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배트를 손에 든 글쟁이의 불안


1. 야구에서, 특히 타자에게 제일 힘든 건 스윙시 힘을 빼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장타를 날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배트에 힘을 잔뜩 주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배트를 쥐고 있는 손의, 그리고 팔의 힘을 빼면 된다. 이것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타자의 미래는 확연히 갈리게 된다.

힘을 빼라는 건 곧 마음을 비우는 거다. 물론 말로야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 나서게 된 타자에게 이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스코어가 0-0일 때는 선취점을 뽑고 싶어 힘이 들어간다. 팀이 뒤지고 있을 때는 동점을 만들고 싶어 힘이 들어간다. 한두점차로 간당간당하게 앞서고 있을 때는 점수차를 더 벌리고 싶은 마음에 마찬가지로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서 일본 프로야구 전반기 29홈런을 기록한 이승엽은 그 비결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매번 안타를 친다는 생각으로 갖다 맞추다보니 운이 좋아 홈런로 연결되었다고. 힘을 빼고 타이밍을 맞추는데 집중했다는 얘기다. 뻔한 얘기지만 금같은 진리.

역시, 힘을 빼야 좋은 타자다.


2. 요즘 들어 부쩍 배트를 손에 쥔 타자의 딜레마를 느낀다. 여행 기사를 매주 한 편씩 연재하고 있는데 글을 쓸 때마다 자꾸 쓸데없는 힘이 들어간다.

연재 목적은 가이드북도 나왔겠다 판매부수를 늘려볼 차원에서 책에 실려있는 에세이 중 열 편 정도를 추려 매주 사이트에 올리고 이를 읽는 독자를 쇼핑몰로 유도하자는 것. 그래서 책에 실린 그대로 올리자는 게 처음 취지였다.

하지만 책의 그것은 분량에 맞추느라 원글의 삼분의 일을 삭제했고 문체도 딱딱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다시 쓰기로 하였다. 쪽팔린 생각에 동점을 만들 요량으로 힘이 들어간 거다. 근데 또 쓰다보니 사심이 든다. 요즘 여행에세이 책이 유행이라는데 조금만 더 잘 쓰면 나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역전홈런까지도 치고 싶었던 게다. 그러니 스윙폭이 두배세배로 커질 수밖에.

가벼운 정보 목적의 글이 무거운 에세이로 변했고 에세이가 어느 새 골치 아픈 여행 논문이 되었다. 선행주자를 진루시켜야 할 상황에 병살타를 치게 됐고 이를 만회하러 들어간 타석에선 앞뒤 잴 것없이 홈런만 노리다 삼진까지 당한 꼴. 이게 다가 아니다. 밸런스가 무너지니 결국 이번 주엔 타석에도 들어서지 못해 기사를 펑크 내게 되었다.

문제가 무언지 알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컴퓨터 자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배트 쥔 손에 힘을 빼야 좋은 타구가 나오듯 집착을 버려야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다는 쉬운 진리를 여전히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난 아직도 타석에 들어서면 홈런부터 생각하는 타율 1할대의 공갈포 글쟁이다.  

짝사랑과 헤어졌따!


딴지와 헤어졌다. 새로 편집장이 들어왔는데 기사의 역할분담에 대한 이견 차이가 있어 총수와 나, 신임 편집장과 삼각관계가 되는 바람에 내가 포기했다. 그래서 어제부로 그만 두게 되었다. 지난 3월부터 다시 기사를 쓰긴 했지만 객원이었고, 사실 2005년부터 공식적으로는 휴직상태에 있었으니 최근 딴지와 나와의 사이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결과가 될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해본적이 없었기에 적이 당황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막상 헤어지게 되니 가슴 한쪽이 훵하니 뚫린 것처럼 허전하다. 하긴 딴지를 짝사랑해온 게 언제부터인데. 1999년 알게 된 뒤부터 줄곧 짝사랑을 해오다가 2002년 딴지가 나를 받아줬고, 어제 종지부를 찍었으니 벌써 횟수로 8년. 상근기자로 근무한 년차만 4년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정말 열렬하다 못해 일편단심이었다. 해달라는 건 뭐든지 다 해줬고 주는 건 별로 없었지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슬슬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실망도 하고, 다시 화해했다가 눈에 못이 박히는 일도 생겨 헤어지기를 반복했지만,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결국 돌아왔다. 정말 좋아하고 사랑했었나보다. 그러니 여태까지 버티고 함께 지내왔지.

그래서 헤어지고 난뒤 얼마간 괴로웠다. 얼마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재결합 기회의 불씨가 전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전처럼 그렇게 열렬하기는 어려울 거다. 아쉽다. 혹자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하지만 씨바, 이런 사랑 한번이면 족하다.

