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준비를 하면서 소리나는대로 쓴 글이라 오타, 비문 등이 난무합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
1. <비거 스플래쉬>는 자크 드레이 감독의 1969년 작품 <수영장>을 리메이크하였습니다. 두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 전개가 같아요. 편집 순도 흡사하고요. 이야기를 흡사하게 다룰 거라면 굳이 리메이크를 할 필요가 있는가.
이 영화들은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욕망은 제어한다는 게 쉽지 않죠. 어느 선을 넘으면 점점 불어나는 특징이 있는데요. 바로 거기에 착안을 했습니다. <비거 스플래쉬>가 욕망이라는 주제에 더 풍부하게 살을 붙였다고 할까요. 그래서 더 탐욕, 아니 욕망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요. 가령 이런 거죠.
같은 수영장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수영장>은 수면 위에 비친 주인공들의 모습, 그러니까 욕망을 비추는 거울 같은 느낌이죠. <비거 스플래쉬>는 이에 더해서 수영장을 욕망의 시선이 엉켜 있는 곳으로 그려요. 그래서 <비거 스플래쉬>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를 주목하죠.
2.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표작은 영화와 제목이 같아요. 바로 <A Bigger Splash>(사진)입니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자크 드레이 감독의 <수영장>을 리메이크하기로 결정한 후 제목을 지으면셔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떠올렸다고 하죠. <A Bigger Splash>는 캘리포니아 현대식 가정의 쓸쓸한 한낮 정경을 포착한 작품이라고 해요. 수평과 수직의 선들이 교차하는 가운데서 비전형적으로 물이 튀는 모습이 강렬한 작품이죠. ‘물이 튄다’는 의미가 바로 <A Bigger Splash>라고 하는데요.
고요한 느낌 가운데 물이 튀니까 거기서 무언가 불안함과 혼돈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닌 게 아니라, 영화 <비거 스플래쉬>는 바로 네 남녀의 서로를 향한 욕망이 서로 사선을 그으면서 극단까지 이르는 이야기죠. 실제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욕망이 남, 녀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휘젓는지에 대한 것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이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아이 엠 러브>에서 보여준 것이기도 했는데요. 한편으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왜 <수영장> 리메이크에 관심이 많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죠.
3. <비거 스플래쉬>는 마리안의 콘서트 무대 뒤편의 철골 구조를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호크니 그림에서 목격되는 수직과 수평의 선들이 어지럽게 교차를 하고 있죠. <비거 스플래쉬>가 어떤 욕망과 감정이 이렇게 복잡하게 서로 선을 그으면서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는데요. 그래서 이 영화에는 시선이 교차하거나 서로의 방향이 어긋나는 운동성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꽤 많아요.
차를 몰고가는 마리안과 폴의 시선 반대에서 해리와 페넬로페를 실은 비행기가 착륙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마리안과 폴 그리고 해리와 페넬로페의 감정이 갈수록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죠. 이 장면 전까지 정말 아무 소리 없이 평화로웠던 분위기는 자동차 엔진 소리와 비행기의 착륙 소리가 극대화 되면서 평화를 깨고 있는 것인데요.
그럼으로써 한적하게 휴가를 보내고 있던 마리안과 폴의 분위기는 해리와 페넬로페가 타고 있는 비행기에 의해 잠식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어요. 그렇듯 우리 주인공들의 욕망은 너무나 달라요. 그리고 사실 욕망은 너무나 주관적인 것이라서 그것을 백 퍼센트 파악하기도 힘들죠. 그러다보니 서로 간의 욕망은 결국 엉켜버릴 수밖에 없어요. 마치 이 영화의 첫 장면이 보여주는 것처럼요. 그래서 <비거 스플래쉬>에서 보여주는 욕망의 색깔들은 너무 다양하고 서로 달라요.
4. 마리안과 폴이 휴식을 취하는 부분에서의 이 영화의 카메라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죠. 하지만 공항에서 해리를 바라보는 폴의 시선은 차가운 파란 빛이에요. 선글라스 렌즈를 통해 색을 굴절하고 있죠. 해리를 향한 폴의 마음의 굴절을 보여줘요. 사실 해리는 여기에 온 목적이 있죠. 전 연인이었던 마리안의 마음을 다시금 돌려 놓고 싶어요. 마리안은 그 가운데서 갈등해요. 그래서 화면의 한쪽은 너무 뜨겁지만, 한쪽은 차갑게 해서 혼돈을 표현하는 장면도 등장해요.
