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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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영화기자 12년째다. 한국영화가 황금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시작해서였는지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참 별 일도 많았는데 첫 번째 취재만큼 기억에 남는 일도 없다. 지금은 없어진 종로 3가의 파고다 극장에 대한 일종의 잠입 취재였다.

당시 파고다 극장은 중년의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다. 지금이야 동성애자를 이성애자와 구분해 사고하지 않지만 당시의 나는 이성애자 중심의 교육을 받고 생활해온 터라 파고다 극장 취재 건이 영 두렵기만 했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파고다 극장은 파고다 공원 바로 옆 건물 2층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그 흔한 극장 간판 없이 작은 매표소만 운영하고 있어 세상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묘한 곳이었다. 당시 주성치의 <소림축구>가 상영 중에 있었는데 코믹한 장면이 나와도 누구하나 웃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기억이 정확한 것이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경직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앉은 곳을 피해 멀찍이 자리 잡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멀티플렉스와는 다르게 좀 허름했던 극장이었던지라 왠지 불길하고 스산한 공기가 내 주위를 감싸는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극장에 들어왔고 그 많은 자리를 놔두고 하필이면 내 옆에 앉았다. 심적으로 잔뜩 움츠러들고 있었던 나는 놀라서 그 극장을 뛰쳐나왔다.

극장의 외관을 얼른 카메라로 찍고 사무실로 돌아와 어찌 어찌 원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편집장은 외관 사진만으로는 파고다 극장인 걸 알기가 어렵다며 내부 사진을 다시 찍어올 것을 명령했다. “지금이요?” “자기 신입기자 아니야? 오늘 마친 취재는 오늘 원고 마감이 원칙이야.”

‘에이 xx, 나 안 해’라고 속으로 외친 후 편집장의 지시에 따라 군말 없이 다시 한 번 파고다 극장으로 향했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극장에 도착한 나는 ‘꼼수’를 쓰기로 작정했다. 상영관 입구를 열자마자 카메라 셔터를 누른 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듯 극장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첫 번째 취재 원고는 결국, 기사가 되지 못했다. 동성애자에게 편견이 있던 나는 그들과 파고다 극장을 희화화했고 편집장은 균형 감각이 떨어진다며 관련 원고를 속된 말로 ‘킬’ 시킨 것이었다. 그때 나는 고생해서 취재해온 원고를 어떻게 채택하지 않느냐며 속으로 꽤 분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내가 당시 편집장이었다면 나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 그 원고를 쓰레기통에 처넣었을 것 같다. 그만큼 기자에게 균형 감각은 중요하다. 그러니까, 첫 번째 취재 이후 지금까지 나에게 기자 생활은 각종 편견을 버린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파고다 극장이 있던 곳을 지나칠 때면 기자의 본분에 대해서 반문하고는 한다. 나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지?

movieweek
NO. 564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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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타큐슈 여행의 목적은 당연히!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 방문이었습니다. 기타큐슈 시내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은 저로서는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쿄에 위치한 에도가와 란포 생가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생가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도쿄 시내 대학가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은 ‘박물관’답게 전혀 다른 모습이더라고요. 현재 세이초 기념관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는 마쓰모토 세이초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 곳입니다. 단순히 세이초가 태어난 고장이라는 의미만 가질 뿐이죠. 이곳에 부지를 마련한 이는 전 기타큐슈 시장 스헤요시 고이치였습니다. 20년 넘게 시장 업무를 해오다가 2년 전에 은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을 향한 기타큐슈 시민들의 그리움은 대단하더군요. 그 뒤를 이어 선출된 현 시장이 너무 무능해서랍니다. 자연에 대한 존중도 없고 문화 마인드도 엄청 떨어진다네요. 이 두 가지는 스헤요시 고이치가 시장 재임 중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 사업이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 건립이었던 거죠.
 
