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산하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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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V 준비를 위해 소리나는대로 쓴 글이라 오타와 잘못된 문장이 많습니다.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

오프닝

지아장커의 영화치고 오프닝 좀 파격적이죠. 좀체 음악을 사용하지 않았던 전작과 달리 <산하고인>은 영화 시작과 함께 ‘펩 샵 보이즈’의 ‘Go West’가 흘러나옵니다. 이에 맞춰 일군의 젊은이들이 같은 율동에 맞춰 춤을 추죠. ‘가자! 서구로’ 우린 우리 길을 갈 거야/ 언젠가는 떠날거야/ 너의 손은 내 손을 잡고/ 우리의 꿈을 세울 거야  높이 날겠어/ 우리 친구들에게 작별을 할 거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거야/ 이것이 우리가 할 일이야

지아장커의 영화를 꾸준히 보아 온 관객이라면 ‘Go West’가 경쾌한 음악과 다르게 현대 중국 사회에 대한 우회적인 반영임을 알 수 있는데요. 지아장커는 빠르게 서구화되어 가는 중국 사회가 이로 인해 겪는 부작용을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녹여 영화로 만들고 있는데요. 아닌 게 아니라, ‘Go West’가 흘러나오는 이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한 번 비교해 보세요.

자오 타오가 연기한 션 타오가 첫 장면에서는 중국의 전통 대문이 인상적인 빌딩 내부에서 많은 사람들과 춤을 추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개발을 위해 산수가 깎인 허허벌판 위에서 눈을 맞으며 외롭게 율동을 하고 있죠. 서구지향적인 삶과 경제개발에만 올인함으로써 돈과 출세 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 중국인들의 삶과 정신은 화려한 경제 발전상과는 다르게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죠.

‘Go West’는 영어 속어로는 ‘죽어라’를 의미한다고 하죠.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한 중국의 정신은 ‘Go West’, 즉 ‘죽어가고 있’는 셈이죠. 그러니까, 음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지아장커의 영화치고는 파격적인 오프닝이지만, 그의 사용법은 확실히 지아장커다운 면모가 있는 겁니다. 결국 <산하고인>은 여럿이 함께 춤을 추며 부르던 ‘Go West’를 왜, 아니 어떻게 혼자서 쓸쓸하게 춤을 추며 부르게 되었는지를 따라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지아장커는 이를 위해 <산하고인>을 1999년과 2014년, 그리고 2025년 세 파트로 나누어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압축해 놓은 듯한 이런 구성은 중국이 빠른 시일에 이룬 압축성장을 형식으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주죠. 첫 번째 파트가 1999년인 점도 흥미로워요. 1990년대는 말하자면 중국의 개방화에 따른 발전이 모색되던 시기인데 1990년대의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선택이 이뤄졌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겠죠.

1999년의 이야기가 45분이 지난 뒤 2014년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비로소 이 영화의 제목 <산하고인>의 타이틀이 화면에 뜹니다. 1999년에 이뤄진 경제와 돈과 물질에로 기울어진 선택이 현재인 2014년과 미래인 2025년에 어떤 양상으로 벌어질지 곧 이어 펼쳐진다는 의미이겠죠.

1999년

<산하고인>은 지아장커가 자신의 청년 시절을 회고하며 만든 작품이라고 합니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돌아보게 되었다며 그 사이 중국의 급격한 경제적 성장과 함께 사람들이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음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하네요. 이를 위해 지아장커는 1999년 부분을 자신의 고향 ‘펀양’에서 그의 청년 시절을 회상하며 촬영하였죠.

세 친구가 등장합니다. 리앙즈(양경동)와 진솅(장역)은 소위 말하는 ‘불알 친구’인데요. 둘 모두 마을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타오(자오 타오)를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리앙즈는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으로 타오를 대하는 것에 반해 진솅은 독일 자동차를 구입해 타오 앞에서 자랑하는 등 돈을 앞세워 그녀의 마음을 사려고 합니다. 리앙즈이냐, 진솅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타오의 입장은 곧 정신이냐, 물질이냐, 를 선택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산하고인>은 시기로 세 부분을 나누면서 화면비 또한 해당 시기에 맞춰 변화합니다. 1999년의 화면비는 1.33:1입니다. 마치 TV 화면을 보듯 좌우 폭이 좁아져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화면비로 접근한 이유는 지아장커가 당시 상황을 담아 두었던 영상 라이브러리 소스를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요. 다른 의미도 있어 보이는군요. 좌우가 좁다는 건 타오의 입장에서 보자면 첨단을 의미하는 진솅인지, 전통을 뜻하는 리앙즈인지 아직 선택을 하지 못해 모색중이라는 상황의 반영이기도 하겠죠.