사랑같은 거 안 하련다. 이제는 나를 사랑하련다!



PS. 그래도 빌려준 돈은 다 받기로 했고 악착같이 받고 있다. 아무리 사랑이라지만 내가 준 게 너무 많다. 아 글쎄 이 세계에서 사랑은 거래라니까.

내일이면 1년 뒤일텐데…


살면서 힘든 시기가 셀 수 없을만큼 여러 번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시간이 많았는데 그럴 때 마다 속으로 외웠던 주문 한가지가 있다.

“내일이면 1년 뒤일텐데 모…”

나이 삼십고개를 넘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이거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 그리고 마음고생의 특효약은 바로 시간이라는 것.

기사 한꼭지를 끝내고 얼떨결에 달력을 보니 오늘이 벌써 2004년 7월 23일. 생각해보니 작년 이맘 때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날 베스트 3 중 하나인 날이었다. 근데 벌써 1년이 지났네… 아직 그 아픔이 다 가신 건 아니지만 벌써 1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왠지 큰 짐을 하나 덜어놓은 듯한 기분이다. 확실히 시간이 약이라는 옛말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오늘도 난 1년 전의 주문을 속으로 외치고 있다.

“내일이면 1년 뒤일텐데 모…”

2005년 7월 23일에 나는 또 이 주문을 외우고 있을까…

 

한국의 인종주의와 세계사


딴지관광청에 올라온 <인종주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란 기사에서 글쓴이 파토님은 한국인의 동남아인 차별에 대한 원인으로 인종주의에 대한 인식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으로 “짱꼴라는 안돼”, “동남아 애들은 수준이 낮아”와 같은 인종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없이 일상생활에서 함부로 내뱉는 말이라고 꼬집는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전에도 한 번 말했듯이 언어로 발화되는 특징적인 현상은 백이면 백, 그 사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법. 그래서 파토님이 위에 예로 든 사례의 대화는 엄밀히 말해서 원인이 아니라 인종주의에 대한 인식부재에서 생겨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인식부재의 출발점은 과연 어디서부터 생겨나게 된 것인가, 한 번 생각해 본다. 그 결과, 너무나 당연하게도 교육.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과서가 기술하고 있는 역사에 대한 편향된 시각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나름대로 분석해본다.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는 두가지. 국사와 세계사로 분류해 가르친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세계사. 세계사는 거짓말 조금 보태 서양인의 역사라 할 만하다.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통해 일궈낸 찬란한(?) 문명과 산업화에 따른 경쟁적인 식민지 정복.

이렇게 서양의 힘을 앞세운 정복과 식민 등 승패의 시각으로 서술된 세계사 구성에서 항상 약자의 자리를 점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역사가 낑궈들 자리는 거의 없다. 세계사를 배운 사람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과연 국정교과서가 기술한 세계역사에서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의 동남아 역사를 다룬 부분을 본 기억이 있나를. 물론 없을 것이다. 있다고 해도 강국에 짓밟힌 식민의 가슴 아픈 역사뿐.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육이 가르치고 있는 세계사는 강대국의 역사가 되고, 강대국의 역사는 곧바로 서양의 역사가 된다. 세계사=강대국의 역사=서양의 역사라는 등식 성립.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역사는 강대국의 역사가 아니라 문명의 역사다. 물론 문명을 건설하는데 있어 전쟁은 필연적으로 동반되기 마련이지만 전쟁은 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키워드지 그것이 역사 전체를 대표할만큼 중심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오 그 문명을 결정지을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세계사 교육은 서양을 힘을 앞세운 승리자의 모습으로 기술하고 있고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를 약자의 모습으로 서술하는 등 역사를 상생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이 아닌 정복과 식민으로 점철된 승부의 시각에서 편향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는 외치고 있다.

“역사는 정글, 강한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한국의 정규 교육을 이수한 이들은 은연 중에 세계사=강대국의 역사=서양의 역사라는 등식을 받아들이게 되고 이는 현실에서 서양인은 강한분, 동남아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은 만만한 놈 혹은 멸시해야 될 새끼들로 인식하게 된다.    