정말이지,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을 둘러보면 세이초가 남긴 유산을 잘 보존하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겠다는 의지가 절로 읽힙니다. 단적으로, 세이초가 소설가로 전업한 이후 도쿄에서 살았던 집을 그대로 옮겨 전시해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기념관 지하 1,2층을 꽉 채우는 규모인데 저는 원형 그대로 재현한 것인 줄로만 알아더랬습니다. 설마 2층집 규모의 집을 그대로 가져다놓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도쿄에서 기타큐슈까지 신칸센으로 5시간 30분이나 걸린다는데, 정말 일본인들의 꼼꼼함은 혀를 내두를 만합니다. 사실 말이 가정집이지 거실과 부엌, 침실을 제외하면 도서관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말 온갖 종류의 책들이 집안을 꽉 채우고 있을 정도입니다. 아시아의 역사를 알기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났던 세이초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와 같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져온 유적을 따로 모아 작은 전시관도 집안에 마련해 놓았더군요. 정교한 조각들이 대부분을 이루는데 미술에 문외한인 제가 보아도 아름다운 것을 보니 세이초의 감식안이 정말 뛰어나 보이더군요.

왜 아니겠습니까. 마쓰모토 세이초는 소설가로 활동하기 전 아사이신문사에서 일러스트 작가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세이초는 미술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답니다. 사실 국내에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했다고 소개가 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기사에 삽입되는 일러스트를 그렸다고 하네요. 그런 경력이 밑바탕 된 까닭인지 세이초의 작품을 보면 미술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두드러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점과 선> <공백의 디자인>이라는 제목도 그렇고요,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에 수록된 <산>의 본문 중 ‘산’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의 입구를 보면 거대한 그림이 한 점 전시되어 있습니다. 검은 바탕에 붉은 머리를 한 사람의 형상이 가운데 박혀 있는데요, 제목이 <사자>(사진)입니다. 구로다 세타로라는 작가의 그림이라고 합니다. 혹시 이 작가의 이름이 낯익은 분이 계시나요? 일본에서 출간된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의 커버를 대부분 담당한 이라고 합니다. 구로다 세타로가 마쓰모토 세이초를 모델로 한 그림이 바로 <사자>인데, 안 그래도 세이초의 모습을 보면 그 머리 스타일 때문에 사자를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은 세이초에 대한 존경을 골격삼아 그에 대한 애정으로 살을 구축한 말 그대로 세이초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궁극의 공간입니다. 세이초에 대해 뼛속 깊숙이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기타큐슈의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 같은 곳을 조성하기란 쉽지 않죠. 이곳의 관장 후지이 야스에는 살아생전 마쓰모토 세이초가 소설 작업을 할 때 광범위하게 자료 조사를 도왔던 인물입니다. (인터뷰를 하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관심 있는 매체 분들 안 계신가요?) 소설가와 어시스턴트로 연을 맺은 후 후지이 야스에와 세이초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죠. 후지이 야스에 관장은 “세이초가 죽은 후에도 저는 세이초 기념관의 관장으로 그를 계속 보좌하고 있어요” 우스개처럼 얘기하더군요. 그런 후지이 야스에의 이력 때문에 그녀는 일본에서 명사로 통한다고 합니다. 비록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요. 저에게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은 기념관 이상의 기념관이었습니다.

일본의 검은 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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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최근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는 (동해 표기를 포함해) 독도문제로 시끄럽습니다. 3인의 자민당 의원이 울릉도에 가겠다며 국내에 들어왔다가 몇 시간 쇼를 벌이다가 돌아간 해프닝도 있었고요. 일본 정부가 ‘국방백서’에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인정하는 문구를 넣기도 했고요. 그런데 일본 정부가 진짜 역사를 은폐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체 역사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전 세계를 상대로 내부의 균열 없이 무모한 침략전쟁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천황은 신’이라는 거짓 역사를 국민에게 주입하며 세뇌시킨 탓이 큽니다. 그렇게 거짓으로 역사를 꾸미는 짓은 일본 정치인들, 특히 우파들에게는 필수적인 리더십이 됐고 그 유산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무고한 일본인들은 그들의 진짜 역사를 모른 채로 매트릭스와 같은 가상의 역사 속에서 거짓 정체성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은 천황의 인간 선언 이후 일본인들은 그들 자신의 종교전쟁을 벌이는 중이라고 냉소하더군요.

