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나의 사랑, 그리스>

(GV를 위해 마구잡이로 적은 글이라 문장이 둔탁하고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있을 거예요.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달콤한 제목을 인식하고 영화를 봤다가 깜짝 놀랐어요. 물론 사랑과 같은 감정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작품이지만, 그리스가 주는 아름다운 풍경과는 다른 그리스를 국가 부채 위기로 몰아넣은 상황이 전면에 나서는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Worlds Apart’인데요. 한국 말로 풀자면, ‘크게 동떨어진’입니다. 무엇이 ‘크게 동떨어졌다’는 걸까요? <나의 사랑, 그리스>는 3개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각 장(part)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메랑’입니다. 여대생 다프네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괴한의 공격을 받습니다. 길을 지나던 중 파리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다프네를 구해줍니다. 사실 파리스는 내전 중인 시리아를 탈출해 왔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다프네와 사랑에 빠지는데요. 아뿔싸, 다프네의 아버지 안토니는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 이방인에게 화풀이를 하는 자경대원입니다.

두 번째는 ‘로세프트 50mg’입니다. 그리스 남자 지오르고는 우울증 약 로세프트가 없으면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부인과의 불화, 직장에서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데요. 우연히 스웨덴에서 온 엘리제를 만나 원나잇 스탠드를 하고 그녀에게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그녀는 지오르고가 소속된 회사에 파견되어 직원들의 상당수를 해고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세 번째는 ‘세컨드 찬스’입니다. 독일에서 그리스로 이주해 온 세바스찬은 마트에 갔다가 마리아의 도움으로 인연을 맺습니다. 60세를 훌쩍 넘긴 이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 데이트를 하기 시작합니다. 평생을 주부로 살아왔던 마리아는 세바스찬 덕에 낭만을 알게 되고 세바스찬은 평생을 홀로 지내다 마리아 덕에 사랑을 알아갑니다.

3개의 에피소드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어 보입니다. 대신 공통점은 보여요. 각 에피소드에서 맺어지는 커플은 서로 국적이 다릅니다. ‘부메랑’의 다프네와 파리스는 각각 그리스와 시리아죠. ‘로세프트 50mg’의 지오르고와 엘리제는 각각 그리스와 스웨덴입니다. 그리고 ‘세컨드 찬스’의 60대 커플은 독일과 그리스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나의 사랑, 그리스>의 ‘로세프트 50mg’에서 지오르고를 연기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합니다. <나의 사랑, 그리스>가 두 번째 연출작인 그는 “그리스의 끔찍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매일 일상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그리스 인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그리스는 2000년대 들어서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게 되는데요. 과다한 사회복지비의 지출, 국가회계의 분식회계처리, 그리고 관광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가 주요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파생된 사회 문제 역시 만만치 않아서요. 실직하고 희망을 잃은 그리스인 중 일부는 파시스트가 되어 자신들의 절망감을 그리스로 유입된 이주민들을 향해 폭력적으로 휘두르고 있죠.

또한, 국가 부채 위기이다보니 그리스의 기업들은 도산에 이르게 되는데요. 타국에서 이들 기업을 매각하기 위해 직원을 파견하고 그래서 그리스인 직원들은 대량 해고 사태를 맞게 되죠. 그러면 사회의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가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 잃은 남편은 방황해 그런 남편과 살아야 하는 아내는 맘이 편치 않아 그 영향이 자식에게까지 미칠 수밖에 없는데요.

지금 말씀드린 그리스의 위기 상황은 <나의 사랑, 그리스>의 각각의 에피소드의 배경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리스인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서로 ‘크게 동떨어진’ 이들끼리 어떻게 하면 화해하고 협력하여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의도가 더 강해보입니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이런 얘기를 했죠. “사랑을 통해 현재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문제, 특히 유럽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난민과 경제적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과 가족이 될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영화는 그것을 이야기한다.”

그처럼 이 영화는 가혹하고 혼란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죠. 사랑을 이어주는 방식이 흥미로운 건 그리스의 문제라고 해서 그리스 내부의 것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가와 인종이 연계되는 방식으로 풀어간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사랑으로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건데요. 사실 3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크게 동떨어진’ 것 같아도 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프네와 지오르고는 남매 사이이고, 이들의 엄마가 마리아입니다. 이들 가족은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하나로 융화되지 못하지만, 사랑의 힘을 믿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결국 한 자리에 모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족의 개념을 이렇게 작은 규모가 아닌 전 세계 규모로 가져가 하나로 엮는 시도를 보여주는데요. 바로 거기에 이 영화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이들 가족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음에도 각 에피소드마다 <나의 사랑, 그리스>는 서로 연결하는 미장센을 극 속 이미지로 반영합니다. 각 에피소드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미지 중 하나는 아마 그리스 정교회의 행진으로 보이는데요. 에피소드마다 등장하기 때문에 서로 동떨어진 에피소드를 모두 실로 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종교라는 게 화합을 앞세우기 마련이잖아요. 사랑을 통해 서로 반목하고 거리를 두는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 같죠.

