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클랜>

elclan

(GV를 위해 소리나는 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그래서 비문이나 맞춤법 틀린 게 많아요. ^^;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정말 거짓말 같은 실화를 다룬 작품이죠.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레오폴도 갈티에리의 군부 독재가 무너지고 라울 알폰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민주화가 이뤄진 1980년대 초반 당시 아르키메데스 푸치오(길예르모 프란셀라)는 이웃 사람들과 친구들을 납치해 가족을 협박하고 돈을 뜯어내는 범죄를 저질렀죠.

납치를 다룬 사건은 빈번하지만, 푸치오 사건이 더 충격적인 건 가해자로 연루된 이들이 푸치오의 ‘가족 el clan’인 까닭입니다. 푸치오의 아내 에피파냐는 교직에 몸을 담고 있었는데 남편이 납치해 온 인질의 사육(?)을 담당했죠.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아르헨티나 럭비계의 슈퍼스타인 장남 알렉스(피터 란자니)는 납치 대상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았고요. 그외에도 두 딸과 두 아들은 아버지 푸치오의 범죄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하거나 묵인하거나 혹은 옹호했습니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다보니 30년 전의 일인데도 아르헨티나에서는 여전히 언급되고 도서나 드라마, 영화 등으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클랜>은 지난해 인구가 4천3백만 명인 아르헨티나에서 1,500만 명 그러니까, 인구 1/4이 이 영화를 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는데요. 그만큼 푸치오 가족의 납치 사건은 범죄 역사상 손꼽히는 이례적인 사건으로 여전히 그 충격파가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이겠죠.

<클랜>을 만든 이는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입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감독이지만, 파블로 트라페로는 <클랜>으로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인 감독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푸치오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은 초등학생(1971년 생)이었다고 하네요. 어린 나이였지만, 인상적인 사건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고 하네요. 파블로 트라페로는 직장을 잃은 후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크레인 월드>(1999)로 연출 데뷔를 했는데 2007년 <볼 앤 드레드>를 촬영하면서 <클랜>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하죠. 그리고 <레오네라>(2008) 때부터 본격적으로 푸치오 가족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네요.

영화는 푸치오의 사건을 다루면서도 푸치오의 부자 관계 묘사에 대해 많은 공을 들입니다. 무표정에서 드러나듯 확신을 가지고 납치를 행하는 아버지 푸치오와 다르게 장남 알렉스는 아버지를 도우면서도 죄책감에 힘들어 합니다. 그런 심정이 표정에서 역력하게 드러나요. 럭비팀 동료 릭키를 납치했다가 아버지가 살해하자 이 소식을 접한 알렉스의 표정을 보여줄 때 영화는 거울을 활용해 그의 얼굴을 두 개로 비춰주죠. ‘표정의 스펙타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클랜>은 푸치오와 알렉스의 얼굴 클로즈업을 빈번히 가져갑니다.

무표정의 아버지 푸치오를 연기한 배우는 길예르모 프란셀로인데요. 풍자 코미디 연기를 통해 자신만의 연기 영역을 구축한 배우라고 하는데요. 그런 평판을 고려해 <클랜>에서 악역을 연기한 것을 보면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범죄임과 동시에 자상한 아버지라는 이중성을 띈 강렬한 캐릭터에 길예르모 프란셀로를 파블로 트라페로 감독이 왜 캐스팅했는지 그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나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표정에 그 어떤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그는 냉혈한에 다름 아닙니다. 왜 아니겠어요. 레오폴도 갈티에리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아르키메데스 푸치오는 정보부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힌 전력을 가지고 있죠.

그에 동조한 알렉스는 가해자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그는 왜 아버지의 납치 사건에 가담했을까요. 영화는 이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는 건 아니지만, 단서들은 곳곳에 뿌려 놓습니다. 그는 ‘팀워크’가 중요한 럭비팀의 주요 선수입니다. 푸치오 가족도 일종의 팀 개념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있죠. 그런 알렉스가 아버지 푸치오나 가족을 배반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탈출구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 바로 여자 친구 모니카와의 결혼이죠.

안 그래도 영화는 아버지 푸치오가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알렉스가 모니카와 차 안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줍니다. 아버지에게서, 가족에게서 벗어나고픈, 아니 그저 평범한 가족 관계를 이루고싶은 알렉스의 절실한 바람을 드러내는 거죠. 그와 다르게 아버지는 아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습니다. 푸치오에게는 가족만이 믿을 사람입니다. 군부 독재 하의 정보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음의 수렁에 빠뜨렸던가요. 그렇기 때문에 푸치오에게 원한을 산 사람도 많을 거예요. 푸치오는 늘 주변을 의심할 수밖에 없죠. 푸치오에게 가족은 단순히 가족 개념을 넘어 그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공범입니다.

