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포매니악>의 피보나치 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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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는 이른 나이에 오르가즘을 경험한 후 성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첫 경험 역시 예사롭지 않아서 제롬의 부드러운 손에 꽂힌 조는 그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바친(?)다. 하지만 손의 부드러움과는 상관 없이 섹스에 미숙한 제롬은 전희 단계는 무시하고 바로 삽입에 들어가 정상위 3번, 후배위 5번으로 짧게 조와의 관계를 마무리한다. 이때 화면에는 그들의 관계 위로 ‘3+5’라는 자막이 거대하게 찍힌다.

0,1,2,3,5,8,13,21,34… 로 이어지는 피보나치 수열은 앞의 두 수의 합이 바로 뒤의 수가 되는 수의 배열을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자연계는 불규칙하고 무질서하지만 그 속을 살펴보면 매우 정밀한 수학적 원리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조가 자신의 첫 경험을 설명하자 이를 듣던 셀리그먼은 피보나치의 수열을 설명하며 그들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처럼 셀리그먼은 피보나치의 수열을 비롯해 플라잉 낚시법, 에드가 알렌 포의 <어셔가의 몰락>, 바흐의 ‘정선율’ 등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조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상징 안에 가두려고 한다. 섹스로써 세상이 임의로 정해놓은 정상의 범위를 넘어서려는 조와 다르게 셀리그먼은 사회가 권위를 부여한 지식의 틀 안에서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드는 것. 그래서 조가 셀리그먼에게 가장 자주하는 말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랬죠?”이다.

셀리그먼은 지식으로써 조의 위에 군림하려 들지만 사실상 이 영화에서 그는 조롱의 대상이다. 아는 것은 많을지 몰라도 책과 예술품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방 안에서 나온 적 없는 이론으로만 무장한 헛똑똑이일 뿐이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성 관계 한 번 가져본 적 없는 셀리그먼이 실전으로 무장한 조의 섹스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셀리그먼이 피보나치 수열을 들먹이자 화면 위에 커다랗게 뜨는 3+5는 <님포매니악>을 연출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장난기 어른 미장센이다. 이건 일종의 함정이다. 별 의미가 없는 3+5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몰두하며 이 영화를 이해하려 들면 결국 셀리그먼과 같은 오류에 빠지고 만다. 라스 폰 트리에는 조처럼 모든 종류의 제약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자유인을 옹호하면서 이를 억지 이론에 가두고 억압하려는 세력에게 ‘엿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맥스무비
‘미장센 추리 극장’
(2014.7.4)

<탐 엣 더 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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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엣 더 팜>은 자비에 돌란이 자신이 직접 구상한 이야기가 아닌 원작을 가지고 연출한 첫 번째 작품이다. 세계적인 극작가 미셀 마크 부샤르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탐 엣 더 팜>은 어긋난 관계를 다룬 치정극이다. 탐(자비에 돌란)이 애인 기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욤 어머니 아가테(리즈 로이)의 집을 방문할 때 문 옆에 붙어있는 주소 ’69’는 이 영화가 꽤 수위 높은 작품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섹스 묘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탐은 이방인의 입장이지만 아가테(리즈 로이)와 기욤의 형 프랜시스(피에르-이브 카디날)와 함께 할 때면 묘한 긴장감에 기를 펴지 못한다. 호모포비아인 듯한 프랜시스는 탐이 기욤의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하도록 폭력을 행사한다. 그렇지만 이 둘은 가학적인 관계를 나누는 것으로도 보이는데 프랜시스에게서 탐을 보호하려는 기욤의 어머니가 개입하면 이 셋의 관계는 오리무중에 빠지는 것이다.

<탐 엣 더 팜> 이전까지 돌란은 20대 답지 않은 안정적인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잦은 영화적 인용과 강렬한 색의 활용으로 과잉이라는 비판에도 시달렸다. <탐 엣 더 팜>이 놀라운 건 그런 비판이 무색할 정도로 전혀 새로운 면모를 선보인다는 데 있다. 전작에서 너무 많은 정보의 제공으로 관객을 현혹했다면 이번 영화의 경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설명을 자제함으로써 관객의 해석을 적극 유도한다.  