대신 1999년 부분에서의 카메라는 좌우 움직임이 눈에 띕니다. 타오가 근무하는 전자대리점의 장면이 대표적인데요. 타오를 가운데 두고 우측에 리앙즈가, 좌측에 진솅이 위치해 있죠. 다만 화면 안에서의 인물들의 움직임은 다른 편인데요. 화면 안에 리앙즈가 위치하고 있는 것에 반해 진솅은 거침 없이 화면으로 들어오는 움직임을 자주 선보입니다. 그전까지 이어오던 전통적인 관계에 물질과 첨단을 상징하는 진솅이 폭력적으로 침입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겠죠.

어떻게 보면 1999년이라는 시기는 과도기입니다. 전통과 첨단이, 정신과 물질이, 동양과 서양 문화가 거칠게 충돌하는 시기였으니까요. 그에 맞춰, 지아장커는 사실적인 화면 위에 조악한 CG를 의도적으로 ‘욱여’ 넣습니다. 뒤로는 그림자처럼 옛 건물이 늘어선 가운데 그 앞으로는 공사가 한창인 땅 위를 걷고 있던 타오의 위로 갑자기 비행기가 출현해 그대로 땅에 급전직하 하는 것이죠.

싸구려 티가 팍팍 나는 비행기 폭발 CG 장면은 전통과 첨단이 충돌할 때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아직 발전이 이뤄지지 못한 당대의 상황을 티가 팍팍 나는 CG로 활용한 점이 흥미로워요. 게다가 추락하지 않았다면 낭만적이었을 비행기의 추락과 폭발은 타오가 중국의 전통과 정신을 지향하는 리앙즈가 아닌 돈과 물질에 경도된 진솅을 선택함으로써 생활을 풍요롭되 정신은 병든 나날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상징은 1999년 장면에서 꽤 많이 등장해요.

진솅이 독일 자동차를 몰아 ‘황허 9곡’ 비석을 들이 받는 장면, 그 뒤로 흐르는 물줄기는 동양의 정신과 전통의 자리를 빼앗은 서양의 첨단과 물질의 삶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겠죠. 밤 하늘을 낭만적으로 밝혀주던 폭죽은 이제 산수를 파괴하는 폭탄의 무서움으로 돌변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갑작스럽게 이뤄진 변화라 부작용이 속출할 텐데요.

그것은 적정 무게를 넘어선 화물을 실어 시동을 거는 동시에 쓰러질 듯 위태로운 트럭의 이미지이기도 해요. 지아장커 감독은 타오를 진솅에게 뺐기고 일자리마저 잃어 평생을 살아온 고향 펀양을 떠나는 리앙즈의 장면을, 그리고 리앙즈와 결혼한 타오가 애를 낳는 장면을 트럭 장면을 전후해 편집하고 있습니다. 출산은 무언가를 낳는 의미인데 이 세 장면이 만들어내는 몽타주의 의미는 (마음의) 고향을 잃고 부유하게 될 이들 주인공의 앞으로의 운명을 암시합니다.

2014년

이제 영화는 15년을 훌쩍 건너 뛰어 2014년으로 옵니다. 1999년과는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지아장커가 먼저 주목하는 인물은 리앙즈죠. 리앙즈가 동물원 철창에 갇힌 호랑이를 바라보는 장면은 여러 모에서 쓸쓸합니다. 이는 현재 리앙즈가 처한 상황이자 중국의 현재이니까요. 호랑이와 같은 기개를 자랑하던 중국의 전통문화와 정신이 이제는 동물원에 갇힌 구경거리로 전락했죠. 그에 더해 리앙즈는 타오를 진솅에게, 더 정확히는 돈과 물질에 빼앗겨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타오를 진솅에게 잃은 후 고향을 떠난 리앙즈는 다시 펀양으로 돌아옵니다. 금의환향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내와 딸이 곁에 있지만, 그는 현재 암에 걸려 죽을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다시 돌아온 고향도 1999년과는 많이 변모했죠. 자전거와 사람이 다니는 길은 좌우가 넓어졌지만,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습니다. 기차가 다니던 철로 위에는 고속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그렇게 고향은, 펀양은, 중국은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며 외양을 바꾸었습니다.

