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의 말>의 영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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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2011)은 무()에서 태어나 무로 돌아가는 인간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유식하게 말하면, 영원회귀. 니체의 사상인데 실제로 <토리노의 말>은 니체의 일화를 설명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와 무 사이의 인간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삶이라는 유()의 시간이다. 살기 위해 버텨야 하는 시간들의 연속. 그러니까 인간의 생은 운명에 맞선 투쟁의 연속이라 할만하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가 차이를 생성하는 끊임없는 반복임을 상기한다면 이 삶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로 반복의 연속이다. 극 중 마부와 딸은 잠에서 깨어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술 한 잔씩을 한 후 우물에서 떠온 물로 감자를 익혀 한 알씩 먹고 마구의 말에 먹이를 먹이는 생활이 생의 전부인 것으로 보일 정도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는 동안 집밖에서는 엄청난 바람이 불어대고 있는데 마부의 딸이 창문 밖으로 바람이 휘몰아치는 광경을 지켜보는 모습은 거대한 운명을 맞닥뜨린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흥미롭게도 이 장면의 구도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그린 <바닷가의 월출>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그림 속 한 남자가 등을 보이며 파도와 맞서는 그림 속 구도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토리노의 말>의 딸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늙은 마부 역시도 딸과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파멸과 죽음을 향한 니체의 영원회귀는 곧 인간 운명의 시간인 셈인데 (스포일러 주의!) 성경에서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여섯 번째 날 마부 부녀는 거친 바람에 삶이 풍화되며 끝내 점으로 회귀, 죽음을 통해 다시금 태어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워 호스>와 서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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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호스>의 마지막 장면은 흡사 존 포드 영화의 결말을 보는 것 같다. 서부극의 미장센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세트임이 명백해 보이는 농장 위에서 지는 석양의 빛을 등지며 그림자의 모습으로 재회하는 알버트(제레미 어바인) 가족의 모습. 스티븐 스필버그의 가족주의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말이지만 여기에 의외의 존재가 끼어든다. 바로 ‘조이’라는 이름의 말이다.

서부극은 대개 미국의 이상주의를 옹호했다. 백인 개척자들의 활약상을 통해 삶의 터전을 일구고 공격적인 외부 세력에 맞서 가족을 보호하는 모습은 곧 미국적 가치의 실현이었다. <수색자>(1956) 이후 존 포드가 수정주의 서부극으로 백인에 의해 (그리고 그 자신에 의해) 일방적으로 쓰인 미국의 가치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서부극이 미국의 장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첨단의 영화를 만들면서 고전에 대한 오마주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스필버그는 <워 호스>를 통해 현대판 수정주의 서부극을 선보인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나갔던 말 조이도 알버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극적으로 가족과 결합한다. 말하자면 <Saving War Horse>인 셈인데 스필버그는 서부극의 필수요소였지만 주변 풍경으로 밀려났던 말을 중심부로 이식한다. 가족의 범주에 말을 포함시킴으로써 스필버그 특유의 가족주의에 확장을 시도한다. 그리고 서부극의 미장센을 빌려 미국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옹호하는 것이다. 

<셜록>의 벽지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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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베이커가 221b의 홈즈(베네딕트 컴버배치)의 거실 벽지는 기하학 문양의 일정한 패턴 무늬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사건을 추리하는 데 있어 공식을 대입해 일정한 패턴을 찾는 홈즈의 수사 기법에 착안한 미장센이라 할만하다. 아닌 게 아니라, 홈즈는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왓슨, 이렇게 하나하나씩 가능성을 제거해가는 방식을 소거법이라고 하네”), 과학 현상을 증명하듯(“이상해, 현미경으로 살펴도 설탕 입자가 보이지 않아”) 사건의 중심부에 진입한다.

그런 홈즈의 성향을 드러낼 목적으로 극 중 자주 출현하는 자막들 또한 패턴을 이루어 주변 가구나 기구들의 고유한 문양을 해치지 않게 제시된다. 홈즈와 왓슨이 아이폰이나 블랙베리나 맥북과 같은 첨단의 전자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개인적으로 더 눈이 갔던 것은 홈즈의 일정한 패턴 무늬 거실 벽지 구석 쪽에 걸려 있는 해골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영국 출신의 화가 데미언 허스트가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넣은 ‘신의 사랑을 위해’라는 작품을 연상시키는데 그만큼 홈즈가 미술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골이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죽음이다. 홈즈의 사건은 대부분 살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시즌2의 1부 ‘벨그레이비어 스캔들’은 살인보다 아이린 애들러의 생사와 관련한 비밀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다소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러니까, 홈즈는 살인 사건 주변에 흩어진 증거라는 파편을 모아 패턴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탐정이다. 그런 홈즈의 거실을 장식하고 있는 패턴 무늬 벽지와 해골 그림. <셜록>의 연출진은 이와 같은 재미있는 미장센을 통해 셜록 홈즈의 성격과 수사 성향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