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라우더 댄 밤즈>

louderthanbombs

(GV를 위해 소리나는대로 작성한 글이라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있고 문장도 좀 거칩니다. 감안해서 읽어주세요. ^^; 또 하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우더 댄 밤즈> 다들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궁금해요.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어머니의 죽음에 따른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인데요. 요아킴 트리에는 이를 서로를 이해하’려’는 가족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여기서 방점은 이해하는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인데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건, 소통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이죠.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떻게 해도 100% 이해할 수 없는 심리를 가족 드라마라는 형태를 빌려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개 영화의 오프닝은 해당 영화가 펼쳐나갈 이야기를 압축하고 콘셉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라우더 댄 밤즈>의 오프닝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조나(제시 아이젠버그)의 표정은 복잡미묘하죠. 바로 그게 타인에 대한 이해의 정체일 텐데요.

이 장면은 한편으로 가족의 출발을 말하고 있죠. 뒤에 가면 이 아이는 늙은 모습으로 콘래드의 꿈 속에 등장하는데 삶과 죽음, 즉 일생에 이뤄지는 복잡한 가족 관계를 보여주기 위함일 거예요. 그렇게 가족이란 구성원은 우리가 가장 오래, 아니 평생을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방식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인 미스터리입니다. 여기서 미스터리는 <라우더 댄 밤즈>의 중요한 사건의 정서인데요. 가족들의 갈등이 폭발하는 지점은 어머니 이자벨 리드(이자벨 위페르)의 죽음입니다. 어머니는 자살을 한 것으로 보여요. 그렇다면 왜 자살했을까? 남편 진(가브리엘 번)과 아들 조나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녀가 왜 자살했을까, 그 미스터리를 탐구하려고 해요.

동생 콘래드(데빈 드루이드)는 달라요. 콘래드는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아요. 아직 어린 그가 충격을 받을까봐 아버지와 형은 엄마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교통사로로 위장해 얘기해주죠. 이들은 엄마의 죽음에 따른 슬픔과 상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억누르고 있어요. 겉으로는 슬픔과 상실의 감정 대신 침착함과 태연함 등을 가장하지만, 속내에는 슬픔과 상실의 감정을 도화선 삼은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는 단계이죠.

바로 여기에 이 영화의 제목 ‘라우더 댄 밤즈 Rouder than Bombs’의 의미가 담겨 있죠. ‘폭탄보다 시끄러운‘이라는 의미인데요. 유치환 시인이 <깃발>의 익숙한 구절을 빌려 온다면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할까요. 아버지와 조나와 콘래드는 지금 마음 속으로 어떻게든 엄마 잃은 슬픔과 상실과 이에 영향 받을 가족을 안배하려는 애씀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이들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리전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리의 정체를 포착하는 데 있어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데뷔작 <리프라이즈>(2006)부터 탁월한 연출 감각을 보여 왔습니다. <리프라이즈>는 ‘노르웨이 버전의 <트레인스포팅>‘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탁월한 비주얼에 담은 청춘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리프라이즈>에서 요아킴 트리에가 주목한 감정은 에너지가 요동치는 청춘이 경험하는 실패에 따른 낭패감과 절망감입니다.

이 영화의 시작은 작가로서 대성하기를 꿈꾸는 두 젊은 남자 주인공이 각자 쓴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기 위해 우체통에 넣는 장면입니다. 이에 맞춰 각종 현란한 기법으로 이들 주인공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해요. 그것만 보면 이들이 조만간 엄청난 문학의 대가로 성공할 것 같지만, 그러고 나서 영화는 초반에 보여줬던 화려한 촬영 기법을 자제해요. 이전과는 다르게 무거운 분위기로 일관하면서 이 두 주인공이 젊음을 연료 삼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히 좌절하는 과정을 담아 냅니다.

