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퍼스널 쇼퍼>

(*GV 준비를 위해 생각난대로 쓴 글이라 문장이 둔탁거려요.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예술영화와 장르영화를 구분하지 않고 만드는 감독으로 유명하죠. <보딩게이트>와 <카를로스>는 범죄물이라고 할 수 있고요. 또한, 여성의 이야기도 많이 만들어왔죠. 장만옥과 함께 했던, 심지어 그녀와 결혼까지도 했는데요. <클린>이라는 작품이 있었죠. 한국에도 개봉했던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는 줄리엣 비노쉬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클로이 모레츠와 함께 했습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특징은 이 배우들의 현실의 모습을 영화 속에 투영한다는 점일 텐데요. 일례로,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이제는 나이를 먹어 젊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줄리엣 비노쉬의 현재와 20대 배우 중 가장 잘 나가는 클로이 모레츠의 현실을 영화 속에 직접 반영해 줄리엣 비노쉬가 클로이 모레츠를 질투하는 역할을 주기도 했어요.

요는,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어떤 경계를 두지 않고 언급한 영화 속 배우의 활용처럼 오히려 경계를 허물어 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연출을 선보인다는 데 있는데요. 지금 소개할 <퍼스널 쇼퍼> 또한 그러하죠.

<퍼스널 쇼퍼>의 첫 장면은 감독의 그런 연출 성향은 물론 이 영화를 이해하는 일종의 가이드이기도 한데요. 주인공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쌍둥이 남매였죠, 루이스의 영혼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고저택으로 루이스의 전 여친과 함께 방문합니다. 이때 카메라는 철창 문 뒤에서 다가오는 모린 일행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죠. 경계를 넘어서는 이야기와 이미지를 선보이겠다는 선언 혹은 가이드 같은 것이죠.

안 그래도 철창 문이 열리면서 모린 일행이 들어오는 건 현실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들어온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처럼 <퍼스널 쇼퍼>에서 현세와 영의 세계를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구분지어지는 모든 개념을 허무러트려 혼재하는 세계로 만들어버려요. 그래서 이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와 두 번째 시퀀스의 편집은 그런 개념을 적용해 보여주고 있는데요. 모린이 저택에 들어와 살피는 낮 장면이 이어지다가 테라스에 나가 바뀌어라 뿅! 하듯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순간 마치 하나로 연결된 듯 밤 장면에 모린이 다시 저택을 이리저리 살피는 장면으로 이어져요.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낮과 밤’ 정도 될 것 같은데요. 이런 편집의 장면에서 저는 화가 M.C. 에셔의 <낮과 밤>이 연상되더라고요. M.C. 에셔는 초현실주의 화가로도 유명한데 안 그래도 <퍼스널 쇼퍼>에는 추상화가의 선구자 ‘힐마 아프 클린트’가 언급되죠. 예, 영화를 위해 창조한 화가가 아니라 실제 화가입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그렇게 현세와 영의 세계, 현실과 초현실세계, 추상과 구체의 세계, 심지어 장르영화와 작가영화 등을 구분하지 않고 공존하는 세계로 그리고 있죠.

모린과 루이스의 쌍둥이 남매 설정이 의미를 갖는 것은 하나라고 생각했던 반쪽이 떠나가면서 공백이 된 그 반쪽을 찾는 이야기인 건데요. 그래서 이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가 마치 거을상처럼 마주 보는 구조이죠. 영매인 모린이 유령이 된 쌍둥이 오빠와 만나려하는 예술영화, 그리고 퍼스널 쇼퍼 모린이 키라의 살인 사건에 연루되는 공포 혹은 스릴러 장르영화가 함께 진행되다가 서로 하나가 되는 구조인 것이죠

