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렐>(Freeh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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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줄리언 무어)은 형사다. 지금은 잠복 중이다. 마약 거래를 하는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서다. 현장을 목격한 그녀는 동료 데인(마이클 셰넌)과 힘을 합쳐 마약범을 소탕하는 데 성공한다. 도입부만 놓고 보면 <로렐>은 열혈 형사 로렐을 주인공으로 한 범죄물처럼 보인다. 정의를 추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로렐>은 좀 더 복잡한 사연을 담고 있다.

사건을 해결한 로렐은 부러 먼 길을 달려 외딴 동네의 스포츠 센터를 향한다. 여자들과 함께 배구를 하는데 실력이 영 어설프다. 배구에는 별로 소질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로렐의 미숙한 배구 실력이 귀여웠는지 스테이시(엘렌 페이지)가 접근한다. 로렐은 어떤 경계도 없이 스테이시와 통성명을 나누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준다. 그리고 이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어디서 접한 이야기 같다고? 맞다. <로렐>의 원작은 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단편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프리헬드 Freeheld>(2007)다. (<로렐>의 원제이기도 하다!) 암에 걸린 로렐이 사후에 받게 될 연금을 스테이시에게 양도하기 위해 동성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뉴저지 의회와 벌이는 투쟁과 승리의 과정을 기록했다. 사랑을 위해 세상에 맞선 로렐의 감동 실화에 마음을 뺏긴 이가 있었다. 바로 론 니스워너다.

론 니스워너, 그는 누구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변호사 앤드류(톰 행크스)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법정싸움을 벌이는 <필라델피아>(1993)의 각본을 쓴 이가 바로 론 니스워너였다. 로렐과 스테이시의 사연은 론 니스워너에게는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영화적 소재였던 셈이다. 너무 속물적인 해석인가. 론 니스워너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라. 론 니스워너가 <로렐>의 각색을 맡은 건 일종의 ‘연대’의 의미에서다. 그리고 이는 <로렐>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다.

로렐이 의회와의 싸움에서 기어코 원하는 바를 얻어낸 건 단지 그녀만의 노력이 다가 아니었다. 스테이시가 옆에서 돌봐줬고 데인은 동료 형사들을 규합해 그녀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되지 않도록 힘이 되어주었으며 인권활동가 스티븐(스티브 카렐)은 로렐의 싸움이 전 국가적인 관심사가 될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했다. 그럼으로써 유수의 언론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이 기사를 보고 불의를 못 참은 이들이 각지에서 지지 의사를 밝혔으며 결국 의회를 움직여 동성 배우자의 연금 수령을 가능토록 했다. 그러니까, 이건 모두의 승리이며 결국 정치로 이뤄낸 결과다.

잠깐, 정치라고? 평등이라는 순수의 가치를 순수하지 못한 정치로 매도할 수 있느냐고? 잠시 열 좀 식히시길. 이해는 하지만, 너무 순진한 거 아닌가. 스테이시도 인권활동가 스티븐이 이 싸움에 개입하면서 “이런 정치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다수의 의견이 우세를 점하는 현대사회에서 만인에 평등하다는 법은 실질적으로 소수자의 편이 아니다. 그래서 연대는 중요하다. 연대는 분산된 소수를 하나로 규합, 다수를 만들어 보수적인 가치에 맞서 대등한 싸움을 펼칠 수 있는 세(勢)를 형성한다. 그게 바로 정치다.

로렐은 스티븐의 접근이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다. 동성 연인에게 사후 연금을 양도하려는 그녀를 이용해 동성결혼의 지지를 이끌려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로렐은 동성 결혼에 대한 찬성 발언 대신 평등을 지지한다며 우회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안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스티븐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하나를 내주고 하나를 받는 전략. 이 또한 정치다. 정치는 집을 예쁘게 가꾸어 나가는 것과는 달라서 전략이 필요하다. 그럴 때 가장 큰 자산이 되어주는 게 바로 사람이다.

로렐은 남자친구의 꾀임에 빠져 마약 책으로 이용당하는 여자가 묵비권을 행사하자 이런 얘기를 한다. “두려움에 떨며 뭔가 숨기며 사는 건 끔찍한 일이야” 이는 <로렐>을 연출한 피터 솔레트 감독이 극 중 심문 장면을 우회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소수자들을 향한 독려다. 동성을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사랑을 못마땅하게 여겨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죄다. 그렇다고 폭력으로 맞설 수는 없는 법. 사람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자격이 따로 없다. 사람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하나다. 로렐이 지지했던 것도, 영화 <로렐>이 지향하는 것도 결국에는 사람이다. 그리고 로렐과 스테이시의 사랑이 위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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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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