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 연기의 완벽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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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대처를 제외하고 ‘철의 여인’으로 어울릴법한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 <철의 여인>(2011)을 연출한 필리다 로이드 감독의 선택은 바로 메릴 스트립이었다. “세계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마가렛 대처인 만큼 그에 버금가는 배우가 연기해야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조건이었다.”

마가렛 대처는 남성들로 득시글한 영국 정치 무대에 최초 입성한 여성 총리(임기 1979~1990)였다. 수많은 남성 정치가들 사이에서 침체에 빠진 영국 경제 부활을 위해 그녀가 보여준 획기적인 정책과 독단적인 정부 운영 능력은 당시 소련 정부로 하여금 철의 여인이라는 호칭을 이끌어냈다. (경우는 달라도) 메릴 스트립 역시 젊은 배우들의 활약이 절대적인 영화계에서 원로라고 불릴법한 나이(1949~ )에도 불구, 드물게 이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연기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영화계의 철의 여인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그런 메릴 스트립의 공로를 인정해 평생공로상에 해당하는 명예황금곰상을 수여했다. 이에 그녀는, <디어 헌터>(1978) <크레이머, 크레이머>(1979)로 활동하던 데뷔 초기만 해도 나이 많은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지만 지금은 나이에 상관없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요지의 소감을 발표했다. 3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준 영화계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들리지만 메릴 스트립의 나이에 단독으로 주연을 맡아 전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여배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헬렌 미렌과 글렌 클로즈 정도?) 지금의 입지는 모르긴 몰라도 그녀 자신이 만든 것이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 생활을 장수로 이끈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 실존인물이 많다는 사실은 이 의문에 대한 힌트가 되어준다. 노조 활동가 카렌 실크우드(<실크우드>(1983)), 덴마크 출신의 작가 카렌 블릭센(<아웃 오브 아프리카>(1986)), 저널리스트 수잔 올린(<어댑테이션>(2002)), 정치 활동가 에델 로젠버그(<엔젤스 인 아메리카>(2004)), 프랑스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줄리 앤 줄리아>(2009)), 그리고 마가렛 대처까지,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실존 인물은 무려 10여 명에 달한다.

사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배우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비교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디테일 상으로 완벽하지 않으면 쉬이 비판이 쏟아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메릴 스트립은 당대의 어느 배우보다도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사이트 imdb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에 대해, ‘배역의 준비에 있어서는 완벽주의자로 알려짐’이라 언급한다.) 실제로 그녀가 완벽한 연기를 위해 들인 노력의 일화는 알려진 것이 꽤 많다. 배역의 출신에 맞춰 매 영화 완벽한 악센트를 익히는 것은 물론이고, <뮤직 오브 하트>(1999)에서는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6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했으며 <줄리 앤 줄리아>에서는 10kg 가깝게 몸을 찌우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매소드 연기(Method Acting 극 중 인물에의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인 연기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주는 메릴 스트립이 <철의 여인>에서 보여주는 마가렛 대처로의 변신 또한 완벽에 가깝다. 대처의 뒤에서 든든한 내조로 힘을 실어준 남편 데니스 역으로 출연한 짐 브로드벤트의 말을 빌리자면, “하루는 메릴 스트립과 점심을 먹으며 대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대처의 대사를 몇 마디 했는데 그 몇 문장 안에서도 메릴 스트립이 얼마나 배역을 잘 이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쯤에서 메릴 스트립에게 들어보는 ‘나는 어떻게 마가렛 대처를 이해하고 완벽하게 연기하게 되었나’ 우선 영국 최초이자 유럽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점이 메릴 스트립의 도전 욕을 자극했다. “역사에 기록된 뛰어난 여성에 대해 깊이 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출연을 결심한 후 그녀는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하였다. “열정과 열성, 그리고 꼼꼼한 태도로 마가렛 대처에게 빙의하겠다는 자세로 배역에 접근했다.” 그래서 촬영 전 대처가 출연했던 TV프로그램을 보며 말하는 투를 유심히 살폈고 하원에서 7년 동안 함께 했던 전() 노동당 당수 닐 키녹을 포함해 대처의 측근 수십 명에게서 들은 일화에 기초해 소소한 버릇들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2011년과 2012년 무수히 많은 시상식에서 <철의 여인>으로 여우주연상을 독식하다시피 했지만 올해 아카데미의 오스카 수상은 메릴 스트립에게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디어 헌터>(1978)로 조연 부문 후보에 오른 이래 그녀는 지금까지 총 17번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 이 부분 최고의 기록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2년에 한 번 꼴로 아카데미의 초청을 받은 셈인데 <크레이머, 크레이머>의 조연상, 그리고 <소피의 선택>(1982)으로 주연상을 수상한 이래 <철의 여인>은 무려 30년 만에 수상하는 오스카가 되었다.

메릴 스트립은 수상 소감 시, (하도 노미네이트가 자주 되어) 또 저 여자가 받았어? 라며 사람들이 흥미를 잃지는 않을까 우스개처럼 우려를 나타냈지만 적어도 그녀와 함께 했던 연기자들은 메릴 스트립이 금세기 최고의 배우라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녀가 데뷔했을 당시 최고의 여배우였던 베티 데이비스(<이브의 모든 것>(1950))는 “모든 비평가와 영화역사가들이 미국 영화 최고의 배우로 인정할 것”이라며 극찬했다. <디어 헌터> <폴링 인 러브>(1984) <마빈의 방>(1996)에서 호흡을 맞췄던 로버트 드 니로는 “함께 일한 여배우 중 최고였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그리고 젊은 배우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앤 해서웨이, <다우트>(2008) <줄리 앤 줄리아>의 에이미 애덤스는 메릴 스트립과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며 입을 모으기도 한다. 영화계 원로에서부터 젊은 배우까지 인정하는 메릴 스트립에게 완벽하다는 평가는 너무 당연한 수식이 아닐까.

beyond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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