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도 가는 길>의 젊은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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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호 감독의 <밀월도 가는 길>은 기존 충무로에서 들을 수 없었던 말투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존의 영화들이 정형화된 구조를 가지고 다소 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면 <밀월도 가는 길>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산만하게 말을 쏟아낸다. 하나의 주제를 향해 우직하게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건수가 주어지면 이를 계기 삼아 방사형으로 가지를 쳐가며 울창하게 뻗어나가는 식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문득 잠에서 깨니 동조(문정웅)는 지하철 종점까지 온 상태다. 꿈에서 현실로 이동! 그 전날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의 과음이 원인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 아뿔싸, 가방이 없어져 유실물센터에 가보니 뜬금없게도 고교 시절 친구 기정(신재승)에게 선물 받았다 잃어버린 빨간 배낭이 있는 게 아닌가. 미스터리의 발생! 동조에게 웜홀의 존재에 대해 알려줬던 친구인데 이를 계기로 기정을 찾아 나선다. SF적 서사의 발생! 사실 기정과는 전설의 섬 밀월도(蜜越島)에 함께 여행간 추억이 있다. 동조는 이를 모티브 삼아 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 이야기 속 이야기의 발생! 하지만 그와의 추억 끝에는 기억하기 싫은 학원폭력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

꿈과 현실, 현재와 과거의 교차, 장르의 잦은 변동, 극 중 극의 삽입, 그리고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까지, (이에 더해 타르코프스키의 <잠입자>(1979)에 대한 오마주,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 영상의 혼합 등) <밀월도 가는 길>의 서사를 두고 산만하다며 비판을 취하는 건 그리 옳은 태도가 아니다. 이 영화가 힘을 발휘하는 건 종잡을 수 없는 시점의 변화와 장르적 시선의 향연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들어 새로운 영화의 보고로 자리 잡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의 프로그램에서 목격되는 중요한 경향 중 하나다. 지난해 큰 화제를 모았던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과 함께 <밀월도 가는 길>은 인터넷과 게임, SNS에 능숙한 세대들의 언어가 어느새 스크린에 이식되어 나온 결과물이라 할만하다.  

한시도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탐하는 이들 영화의 태도는 흡사 작금의 디지털 유목민을 연상시킨다. 여러 개의 인터넷 창을 열어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찾고, 스마트폰 하나로 전화와 카톡과 게임을 멀티플로 즐기며, 무엇보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노마드적 성향이 이들 영화에서 목격된다. 인물별, 시기별로 장면을 교차하며 복잡한 양태 속에 가려진 진실에 최대한 다가가는 <파수꾼>, 조이스틱을 다루는 것처럼 인물을 조종하고 단계를 넘어가듯 이야기를 작동시키는 <짐승의 끝>, 그리고 왕성한 장르적 호기심을 서사의 추동력으로 삼는 <밀월도 가는 길>은 독창적인 화용론을 통해 주류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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