 영화는 프레젠테이션 무대에만 존재했던 잡스를 마지막 순간 건물 바깥으로 나오게 해 인간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시사저널
(201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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