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앤 머시>(Love & Mer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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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머시>는 서프 음악으로 유명한 비치 보이스의 프런트 맨 ‘브라이언 윌슨’을 다룬다. 비치 보이스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여름에 특히 청량하게 톡 쏘는 ‘서핀 유에스에이 Surfin USA’를 떠올릴 테다. 하지만 영화는 그와 같은 분위기를 재현할 생각이 눈곱 만큼도 없다.

<러브 앤 머시>를 연출한 감독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빌 포래드다. 그는 감독이기 이전 <브로크백 마운틴>(2006),<노예 12년>(2014), <와일드>(2015) 등 영화적 분위기는 정적이지만,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작품들에 프로듀서로 참여해 명성을 얻었다.

원래 빌 포래드는 <러브 앤 머시>에 처음부터 관여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가 시나리오에 대해 조언을 한 것을 계기로 연출까지 맡게 됐다. 원 시나리오는 브라이언 윌슨의 일대기를 다뤘는데 빌 포래드가 판단하기에 안일한 구성이었다.

브라이언 윌슨이 뮤지션으로서 뛰어났다는 건 웬만한 음악 팬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비치 보이스의 가장 뛰어난 앨범으로 평가받는 ‘펫 사운드 Pet Sound’의 제작 과정에 얽힌 비화, 무엇보다 그 당시 브라이언 윌슨이 정신적으로 겪었던 고통과 이후 그와 얽히는 유진 랜디 박사와 멜린다 레드베터와의 관계를 파고드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접근이었다.

빌 포래드는 멤버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실험을 거듭하는 젊은 시절의 윌슨(폴 다노)을 한 축에,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중년의 윌슨(존 쿠삭)을 한 축에 각각 배치했다. 그럼으로써 인물의 내면에 깊게 들어간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뮤지션을 다룬 음악영화에서는 일찍이 활용한 적 없는 독특한 구성이었다. 다시 말해, 원안을 제시한 장본인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었던 셈이다. 메가폰까지 잡게 된 빌 포래드는 오프닝에서부터 <러브 앤 머시>에 대한 연출자적 야망을 선언적으로 제시한다. 비치보이스의 히트곡 실황 장면을 신경 다발이 끊어진 것처럼 파편적인 편집으로 아주 짧게 제시한 후 침대 위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중년의 윌슨을 비추는 것.

한때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던 윌슨이 왜 저 지경이 된 것일까? 영화는 20년 전인 1960년대로 훌쩍 건너뛰어 미국의 가장 인기 있는 밴드 비치 보이스를 이끄는 젊은 시절의 윌슨을 비춘다. 근데 젊은 윌슨은 중년의 윌슨 못지않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젊은 윌슨은 단순히 인기 많은 뮤지션으로 자신의 위치가 정체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젊은 윌슨은 라이벌로 여기던 비틀스의 음악에 자극을 받고는 이를 능가하는 음악을 만들고자 의욕을 불태웠다. 이는 한편으로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았던 가족, 특히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던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겼던 아버지는 윌슨이 실험적인 음악에 몰두하자 자신이 비치 보이스의 프런트 맨 인양 서프 뮤직으로의 회귀를 주장, 아니 강요했다. 새로운 음악 창조에 대한 압박감,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마약을 손에 대기 시작한 윌슨은 내적으로 점점 무너져갔다.

그런 와중에도 윌슨은 자신이 의도한 음악에 가까워질수록 만족감을 느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축 가라앉은 <러브 앤 머시>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장면은 윌슨이 스튜디오에서 ‘펫 사운드’ 작업을 할 때다. 고정된 쇼트를 주로 구사하던 카메라는 이 장면에서만큼은 이례적으로 카메라를 360도 팬 하며 우주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당시 윌슨이 느꼈을 심정이 그러했으리라. 앨범을 만든다는 건 세상을 창조한다는 것인데 그 결과물이 독보적이었정도로 만족할 만한 작업이었고 평가도 최상급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윌슨에게 ‘펫 사운드’는 온 우주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이를 위해 영화는 16mm 카메라를 사용하고 리허설 없이 촬영에 임한 까닭에 그 어떤 장면보다 생생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그렇다면 영화 제목은 ‘러브 앤 머시’보다 ‘펫 사운드’가 더 어울리는 게 아닐까. 제목 <러브 앤 머시 Love & Mercy>는 브라이언 윌슨이 1988년에 발표한 앨범 ‘브라이언 윌슨’의 타이틀 곡에서 가져왔다. 당시 이 곡은 유진 랜디(폴 지아메티)와 함께 작업했던 곡으로 앨범에 표기됐었다. 하지만 유진 랜디는 윌슨을 치료하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강제적으로 관리했을 뿐 아니라 작업물의 권리와 수익마저 쪽쪽 빼먹었던 문제가 있는 인물이었다. (후에 유진 랜디의 악행이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은 ‘러브 앤 머시’에서 삭제됐다!)

그런 윌슨을 지옥 같은 삶에서 구원한 것은 멜린다 레드베터(엘리자베스 뱅크스)였다. 더 정확히는 그녀의 사랑이었다. 멜린다의 희생 어린 ‘사랑과 자비’가 없었다면 브라이언 윌슨의 삶은 이 영화가 묘사하는 젊은 시절의 윌슨으로 한정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굳이 2인 1역을 통해 윌슨을 묘사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젊은 시절의 윌슨이 아버지로부터, 밴드로부터 독립을 꾀했던 인물이라면 중년의, 지금의 윌슨은 멜린다와 ‘함께’의 가치로 제2의 삶을 누리는 중이다. 독보적인 뮤지션에서 자연인으로 사는 삶까지, <러브 앤 머시>는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의 인생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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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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