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의 누수 덕에 찾은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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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인 <남영동 1985>은 1985년 9월 고(故)김근태 상임고문이 남영동의 치안본부대공분실에 끌려가 20여 일 동안 당한 고문의 참상을 재현한 영화다. 이를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남영동 1985> 상영 후 이뤄진 공식기자회견에서 굉장히 논쟁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이 영화가 다가올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한 것이다. “정치의 계절을 두고 개봉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이 작품이 대선에 영향을 미친다? 이 영향이 어떤 건지 모르지만 꼭 미쳤으면 좋겠다.”

정지영 감독은 올해 초 <부러진 화살>을 통해 집단이익을 위해서라면 본분 망각 정도야 일도 아닌 검찰을 향해 ‘돌 직구’를 던지며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온 적이 있다. <남영동 1985>은 <부러진 화살>과 함께 사회물에 속하지만 비판의 대상과 그 목적을 감안할 때 변모한 우리 사회의 정치적 분위기를 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부러진 화살>이 설파하는 검찰 개혁이 절대 다수 국민의 암묵적 합의를 전제했다면 <남영동 1985>의 경우, 적이 패(?)가 갈리는 선거의 속성상 특정세력, 그러니까 인권 유린을 자행한 정권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세력에 반대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현 정권 또한 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특히나 정치적 발언에 대해서만큼은 신경질적일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이명박 정부 하에서 정지영 감독의 발언은 그 수위가 상당히 ‘쎈’ 편이다. 이러다가 감독이 어떤 해(害)라도 입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비단 <남영동 1985>뿐만이 아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이번 정권은 물론 이명박 정부의 모태가 됐던 정당과 후보를 반대하는 영화들이 수문이 터진 것 마냥 비슷한 시기에 쏟아지고 있다. 

동시 개봉(10/18)한 <MB의 추억>과 <맥코리아>는 모두 MB정부의 지난 5년간을 돌아보며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선택한 우리의 과오를 한꺼번에 정산하는 다큐멘터리다. <MB의 추억>은 국가의 경제를 되살리겠다며 실은 그 자신과 가족의 경제활동에만 매진함으로써 배를 불린 MB를 조롱한다. <맥코리아>는 이명박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 이지형이 대표이사로 근무했던 맥쿼리가 각종 특혜를 통해 대한민국 민자 사업에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과정을 낱낱이 파헤치고 고발한다. 그에 앞서 10월 9일에는 박정희 정권의 실태를 드러내 비판하고 그에 맞선 재야인사들의 투쟁을 회고한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 제작 발표가 열리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모두 정치영화에 속하기 때문에 ‘대선 겨냥’이라는 꼬리표가 붙지만 사실 그 배경에는 약화된 MB정권의 영향력, 즉 레임 덕이 깔려있다. 이에 대한 가장 극적인 사례는 최근 우여곡절 끝에 개봉(11/29)이 확정된 <26년>을 들 수 있다. 원래 제작 계획대로라면 <26년>은 이해영 감독이 연출하고 류승범, 김아중 등이 출연하는 <29년>이라는 제목으로 2009년쯤 극장 개봉이 이뤄져야 했던 영화다. 하지만 감독과 출연배우, 스탭까지 모두 진용을 갖춘 상황에서 돌연 제작이 무산됐고 항간에서는 정치적인 외압 때문이라는 둥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난무했다.

여전히 이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많은 이들이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이유는 실제로 MB정권 하에서 지난 5년 동안 이와 비슷한 사례를 수도 없이 목격하고 경험한 까닭이다. 일개 블로거의 글이 금융위기를 가중시켰다고, 무명의 대학 강사가 그린 쥐 그림 포스터가 G20을 방해하려는 음모에 해당한다며 당사자를 구속시키는 등 표현의 자유가 가차 없이 억압당했던 그런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광주 학살의 주도자인 전직 대통령을 암살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가 제대로 제작될 리 만무하다는 정서가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것이다.