그러다가 중간중간 갑자기 빠른 템포의 음악이라든지 현란한 기법을 삽입해요. 그것은 꼭 얼마 남지 않은 젊음의 패기를 쥐어 짜 좌절과 실패를 딛고 다시 한 번 힘차게 일어서려는 주인공들의 몸부림 같은데요. 두 주인공은 결국 자신들이 원하고자 했던 것을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영화는 끝이 나고 맙니다. 결국, 이 영화가 남기는 정서는 낭패감인데요. 선택지는 두 가지로 귀결이 될 거예요. 그와 같은 낭패감을 극복하고 좀 더 나은 미래를 획득하든지, 아니면 실패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져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지워져 가는 것일 텐데요. 요아킴 트리에는 후자의 감정에 주목한 것으로 보여요. 5년 후에 만든 <오슬로, 8월 31일>(2011)은 느슨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리프라이즈>의 후일담처럼 보이거든요.

<오슬로, 8월 31일>에는 <리프라이즈>의 주인공 한 명이었던 필립 역의 배우 앤더슨 다니엘슨 라이가 다시 주인공으로 출연해 안더스를 연기합니다. 안더스는 큰 돌을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는 그 길로 친구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안더스는 <리프라이즈>에서 보여줬던 젊은 필립의 연장선인데요. 그때의 실패에 따른 후유증으로 약물에 빠져 중독되었다가 지금은 겨우 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는 것,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오슬로, 8월 31일>은 안더스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서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다시금 약에 빠지는 장면으로 마무리합니다. <오슬로, 8월 31일>의 ‘8월 31일’은 ‘백야’를 의미하는데 안더스가 약을 한다는 건 그 상황 자체를 백지 상태로 만들어버려 스스로 잊혀짐을 택한다는 의미일 거예요. 그것이 이 영화의 8월 31일이 상징하는 백야와 연결이 되죠.

<오슬로, 8월 31일>에는 요아킴 트리에의 영화의 세계관과 관련한 흥미로운 대화가 등장합니다. 자살 시도 실패 후 안더스가 처음으로 찾아가는 친구의 부부가 대상이에요. 이 친구는 아름다운 아내에, 직업도 있고, 아이도 기르고 있는 등 안더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는 것만 같아요. 그 친구는 안더스의 이야기를 듣다가 프루스트를 인용해 이런 얘기를 해요. “벗은 여인을 보고 욕망을 이해하려는 건 시간을 이해하려고 시계를 분해하는 아이와 같다.” 그러자 이를 들은 친구의 부인이 어이 없는 표정으로 안 그래도 힘든 안더스에게 왜 어렵게 프루스트를 인용하느냐며 타박을 합니다. “최소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야지”

요아킴 트리에가 마음 속 감정을 영화화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심리가 만들어내는 마음 속 풍경을 다루는 요아킴 트리에의 영화는 그래서 차분하고 평온하게 흘러가는 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차분하고 평온안 겉내 그 속에서는 마치 오리가 물 속에서 물바퀴질을 하듯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죠. 우리는 그와 같은 타인의 마음 속 물바퀴질을 따라가려고 시도를 해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게 바로 사람의 속성이죠.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제에 빠진 인물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라우더 댄 밤즈>의 가족은 화목해 보여도 서로 말 못할 감정의 벽이 견고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가정을 소홀히 하고 사진을 찍는 게 이해가 안됩니다. 조나는 콘래드가 자기 방에 박혀 오락이나 하는 것 같아 지질해 보입니다. 콘래드는 아버지가 귀찮게 자기를 미행하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이들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를 시도하는 방식을 카메라의 다양한 앵글로 잡아 대신합니다. 클로즈업도 쓰이죠, 미디엄숏, 시점의 초점을 이동시키기 등 인물들이 타인에게 향하는 대화의 욕망을 반영합니다.

