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따윈 몰라>(Who’s Camus Anyway?)


야나기마치 미츠오(Mitsuo Yanagimachi) 감독의 <카뮈 따윈 몰라>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다.

일본의 한 대학. 영화 동아리 학생들은 <지루한 살인자>의 촬영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의례 그렇듯 촬영 전날까지 예상외의 사건들로 넘쳐난다. 이들은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인가. 감독은 영화 촬영을 전후한 이들의 8일간의 험난한 여정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5분여에 이르는 롱테이크로 포문을 여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카뮌 따윈 몰라>는 이 영화의 모든 걸 담아내고 있다.

첫째, 이 롱테이크는 명백히 오손 웰즈 감독의 <악의 손길>에서 빌려온 것이다. 영화에 대한 영화 혹은 영화에 대한 인용이 될 것이라는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의 일종의 선언이다.

그래서 <카뮈 따윈 몰라>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면 그리고 상황들은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에서 빌려오고 따오고 인용한 것들로 넘쳐난다. 학생들이 촬영할 영화 <지루한 살인자>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섞어놓은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또한 영화 속 감독 나오카와 그의 여자 친구가 사랑을 두고 갈등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 <아델 H의 이야기>다. 영화과 학생의 지도교수는 또 어떤가. 젊고 예쁜 여학생을 쫓아다니며 집착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떠올리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둘째, 조감독을 맡은 히사다는 5일 앞으로 다가온 촬영을 앞두고 주연배우가 펑크를 냈다며 심각한 목소리로 감독 나오카에게 전달한다. 감독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영화 만들기의 험난한 과정이 주요 이야기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고 있는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이 연출한 <아메리카의 밤>의 일본판 버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은 영화 만들기를 두고 각자 고민과 문제를 안고 있다. 가령, 감독은 영화를 만드느라 일분일초가 아까운데 결혼하자고 달려드는 여자 친구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조감독 히사다는 그런 감독을 짝사랑하고 있으니 그녀 역시 고민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이 <아메리카의 밤>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대학생답게 순수하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이들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갖는 고민 중 상당수과 사랑과 관계가 있는 것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영화 촬영 중 사랑에만 목매다는 것은 아니다. 주연배우의 경우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배역에 깊이 빠져드는데 재미있는 건 야나기마치 미츠오 감독이 그의 살인 장면을 두고 현실인지 아니면 영화 속 장면인지 애매하게 처리함으로써 매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일까? 영화란 무엇인가,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 순수를 강조하는 것이다.  

셋째, 영화에 출연하는 주요 배우들이 비슷한 분량의 시간을 배정받아 얼굴을 비친다.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숏컷>처럼 <카뮈 따윈 몰라> 역시 다수의 인물이 출연하는 다중 스토리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영화란 일종의 집단 창작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에서부터 영화 말단 스텝에 이르기까지 그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이탈이 되면 영화는 눈에 띄게 덜컹거리기 마련이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협력이 되어야만 하나의 영화가 완성될 수 있는 법. 이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민이 있겠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갈등이 있겠나. 이 험난한 과정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카뮈 따위에 신경 쓸 필요가 어디 있나. 그래서 영화는 이렇게 외치고 있는 거다.

카뮈 따윈 난 몰라!  


(2006. 4. 30. <JIFF Web Daily>)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