이에 대해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의 환상과 꿈, 두려움과 씨름한다. 이것들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매우 실제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유령은 우리의 기억, 잠재의식과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모두와 관련될 수 있다.” 그래서 <퍼스널 쇼퍼>의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은 인간과 유령이 공존한다는 믿음 하에 추상적 존재인 유령을 실제적인 존재로 그려내고 있죠.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개념의 세계로 하나로 엮기 위해서는 이를 이어줄 대리의 존재가 필요한데요. 바로 여기에 이 영화의 제목인 ‘퍼스널 쇼퍼 Personal Shopper’가 의미를 갖습니다. 일차적으로 극 중 모린의 직업이 퍼스널 쇼퍼이죠. 잘 나가는 엔터테이너 키라가 너무 바빠 대신 옷과 장신구를 찾아다 주는 등의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이차적으로는 ‘영매’를 의미하죠. 모린은 극 중에서 여러 번 자신은 영매라고 합니다. 심장병으로 먼저 죽은 쌍둥이와 살아있을 적에 누가 먼저 죽게 되면 둘 모두 영매이니 함께 만나자고 약속까지 한 상태이죠.

‘대리하는 행위’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퍼스널 쇼퍼>에는 대리하는 행위와 기구들이 많이 등장해요. 이 영화에서 희한하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문자 메시지 시퀀스가 있죠. 스마트폰이 바로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들을 대리하는 기구인데요. 스마트폰이라는 게 앞에 대화를 나누는 대상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대상과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영매’ 같은 것이죠.

또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유독 기차와 지하철 장면이 많아요. 목적지를 연결해주는 교통 수단인데요. (그래서 이 영화의 화면비는 기차처럼 긴 2.35:1의 화면비를 갖고 있죠.) 특히 문자를 나룰 때 기차, 더 정확히는 런던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스타이죠. 바로 유로스타에서 나누는 문자 메시지 시퀀스는 죽은 쌍둥이 남매에게서 신호를 받은 후 모린이 긴가민가하는 상황에서 바로 벌어지는데요. 그 의심을 어떻게 보면 실제적으로 확인시켜주는 장면이랄 수 있을 텐데요. 그래서 기차가 이동하는 장소를 도버 해협을 건너야 하는 런던과 파리의 유로스타로 잡아주고 있죠.

그러니까, <퍼스널 쇼퍼>에는 유령을 인식하는 과정이 단계별로 제시되는 듯한 인상이죠. 영매인 모린이 십(+)자 표시를 발견한 후 스마트폰을 통해 유령과 대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확인의 단계를 거친 후 뒤에 가면 실제로 모린의 쌍둥이 형제가 모습을 드러내죠. 그런 식으로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모린이 퍼스널 쇼퍼의 의뢰인으로 모시는 키라의 옷을 입는 순서로도 드러나요.

문자 시퀀스에서 유령인지 혹은 잉기인지 알 수 없는 대상이 “금기 없인 욕망도 없지”라고 문자를 보내죠. 현세에서 영의 세계는 일종의 금기의 세계인 것처럼 퍼스널 쇼퍼인 모린에게 의뢰인의 옷을 입는 것 또한 금기입니다. 하지만 모린은 퍼스널 쇼퍼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키라처럼 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으로 보여요. 구두를 받으러 간 곳에서 디자이너가 한 번 신어볼래, 라고 하자 모린은 볼멘소리로 예전에도 한 번 그랬다가 당신이 키라에게 고자질해서 혼났다는 얘기를 하죠.

그래서 키라의 옷을 입는 순서는 좀 조심스러워요. 일단 갑작스럽게 모린이 상의를 탈의하고 심장병 검사를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퍼스널 쇼퍼 직업인으로, 정말 영의 세계가 존재하는지 의심하는 영매로서 자신이 그어놓은 의심의 선을 조금씩 넘는 과정을 이 영화는 모린이 키라의 옷을 서서히 갖춰 입는 과정과 등치해요. 그래서 신발을 신는 장면 그 뒤에 체형 속옷을 입는 장면, 문자 시퀀스 후에 키라 집으로 가 그녀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아예 검은 옷으로 갖춰 입죠. 그리고 나서 행하는 자위 행위, 유사 섹스 관계인데요. 섹스는 일종의 하나 됨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검은 옷은 유령을 불러내는 영매를 연상시키죠. 모린의 현세와 영의 세계, 삶과 죽음 등 모린을 둘러 싼 구분되는 개념 등이 하나로 합쳐짐을 자위행위로 드러내는 겁니다.

