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초상>(Profils Paysans: Le Quotidien)



프랑스 출신의 레이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 감독의 이력엔 특이한 데가 있다. 그는 사진작가로 출발하여 저널리스트를 거쳐 영화감독에 안착한 전방위 문화 활동가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영화에는 전직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사진작가답게 꾸미지 않은 생생한 화면을 지향하고 있으며,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래서 그는 영화감독으로써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더군다나 1966년에는 세 명의 동료 기자와 함께 이윤추구의 목적이 아닌 자유로운 작업 활동을 우선시하는 자신의 에이전시를 세우기도 하였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건 드파르동 감독의 특기다.

<농부의 초상>은 총 3부작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영화로 지난 2001년 1부에 해당하는 <농부의 초상: 접근(Profils Paysans: L’approche)>이 완성되었으며 2부가 바로 지금 소개하는 <농부의 초상: 일상>이다.

영화는 전편의 주인공이었던 프리바의 장례식에서부터 진행된다. 그렇다고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르와르 지방에 거주하는 농부들을 상대로 단조로운 일상에 관한 잡다한 질문을 던진다. 이에 맞춰 멀찌감치 세워둔 카메라는 프리바의 절친한 친구였던 루이 브레스를 비치다가 그의 조카인 마르셀르 브레스에게로 넘어가고 이웃인 로제르 오뜨르와뜨와 아만다, 폴 야르고, 로베르 만느발 등을 돌며 이들의 대답과 일상을 그저 무작위로 보여줄 뿐이다.

농부의 삶이란 것이 의례 그렇듯 이들의 대답을 듣고 일상을 보고 있노라면 똑같이 단조로워지고 지루해진다. 그리고 하나 더. 쓸쓸해진다. 레이몽 드파르동의 카메라가 잡아내는 이들의 얼굴에는 쓸쓸함과 회한이 그림자처럼 검게 드리워져있다. 풍요로운 대지, 하지만 그 위를 흐르는 공기는 무겁기만 하다. 하나도 남김없이 떠나버린 젊은이, 농촌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총각 신세를 면치 못한 채 마흔의 나이를 넘긴 농부, 첨단 산업의 육성에 맞춰 줄어만 가는 정부의 지원책, 거대 농장의 출현으로 점점 죽어가는 소작농 등등. 이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일상의 실체는 이처럼 어둡기만 하다. 레이몽 드파르동 감독이 보여주는 농부의 초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프랑스 르와르 지방의 농부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터다. 우리네 농촌의 현실 역시 오히려 더 나쁘면 나빴지 이들의 그것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다. 위에 언급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현재는 한미 FTA라는 신자유주의 무역 협정의 횡포로 인해 고사 직전의 위기에 놓여있기도 하다. 이 영화의 객관성은 이처럼 프랑스 농촌이라는 특수성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성을 획득한다는 점에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런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라면 카메라를 들고 농촌과 농부들의 현실을 비춰 실상을 알리고 이를 고발하는 것이 의무일 테다. 비록 카메라는 한대고 지휘하는 사람은 한명이지만 영화를 보고 또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화의 카메라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는 듯 하지만 실상은 많은 말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농부의 초상>은 바로 이런 카메라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2006. 5. 3. <JIFF web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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