마사히로 감독은 일본 대지진이 일본 역사에서 유례없는 대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지진이 발생했고 쓰나미가 밀려왔으며 원자력까지 유출되는 일은 처음이라는 거죠. 근데 이건 자연 재해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사건이었겠죠. 다만 막을 수 있는 사고를 막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대지진이 일본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답니다. 막을 수 있는 사고란 바로 ‘인재 人災’입니다. 마시히로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재해에 대응하는 정치인들의 무능력 때문에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거랍니다. 안 그래도 3월 대지진 이후 간 나오토 내각의 무능함은 극에 달한 상태입니다. 기타큐슈에서 만난 모든 일본인들은 “지금 정부에게 바라는 건 없다. 우리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이 사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얘기하더군요. 정부의 장악력이 완전히 무너진 틈을 타 자민당 위원들은 울릉도 쇼와 같은 정치 공세를 펴고 있고 우익의 보수적인 행보는 더욱 노골화되었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는커녕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마사히로 감독은 역사를 지배계층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고 국민들의 안위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상황에서 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은 인재를 막는 것이라고 말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무능한 정치인을 몰아내자는 것이죠. 다시 말해, 거짓 역사에 맞서 진짜 역사를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마사히로의 강연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이 사람이 왜 마쓰모토 세이초를 위한 강연에 나섰는지 의아했습니다. 세이초와 친분도 없고 작업도 없었던 데다가 강연 역시 세이초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듣고 보니 세이초의 세계관에 입각해 강연을 한 것이더군요. 바로 진짜 역사에 대한 사명감 말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그렇고 마사히로 감독도 정치인들은 아닙니다. 소설계에서, 영화계에서 획을 그은 인물들이지만 우리와 같은 보통 국민들일 뿐이죠. 그렇습니다. 진짜 역사는 시정잡배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보통의 국민이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어도 인재는 우리가 움직이면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검은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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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타큐슈 여행은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의 초청으로 가게 됐습니다. 세이초 재단 사업과 관련한 행사였는데요, 그날 강연으로 나선 분이 바로 일본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시노다 마사히로였습니다. 요즘 팬들에게는 <올빼미의 성>(1999) 연출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추방된 고제 오린>(1977) <동반자살>(1969) <말라버린 꽃>(1964) 등 1960~70년대 일본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이었습니다. 특히 국가의 시스템에 희생당하는 일본인들의 비극을 주로 다루며 반골기질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이날의 강연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노다 마사히로는 2004년 <스파이 조르주>를 마지막 연출작으로 현재는 은퇴상태에 있습니다. 확실히 전성기 때의 건장했던 체격은 온데간데없고 많이 마른 상태이더군요. 대신 연출자 은퇴 이후에는 자서전 집필이나 강연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날의 강연도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었는데요. 다만 마쓰모토 세이초와는 직접적인 인연은 없었다고 합니다. 세이초의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든 적도 없었고 사석에서 인사 정도만 나눈 사이라고 하더군요. 대신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 때문에 강연에 나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사히로 감독은 자신의 중학교 시절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1931년생이니까 중학교 때면 한창 일본이 세계2차 대전에 참전해 야욕에 불타던 때인데요, 그때 학교에서 중요하게 배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할복’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중학생 애들에게 할복에 대해서 가르치고, 또 아이들이 할복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겠지만 당시의 일본인들은 누구나 할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천황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는군요. 당시 천황은 신(神)의 대접을 받았고 일본인들은 신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할복을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이 패전국이 되면서 천황은 그 유명한 ‘인간 선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미국은 일본의 패전에 대한 죄를 물어 천황을 군법에 회부하지 않는 대신 “나는 신이 아니라 여러분과 똑같은 인간이다“ 라디오방송을 통해 육성으로 인간 선언을 하게 했죠. 그때 중학생이던 마사히로 감독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고 합니다. 그건 일본인들 역시 마찬가지였겠죠. 다만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천황이 신의 지위를 박탈당한 것에 대성통곡하였다고 하는데요. 마사히로 감독은 그동안 천황이 신이었던 일본의 역사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 오랫동안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에 대해서 국내의 많은 독자들은 추리소설가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세이초는 추리소설 외에도 고대사와 현대사 연구에 많은 공을 들인 것으로 유명한데요. 특히 <일본의 검은 안개>는 역사책에는 수록되지 않은 일본 현대사의 혼란스러운 광경을 사실에 입각해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마사히로 감독은 일본의 역사란 무엇인가 한창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일본의 검은 안개>를 보았다고 하는군요. 그리고는 “이것이 바로 일본의 진짜 역사다!” 생각하며 세이초의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그 자신이 직접 세이초에게 왜 소설 외에 역사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직업 물어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세이초 역시 일본의 역사는 가짜라는 것을 목격했기에 진짜 역사를 알고 싶어 직접 역사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하더군요. 저는 마사히로 감독의 의견에 동의하는 쪽입니다. 세이초 기념관에는 살아생전 세이초의 도쿄 집을 그대로 옮겨 전시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재현한 것이 아니라 진짜 옮겨 놓은 거랍니다.) 거실과 침실, 그리고 부엌을 제외하면 2층 집 전체가 도서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책으로 넘쳐나는데요, 상당수가 일본과 일본 근접 국가들의 역사책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세이초는 “주변 국가의 역사를 알아야 일본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도 하네요.   (계속)

