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에 있고 KBO에 없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신수와 류현진의 활약 덕분에 요즘 메이저리그(이하 ‘MLB’) 야구 중계를 시청하는 일이 잦아졌다. 워낙 세계 최고의 리그이다 보니 이름값, 몸값이 어마어마한 선수들을 상대로 각각 홈런을 때려내고, 삼진을 잡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이 두 선수의 게임을 거의 매일 같이 보고 있자니 ‘류뚱’과 ‘추추 트레인’의 활약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라는 미국 야구, 아니 미국 문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옷에 관심이 좀 있어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면 유니폼을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유니폼으로 판단하건데, 확실히 MLB는 한국 프로야구(이하 ‘KBO’) 구단들에 비해 야구를 좀 더 신성시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하나, 상업광고 로고의 유무였다. KBO의 구단들이 대개 유니폼의 팔 부분이나 모자의 측면에 ‘어떻게든’ 자사 상품의 광고 로고를 넣는 것에 반해 MLB 구단들은 이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물론 모든 프로스포츠가 그렇듯이 MLB도 야구를 통해 수입을 극대화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KBO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상업화라는 측면에서 MLB의 장삿속은 100년이 넘는 리그 역사만큼이나 30년이 갓 넘은 KBO와는 비교가 안 되는 정도인 것이다. 다만 KBO가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상업성을 추구한다면 MLB는 그에 대한 거부감을 세련된 방식으로 감추면서 수익을 추구한다고 할까.

사실 광고를 노출한다는 건 수익을 추구하는 프로야구 입장에서 당연한 권리이지만 펜스나 전광판이 아닌 유니폼에까지 광고 로고를 게재한다는 건 팬의 입장에서 볼 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아무래도 이는 야구의 권위와도 직결되는 문제일 텐데 이런 부분에 있어 MLB는 굉장히 영리한 방식, 그러니까 야구가 문화임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꾀한다.

사례 하나. 류현진에게 MLB 2패째를 안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은 그 전날인 5월 5일의 경기를 ‘멕시코의 날’로 선포했다. 홈구장인 AT&T 파크의 관중석에는 멕시코인과 멕시코 국기, 그리고 꼬깔콘을 닮은 멕시코 모자가 넘쳐났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구단 측에서는 특별히 유니폼에 ‘GIANTS’ 대신 멕시코(인들이 쓰는 스페인) 말로 거인을 뜻하는 ‘GIGANTES’를 새겨 넣었다.

이는 MLB가 어떻게 야구에 대한 순수함을 지키면서 수익을 추구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MLB는 전 세계 국가, 다양한 인종들에게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해왔다. 백인 일색이었던 MLB는 1940년대 중반 니그로 리그(흑인들로만 이뤄지던 리그)에서 활약하던 흑인 ‘재키 로빈슨’을 영입한 이래 지금은 중남미, 아시아, 유럽, 할 것 없이 야구에 재능이 있는 선수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스카우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MLB는 전 세계를 상대로 무수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이것이 가능하도록 바탕을 이룬 것은 전 세계 최고의 야구 리그라는 자부심이다. 확실히 MLB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수익 추구 이전 야구를 신성시하는 태도가 곳곳에서 목격된다. KBO와 다르게 MLB 구단들의 목표는 오로지 우승에만 있지 않다. 지역 연고가 바탕이 되는 까닭에 우승도 우승이지만 어떻게 하면 지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한다.

때문에 팀명을 정할 때도 MLB는 해당 연고의 캐릭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컨대, 마이애미의 전신인 플로리다가 ‘마린 marin’인 이유는 해변에 위치한 지역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휴스턴의 팀명은 미국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이 지역에 있어 ‘우주비행사’를 의미하는 ‘애스트로 astro’가 됐다. 류현진이 소속된 LA다저스는 어떤가. 이전 연고였던 뉴욕의 브루클린에 전차가 많아 시민들이 이를 피해 다녔다고 해서 ‘피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다저 dodger’가 됐다.