5. 또 하나의 데이빗 호크니 그림이 <비거 스플래쉬>에서는 중요하게 활용이 돼요.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라는 작품인데요. 영화 <비거 스플래쉬>에는 이에서 인용한 듯한 장면이 있어요. 수면 위로 수영장 아래 새겨신 선들이 비추고 있는데 이는 또한 욕망이 엉켜있는 듯한 이미지들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거죠. 그것은 ‘비거 스플래쉬’, 즉 물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것처럼 욕망이 엉킬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데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바로 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영화의 형식을 구상하고 있어요. 무슨 소리냐고요?
물이 튀면 물 방울이 어디로 튈지 모르잖아요. 그처럼 해리와 페넬로페가 마리안과 폴의 평화로운 일상을 깨면서 드러나는 파편화된 감정들을 여러 가지 예술 매체로 파편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인데요. 일단 영화 <비거 스플래쉬>는 <수영장>을 리메이크 했죠. 리메이크 하면서 영화의 제목을 데이빗 호크니의 그림에서 가져왔죠. 그리고 이 영화에서 마리안은 록 스타를 연기하는데요. 그래서 록음악이 빠질 수 없죠.
6. 루카 구아다니노는 <수영장>을 <비거 스플래쉬>로 각색하면서 “우리는 20세기를 끝으로 한 물 간 로큰롤의 시대와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는 신보수주의 시대 사이의 균열에서 아이디어를 시작했다”는 말을 했어요. 이 영화가 욕망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로큰롤은 욕망 중에서도 밖으로 분출하는 데 이만한 장치가 없는 요소죠.
그중에서도 롤링스톤즈가 사용이 됐는데요. 이에 대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왈, “로큰롤이 곧 롤링스톤즈였다. 만약 당신이 롤링 스톤즈에 대해 잘 모른다면 로큰롤을 잘 안다고 주장해선 안 된다. 스크립트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각본가 데이빗은 ‘해리’ 캐릭터를 롤링 스톤즈의 역사에 아름답게 뿌리를 둔 멋진 인물로 그리기 원했다.”
7. 특별히 롤링 스톤즈의 <Emotional Rescue> 음악이 중요하게 사용이 되죠. 해석하자면, ‘사랑의 구원자’ 정도가 되려나요. 해리는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과 함께 이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데요. 어떻게 보면 마리안에게 은밀하게 암호를 보내는 것 같아요. <Emotional Rescue>의 가사 일부를 들어볼까요.
‘약속이란 깨려고 있는 거 아니나/ 내가 너의 사랑의 구원자가 되어줄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가 실린 앨범은 해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종의 상징이 되고 맙니다. 폴과 다투다가 해리는 죽고 이를 폴이 아닌 다른 이의 타살로 몰아가려 폴은 수영장에서 죽은 해리의 시신 옆에 이 앨범을 두죠.
8. 이처럼 극 중 마리안과 폴과 해리와 페넬로페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는 경우가 없어요. 물이 튀는 것처럼 욕망을 분출해요. 마음을 숨기고 있을 때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성적 혹은 욕망의 상징물을 도구를 통해 드러내는데요. 와인병과 카메라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죠.
그 의도는 <수영장>에서 폴이 글을 쓰다가 실패한 인물인 것에 반해 <비거 스플래쉬>에서는 사진 작가로 변경된 것이 그렇죠. 해리는 너무 드러내 놓는 반면 폴은 그래도 좀 참으려는 욕구가 있어요. 그래서 페넬로페가 노골적으로 폴에게 접근하지만, 폴은 시선을 돌려 카메라, 즉 남성의 성기를 내려놓고(?) 욕망을 조절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9. 다만 욕망 분출이라는 측면에서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마리안은 좀 다른 부분이 있어요. 말을 하지 못하는 설정으로 되어 있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마리안 역할에 가장 먼저 염두에 뒀던 배우는 케이트 블란쳇이었다고 해요. 케이트 블란쳇이 스케줄 문제로 <비거 스플래쉬>에 합류할 수 없게 되자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틸다 스윈튼에게 합류를 요청했죠. 틸다는 자신이 1순위의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아이 엠 러브>의 인연에 아랑곳없이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녀의 단호한 결심에 변화를 가져온 건 어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진리 앞에서 단절된 관계와 벽에 부딪힌 소통의 한계를 경험한 틸다 스윈튼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중화해 줄 영화가, 캐릭터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마리안은 자연인으로서 경험했던 한계와 이를 예술로 승화할 좋은 매개체가 되어줄 것 같았습니다.