그런 <29년>이 3년 만에 제작이 다시 재개되어 <26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이 확정되었다는 건 그만큼 MB정권의 힘이 약화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영화는 (그리고 모든 예술 매체는)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마땅하지만 예술을 억압하는, 특히 특정집단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지나치리만치 유무형의 압박을 가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작품의 질적 여부와 상관없이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때가 있다. <26년>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예술에 재갈을 물리는 정부에 맞서 그에 굴하지 않겠다는, 그럼으로써 영화로 제작된 것 자체가 저항이 되는 사례로 기록될 만 하다.

이번 정권이 지난 5년 동안 영화계에 가한 일련의 개혁(?) 행위들, 예컨대 서울아트시네마, 미디액트, 인디스페이스에 대한 공모제 전환,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하여 인권과 노동 관련 영화제 지원금 중단 등은 (그들이 규정한) 좌파영화인 몰아내기와 좌파영화 척결에 맞춰 진행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살풍경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 제작 역시 자기검열을 통해 웬만해서는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만한 선에서 이뤄져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26년>의 재(再)제작배경에는 MB정권의 집권 말기의 누수현상을 이용해 한동안 받았던 핍박(?)을 되돌려주겠다는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

언젠가부터 자취를 감췄던 간첩 소재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거나 기획되고 있는 건 그 같은 사실을 방증한다. 머리에 뿔나고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그런 간첩이 아니다. 예컨대, 추석에 개봉했던 <간첩>의 22년차 남파간첩은 전세금 인상에 시달리고, 한창 촬영 중에 있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는 ‘꽃미남’ 남파간첩 3인방(김수현, 박기웅, 이현우)이 등장해 남한의 여심을 흔들 예정이니, 북한 사람도 인간이라는 시각을 견지하는 작품들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바로 그런 시각 때문에 MB정권이 한창 때였다면 이들 작품들은 빨갱이 영화라고 공격받았을지 모를 일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자기검열이 자연스러울 만큼 정권의 눈치를 보며 영화를 만들던 시절을 통과했다.

항간에는 <간첩>을 두고 13년 전 개봉했던 <간첩 리철진>(1999)의 내용이나 정서와 크게 다를 바가 뭐냐며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수긍할 만한 지적이다. 다만 <간첩 리철진> 당시 김대중 정권이 영화계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았던 반면 MB정권이 음으로 양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것을 감안하면 <간첩>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 지금 한창 천만 관객이 기대되는 <광해, 왕이 된 남자> 역시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례적인 흥행으로 받아질 만 하다. 대선을 앞두고 이상적인 지도자 상에 대해서 말하는 작품이지만 부자 세금을 주장하고 균형 외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지금 정권이 추진해온 정책에 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 속에서 반사효과처럼 표현과 소재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지금의 영화계를 바라보고 있는 개인적인 심정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어찌된 일인지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뀔 즈음을 전후해 문화의 성격이나 정책이 정치적인 목적 하에서 휘둘리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술이 보호받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문화가 정치에 맞서야 하는 상황은 정권의 비정상적인 문화관을 전제한다. 더욱 아쉬운 건 워낙 ‘경제민주화’ 쪽으로 대선의 프레임이 형성되다보니 상대적으로 후보들 사이에서 영화를 비롯한 예술매체에 대한 정책 공약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또한 이번 정권이 민초들의 민생고에 신경을 쓰지 않은 까닭에 위기를 자초하고 그 결과, 더욱 예술 활동에서 멀어지게 한 대가가 아닐까. MB정권의 누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대선 전까지 그 덕을 톡톡히 누릴 전망이다. 


ARENA
2012년 11월호

2 thoughts on “MB정권의 누수 덕에 찾은 표현의 자유?”

  1. 읽으면서 주르륵 떠올랐어요. 미네르바에, 쥐그림 벽서에, 명박산성,, 노무현 자살까지 비극과 코미디가 넘쳐나네요. 피곤한 시간 살아내느라 모두 수고한 것 같아요. 보면서 드디어 추억해줘야겠어요. 추억이라는 단어는 너무 고와서 아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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