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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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는 흔히 색보정으로 통용된다. 색보정이란 촬영된 필름의 색을 일관성 있게 맞추는 과정을 말한다. 하지만 디지털 촬영이 일반화된 지금 DI에 대한 개념은 필름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다. 게다가 색보정 외에도 많은 작업을 포함한다. 그처럼 DI는 기술의 진화에 예민한 영역이기 때문에 시대와 사람들에 따라 개념이 조금씩 다르게 이해되는 실정이다. 
 
DI, 왜? 어떻게?
DI는 ‘DIgital Intermediate’의 약자로 ‘디지털 후반 작업’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사전적으로는 영화 제작 후반 과정에서 디지털로 이뤄지는 영상과 관련된 작업 전반을 말한다. 후반 작업은 범위가 넓지만, 크게 DI, 믹싱, CG, 편집 등으로 나뉜다. 그중 DI에는 색보정을 비롯해 스캔, 리마스터링 등이 포함된다. 최근에는 CG 삽입 및 편집 등도 DI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상영 포맷에 맞춰 원본 소스에 가하는 이미지 작업을 총괄해 편의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명백히 정의된 개념이 없음에도 DI를 흔히 ‘디지털 색보정’으로 일컫는 것은 DI에서 색보정(color grading)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일한 카메라와 조명 상태로 각각의 테이크를 촬영해도 모든 장면에서 똑같은 톤의 화면을 얻을 수는 없다. 매일 그리고 매순간 바뀌는 날씨라는 변수를 제어할 길이 없고 촬영 여건 또한 불균등한 화질의 톤을 만들어내는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일관성 있게 맞추기 위해서는 DI 과정에서 색보정이 필요하며 또한, 장르와 이야기의 성격 등 적합한 영화의 이미지 톤을 얻기 위해서도 이 과정이 필요하다.

필름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색보정은 공통이지만, 이를 거치는 과정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필름 시대의 DI는 지금과 비교해 번거롭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다. 특히 촬영된 필름 소스를 스캔하여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필수였다. 이를 저장하는 레코딩 과정에서 걸리는 시간과 비용도 상당했다. 그리고 색보정 등의 후반 작업을 마친 디지털 소스를 다시 필름 위에 레이저로 프린트한 후에야 실질적인 DI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필름의 시대가 가고 디지털시네마카메라와 디지털 영사가 일반화된 지금은 이 과정들이 생략됐다. 대신 디지털 촬영 소스를 레코딩하는 포맷의 종류가 카메라 기종에 따라 다양해졌고, CG 삽입 작업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이에 따라 CG 삽입을 위한 사전 컨버팅 작업이 추가됐고 필요한 장비와 프로그램 툴이 대거 늘어났다. 상영 포맷도 필름 시대와는 급격히 달라져서 인터넷, 모바일, IPTV 등 각 매체에 맞게 영상 소스를 리마스터링하는 작업도 DI에 포함되는 추세다. 

DI를 하는 이들을 일러 ‘컬러리스트(colorist)’라고 부른다. 컬러리스트는 주로 베이스라이트, 스크래치, 다빈치 리졸브 등 디지털 툴을 가지고 극장에서 상영될 최적의 컬러 상태로 영상 이미지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들의 작업 중 하나가 그레이딩(grading)이다. 그레이딩은 원본 영상 소스의 레드, 그린, 블루 컬러의 채도를 노출, 즉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업이 중요한 건 흑백 필름에 색이 도입된 후 이미지 표현의 다양한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는 디지털 시네마 시대에도 유효하다. 디지털 시네마는 초기만 해도 필름 영화보다 룩(look)의 질감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고풍스럽고 따뜻한 느낌의 필름 룩과 다르게 디지털 룩은 색도 부족하고 차가운 인상이 강해 필름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거부감이 상당했다. 디지털 시네마에 대한 거리감을 줄인 것이 바로 DI다. 요즘은 DI에서 필름의 질감과 흡사하게 표현하는 룩업테이블(Look Up Tables)이 많이 개발돼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느끼는 차이는 없어진 편이다. 

오히려 필름이 사라지고 디지털이 대세가 되면서 감독들 사이에서는 고집스럽게 필름 룩을 지향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등장하고 있다. 영화계 전반이 기술적으로 디지털과 필름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기기 조작이 용이하고 기동성이 뛰어난 디지털 시네마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영화기술과 발전해온 DI의 역사
DI의 역사는 텔레시네(Telecine)로부터 출발한다. 텔레시네는 간단히 정의해 필름 영상을 비디오 신호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완성한 영화를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하고자 할 때 극장용 상영 프린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반드시 텔레시네를 거쳐야 했다. 