길거리에서 백인을 만나면 주눅이 들어 슬슬 옆으로 피하는 반면, 동남아인을 만나면 눈을 내리까는 지금의 한국. 동남아인을 노동자로 고용한 업주는 그들을 착취하며 월급을 삥뜯고 이를 보는 우리역시 당연하다는 듯 대개는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않는다. 나라까지 나서서 밥그릇 논리를 앞세워 그들을 내쫓고 있는 현실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수의 실정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안다고 그랬다. 나는 이를 바꿔 말한다. 교육의 실정을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교육은 전세대의 경험과 시각을 후세에 되물림한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인종에 대한 태도는 우리 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 탓에 지금과 같은 세계사 교육이 유지된다면 자식세대는 나에게서 그릇된 인종주의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주입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개혁되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다.


(2006. 8. 29. <풀로 엮은 집>)

언어와 사회


TV 스포츠 뉴스에 프로야구에서 맹활약을 펼친 한 신인선수의 이너뷰 장면이 나온다. 질문자가 컨디션에 대해 묻는다. “좋은 것 같습니다.” 홈런으로 넘어간 공의 구질이 무엇이었냐고 묻는 다음 질문에 대해서는, “직구였던 것 같습니다.”

홈련을 치며 팀의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 선수의 이너뷰에서 나는 열정과 흥분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억압과 수동적인 태도를 본다. “~한 것 같습니다”.

조사가 붙지 않는 체언에 이어질 때 쓰이는 ‘~같다’는 표현은 추측이나 불확실할 때 사용하는 언어다. 한마디로 자신이 없을 때 쓰는 언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위의 신인선수는 자신의 컨디션을 밝히는 것이 자신이 없어서 ‘~같다’는 표현을 쓴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 왜.

자신이 알게모르게 체화한 사회적 경험이 습관으로 굳어진 언어가 되어 무의식적으로 발화된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교육은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도록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규제하는 학습으로 점철되어 있다. 특히 학원스포츠는 그런 점에서 그 어느 분야보다도 더욱 폐쇄적인 곳이다.

학원스포츠처럼 규율과 규칙이 모든 활동을 제약하는 곳에서 튀는 행동은 미연에 금지되니 선수들은 수동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선후배간의 질서가 강한 곳이다보니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는 건 버릇없는 행동으로 비추어질 염려가 있어 서열에 의해 억압받는다. 자신감을 키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언어는 그 사회를 반영한다. 한글에 높임말이 존재하는 건 우리가 예의를 중시하고 서열에 의해 위치가 정해지는 유교문화권에 속해있다는 얘기고 일본말이 많이 섞여 있다는 건 우리가 그들의 지배를 받은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지고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언어를 통해야만 실재화된다. 그런데 한국은 규제의 역사로 이루어진 사회다. 곧, 한국어는 규제가 반영된 언어라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위에 예를 든 스포츠 선수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묻는 질문에 유독 ‘~같다’는 자신감없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건 괜히 그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구성원을 규제와 억압으로 통치했다는 하나의 증거다.

답답함을 풀기 위해 창조된 언어가 한국사회에서는 되려 구속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 ‘~같은데요’라는 표현이 사라질 때 한국사회는, 국어는 억압과 규율의 좃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무얼 위해 일하는 걸까?


현재 편집국 필진 3명. 그리고 일주업데. 1인당 소화해야 할 기사양이 평균 4개. 최고로 많을 땐 6개까지도 써봤다. 그런데 최근엔 여기에 하나가 더 붙었다. 일망타진 이너뷰 녹취. 그래도 불가능은 없다. 다 해낸다. 주변사람들에게 성실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나보다.

사실 딴지에 입사해서 굉장한 필력의 기자들을 본 후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은 성실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내게 맡겨진 일은 내 능력 이상의 것이라도 다 해내고 싶었고 웬만해선 다 해냈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했던 셈이다.

어쨌든 뿌듯했다. 이 많은 걸 다하다니. 하지만 양이 질을 덮어주는 건 아니었다. 기사를 많이 쓴다고 해서 독자들이 나의 글을 인정해 준 것도 아니었고 더군다나 회사에서 월급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습관처럼 써댔다. 성실하게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오늘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을 만났다. 일망타진 이너뷰 찍새 신분으로 총수를 따라갔다. 그와 4시간 이너뷰를 하고 2시간동안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셔본 결과, 김문수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성실하기만 하다는 거다.  

이번 김문수 이너뷰의 키포인트는 그가 왜 정치를 신한국당에서 시작했느냐였다. 아시다시피 김문수 의원은 재야인사로써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노동운동의 최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수구꼴통들의 집합소인 신한국당에 입당하다니, 그 부분이 이번 이너뷰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민중당이 실패로 끝나고 방황하고 있을즈음 신한국당에서 러브콜을 보냈단다. 그래서 정치를 시작했다는 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성실을 무기로 8년의 시간동안 정치를 해왔다. 국회출석률도 엄청 좋다. 거의 98%. 지금껏 딴지가 만나온 정치인 중에서 가장 월등한 출석률을 자랑한다. 이 점만 보더라도 그는 굉장히 성실하다.