자연을 거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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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큐슈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고쿠라 시내를 관통하는 무라사키 강입니다. 특히 수km에 달하는 무라사키 강 위를 수놓은 수십 개의 다리는 도시의 얼굴이자 고쿠라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근데 어느 곳과 많이 닮아있지 않나요? 예, 서울시가 청계천을 복원할 때 모델로 삼은 곳이 바로 무라사키 강이라고 하네요. 실제로 서울시의 관계자들이 이곳을 찾아 청계천을 복원하는 데 가장 많은 참조를 했다고 하네요. 사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기타쿠슈 시청에서 잠깐씩 일을 봐주고 있는 이(이번 여행에서 저의 가이드를 맡아주신 분인데요)의 설명에 따르면, 봄이면 찾아오는 무라사키 강 일대의 반딧불까지도 청계천 복원에 포함시키겠다며 서울시 관계자가 기염(?)을 토했다고 합니다. 인공물고기까지 청계천에 방류하겠다는 사람들인데 왜 아니겠습니까.

사실 무라사키 강은 오래 전까지 죽어있는 강이었다고 해요.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기타큐슈의 전(前)시장 스헤요시 고이치는 키타큐슈를 환경 친화적인 도시로 만들기를 원했고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것이 무라사키 강의 수질 개선이었다고 합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결과, 지금은 연어가 살 정도랍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 UN이 주목한 환경도시’로 선정되어 그 명성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헤요시 고이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무라사키 강 위에 다리를 건설할 때 철제를 최소화하고 나무를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리의 이름도 보면, 바람의 다리, 태양의 다리(바닥에는 해바라기 모자이크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무의 다리 등 자연에서 따와 지었다고 합니다. 굉장히 단순한 이름이지만 기타쿠슈 시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청계천은 외양에서는 무라사키 강 주변을 뛰어넘는 미적 감각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를 지탱해주는 정신에 있어서는 전혀 이해를 못한 듯한 모습입니다. 이미 복원 전부터 주변 환경을 무시한 개발로 무성한 뒷말을 남겼던 것이 청계천이었죠. 심지어 반딧불까지 복원(?)하려 했다는 한국인 특유의 무엇이든 개발할 수 있다는 ‘무대뽀’ 정신은 실소를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도시는 자연과 대립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도시는 자연의 환경에 머리 숙이고 순응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껍데기로만 존재하는 청계천을 보고 누가 <은하철도999>와 같은 상상력을 펼 수 있을까요? 아, 강풀 작가가 청계천을 배경으로 괴물이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구상하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단한 적이 있죠. 물론 영화화는 물 건너갔고요. 기타쿠슈 시는 아직도 무라사키 강의 수질 개선을 위해 여전히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행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기타쿠슈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기차, 우주를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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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동안 기타쿠슈를 다녀왔습니다. 기타쿠슈 공항을 나오니 출국장에서 가장 먼저 맞이하는 사람은, 아니 캐릭터는 <은하철도999>의 메텔 공주였습니다. 사람 크기의 메텔 공주 모형이 저에게 손을 흔들어주더라고요. 음, 연고가 없는 기타쿠슈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을, 아니 캐릭터를 만나니 무척이나 신기하면서도 반갑더군요. 우연인지, 기타쿠슈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고쿠라 시내로 들어와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은하철도999> 그림이 새겨진 도로 위의 모노레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인솔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은하철도999>의 작가 마쓰모토 레이지가 기타쿠슈 출신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시가 선도적으로 나서 기타쿠슈를 <은하철도999>의 도시로 이미지화하기 위해 바람몰이를 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기념관까지 건립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니라고 하네요.

