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문라이트>

(생각을 정리하려고 마구 써내려간 글이라 문장이 둔탁하고 오타도 많을 거예요. 언제나처럼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

먼저, 이 영화의 제목인 ‘문라이트’가 과연 영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알려진 사실대로 <문라이트>는 각본가 타렐 알빈 맥크래니가 연극 학교에서 과제로 낸 작품 ‘달빛 아래에 흑은 소년들은 파랗게 보인다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를 확장했다고 하죠. 연극은 소년과 청년 시절을 다뤘을 뿐인데 영화는 여기에 성년 시절을 더했고, 뒤에 더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아예 극 중 주인공의 생과 또 다른 생의 시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극 중 주인공의 생은 명보다는 암이 많죠. 불안정한 엄마의 상태, 주인공을 괴롭히는 학우들 등과 같은 인생의 어둠을 비추는 건 비밀스러운 사랑입니다. 어둠으로 쌓인 그의 인생이 아주 엉망이 되지 않은 건 한줄기 달빛과 같은 인생을 다잡아줄 어떤 동력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비록 청소년 시절 자신을 괴롭히는 학우에 대한 폭력으로 감옥에 갔다 와 마약상으로 일했지만, 인간 실격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삶을 보고 있으면 감동 비슷한 것이 느껴져요. 무너질 수도 있는 삶이었는데 사랑과 그를 괴롭힌 배경에 이 악물고 지지 않겠다며 잡아 놓은 삶의 기준 때문이었겠죠.

이 영화에는 (달)빛의 시점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달을 비춰주는 장면은 블랙이 케빈과 관계를 완성하는 마지막 부분에 한 번 등장합니다!) 영화는 소년 시절을 ‘리틀’(알렉 히버트), 청소년 시절을 ‘샤이론’(애쉬튼 샌더스), 성인 시절을 ‘블랙’(드레반트 로즈)으로 하여 한 인물의 성장기를 보여주는데 언급한 시점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샤이론입니다. 샤이론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케빈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었죠. 그날은 언제나처럼 샤이론이 기분이 안 좋은 날이었죠. 역시나 엄마 폴라(나오미 해리스)는 약에 절어 있었고요. 무엇보다 케빈이 학교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얘기를 해서 특히 기분이 안좋습니다. 꿈까지 꿨을 정도니까요.

기분이 안 좋은 상황에서 해변에 나와보니 케빈이 있어요. 그때 둘은 첫 키스를 나누죠. 샤이론에게는 마음에 둔 이와 나눈 첫 번째 스킨쉽이었습니다. 이때 카메라는 이 둘을 부감으로 잡는데요. 이 영화의 제목이 의미하는 ‘문라이트’는 샤이론이 케빈과의 사랑을, 특히 샤이론이 이날의 접촉을 평생의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며 살아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달빛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화장실의 인공 빛에서 내려보는 듯한 구도의 장면인데요. 이 또한, 샤이론의 장면에서 등장해요. 학교에서 꾀임에 빠진 케빈에게 샤이론이 폭행을 당한 날, 피멍이 든 얼굴을 얼음을 가득 채운 세면대에서 식히는 장면입니다. 케빈으로 하여금 샤이론에게 상처를 준 고약한 운명을 이겨보겠다는 의지를 상징하는데요. 이 장면 이후 샤이론은 자신을 괴롭힌 이에게 복수를 하고 감옥에 가게 되죠. 그리고 세월이 흘러 블랙이 되는데 샤이론 에피소드에서의 세면대 장면이 다시 활용이 됩니다. 그 전에 강한 의지를 묘사하는 장면이었다면 지금은 냉점함의 표현이겠죠. 그렇게 변화한 자기방어를 가지고 성년이 된 것이고요.

케빈과의 사랑이 긍정적인 의미의 달빛이었다면, 주변의 괴롭힘은 샤이론이 살아가는 데 깡다구를 심어준,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상황을 오히려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바꿔준 것입니다. 무엇보다 후안(마허샬라 알리)의 존재가 중요한데요. 후안은 친구들의 폭력에 도망치다 마약 소굴에 들어온 리틀을 구해줍니다. 그에 더해 집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알고는 먹을 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어떤 면에서 보면 유사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맡았습니다.