근데 성실하기만 할 뿐 비젼이나 방향성이 없다. 애당초 그가 기득권 세력인 신한국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신한국당에서 먼저 러브콜을 보내와서. 총수가 묻는다. 정치 목표가 모냐고. 오랜시간 머뭇거리다가 한다는 답변이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고건 내각이 출범한 후 주가가 800선까지 오른 것이 정국안정이고, 일자리 200만개를 창출한다고 한 노무현이 오히려 19만개의 일자리를 감소시킨 것이 명백한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된다고 말하는 그다.  

그런 그의 말을 듣고 있다보니 지금의 내 딜레마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는 나의 고민, 이는 목표없는 나의 성실함의 한계였다. “내가 지금 무얼 위해 일하는 걸까?”

비젼없는 성실함, 목표없는 성실함. 이는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

딴지는 구걸중…


탄핵덕에 월드컵 이후 딴지가 호기를 맞았다. 탄핵안이 가결되자마자 기다렸다는듯 대규모의 유저들이 딴지를 접속하기 시작하였고 딴지역시 이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창간이후 가장 빠릿빠릿한 대응으로 그네들의 욕구를 127% 충족시켜줬다.

독자들은 딴지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며 좋아했고, 두 명을 찾아라 이벤트가 진행되자마자 유수의 방송국에서는 촬영을 하겠다고 사옥을 찾아 왔으며, 신문에서는 딴지의 순위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급격히 상승하였다는 보도를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이에 고무된 딴지는 직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탄핵에 매달린 결과, 평상시 두달 걸려야 될 분량의 기사 업데를 무려 5일만에 올리는 쾌거를 일구며 연일 승승장구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돈.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이너넷 전체 순위 20위까지 올라가는 이변을 연출했음에도 불구 티셔츠 몇 장 판걸로 판세를 마감하여 아쉬움을 샀던 총수는 급기야 그제 식사 도중 자발적 유료화를 하면 어떻겠느냐며 직원들의 의중을 떠본다.

결과는… 반대. 너무 속보이는 행동이며 구걸이나 다름없다는 이유에서 였다. 게다가 내 생각이 맞다면 총수는 <오마이뉴스>의 자발적 유료화가 시행되던 당시에 <서프라이즈> 지승호와의 이너뷰에서 자발적 유료화를 두고 구걸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자발적 유료화는 없었던 일이 되었다. 어제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오늘 회사에 와보니 디자이너들의 입이 나와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딴지가 오프라인 책장사를 한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오히려 자발적 유료화보다 더 명분도 있고 괜찮은 거 아니냐 했더니만 아, 글씨 그 조건이라는 것이 쪼까 껄적지근하다. 아마도 다음주 월요일 업데 때 공지 될 거 같은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독자들이여 딴지가 책을 낼 예정이다. 근데 조건이 있다. 니덜이 정기구독료를 미리 보내줘서 책을 만들 돈이 되면 <월간 딴지(가칭)>가 창간된다. 그러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미리 돈을 입금하라’

허걱! 결국 <월간 딴지> 창간의 조건은 딴지독자들이 보내주는 돈이 책을 출간할 정도로 모이면 출판이 되는 거고 안되면.. 쪽팔리지만 그동안 받은 돈 다시 돌려주고 <월간 딴지> 창간은 말짱 도루묵이 되는 거다. 결국 책 출판할테니 돈 달라는 얘기. 그러니까 다시 말해 방법만 바뀌었지 자발적 유료화나 진배가 없는 거다. 그것도 조건부.

딴지의 경영상 한계는 바로 이것이다. 너무 즉흥적이며 독자를 너무 믿는다는 것. 고기의 종류에 따라 보기좋은 미끼를 던져놓고 낚을 생각을 해야하는데 언제나 독자의 충성도만을 믿고 미끼를 던지기는커녕 고기가 와서 낚이길 기다리고 있다. 대체 어느 세월에 낚을려고…

물론 다행히 많은 독자가 <월간 딴지> 출간에 호응을 해줘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모 그것도 좋겠지만 그래도 방법이 잘못 됐다. 오프라인 잡지가 된다는 것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닌 앞으로 딴지의 오프라인을 책임질 주력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 그런 프로젝트를 장기간의 준비없이 접속수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하루사이에 덜컥 결정해 버리다니, 지금 잡지 시장이 얼마나 포화상태인데 말이다.

<월간 딴지>의 출판이 떨떠름한 건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