기타쿠슈는 일본의 유명한 철강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2차 대전 당시에 미국은 일본이 군사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만들게끔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원자폭탄을 겨냥한 곳으로 기타쿠슈를 지정할 정도였다네요. 근데 날씨가 안 좋아 시야가 확보되지 못해서 대신 나가사키로 목적지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기타쿠슈가 철강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 피해가 거의 없는 곳이기 때문이랍니다. 지상의 도로 위를 달리는 모노레일이 오사카에 이어 두 번째로 건설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특수성이 반영된 탓이 크겠죠. 그게 벌써 30년도 더 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근데 기타쿠슈 도로를 걷다가 지상 위의 <은하철도999> 모노레일이 달리는 광경을 보면 마치 우주를 달리는 ‘은하철도999’가 연상이 되더군요. 그래서 일부러 해가 진 저녁 늦은 시간에 모노레일이 잘 보이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자니,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달리는 모노레일은 영락없는 은하철도999더군요. 그 순간에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마쓰모토 레이지로 자연스럽게 빙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쓰모토 레이지가 어떻게 <은하철도999>를 상상하게 되었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이 되더군요. 물론 마쓰모토 레이지가 어렸을 때 기타쿠슈의 모노레일에는 은하철도999의 그림이 새겨져있지는 않았겠지만 우주를 날아다니는 열차를 머릿속에 그리기는 어렵지 않았겠죠. 도시가 상상력을 키우게 한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도시의 조형 역시 그 지형에 적합한 형태로 지었을 때 진가가 발휘된다는 것을 이번 기타쿠슈 여행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서울을 물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청계천을 인위적으로 조성했다죠. 또 누군가는 서울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겠다며 새로운 조형물 짓기에 여념이 없다고 하죠. 그런 상황에서 어린 친구들이 배울 수 있는 건 하늘을 나는 열차가 아니라 멀쩡한 빌딩을 파괴하는 불도저일 것입니다. 지금의 서울 시장이 리틀MB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그런 도시의 역사를 반영한 것일 테죠. 음, 쓰다보니까 우울한 얘기로 흘렀는데 기타쿠슈 여행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재미 있는 시간이었답니다. 계속 포스팅 올리도록 할게요. 근데 밑에 사진은 우주를 나는 은하철도999를 연상하기에는 거리가 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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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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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에서 멀어지다보니까 시간이 참 여유롭다. 그래서 생긴 버릇이 자전거 타기다. 영화 보러갈 일이 자주라 개봉동 집에서 메가박스 목동점까지 자전거를 애용한다. 집에서 가까운 안양천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시원스레 펼쳐져있어 이용하기 편하고 오고가는 시간도 1시간 내외라 자전거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등산하는 기분이 이에 비견할 것 같다. 청바지 위에 티 한 장 걸친 편한 옷차림에 물 한통, 자유시간 하나 챙겨 넣은 배낭을 메고 한 시간 거리를 룰루랄라 페달을 밟으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도로를 따라 양편으로 늘어선 갈대들이 스쳐지나갈 때마다 바람에 날려 쏴아~ 파도 소리를 내서 귀가 즐겁고 내 앞에서 파워워킹하며 살을 빼고 있는 젊은 처자들 뒤태 감상(?)하느라 눈이 즐겁고 그렇게 한가롭게 달리다보면 운동까지 돼서 몸이 즐겁다.

그래서 사람들이 요즘 자전거에 열광하나보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자전거 도로 위를 메운 자전거가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 장바구니를 싣고 가는 아주머니도 계시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학생들도 보이고 부부끼리 산책하는 광경도 쉬이 목격된다.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보면 이곳만의 시간이, 자전거의 시간이 따로 존재한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여기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빨리 가라고 경적 울려댈 필요도 없다. 튼튼한 발이 있으니까 휘발유 연소해가며 자연파괴 할 염려도 없다. 발치에 이런 근사한 곳을 놔두고 나는 왜 그렇게 집에서 리모컨만 가지고 뒹굴뒹굴했는지 몰라. 

가다가 목마르면 자전거 잠깐 세워놓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또 가다가 힘에 부치면 근처 벤치에 앉아 초코바도 까먹는다. 또또 가다가 멀리서 붉은 노을처럼 빛나는 메가박스 간판 보이면 ‘정상이 멀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하는 심정으로 마지막 스퍼트를 한다. 목동은 특히나 자전거人을 위한 시설이 거의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 주차하는데도 별 문제가 없다. 극장 주변의 빈 주차펜스를 찾아 자전거 앞바퀴를 집어넣고 도난방지 자물쇠를 잠가주면, 주차 끝. ‘야호’ 크게 한 번 마음속으로 외쳐주면서 느긋하게 극장으로 들어간다.