결국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알렉스의 운명은 영화 속 구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알렉스의 활약으로 학교 팀이 우승했을 때 기념 사진에는 알렉스의 등 뒤에 표정이 전혀 없는 아버지 푸치오가 서 있습니다. 또한, <클랜>에는 전경에 알렉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고 중경에 푸치오를, 그리고 후경에 엄마와 여동생들이 소소롭게 생활하는 모습의 구도로 잡은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해요. 알렉스는 평범한 가족 생활을 누리고 싶지만, 이를 아버지가 가운데서 막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겠죠. 그러니 알렉스에게는 결혼만이 유일한 해결책일 테고 푸치오는 결혼하겠다는 장남이 못마땅하기만 하죠. 납치 사건이 실패했을 때도 푸치오는 범죄에 가담하지 않은 알렉스를 심하게 나무랍니다.

어떻게 보면 이는 독재의 모습이기도 한데 그렇다면 푸치오와 알렉스의 관계에서 독재와 그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람의 관계를 볼 수도 있겠죠. 이는 비극입니다. 독재자의 말로는 레오폴도 갈티에리가 증명했죠. 푸치오는 납치범으로 체포가 된 후에 감옥에서 무죄를 주장했고 평생을 자신은 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알렉스는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죠. 아버지 때문에 인생이 망쳤다고 생각했고 또한 범행에 가담해 동료를, 죄없는 이웃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죄책감 때문에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어요. 왜 파블로 트라페로가 <클랜>을 다루면서 아버지 푸치오와 아들 알렉스의 관계를 중요하게 가져갔는지 알 수 있죠.

비극을 다루면서도 <클랜>이 이를 설명하는 음악 사용은 의외로 경쾌합니다. 예컨데, 킹크스(The Kinks)의 ‘밝은 오후 Sunny Afternoon’이 그렇죠. 얼마나 신나는 노래예요. 푸치오 가족의 납치 사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죠. 꽤 많은 의도가 들어 있는 음악 사용입니다. <클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모두 1980년대 당시, 그러니까 사건이 벌어지던 때에 유행하는 음악이었습니다. 당시의 시대를 드러내는 기호로 음악을 사용하고 있죠. 실제로 푸치오는 납치한 인질을 지하에 가둬두고 비명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끔 노래를 크게 틀어놓았다고 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들로 말이죠.

언급한 ‘Sunny Afternoon’는 이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제곡 격의 음악인데요. 제목만 하더라도 아이러니한 느낌을 담고 있는데요. 당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7년 간의 악랄한 군부 독재에서 겨우 민주화를 회복하다보니 다시 독재가 오면 어떡할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간신히 얻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기분도 있었겠죠. 그러다보니 지하에서 벌어지는 납치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기가 힘든 분위기는 아니었을까요. 푸치오 가족은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 안부도 묻고 살갑게 굴었다고 하니 누군들 그들에게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알았을까요. 어쩌면 겨우 찾아온 평화를 잃기 싫어 무의식적으로 비극적인 사태를 인지하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죠. 아직까지 푸치오 사건을 믿지 못하는 아르헨티나 인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엇나간 믿음’은 푸치오를 설명하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납치 사건으로 잡혀온 후 푸치오는 검사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저야말로 이 일의 희생양이죠. 힘 없는 자들의 희생양일 뿐입니다.” 민주화가 되면서 푸치오는 레오폴도 갈티에라 장군을 찾습니다. 하지만 만나주지 않죠. 말하자면 푸치오의 돈줄이자 보호막이 사라진 겁니다. 이제는 그 자신이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제 버릇 남 못준다고 군부 독재 시절 정보부에서 수많은 사람을 잡아와 가둬두고 고문했던 푸치오는 사람들을 납치해 가둬두고 그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합니다. 그런 일이 푸치오 만은 아니었죠. 역시나 정보부에서 일했던 이들 중에 납치를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쁜 일인줄도 모르는 이들이었으니, 국가를 위한 일인줄 알았으니 감옥에 갇혀서도 무죄를 주장하고 희생양이라고 자기 정당화를 했던 것이겠죠.

맞아요, 군부 독재 시절에 아르헨티나에서는 3만 명 넘는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당했다고 하죠. 심지어 비행기에 태워 하늘을 나는 도중 공중에서 이들을 떨어뜨려 살해했을 만큼 그 수법도 악랄했는데요. 푸치오 같은 이들에게는 이것이 범죄라기보다 군부정권에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했기 때문에 국가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납치에 가담하지 않은 아들 알렉스에게 배신자라고 몰아붙였던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아르헨티나는 비극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암흑은 푸치오와 같은 괴물을 만들었죠. 그와 같은 괴물은 후에 파블로 트라페로와 같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클랜>입니다.

 

시네마톡
(20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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