여기서 빠지지 말아야 할 함정이 절망에 빠진, 상실감에 젖은, 슬픔을 겨누지 못하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된다는 게 아닙니다. <라우더 댄 밤즈>의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의 죽음 이후 소원했던 아버지와 두 아들은 화해에 이릅니다. 아니, 이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의문이 들었던 건 조나의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를 따라가던 카메라가 갑자기 멀어져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가족의 화해로 마무리하는 장면이라기보다는 임시적 봉합의 형태로 느껴졌습니다. 멀어져가는 카메라가 이들 가족의 행복을 유예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렇죠. 앞으로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왜냐면, 조나는 어제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놓고 별 얘기 없이 돌아가지 않았잖아요. 또 다른 가족 간의 불씨가 타오를 수도 있는 거죠.

<라우더 댄 밤즈>의 결말은 꽤 성숙한 감독의 시선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요아킴 트리에는 장편데뷔작 <리프라이즈>를 만든 지 올해로 10년 째인데 그동안 딱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30대 초반 나이에는 20대 청춘을 전면에 내세운 <리프라이즈>를, 30대 중반에는 30대가 겪는 상실감을 묘사한 <오슬로, 8월 31일>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끌 40대의 나이에 <라우더 댄 밤즈>를 만들었는데요. 자신이 절실하게 경험하고 느꼈을 나이대의 감정을 영화로 만들기 때문에 다작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만큼 절실하다는 인상을 주죠.

그처럼 요아킴 트리에 감독에게는 ‘시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라우더 댄 밤즈>는 가족이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여러 개의 시선이 등장합니다. 근데 이들이 바라보는 시선의 방식은 각자가 너무 달라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이 이자벨 리드를 종군 사진기자 역에 캐스팅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이자벨 리드가 극 중 의미 있는 사진을 찍는 것과 별개로 사진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진 작가에 의해 현실을 왜곡하기 마련이죠. 사진은 사각의 틀로 세상을 바라보는 매체입니다. 프레임을 벗어난 세계는 담기지 않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요.

감정은 주관적이죠. 시선도 다르지 않아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요. 이자벨 리드는 사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이죠. 콘래드는 온라인으로 세상을 바라봐요. 아버지 진은 배우였죠. 배우는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죠. 그에게는 화목한 가정이라는 해피엔딩의 시나리오가 박혀 있는 인물일 거예요. 가족의 화합을 결말로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행동하죠. 그래서 아내의 죽음 이후 허한 마음을 콘래드의 담임 선생과의 관계로 풀어가다가 콘래드의 반발이 거세지자 곧바로 그녀와의 만남을 포기해요.

각자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니 거기서 시선의 충돌, 더 나아가 가족 간의 갈등이 벌어집니다. 진은 아내 리드가 왜 자살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자주 집을 비운 그녀를 진은 이기적인 여자라고 비난했죠. 그와 다르게 진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가족을 떠나 위험한 현장으로 갔던 이유는 아마도 열정 같아요. 나이를 먹으면서 열정이 줄어드는 것 같아 걱정인 듯 해요. 조나의 대학 시절 그를 찾아갔던 엄마가 조나와 함께 거울을 보는 장면을 보면 젊음과 늙음이 극단적으로 대비되죠. 그녀에게 얼마남지 않은 열정을 잃지 않기 위해 이자벨 리드는 더 적극적으로 전쟁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더욱더 가족과 멀어지는 계기가 된 건데요. 사진 작가 일을 그만 둔 후에도 가족 주변을 맴돌다 정을 붙이지 못해 결국 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그 속내는 정확히 알 수 없죠.

