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위로와 진실 추구다. 이 두 가지를 통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가 있다. 바로 윤태호다. 윤태호의 웹툰 <미생>은 지난해 JTBC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종편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 야근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미생’들을 ‘위로’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윤태호의 작품 중에 <내부자들>이라고 있다. 지난 2012년 ‘한겨레 오피니언 매거진 훅’에서 연재되다가 3개월도 되지 않아 제작이 돌연 중단되었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내부자들>의 단행본은 1권에서 멈추었는데 우민호(<간첩>(2012) <파괴된 사나이>(2010)) 감독은 이를 원안 삼아 동명의 영화로 만들었다. 제작이 중단된 원작의 결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부패와 비리의 근원
<내부자들>은 원작과 영화 모두 한국 사회를 들었다 놨다 하는 부패와 비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정치와 경제와 언론계는 물론 검찰과 경찰 조직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내부자들을 통해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것이다. 윤태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매일 같이 만나는 뉴스의 시발점은 어디일까, 라는 의문에서 <내부자들>의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최신 뉴스의 그전 뉴스, 그리고 그전 뉴스를 따라가다 보면 진짜 ‘팩트’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가장 최신 뉴스, 그것도 메인 스트림에 송출된 뉴스만 보게 된다. 안타까운 점이다.”
대중이 간과한 팩트, 즉 진실을 상기시키는 데에는 한국 대중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만화와 영화만 한 게 없다. 다만 매체가 다른 만큼 윤태호와 우민호가 부패와 비리의 근원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윤태호는 방대한 조사와 자료를 통해 <내부자들>이라는 제목처럼 내부자의 시선으로 은밀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을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본다. 영향력 1위 보수신문의 논설위원, 여당 내 차기 대선의 유력한 후보자, 이들에게 거액을 후원하는 대기업 오너 등 거미줄로 엮인 검은 커넥션을 르포르타주로 잡아내는 것이다.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만화와 달리 상영시간의 제약이 있는 영화의 특성상, 우민호는 장르적으로 접근했다. “시스템 안에 속해 있는 개인들의 치열한 대결로 영화를 그리는 한편 그 끝에 과연 누가 이기고 살아남을 것인지를 바라볼 수 있는 영화로 각색했다.” 이와 같은 차이는 영화에서 원작의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상업이 사라지고 대신 검사 캐릭터 우장훈이 새롭게 창조된 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래서 영화 <내부자들>은 검은 커넥션에서 ‘팽’ 당한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와 이의 실체를 밝히려는 검사 우장훈(조승우)과의 대결로 압축된다.
안상구는 긴급 기자 회견을 열어 여당의 대선후보로 당선된 장필우(이경영) 의원의 비자금 내용을 폭로한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안상구는 장필우 라인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장필우를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려는 유명 논설위원 이강희(백윤식)의 수하에서 움직였던 까닭이다. 안상구는 장필우의 비자금 실체가 담긴 자료를 우장훈 검찰에게 넘기려던 미래 자동차 재무부장에게서 뺏는 데 성공한다. 이를 보험 삼아 큰 사업을 벌이려 했던 안상구를 위험하게 여긴 이강희는 장필우에게 몰래 소식을 전한다. 이에 장필우 측으로부터 보복을 당한 안상구는 복수를 다짐하고 끝내 폭로전을 벌이는 것이다.
사진작가와 검찰 사이의 직업적 차이는 원작 만화와 영화의 결말을 결정짓는 요소다. 사진작가는 현실을 알리고 폭로하는 사람이지 심판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 검찰은 법과 양심을 기준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사람이다. 이는 영화의 원안을 제공한 윤태호와 이를 가지고 원작자가 마무리하지 못한 결말에 종지부를 찍은 우민호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반영하는 듯하다.
혹자는 윤태호가 연재를 중단한 이유에 관해 정치적 압력이 있었던 건 아닌지 우려를 표하지만, 그의 배경은 작가 자신에게 있다. “제작 당시 ‘모든 균열이라는 것은 내부의 조건이 완성시킨다’라는 문장을 적어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안에서도 균열이 찾아왔고 이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윤태호는 자신이 마무리하지 못한 원작을 가지고 이야기를 완성한 영화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민호 감독의 개성과 스타일이 덧붙여지면서 패셔너블해지고 스피디해졌다. 그런 부분들이 음험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우화처럼 흥미롭게 쫓아서 볼 수 있으면서 분노는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정의에 대한 성취 경험
윤태호와 우민호가 공히 공유한 그 분노, 나는 그것이 진실을 추구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진실 추구의 선봉에서 언론이 진지를 탄탄히 구축해야 함에도 대한민국의 모든 비정상의 방어벽으로 전락한 처지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안상구와 우장훈의 대결로 흘러가는 영화에서도 유력 일간지 논설위원의 비중은 주연급 못지않다. 극 중에서 이강희는 ‘대통령 설계자’로 지칭되고는 하는데 언론인으로서 그의 가치관은 이 대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언론이 추구해야 할 진실은 오히려 대중문화가 대신하는 형국이다. 친일파 문제가 화두가 된 작금에 청산 필요성의 불을 지핀 건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었다. 재벌가, 특히 3세들의 악행이 도를 넘어 없는 자들의 박탈감을 자극하는 시점에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을 통해 응징의 서사로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걸림돌이 된다 싶으면 ‘개와 돼지’를 상대로 거짓말을 동원해서라도 진실로 둔갑시키는 한국 보수 언론의 실체. 이에 대해서 폭로하는 <내부자들> 또한 <암살>과 <베테랑> 등 일련의 흐름에 있는 영화라고 할 만하다.
물론 <내부자들>은 <암살>처럼 부조리한 현실의 철폐를 주장하는 것도, <베테랑>처럼 선악의 경계를 분명히 하여 해피엔딩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것도 아니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비자금 사건을 중심에 놓고 언론, 재벌, 조폭, 검찰까지 이를 옹호하고 사건을 덮어 거기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챙기려는 권력가들의 파렴치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권 실세의 이득에 반하는 목소리를 냈다가는 유무형의 온갖 불이익을 받는 상황에서 <내부자들>처럼 진실 추구의 가치를 옹호하고 선도한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같은 엄혹한 시대에 진실 추구는 결국 위로로 수렴되는 태도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는 불평등이 초래한 결과다. 열심히 노력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미생’의 반대편에서 ‘내부자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배를 불리고 있는 상황. 원작 만화에서 안상구의 복수극의 실마리를 쫓는 이상업은 이를 자신이 기고하는 시사잡지의 편집장에게 알린다. 편집장 왈, “위험한 일 하지 마시고~” 이에 대한 이상업의 답변이 의미심장하다.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있을까?”
윤태호는 매 작품 대한민국의 심연에서 들끓고 있는 민심을 무릎 끓어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민심에 역행하는 밀실행정의 그 안으로 들어가 밖으로 끄집어내는 진실한 시선의 역할을 해왔다. 그것이 윤태호의 이야기꾼 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하면서 그의 작품에 대중들이 열광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진실 추구를 통한 위로는 정의감으로 발로하기 마련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에 대한 성취 경험이다. 사회적인 위치를 막론하고 우리 안의 정의감을 꺼낼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사소한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사람과 그것이 모였을 때 큰일을 할 수 있는 힘에 대해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태호가 말하는 <내부자들>의 관전 포인트다.
시사저널
(2015.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