텔레시네가 영상 제작에서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된 건 1980년대부터였다. 1980년대는 MTV의 출범과 함께 뮤직비디오가 주목을 받은 시기였다. 뮤직비디오는 통상 필름으로 촬영하지만,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므로 촬영한 필름 이미지를 비디오로 전환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필름 원본을 비디오로 전환하는 역할 정도를 차지했던 텔레시네는 장비의 발달과 작업자들의 혁신적 노력 덕분에 색을 정밀하게 보정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1990년대가 되면서 텔레시네 장비들이 디지털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영화로 넘어오면서 특수시각효과(special visual effects)의 개념으로 부분 도입되었다. 시각효과 감독이자 프로듀서인 크리스 F. 우즈(Chris F. Woods)는 ‹슈퍼 마리오›(1993)에서 2K 해상도의 합성 특수효과를 디지털 방식으로 스캔하여 전에 없던 시각적 볼거리를 선사했다. 

‹슈퍼 마리오›를 계기로 할리우드의 고해상도 디지털 합성기술을 포함한 DI는 빠르게 발전을 거듭했다. 월트 디즈니는 이 기술을 활용해 자사의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의 복원판을 1993년에 선보였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원본 필름 전체를 디지털 파일로 스캔한 최초의 영화이면서 DI의 효과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4K 해상도와 10비트의 색심도를 갖춘 코닥의 시네온(cineon) 시스템을 사용, 원본의 색상을 더욱 강화했고 색보정으로 필름의 스크래치도 덮었다. 이는 촬영 당시 얻지 못한 색과 이미지의 구현이 DI에서 원하는 수준으로 가능해졌다는 걸 의미했다. 

시각효과 감독 크리스 왓츠(Chris Watts)는 이를 장편 극영화로 확대해 DI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을 추가했다. ‹플레전트 빌›(1998)이었다. 크리스 왓츠는 컬러로 촬영된 이 영화의 DI에서 특정 장면을 위해 선별적으로 색깔을 빼고 그 위에 흑백을 입히는 방식으로 컬러와 흑백이 공존하는 독특한 이미지를 완성했다. 예전에는 불가능했거나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었을 방식이 가능해지면서 할리우드 영화의 DI 보급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코언 형제가 연출한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는 할리우드 최초로 촬영된 필름 전체를 DI로 작업한 작품이다. 코언 형제는 공황기였던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가 그 시대의 칙칙한 색감으로 표현되기를 원했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 또한 감독들의 의도대로 거대한 모래 바람이 미국 전역을 강타했던 ‘모래바람 시대(Dust Bowl Era)’인 1930년대를 화면에 재현하고 싶었으나 촬영이 6~7월에 진행되는 탓에 필름에 담긴 들판의 색은 녹색 위주였다. 디킨스는 애초 전통적인 아날로그 방식의 색보정을 통해 색감을 표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시로서는 새로운 기술이었던 DI를 통해 ‘오래된 그림책처럼 메마르고 뿌연 색’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는 색 바랜 황갈색의 일관된 톤을 얻을 수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DI 보급률은 2005년 50%에서 2007년에는 70% 수준까지 올라갔으며 현재는 거의 모든 영화가 활용할 만큼 필수 과정이 되었다. 단순하게 색을 입히고 바로 잡는 단계를 넘어 촬영 중 잘못 찍힌 대상을 지우거나 수정하고 CG나 특수효과를 통해 특정 상황을 더하거나 인물의 감정을 강조할 만큼 촬영 때와는 또 다른 창작의 단계가 되었다.

한국영화의 ‘색’을 바꾸다

한국영화 DI의 역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니, 정확한 사료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관계자들의 추측에 의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DIT업체 알고리즘의 조희대 대표는 1990년대 중반 세방현상소(현 ‘세방SDL’)에서 DI를 먼저 시작했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정확한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견해를 밝힌다. 

그것은 국내의 현 DI 종사자들 대부분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유가 있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업하는 이들의 경력은 길어야 10년을 조금 넘긴 정도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경험과 연륜은 무시할 수 없지만, 한국영화가 급격한 변화를 겪은 1990년대 중반 이후로, 특히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 시작될 무렵에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해줄 이들이 현재 현장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다. 

DI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가장 먼저 끌어올린 영화로는 ‹화산고›(2001)가 꼽힌다. 한국형 무림 액션을 표방했던 이 영화는 CG가 많았던 까닭에 디지털 색보정을 통해 일관된 톤을 끌어내야 했다. 다만 ‹화산고›는 필름 촬영 후 CG 효과가 들어간 부분만을 스캔하여 디지털로 작업 후 다시 필름으로 프린트한 ‘부분 DI 영화’였다.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2003)가 DI 팀을 따로 꾸려 작업했고, ‹달콤한 인생›(2005)이 후반 작업 전체를 DI로 진행하면서 이 시기를 전후해 한국에서도 DI의 보급률이 높아졌다. 