“고객님, 영화 시작 15분 지났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뭐… 괜찮습니다. 다음 걸로 보죠.”
“오늘 상영은 이번이 마지막인데요.”
‘젠장, 너무 여유 부렸나…’

아무튼 난 여유로운 자전거人이니까. 내일은 꼭 <9> 보고 말거야. (ㅜㅜ)   일러스트 허남준

대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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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시간이 남아도는 까닭에,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어 소파에 몸뚱이 파묻고서는 TV채널 돌려 보는 게 일과다. 오락하듯 TV리모컨 버튼을 누르다보면 이상하게 유독 자주 걸리는 프로가 있는데 내게는 <세바퀴>와 <남자의 자격>이 그렇다. 두 프로그램 모두 출연자들이 18금에 가까운 말투와 거침없는 행동으로 좌중을 압도하는데 그거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그중 유현상과 김태원의 활약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둘은 각각 왕년에 한국의 록계를 주름잡았던 백두산과 부활의 리더이자 당시 3대 기타리스트를 꼽으면 반드시 들어가는 이름이었고, 그래서 카리스마도 굉장히 넘쳤던 것으로 기억된다. 근데 과거의 탈을 벗고 망가지는 모습이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유현상의 “좋게 봤는데 말이야”와 말끝마다 추임새처럼 “~에!”하고 말꼬리를 올리는 김태원의 말투는 반짝 유행하기도 했을 정도다.

거 참 세월도 무상하여라, 재미있게 보는 한편으론 왕년의 카리스마들이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궁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더랬다. 그래서 추론해 본 결과, 이들이 기러기 아빠여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보게 됐다. 유현상의 경우, 한때 만인의 비웃음을 샀던 트로트 가수로의 전향이 해외에서 공부하는 자식을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가장의 눈물겨운(?) 가족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김태원은 필리핀에 있는 아내와 자식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는 게 낙이라는 요지의 고백을 방송을 통해 접하게 됐다.

혼자 지내본 사람은 잘 알 텐데(ㅜㅜ) 텅 빈 집안에서 오랫동안 지내게 되면 대화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커진다. 급기야 TV를 벗 삼아 이야기하는 건 예사고 <중경삼림>의 양조위처럼 비누와도 대화하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 외로움이 결국 이들을 예능 늦둥이로 데뷔시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이다. 집에서 할 일 없이 소일하거나 술로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방송에 출연해서 돈도 벌고 그동안 못했던 대화도 실컷 하는 것이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도 줍고 일석 이조의 시간, 좋잖아~

정말 요즘 예능 프로그램 보고 있으면 기러기 아빠의 전성시대라는 말을 실감한다. 유현상, 김태원은 말할 것도 없고 이광기, 김흥국, 지석진, 배동성 등등 진짜 눈에 밟힐 정도다. 프로그램에 나와서 웃고 떠들고 까불면서 티는 안내지만 그런 이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짜~한 게 느껴진다. 그래서 막상 TV를 재미있게 보다가도 씁쓸해 지는 게 과연 가족을 위한 게 무엇인지, 자식을 위한다며 그렇게 떨어져 사는 게 옳은 건지 내가 괜히 회의가 밀려올 정도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점인 소통부재는 비단 MB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회 곳곳에서 소통이 부족한 순간을 자주 목격한다.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는데 가족의 소통부재가 만연한 사회에서 원활한 소통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로 느껴진다. TV속에서 맹활약 중인 기러기 연예인들은 그런 징후의 대표적인 사례다. TV 속의 그들이나, 집에 틀어박혀 TV나 보고 있는 나나, 우리 모두 대화가 필요해~   일러스트 허남준

