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플라워>(Steel Flower)

steelflower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이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나와 극찬한 배우가 있다. “어마어마한 존재감이다. <어둠 속의 댄서>의 비요크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 배우는 정하담이다. 정하담은 무명 배우다. <검은 사제들>(2015)에서 소머리를 등에 멘 무당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검은 사제들>을 다시 찾는 대신 <스틸 플라워>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정하담은 <스틸 플라워>에서 ‘하담’으로 출연한다. 그녀는 낡아빠진 캐리어를 질질 끌며 추운 겨울 거리의 식당들을 기웃거린다. 남은 음식을 몰래 먹는 경우도 있지만, 주목적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다. 연고도 없고, 신분도 불확실한 하담은 가까스로 일거리를 얻는 데 성공하지만, 세상인심이란 게 만만치 않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가 하면 만만한 그녀를 희생양 삼아 화풀이를 하는 이도 있다.

세상이 그녀를 속일지라도, 하담은 좌절하거나 용기를 잃는 법이 없다.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기 위해 사장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정도로 풍진세상에 맞서는 맷집이 대단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돈으로 하담이 손에 넣는 것은 탭댄스 구두다. 그녀는 틈만 나면 주택가의 아스팔트 위에서 탭댄스를 추며 파도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힘겨운 일상에 맞설 힘을 얻는다.

<스틸 플라워>는 시적이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철의 꽃 Steel Flower’ 정도로 의역하면 좋으려나. 청춘은 꽃이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이들은 베트남 참전을 결정한 기성세대에게 사랑과 평화를 슬로건으로 외쳤다. 그런 젊은이들을 일러 ‘플라워 세대’라고 칭했다. 그 꽃들이 지금 고통받고 있다. 꽃이 잘 자라도록 토양을 다지고 보호해야 할 이들이 되려 짓밟고 꺾는 등의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자 꽃은 스스로 강철이 되어 자신을 보호하고 세상과 맞서기에 이른다. 하담은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불협화음에 상처 입는 대신 탭댄스 신발을 부딪혀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 삶의 꽃을 피어나간다. 그러니 ‘철의 꽃’이 아니겠는가. 청춘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스러지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법이다. 그래서 극 중 하담은 별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하담의 연기가 주는 감동은 침묵이되 시끄럽고 독무대이되 좌중을 압도한다.

이런 소재를 주류 시장에서 취했다면 배우의 입을 빌려 기구한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었을 테고 그녀의 시련 위로 울고 못베길 음악을 줄기차게 깔아댔을 터다. 그래서는 새로운 영화가, 어마어마한 존재감의 배우가 생겨날 수가 없다. 마라케시국제영화제에서 <스틸플라워>에 심사위원상을 결정한 심사위원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대부> <지옥의 묵시록>)는 <스틸플라워>를 이렇게 평했다. “간결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가 필요한 이유다.

 

시사저널
(2016.4.9)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