콘래드는 온라인 세계에 익숙하죠. 그 말은 오프라인의 관계에서는 미숙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엄마의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그냥 감정 표현에 서툴러 슬픔을 제대로 표출할지 모르는 겁니다.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한 후 그 상대자인 담임 선생님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세요. 면전에 침을 뱉어버립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감정 표출을 직접적으로 하다보니 오프라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렇게 관계는 복잡해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이 언제나 갈등의 도화선으로 존재합니다. 콘래드가 좋아하는 여학우 멜라니를 보세요. 콘래드의 눈에는 굉장히 참해 보였는데 파티에서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기가 찹니다. 자신이 쓴 일기를 그 전에 멜라니에게 줬기 때문에 좋은 인상을 심어줬을 거라고 생각한 콘래드는 그녀가 선생님 얼굴에 침 뱉은 애로 기억하자 표정이 안 좋아집니다. 더군다나 그녀의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 단 둘이 걷는 기회가 생겼는데 멜라니가 갑자기 오줌을 누겠다네요. 환상이 깨지는 순간입니다. 그때 콘래드는 눈물을 흘리는데 깨달은 게 있어 보여요. 인간에게는 보이는 것과 다른 이면이 있구나. 그녀가 차 뒤에서 싼 오줌이 콘래드의 발 밑으로 침투하는 광경은 상징적이죠. 오줌으로 더럽혀지는 신발처럼 성장이란 이면에 감춰진 어둠 혹은 그림자를 알아갈 때 이뤄지는 것이죠. 가족 관계도 그러면서 나아지는 것일 테고요.

<라우더 댄 밤즈>의 포스터는 감각적인 이미지로 꽤 화제가 됐죠. 나무결의 벽을 배경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제시 아이젠버그의 모습에서 여러분들이 감지하는 정보는 무엇인가요? 제시 아이젠버그가 출연한다와 이 영화의 제목 정도이죠. 공중제비를 도는 치어리더의 모습을 한 포스터는 어떤가요? 와~ 멋있다 정도를 빼면 역시나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바로 그게 의도이죠. 헤어라기 힘든 사람의 심리를 영화화하는 작품답게 포스터 역시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흔히 영화에는 미장센이라는 개념이 있죠. 화면에 위치한 모든 요소, 배우의 연기와 대사, 배경에 놓은 물건들, 그 위로 흐르는 음악, 카메라의 움직임 등등을 미장센이라고 하는데 <라우더 댄 밤즈>는 그와 같은 미장센으로도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감독의 의도일 거예요. 요아킴 트리에에게 영화는 영화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람의 시선을 영화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죠. 사람의 심리로 다가가기 때문에 역시나 우리가 타인의 심리를 정확하게 읽을 수 없듯 영화의 묘사도 그렇게 가져간 겁니다.

<라우더 댄 밤즈>는 그렇게 아이의 탄생에 따른 가족의 탄생으로 출발하여 콘래드의 꿈 속에서 그 아이가 늙은 노인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평생을 형상화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오해를 겪고 이를 풀기 위해 싸우고 결국 대화하는 관계를 관계를 반복하겠죠. 영화는 그것이 삶이고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해요. 그러니 <라우더 댄 밤즈>로 끝이 아니겠죠. 이후에 요아킴 트리에가 또 어떤 감정을 들춰낼지 궁금합니다.

 

<라우더 댄 밤즈> GV
압구정 CGV
(2016.10.26)

6 thoughts on “[GV] <라우더 댄 밤즈>”

  1. 저도 이영화를 보았는데 보구나서 사실 이해가 잘안되었어요 ㅠㅡㅠ 무언가 상징적의미가 많이 담겨있는것같은데 제가 평소에 책을 잘 안읽어서 그런지 잘 이해를못해서 어렵다…라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평론가님 글을 보구나니 정말 이해가 쏙쏙되요ㅎㅎ👏👏 특이한? 촬영기법으로 여러각도에서 촬영하는게 색다르고 너무 기억에남아요! 아참 평론가님이 추천해준 우디앨런 요새 보구있답니당^*^ 👍👍

    1. [라우더 댄 밤즈] 한 번 보고 이해하기 쉽지 않죠 ^^; 저도 두 번 보고, 또 전작들 보니까 그제야 이해가 됐는데 그게 또 감독이 의도한대로 본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시 보면 또 새로운 게 느껴질 것 같은 영화였습니다. ^^

    1. 안녕하세요 ^^ 말씀주신 부분에 대해서는 글에는 언급 안 했는데 GV 당시에는 극 중 이자벨 위페르가 집에서 겉돌고 가족과 못 어울리고 그런 마음 속 공허를 바깥에서 동료와 외도로 채우려 하지 않았나, 하고 얘기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고보니 위 글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군요 ^^;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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