후안의 역할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문라이트>에서 블랙 이후 부재한 성장의 시기를 부여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화는 리틀과 샤이론과 블랙 세 에피소드로 진행이 됩니다. 각 이름의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죠. 근데 유독 리틀 부분에서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건 후안입니다. 후안은 아빠가 없는 리틀의 아빠 역할을 해주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블랙으로 마무리 되는 이 영화의 블랙 이후 나이대의 삶을 보여주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감옥에서 출소해 마약상이 된 블랙은 리틀 시절 따랐던 후안처럼 이빨에 금 액세서리를 부착하고 차에는 왕관 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에피소드를 할애하지 않지만, <문라이트>가 리틀->샤이론->블랙->후안의 구도로 한 인물이 성장한다는 걸 보여주죠.

레이어를 더하는 건 이뿐이 아닙니다. 후안은 죽을 운명의 인물이죠. 그의 죽음은 샤이론 에피소드에서 대사로 언급됩니다. 말하자면 후안은 곧 유령이 될 인물입니다. 근데 이 영화는 블랙의 마지막 장면에 리틀을 배치합니다. 리틀은 특정 이름이라기보다 어린 시절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또 다른 흑인의 삶으로 흑인의 다양한 삶을 유추토록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배치된 리틀의 삶이 그 전 리틀과 달라진다면 후안과 같은 존재가 자신이 경험했던 삶의 노하우를 알려준 결과이기도 하겠죠. 부러 해변으로 데리고 나가 거친 물살을 헤치며 수영을 할 수 있도록 후안이 리틀에게 가르쳐 주는 장면은 삶을 헤쳐나가는 법에 대한 가르침일 거예요. 죽음이 예정된 후안이 그 자신과 같은 흑인이면서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를 위해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문라이트>의 첫 장면은 흥미로워요. 후안이 마약을 파는 동네에 와서 그의 곁으로 도망치는 리틀이 등장하기까지 3~4분의 장면을 원테이크 원씬으로 잡아요. 이들의 삶이 하나로 묶인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나서 친구들의 괴롭힘을 피해 창문을 나무로 가려놓은 방에 숨어 있던 리틀을 향해 후안이 옵니다. 이때 후안은 창문을 가려놓은 나무를 떼어내는데요. 그때의 구도는 리틀과 후안이 나무가 떨어져 나간 창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는 구도입니다. 마치 서로 거울을 보는 인상데요. 유령 후안이 자신이기도 했던 리틀을 찾아와 자신과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고 볼 수 있겠죠.

어떻게? 후안은 리틀에게 밥을 사주며 마약굴과 같은 동네에는 절대 오지 말라고 충고를 합니다. 왜 마약상이 됐느냐는 리틀의 말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눈물을 흘리죠. 아마 샤이론과 같은 일이 있었겠죠. 그리고 나서 그는 죽은 것으로 처리가 됩니다. 다시 살아가는 또 다른 후안은 이런 길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일종의 유령이 되어 알려준다고 할까요. 다행히도 리틀에게는 친구이자 짝사랑하는 대상이자 힘이 되어주는 케빈이 있었죠.

이처럼 <문라이트>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이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즉 양면적인 이야기를 펼칩니다. 인간의 삶이란 게 그렇죠. 비슷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바라보는 달빛이 어떤 종류이냐에 따라서 다양해지는 것인데요. 리틀과 샤이론과 블랙의 엄마가 두 명인 것도 그래요. 실제 엄마 폴라는 약에 절어 정신이 오락가락하죠. 말짱할 때는 리틀에게 다정하게 굴려고 노력하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면 리틀을 들들 볶아 약을 살 돈을 뺐고 집에도 못들어오게 합니다. 그럴 때마다 리틀이 의지하는 건 후안과 후안의 여자 친구 테레사(자넬 모네)입니다. 리틀의 기분을 살펴주고 먹을 밥도 주고 잠자리도 제공하고 엇나갈 수 있는 케빈을 다잡아 주는 역할을 하죠.

베리 젠킨스 감독은 <문라이트>를 만들면서 “개인적이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그동안 봐왔던 흑인(이 주인공인) 영화와는 결이 많이 다르죠. 대개 백인 지배층에 억압받는 모습이거나 인종차별에 대한 은유의 존재로서 흑인을 다룬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죠. <문라이트>는 다른 인종의 필터링을 통과하지 않은 온전히 흑인의 시선에서 흑인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는 의미가 있는데요. 보고 있으면 이들의 삶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느껴져요.