그때 자위하는 모린의 옆에 등장하는 유령의 모습. 근데 우리는 그 유령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 전에 모린의 쌍둥이 형제 루이스와 접촉(contact)하겠다며 간 그 저택에서도 유령을 만났었는데요. 잔뜩 화가 나 있고 모린을 향해 폭력적인 유령은 루이스의 것 같지 않습니다. 현세와 영의 세계를 대리하는 모린은 혹시 그 저택에 머무는 다른 령을 대리하여 키라의 집으로 데리고 간 것이 아닐까요. 그 영은 혹시 키라에게 원한이 있어 키라와 한동안 불륜 관계였다가 헤어진 보그 지의 잉기로 하여금 키라를 죽이게 했던 건 아닐까요.

의문은 또 있습니다. 키라의 시체를 확인한 모린이 거실로 나왔을 때 맞은편 문쪽에서는 영들끼리 다투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영화에는 그런 대사가 나오죠. “죽은 자가 산 자를 보살핀다죠.” 그러니까, 모린을 보호하기 위해 루이스의 영이 폭력적인 영매와 싸움을 벌인 것은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이 영화를 보고 해석하는 관객의 몫일 겁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퍼스널 쇼퍼>를 두고 이런 얘기를 했죠. “우리의 인식 혹은 상상과 현실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영화다. 나는 유령을 보여주기만 했을 뿐 그 누구든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완전히 열어 놓았다.”

그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고작 유령을 보여주었다고 다양한 해석의 폭이 열리는 것은 아닐 겁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말한 ‘모호함’ 그 정체는 현실과 환상, 현세와 영의 세계, 추상과 구상 등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모호함 투성이입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캐스팅 자체도 그런 모호함이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하죠. 그녀의 중성적인 매력은 개념을 구분하지 않는 이 영화의 콘셉트를 고려할 때 딱 맞아떨어지는 조건이죠.

모린의 쌍둥이 형제 설정도 그래요. 쌍둥이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죠. 모린과 루이스, 남과 여, 인간과 유령 등 모린이 찾는 건 결국 자신의 반쪽이라고 할 수 있죠. 모린이 찾는 반쪽의 개념이 환상과 영의 세계와 죽음과 같은 현재의 모린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에요. 거울상 같은 개념이죠. 안 그래도 <퍼스널 쇼퍼>는 거울 장면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모린의 쌍둥이적인 측면을 묘사해요. 예컨대, 키라를 위해 은박 옷을 구하러 갈 때 숍에서 모린이 이를 자신의 몸에 대보는데 카메라는 우선 거울 속 모린을 비춰 그녀가 한편으로 자신의 현재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옷의 직업을 꿈꾸고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다가 스스르 빠져나오듯 이동해 현재의 모린을 비춰주는 식이죠.

<퍼스널 쇼퍼>의 카메라 운용 자체가 그래요. 사실 카메라는 영화 속 세계와 현실에 존재하는 관객의 세계를 대리해주는 기구죠. 그래서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극 중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영화의 눈이면서 또 한편으로 모린 곁을 따라다니는 루이스 혹은 다른 귀신의 시선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죠. 다시 말해, 양면성.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언급한 모호함과 양면성은 모두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죠.

이 영화의 마지막도 그렇게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키라 살인 사건의 용의자에서 풀려난 모린은 남자 친구가 있는 오만(인가요?)로 여행을 떠나죠. 그곳 숙소에서 모린은 유령과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루이스 너야?”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루이스 너야 그럼 내가 유령이야?” 바닥을 치듯 울리는 소리 한 번. 그럼 모린은 유령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땅을 밟고 있는 너머의 세계를 자각한다는 것. 쿵, 하는 소리는 모린의 자각을 알린 내면의 소리는 아니었을까요. 앞으로 그녀는 과거와는 다른 인식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겠죠.

 

<퍼스널 쇼퍼> GV
아트나인
(201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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