사회가 빠르게 발전할수록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죠. 빠른 경제 발전은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도태되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급속도의 경제 발전 시대의 경쟁력은 다름 아닌 돈. 그와 같은 미친 경쟁에서 살아남는 건 소수일 뿐 다수는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2014년 부분에는 소수에 속하는 진솅 같은 이는 등장하지 않죠. 진솅은 시골 같은 펀양을 떠나 대도시 상하이에서 아들과 함께 호주로 이민 갈 준비를 서두릅니다.

타오? 타오는 역시나 리앙즈처럼 고향에 돌아와 주유소를 운영하며 많은 돈을 벌었죠. 하지만 그녀는 혼자입니다. 왜 아니겠어요, 돈과 물질만이 전부인 진솅은 젊은 날의 타오에게는 매력적으로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지내보니 겉만 번지를했을 뿐 정신은 말라 비틀어진 상태였겠죠. 타오는 자식까지 진솅에게 뺐긴 채 고향에 와 있는 상태입니다. 리앙즈처럼 시한부 인생은 아니지만, 내 배 아파 난 아이를 잃은 타오는 가정적으로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죠. 게다가 타오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고령의 아버지마저 사망에 이릅니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은 도태된 이들을 결국 죽음에 몰아 넣었죠. 빌딩의 층수가 하나하나 높아질수록 그에 비례해 실제적으로, 상징적으로 죽는, 그러니까 지하에 묻히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1.33:1이었던 화면은 1999년에서 2014년으로 바뀌자 좌우 폭은 물론 상하까지 늘어난 듯 보이는 1.85:1로 바뀌었죠. 1.85:1의 화면은 그전까지 1.33:1에 익숙했던 관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위압적으로 다가옵니다. 하늘 높이 올라가는 빌딩에 위압감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화면 비율이겠죠. (또한, 개발에 따른 발전상의 확장이기도 할 테고요.)

사람들은 그와 같은 발전 속도를 따라라기가 더딥니다. 2014년 부분에서의 카메라 움직임이나 편집의 속도도 1999년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느려졌죠. 카메라는 비추는 대상을 따라가기에 급급해 보이고 롱테이크 장면이 빈번해 편집점 역시 길어집니다. 진행이 느려졌다는 얘기죠. 그러다보니 분위기가 침울해요. 극 중 사람들은 아프죠. 사망하죠. 이를 어찌할 도리가 없는 남은 사람들은 무기력해지죠. 새로운 시대가 온 겁니다. 정신 시대에서 물질 시대로, 동양 정서의 시대에서 서양 물질의 시대로, 그야말로 ‘Go West’이죠.

타오의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타오의 아들이 상하이에서 펀양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아들과 이를 아래에서 바라보는 타오의 모습에서 2014년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지아장커의 의미가 느껴지죠. 심지어 타오 아들의 이름은 ‘달러 Dollar’입니다. 서양의 이름인 것도 모자라 의미는 ‘돈’이라뇨. 기가 찰 노릇입니다. 곧 아빠와 새 엄마를 따라 호주로 이민을 간다니 타오의 심정은 더욱 타들어 갑니다. 달러와 함께 있지만, 공동체라는 느낌은 들지 않죠. 몸만 중국인이지 정신은 서양식으로 개조된 달러에게 타오는 한편으로 위화감도 느낍니다. 타오는 더욱 외로울 수밖에 없죠. 그렇게 현대 중국인들은 개인화되고 파편화되면서 결국 부유하는 신세가 됩니다.

2025년

11년을 건너뛰어 2025년이 되었습니다. 지아장커가 묘사한 미래 배경이라. 전 결국 지아장커가 이를 위해 영화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 면에서는 2025년 부분이 가장 뛰어났습다. 지아장커는 <산하고인>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네요. “중국은 199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는데, 이런 비현실적인 경제환경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변하게 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사랑보다 경제력을 선택했을 때의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의 10년 후 미래를 상상해 본다면,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일들을 어떻게 돌아보고 있을까? 또, 우리는 ‘자유’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2025년의 화면비는 1999년의 1.33:1과 2014년의 1.85:1과는 또 달라서 2.39:1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1.33:1의 화면비가 좌우가 잘린 형태이고 1.85:1이 상하가 돋보이는 비율이라면 2.39:1은 저에게는 금붕어가 헤엄치고 다니는 작은 수족관 형태로 보이던데요. 그래서 2.39:1의 화면 속에서 진행되는 2025년의 이야기는 잘 꾸며진 어항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떤 목적도 없이 그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부유한다는 것은 목적 없음, 곧 정체성 부재라는 의미이기도 할 텐데요. 2025년의 주인공은 2014년에 중국을 떠나 호주에 이민 온 달러(동자건)입니다. 겉보기에는 중국인처럼 보여도 달러는 호주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중국말은 거의 배우지도 않은 채 영어를 하며 살아가고 있죠. 대학에서 중국어 수업에 들어가 1996년에 호주로 이민 온 교수 미아(장애가)의 강의로 중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때 교수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겠지만, 타오에게는 치명적인 질문을 하나 던지죠. “너희 어머니는 누구이니?”