각 에피소드의 배치 역시 정교하게 하나로 맞춰져 있는데요. ‘부메랑’이 청춘을, ‘로세프트 50mg’이 중년을, ‘세컨드 찬스’가 장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어 ‘하나의 생’이라는 틀을 마련하고 있죠. 게다가 <나의 사랑, 그리스>가 제시하는 이야기는 특수하기보다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스가 처한 국가 부도 위기는 그리스의 특수한 상황이면서 또한, 어느 나라도 그처럼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과거에도 반목을 한 적이 있고 그런 위기의 상황들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이런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랑이죠. 극 중 세바스찬이 영화를 시작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모든 것은 사랑으로부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묘사돼듯이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고 싸우고 하는 것도 모두 사랑에서 비롯됐다는 얘기입니다. 해결책도 사랑이라는 의미가 되겠죠. <나의 사랑, 그리스>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그리스 신화죠,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연으로 의미를 부여합니다.

프시케의 미모를 질투한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로 하여금 프시케를 쫓아냅니다. 그러나 프시케를 본 에로스는 프시케의 외모에 흠뻑 빠져 그녀를 궁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밤이면 찾아와 프시케와 사랑을 나누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프시케에게 에로스 자신의 얼굴을 절대 보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프시케는 에로스가 잠든 사이 초를 가지고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역시나 멋진 외모에 반하고 마는데요. 그때 촛농이 에로스에게 떨어지고 실망한 에로스는 프시케를 떠납니다. 절망에 빠진 프시케는 에로스를 찾아 지옥까지 간 끝에 다시 만나게 되는데요.

여기에는 사랑으로 비롯된 질투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역시나 사랑을 찾는, 극 중 세바스찬의 말처럼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는 바벨의 신화와도 맥을 같이 해서 사람들이 신에 가닿기 위해 하늘 높은 탑을 세우니까 신은 인간들에게 서로 다른 언어를 부여했는데요. 그럼에도 인간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면 바로 ‘사랑’ 때문일 거예요.

이를 위해 <나의 사랑, 그리스>는 의도적으로 다국적 캐스팅을 하고 있는데요. 다프네를 연기한 니키 바칼리, 지오르고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마리아를 연기한 마리아 카보기아니 등 그리스 배우들과 함께 파리스를 연기한 이스라엘 출신의 타우픽 바롬, 엘리제를 연기한 헝가리 출신의 안드레아 오스바르트, 세바스찬을 연기한 J.K. 시몬즈 등이 바로 그러하죠.

배우들끼리 서로 태어난 나라와 언어가 달라도 크게 문제가 없는 건 더듬거리는 말일지라도 서로 얘기하다 보면 이해가 되고 무엇보다 감정은 보편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소통하는 데 큰 문제가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그리스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사랑이라는 걸 <나의 사랑, 그리스>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회의적인 분들도 계실 거예요. 다만, <나의 사랑, 그리스>에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이 전제하는 건 이 영화가 인용하는 에로스와 프시케의 신화가 나왔던 시절부터 그런 갈등과 반목은 있어왔고 그럼에도 세계가 여전히 존재하는 건 사랑을 통해 극복했기 때문이라는 메시지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실패가 끝이 아닌, 이를 딛고 일어서는 ‘세컨드 찬스’, 즉 두 번째 기회가 중요하다는 의미인데요.

그에 맞춰 이 영화는 에피소드 구성이기는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는 희한하게 결말을 유예한 채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바로 세 번째 에피소드 ‘세컨드 찬스’에서 핵심을 이야기하겠다는 건데요. 각 에피소드의 화면 구성은 마치 사람들이 벽에 가려져 있는 듯 구획화되어 있습니다. ‘부메랑’에서는 지나가는 버스 사이에서 다프네와 파리스가, ’로세프트 50mg’에서는 회사 내 파티션으로 직원들이, ‘세컨드 찬스’에서는 슈퍼마켓의 진열대로 인물들이 구분되어 있는데 구획화된 곳을 나오는 것이 <나의 사랑, 그리스>에서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사랑을 나눌 때는 구획화된 답답한 곳을 나와 뻥 뚫린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요. 물론 공개된 장소라고 해서 모두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거세게 내릴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는 몸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구획화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살아있는 그런 곳 말이죠. 바로 집과 같은 곳이 그런 장소가 되어야 하는데요. 그러니까, 그리스 사회가 처한 문제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는데 다시 가정이 바로 서는 것에서부터 그리스 사회를, 더 나아가 전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자는 의도이겠죠.

내부의 온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 사이의 감정입니다. 감정은 인간이라는 존재 증명인데요.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있지만, 우울함과 슬픔 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있습니다. 이 모든 건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사실 각 에피소드에서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기계적인 업무 처리를 하거나 등등 그 장본인들도 실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 분노와 증오로 바뀐 걸 거에요. 그렇게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으로 바뀌듯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보세요. 다프네의 아버지 안토니는 비록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딸의 죽음으로 인해 사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죠. 감정이 없어 보이는 엘리제는 원나잇 스탠드로 만난 지오르고와 만남을 거듭하면서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되고 결국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그에 대한 해고 명령을 내릴 수없어 상사의 압박 속에 우울증에 시달린 끝에 지오르고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갑니다. 결국 사랑으로부터 시작해 사랑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요.

바로 그런 메시지가 통해서 이 영화는 그리스에서 2015~2016년 시즌에 가장 흥행한 작품이 되었는데요. 이는 당시 그리스에서 함께 개봉했던 <스타워즈: 꺠어난 포스>와 <007 스펙터>를 뛰어넘는 기록이라고 합니다.

 

GV <나의 사랑, 그리스>
압구정 CGV
(2017.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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