일본에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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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입니다. 일본에 갑니다. 7박 8일 일정으로 이번 주 일요일에 떠납니다. 따로 목적이 있어서 가는 건 아니고요. 어쩌다보니 이번에 기회가 돼서 도쿄-오사카를 경유하는 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예전에 두 번 도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번처럼 긴 일정은 처음이라 여유 있게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중 가장 기대가 되는 곳은 도쿄의 ‘에도가와 란포 박물관’입니다. 사실은 올해가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백주년이라 기타큐슈에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 박물관’을 방문하려 했는데 후쿠오카 현까지 가기는 무리라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소설은 제가 읽은 게 몇 개 없어서 란포 박물관에서 과연 어떤 감흥을 느낄 수 있을지 감이 전혀 안 잡히지만 아무래도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같은 인물이니 어떤 형태가 됐든 인상 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약 일주일 동안은 업데이트가 힘들 것 같습니다. 오사카에서 묵는 호텔에서 무선 인터넷을 공짜로 쓸 수 있다고 하는데 거기 가서까지 글을 쓰려니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기회 봐서 사진은 올려볼까 싶기도 해요. 근데 사진 실력도 영 젬병이라… 대신 동생이 찍은 사진 한 장 올립니다. 도쿄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하는데 가장 일본적인 것 같아 제가 골랐습니다. 

그럼 사진 즐감들 하시고, 일본에 잘 갔다 오겠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시길 ^-^  사진 허남준

회장님은 블레이드 러너의 꿈을 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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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블레이드 러너>는 어둡다. 내용 뿐 아니라 화면도 영화 내내 어둡다. 밤이 배경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밤이건 낮이건 영화 속 LA는 늘 어둡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장악한 초대형 마천루들이 햇빛을 차단한 까닭에 아래로 내려갈수록 암연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부르주아가 경쟁하듯 세워놓은 초고층 건물들이 태양을 가린 탓에 지상에 거주하는 하류층 노동자들은 어둠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이들의 시선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빛이란 그저 초고층 건물에 걸린 초대형 광고물들이 쏟아내는 현란한 조명 뿐.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먹이사슬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이미지다. 그래서 <블레이드 러너>에는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고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는 자가 권력자로 등장한다. 극중 레플리칸트를 생산해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한 타이렐은 피라미드 형 건물을 본사로 가지고 있는데 권력의 최상부를 뜻하는 꼭대기 층에 타이렐의 회장이 거주한다는 설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 정부가 제2롯데월드 건축 시공을 최종 승인했다. 2014년이면 잠실에는 555m 높이의 112층 초대형 마천루가 들어선다. 근데 그 과정이 탐탁지 않다. 인근에 서울공항이 위치하고 있어 자칫 잘못하다간 항공기와 충돌할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 시설 제2롯데월드 건축은 불허됐는데 활주로 방향을 변경하고 장비와 시설을 보완한다는 전제로 이번 정부 들어 허가가 난 것이다.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경제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를 기꺼이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안전을 우려하는 주변의 의견을 무시할 정도로 회장님 자신의 숙원사업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권력은 늘 높은 곳을 지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과시한다. 서울시장 재직 시부터 대기업 CEO 출신 대통령은 과시하는 정책을 자주 선보여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그 뒤를 이어받은 현재의 서울시장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다. 서울에 세계적인 랜드 마크를 세우겠다며 여러 곳에 초대형 건물을 기획하고 계시다. (용산에 세워지는 (이름 조차!) ‘랜드 마크’ 빌딩은 무려 665m라고 한다!) 그런 이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는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3. 외국의 영화감독들이 서울에 오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첫 인상을 묻는 질문에, 언젠가 서울을 배경으로 Sci-Fi 영화를 찍고 싶다, 고 답한다. 서울 곳곳을 채우고 있는 초현대식 건물과 고층 빌딩의 압도적인 스펙터클에 감화 받은 탓이리라.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심정이 묘해진다. 서울에 친근함을 드러내려는 얘기이면서 동시에 비인간적인 도시 환경을 꼬집는 내용이 아닐까 의심되기 때문이다. 이제 Sci-Fi라 하면 거의 디스토피아와 동의어인 까닭이다. 안 그래도 요 근래 서울이 보여주는 도시의 속성은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 도시가 보여주는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는 옛 도읍의 정취, 도시 미화라는 미명 하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있는 서민들, 인간의 감정체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도시 설계. 그래서 난 몇 년 뒤 강남의 잠실에 세워질 제2롯데월드의 건물을 상상하면 <블레이드 러너>의 피라미드 형 타이렐 건물이 오버랩 된다. 112층 꼭대기에서 최상급의 햇살을 만끽하며 우리의 회장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하늘을 찌르는 자신의 권력욕에 달콤해하실까. 더욱 견고해진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더 높고 압도적인 제3롯데월드를 구상하는 건 아니실까. 확실한 건 제2롯데월드가 국민의 안전은 물론 누군가의 생존권을 짓밟고 그 위에 건설됐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허남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