틸다 스윈튼은 엄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경험을 반영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에게 한 가지 조건을 들어 마리안 역할을 수락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인물로 마리안을 설정해달라는 것. <아이 엠 러브>에서도 그랬듯이 인간의 욕망이 초래하는 복잡한 관계와 비극을 테마로 삼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에게 틸다 스윈튼의 제안은 혹할만한 것이었죠.
10. <비거 스플래쉬>에는 유독 먹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죠. 낙원에서의 식사, 게다가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식사의 의미가 뒤로 갈수록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데요. 그래서 이들이 서로의 파트너(?)를 놔두고 관계를 맺은 후 어색한 감정 속에 나누는 마지막 식사 장면은 일종의 ‘최후의 만찬’이 되겠죠. 실제로 <비거 스플래쉬>에는 종교적인 상징도 있어 보여요. 마리안과 폴을 찾아온 해리가 마굿간을 개조한 침실에서 잠을 자는 것도 그렇고 뜬금없이 뱀이 등장하는 장면도 그러한데요.
11. 판텔레리아 섬은 이탈리아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죠. 우리가 흔히 ‘따뜻한 남쪽 나라’라고 해서 일종의 낙원, 이상향의 위치를 남쪽으로 잡고 있는데요. 실제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판텔레리아 섬은 정말 낙원처럼 보이죠. 하지만 중간 중간 언급되는 내용들을 보면 판텔레리아는 노예들의 섬이었고 지금은 튀니지 쪽에서 넘어오는 난민들이 꽤 많이 유입되고 있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판텔레리아 섬에 문명의 파편들이 유입되면서 서서히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 생채기가 나고 있어요. 해리가 고층빌딩이 난무한 뉴욕에서 이곳으로 왔다는 설정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죠. <비거 스플래쉬>의 첫 장면, 콘서트 무대의 ‘철조물’로 욕망의 엉킴 혹은 어긋남을 표현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래서 낙원처럼 보이는 판텔레리아에는 비밀이 있는데요. 비밀은 이 영화의 결말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함께 하던 에덴 동산은 낙원이죠. 하지만 이곳에는 일종의 인류 욕망의 비밀 같은 것이 서린 곳이에요. 뱀이 나타나 이브를 유혹하고 선악과를 따먹게 하죠. 그 순간부터 아담과 이브에게는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한 비밀이 생기는 건데요. 그처럼 폴과 마리안에게 에덴 동산 같았던 판텔레리아 섬은 폴이 해리를 죽이면서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곳에 남은 폴과 마리안과 페넬로페에게는 모두 비밀이 생겼습니다.
12. 폴과 마리안은 해리의 죽음이라는 비밀을 간직한 현대의 이브와 아담입니다. 페넬로페요? 그녀는 17살인데 22살이라고 속였고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었죠. 어쩌면 페넬로페는 낙원에 침투한 뱀이고 해리는 선악과와 같은 존재일 텐데요. 그동안 페넬로페가 해온 행동들이 뱀과 닮아 있지 않나요? 특히 등에 베길 것만 같은 돌맹이 사장에 누워 몸을 비틀어 폴을 유혹하는 것을 보세요. 뱀(?)이 따로 없죠.
13. 해리는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인데요. 그래서 뭔가를 놓치고 싶지 않은, 끌어 안고 있는, 하지만 해리를 죽인 폴에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마리안에게는 그의 죽음을 비밀에 붙여야 할 마치 선악과처럼 먹어치워야 할, 하지만 목 안에 걸리는 비밀 같은 것이겠죠. 그래서 둥근 형태의 사과 모습 같기도 하고 말이죠.
<비거 스플래쉬> GV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2016.8.11)
저도 gv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일이 있어서 참석을 못했습니다
씨네큐브 유스 시네마톡이후로 평론가님 gv에 참석 못하고 있는데ㅠ
장문의 글로나마 잘 읽었습니다
늘 쉽고 재밌는 글 감사드립니다
[유스] GV 때 오셨었군요, 그때 이미지 전혀 없이 말로만 진행하는 데 진땀 흘렸던 기억이 나요. 다행히 사탕 껍질 ㅋㅋ이 분위기를 밝게 해주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비거 스플래쉬]도 영화 좋더라고요. 읽을 수 있는 지점들이 많아 더 재밌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