DI가 보편화하면서 한국영화는 시각 효과와 관련한 후반 작업을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한국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시기도 DI가 활성화된 때와 비교적 일치한다. 영화진흥위원회 기술지원부 디지털랩의 오병걸 실장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만 놓고 보면 할리우드보다 떨어지는 부분이 많지 않을 만큼 한국 DI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평가한다. 단순하게 ‘때깔’이 좋아졌다는 의미를 넘어 감독이 의도한 바에 최대한 가깝게 룩을 구체화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DI가 이바지한 것이다. 

그에 맞춰, 디지털 시네마가 도래하고, 레드 등 디지털시네마카메라를 독립영화 진영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면서 DI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국가대표›(2009)는 촬영부터 DI까지 영화의 전 과정을 디지털로 작업한 최초의 한국영화였다. 상업적으로 좋은 성적까지 거두면서 ‹국가대표› 이후 국내 영화계는 필름에서 디지털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전환기를 맞았다. 또한, 이 시기에 DI와 관련해 특기할 만한 움직임은 바로 DIT, 즉 ‘디지털 이미징 테크닉(Digital Imaging Technique)’의 도입이다. 

DIT를 국내에 처음 도입해 적용한 건 조희대 대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DIT는 촬영 현장에서 데이터를 백업, 이를 편집용으로 컨버팅하여 메타 데이터로 불리는 일련의 정보 값이 현장과 (DI가 이뤄지는) 편집실에서 오차가 나지 않게끔 동일하게 유지하여 후반 작업이 원활토록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이에 더해 장비 체크와 관리, 카메라와 모니터 세팅, 그리고 현장 편집까지 포함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조희대 대표는 이를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리뉴얼했다. 한국에서는 ‹10억› ‹국가대표› ‹차우›(이상 2009)에서 먼저 적용된 후 ‹완득이›(2011)를 통해 팀 체제가 도입됐고 지난해부터 DIT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상황이다. 

DI의 미래, 미래의 DI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국내에 DI를 담당하는 업체는 세방SDL, 모팩스튜디오, HFR, 인사이트 비주얼, 2L필름(현 디지털스튜디오 2L)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금은 당시와 비교해 업체가 많아졌고 DI 시장의 지형도도 바뀌었다. 상상마당 시네랩의 김형희 실장은 “DI를 담당하는 회사의 규모가 작아졌다. 상업영화 시스템은 극장과 동일한 크기의 프로젝터에서 색보정을 하기 원하기 때문에 큰 사무실이 모두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를 제외하면 개별 컬러리스트가 운영하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상상마당 시네랩의 경우, 독립영화만을 전문으로 DI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을 만큼 DI 업체들은 10년 전과 비교해 좀 더 분화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심각한 문제도 생겼다. CJ 파워캐스트 DI사업팀의 강상우 실장은 “고가의 장비였던 스캐너가 없어지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고 이유를 밝힌다. 게다가 다빈치 리졸브와 같은 디지털 툴의 가격도 급격히 떨어지면서 DI 업체가 많아졌고, 안 그래도 작은 시장 안에서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10년 전 단가와 비교해 무려 1/5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게 그의 부연설명이다.  

이는 역으로 DI가 그만큼 영화 제작에서 필수 과정이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막론하고 DI는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2007년 미국 레드디지털시네마컴퍼니의 레드 원(Red One)이 출시되고 2010년 독일 아리의 알렉사 카메라 등 본격적인 디지털시네마카메라가 출시되면서 DI는 필수적 요소가 됐다. 이들 카메라로 촬영된 디지털 소스는 DI 과정을 통해야만 비로소 제 색감을 얻을 수 있는 탓이다.

이런 맥락에서 DI라는 용어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촬영부터 후반 작업을 거쳐 상영까지 영화의 전 과정이 디지털로 일원화된 상황에서 필름으로 작업하던 시절의 용어인 ‘intermediate’를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냐는 얘기다. 오히려 필름 시절부터 DI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였던 ‘컬러 그레이딩’이라든지 관용적으로 써오든 ‘색보정’으로 부르는 게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DI라는 용어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디지털 시네마 시대를 맞이하여 디지털 기기와 툴이 빠르게 진화를 거듭하면서 DI의 역할과 범위 또한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필름 시절부터 이어져 온 DI의 핵심은 감독의 의도에 맞게 룩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관객이 이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최상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조석환
자문 강상우(CJ 파워캐스트 DI사업팀 실장), 김형희(상상마당 시네마랩 실장), 오병걸(영화진흥위원회 기술지원부 디지털랩 실장), 조희대(알고리즘 대표) 

영화기술
(201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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