베리 젠킨스 감독은 또한 이런 말도 했어요. 다루는 소재와 주제에 적합한 규모와 형식과 삶을 담는 것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말이죠. 이 영화가 다루는 건 시궁창 같은 환경에서도 한줄기 달빛과 같은 의지를 삶의 동력으로 삼은 이의 인생인데요. 그래서 베리 젠킨스 감독은 그 자신이 감독 생활을 꿈꾸면서 달빛이 되어준 영화를 <문라이트>에서 오마주하고 있습니다. 그 목록은 생각보다 꽤 많아요.

먼저 찰스 버넷 감독의 <양 도살자>(1977)를 들 수 있는데요. <킬러 오브 쉽>은 캘리포니아 동부 지역에서 양 도살을 하는 흑인 가족을 다룬 작품으로 <문라이트>처럼 이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주인공 가족의 엄마는 샤이론의 엄마 폴라처럼 좀 무섭고 그래서 아들은 주눅이 든 모습인데요. 리틀과 샤이론을 연기한 배우들은 바로 <킬러 오브 쉽>의 극 중 분위기와 배우의 연기를 참조해 촬영에 임했다고 하죠.

<문라이트>가 세 개의 시기로 진행하는 방식을 택한 건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쓰리 타임즈>(2006)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쓰리 타임즈는 1911년, 1966년, 2005년을 다루는데 시기를 달리하지만, 주인공 연기는 장첸과 서기가 모두 소화하고 있는 반면에 <문라이트>는 시기마다 다른 배우들이 동일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죠.

원래 베리 젠킨스 감독은 엄청난 영화광이라고 하네요. 많은 영화를 보면서 느낀 남다른 감정이 있다고 해요. 특히 왕가위 영화를 보면서 서로 사랑하지만, 맺어지지 못하는 이들간의 감정을 다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해요. 국가도, 인종도 다르지만,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해준 매체가 영화였다는 건데요. <문라이트>에는 특히 왕가위 영화의 특정 장면이 많이 연상이 되죠. 예컨데, 블랙이 케빈을 방문하러 갈 때 도로 장면을 보여주는데요. 장면의 구도나 흘러나오는 노래는 다름 아닌 <해피 투게더>(1997)의 오마주죠.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의 쿠쿠루쿠쿠 팔로마(Cucurrucucu Paloma)의 음악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모습도 차용하고 있죠.

또 하나 있습니다. <문라이트>에서 샤이론의 가장 중요한 관계인 케빈과 리틀 시절에 운동장에서 뛰노는 장면 있죠. 미국의 뮤직비디오 아티스트인 카일 조셉(Kahlil Joseph)의 <Until the Quiet Comes>(2013)에서 가져왔는데요. 굉장히 흡사합니다. 세면대에 얼음을 채워놓고 세수를 하는 장면은 클레어 드니 감독의 <아름다운 직업 BEAU TRAVAIL>(1999)에서 가져왔고요. <아름다운 직업>은 허먼 멜빌의 고전 『수병 빌리 버드』를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거친 오지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는 여러 인종이 섞여 있는 프랑스의 한 외인부대의 이야기인데요.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과 그 위의 장엄한 푸른 하늘이 대비되는 가운데 병사들이 훈련하면서 유대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또한, <문라이트>와 닮아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희망이 없다고 비관하며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는데요. 여전히 어둠이 자욱한 인생이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희망을 품지 않기 때문인데요. <문라이트>를 보니 다른 이유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힘들게 했던 주변 사람들과 환경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나의 삶을 이끌었던 동력이 아닐까, 자문하게 되는 건데요. 우리 삶의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삶 그 자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죠. 어린 시절을 거치고 국적, 성별, 인종으로 묶이기도 하고요. 그런 삶의 보편성을 담아 내면서 우리가 자주 보지 못했던 흑인을 주인공으로 그들 자신의 필터로 특별함을 부여하는 영화가 바로 <문라이트>입니다.

 

GV <문라이트>
명동역 CGV 씨네라이브러리
(2017.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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