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촬영지로 유명하지만 이를 감독한 피터 잭슨이 B급영화의 꿈을 키웠던 곳이기도 하다. Danny Mulheron 감독이 연출한 뉴질랜드 영화 <Fresh Meat>는 피와 섹스와 유머, 그리고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전형적인 B급영화다. 12년 형을 선고받은 살인범이 동료들의 도움으로 탈주에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경찰에 쫓기던 일행은 마오리 가족이 사는 주택으로 숨어든다. 이들은 마오리 가족을 인질 삼아 몸을 숨기려 하지만 사태는 엉뚱하게 흐른다. 식인(食人)을 하는 가족이었던 것. 인질과 인질범의 관계는 금세 역전되고 만다. <Fresh Meat>는 극의 초반만 해도 범죄물과 공포물을 합쳐놓은 인상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전복의 쾌감을 선사한다. B급영화답게 기존의 장르적 설정과 그에 따른 편견을 완전히 뒤집는 방식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격하는 남성과 공격당하는 여성의 포지션이 이 영화에서는 완전히 뒤바뀌며 그에 따라 인질범이 아니라 인질이 불쌍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종국에 이는 아버지와 딸의 싸움으로 수렴이 되는데 실제로 살부(殺父)의식은 이 영화의 중요한 테마다. 진짜로 아버지를 죽인다(?)는 얘기가 아니다. 전통을 극복하고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징적인 의미의 살부가 필요하다는 것. <Fresh Meat>에는 B급영화가 요구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
17회 Pif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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