모기업에 구단이 소속되어 있는 한국이 연고의 캐릭터보다 모기업의 이미지를 우선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MLB 구단들의 유니폼은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팀이라는 소속감을 부여하기 이전 지역의 캐릭터와 정신이 담겨 있는 일종의 국기인 셈이다. 유니폼에 광고를 넣지 않는 것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경우처럼 영어 대신 스페인어로 팀명을 바꿔 넣은 것도 각각 권위를 확보하고, 그 권위를 이용해 좀 더 특별함을 선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셈이다.

실제로 유니폼은 권위를 부여하는 가장 좋은 도구로 활용된다. 이와 관련해 스티븐 스필버그의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에는 흥미로운 묘사가 등장한다. 극 중 항공사 직원 옷을 입고 사기 행각을 벌이는 프랭크 에버그네일 주니어(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는 자신이 유니폼을 활용해 사람들을 속이는 이유에 대해 뉴욕 양키즈를 예로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뉴욕 양키즈가 왜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줄 알아? 선수들의 실력이 아니야. 오히려 양키즈의 줄무늬 유니폼이 상대방 선수를 주눅 들게 만들어 제대로 플레이할 수 없게 만드는 거라고.”    

이처럼 권위란 건 처음부터 자연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그게 바로 문화라는 거다. 관련해 사례 둘. 류현진은 MLB 정규리그에 데뷔하기 전 어떤 해프닝으로 현지 기자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브루클린 다저스 출신이자 MLB 흑인 선수 1호인 재키 로빈슨을 다룬 영화 <42>의 시사회에 소속 구단 선수들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이 보도와 관련해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LA 현지에서는 류현진의 불참이 썩 좋게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졌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42>는 썩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재키 로빈슨을 다룬 것 자체로 의미를 갖는 영화인데, <42>는 그가 1947년 4월 15일 빅 리그에 데뷔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로 MLB는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의 날’로 지정하고 그날 열리는 경기의 전 선수가 등번호 ’42’를 달고 뛰도록 하였다. KBO의 경우, 지난해 이종범의 은퇴식 날, 기아 타이거즈 선수 전원이 이종범의 등번호 7번을 달고 뛴 적은 있었지만 해당 팀에만 한정된 것을 감안하면 MLB가 권위 부여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42>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 유니폼과 관련한 장면인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MLB의 인종 차별을 과감히 철폐한 것으로 유명한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 브랜치 리키(해리슨 포드)는 재키 로빈슨(채드윅 보즈먼)을 데려오면서 1년 동안 마이너리그 생활을 경험하게 한 후 빅 리그에 데뷔시켰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갖은 모욕과 차별을 당했던 재키 로빈슨은 이를 이겨내고 브루클린 다저스의 일원이 되어 42번 등번호가 달린 유니폼을 받는 순간, 감회에 빠져든다. 이 때 <42>의 카메라는 재키 로빈슨의 얼굴을 비추다가 곧 유니폼의 등번호 42를 의미심장하게 응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MLB는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MLB의 야구 문화를 조성해왔다. MLB가 야구 실력에서나 인기 면에서도 세계 최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문화의 측면에서 팬들에게 다가서고 어필했기 때문이다. 물론 KBO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건 단순히 실력이 그에 못 미쳐서도, 수준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야구 역사가 그만큼 오래되지 못한 까닭이다. 다시 말해, KBO가 지금의 인기를 넘어 더 폭넓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예로 든 유니폼처럼 좀 더 문화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흔히들 야구를 인생과 비유하고는 하는데 우승이 지상목표이기 이전 문화로써 야구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필요하다. 프로야구는 스포츠를 넘어 문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ARENA
2013년 6월호

2 thoughts on “MLB에 있고 KBO에 없는”

    1. 버디형, 잘 지내셨죠? ^^ 이렇게 제 블로그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너무 게을러서 영진공 모임에를 못 나가고 있네요. 만날 간다간다 하면서 못 가게 되어 죄송해요. ^^; 언젠가 만난볼 날이 있겠죠, 그때까지 몸 건강하세요 ^^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