타오는 기억이 없는 건지, 아니면 안 좋은 건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아버지 진솅이 있지만, 아버지와 소통이 되지도 않습니다. 진솅이 중국어를 하면 구글 번역기를 통해 타오는 영어로 알아듣죠. 그래서는 부자 간의 속 깊은 대화가 될리 만무합니다. 게다가 부와 물질만을 추구해온 진솅의 인생이 긍정적인 미래를 맞이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늘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며 총기를 소지하고 다닐 정도인 거죠. 타오는 그런 아버지가 혐오스럽습니다.

독립을 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습니다. 여전히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는 중국식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반대와 더불어 레스토랑에서 버는 알바비만으로는 독립이 어렵습니다. 누구 하나 기대고 싶은 구석이 없는 그에게 그나마 따뜻하게 대해주는 교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교수 또한 지금은 남편과 이혼한 상태인데요. 그러다보니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절실해집니다. 둘은 곧 애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그보다는 타오에게는 대체 엄마가, 교수에게는 대체 자식이 필요했던 것이겠죠.

결국 타오는 미아 교수와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중국에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둘을 모자 사이로 본 항공 카운터 직원의 오해에 기분이 나빠진 달러는 중국 여행을 포기합니다. 그 모습이 바로 달러의, 이 둘의 정체성이겠죠. 이와 같은 정체성의 문제는 그대로 2025년의 미래를 묘사한 지아장커의 정체성으로 치환할 수 있겠죠. 2025년의 첫 장면 아마 공중자기열차와 같은 미래형 기자 혹은 지하철의 종류로 보이는데요. 그 창으로 보이는 미래적인 풍경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미래 배경의 묘사라고 보기에는 좀 허약하다, 라는 인상을 주는 거죠.

이에 대해서 좋은 평을 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할리우드 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 <산하고인>의 2025년은 빈약하기 그지 없죠. 근미래 혹은 SF의 정체성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있어 보여요. 이게 바로 핵심이겠죠. 2025년의 인물들은 정체성 때문에 고민합니다. 나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을까, 분주하게 찾아다니죠. 하지만 소득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2025년을 묘사하는 지아장커의 연출력도 1999년과 2014년 부분에 비해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찾기가 힘들어요. 그게 바로 의도였겠죠. 특징 없음. 곧 정체성 없음.

부유한다는 건 찾아다닌다는 것이기도 해요. 다만 한정된 공간에서 부유하고 있다보니 정말로 어항 속의 물고기들처럼 보이죠. 2.39:1의 화면비를 채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거예요. 정체성을 찾아 부지런히, 쉬지 않고 부유하는 중국인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죠. 지아장커는 타오를 주목합니다. 타오의 선택이 부른 결과이니까요. 리앙즈 대신 진솅은 선택한 것, 달러를 자신이 키우지 않고 양육권을 진솅에게 넘긴 것. 그로 인해 타오는 이제 ‘Go West’에 맞춰 혼자 춤을 춥니다. 그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이겠죠.

하지만 이것이 끝일까요. 그렇지 않을 거예요. 지아장커는 이런 인터뷰를 했습니다. “나는 50대의 ‘타오’가 그녀의 선택을 재고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산하고인>이 모자 상봉으로 끝나진 않았지만, 관객들은 ‘타오’와 아들 ‘달러’가 만나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아장커 영화의 세계는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형태입니다. ‘Go West’ 서구로 향하는 중국의 정신은 계속 서쪽으로 향하다 보면 다시 중국으로 와 있겠죠. 타오는 지금 혼자 춤을 추고 있지만, 곧 그녀의 손을 잡아 함께 율동에 참여할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산하고인> GV
CGV 압구정
(20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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