탐과 프랜시스와 아가테가 처한 관계는 기욤의 과거와 깊은 연관을 맺지만 돌란은 과거의 사연을 철저히 차단한 채 이들의 현재에만 집중한다. 원작이 한정된 무대를 배경으로 한 희곡이기 때문이지만 돌란은 이에서 더 나아가 이들의 관계에서 세계의 폭력 지형도를 본다.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프랜시스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던 탐은 드디어 아가테의 농장을 떠나 도시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영화가 마무리되면서 나오는 노래는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Going to a Town>이다.

‘I’m so tired of America’라는 가사가 유독 강조되는 <Going to a Town>은 돌란이 프랜시스와 탐의 관계에서 미국에 종속된 캐나다의 현 상황을 ‘수위 높게’ 읽어내려 했음을 암시한다. 이와 관련, 돌란은 어느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잔인한 폭력에 대해 인내해야 한다는 믿음을 신앙처럼 갖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또한 그렇지 않은가?”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모자(母子) 또는 연인 사이에  안주(?)했던 돌란은 <탐 엣 더 팜>에서 관계의 폭을 세계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 음악의 선곡 역시 자비에 돌란 자신이 직접 맡았다.      

맥스무비 매거진
2014년 7월호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톰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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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전혀 새롭지 않지만 기존의 이 장르가 가지고 있는 공식을 세련되게 조합한 기성품에 가깝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라는 SF 배경에, 죽어도 죽지 않는 인물의 타임 루프 설정을 가미, 할리우드 전쟁영화 특유의 영웅 스토리로 매조지하는 만듦새는 예상 가능하되 장인의 손놀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 캐스팅 역시 이 장르에 익숙하지만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배우가 제격일 것이다.

가장 먼저 시나리오를 받아본 브래드 피트가 빌 케이지 역을 거절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테다. <12 몽키스>(1995)를 제외하고는 SF 영화에 출연한 경력이 없을 뿐더러 그의 작품 선택 경향은 최근 들어 대중성보다는 작품성에 더 기운 듯하다. 그래서 더그 라이먼 감독이 선택한 배우는 톰 크루즈다. 톰 크루즈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추구하는 세계관이나 인물 구성에 최적화된 배우다.

그의 필모그래프를 살펴 보면,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상위 개념에 두고 마치 그 외의 작품 들이 이에 종속되는 형태를 띈다. 공교롭게도 톰 크루즈는 SF물인 <오블리비언>(2013)의 촬영을 마친 후 일주일의 휴식도 갖지 못한 채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 합류했다. 외계인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지구가 배경인 <오블리비언>에서처럼 그는 <우주전쟁>(2005)에서도 외계인과 맞선 적이 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후방에 있다가 전방의 전투병으로 차출되는 것처럼 톰 크루즈는 <탑 건>(1986)과 <7월 4일생>(1989), 그리고 <작전명 발키리>(2008)에서 군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게다가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하는 극 중 빌 케이지처럼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에서는 불멸의 뱀파이어를, <오블리비언>에서는 끊임없이 재생 가능한 복제인간을 연기했다.

톰 크루즈의 캐릭터들이 웬만해서는 잘 죽지 않는 이유는 지구 평화(?)를 위해서다. 대표적인 작품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일 텐데 제목이 의미하는 바대로 톰 크루즈는 대개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며 영웅의 이미지를 획득했다. 그래서 종종 큰 부상을 입기도 했는데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그 잘 생긴 얼굴이 완전히 망가질 때다. <바닐라 스카이>(2001)에서는 교통사고로 심한 흉터가 생겼고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 녹아내리듯 얼굴을 변형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는 외계인의 공격으로 얼굴이 새까맣게 타버리기까지 한다.

흥미롭게 비틀기한 요소도 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 빌 케이지와 리타 브라타스키(에밀리 블런트) 병장은 뒤로 갈수록 서로에게 감정이 끌리지만 기본적으로 멘토와 멘티 관계에 충실하다. 막 스타로 발돋움하던 시기, 톰 크루즈는 영화 상에서 꽤 많은 멘토를 가졌었다. <컬러 오브 머니>(1987)의 당구 도박꾼 에디 펠슨(폴 뉴먼), <레인맨>(1989)의 자폐증 형 레이먼(더스틴 호프먼)과의 관계가 그러했는데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는 리타 브라타스키를 등장시켜 흥미롭게 변주하는 것이다. 살펴본 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그동안 톰 크루즈가 연기한 캐릭터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이 영화가 주는 익숙한 재미가 있다.  

맥스무비
(2014.6.16)

<엑스맨>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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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시리즈는 미국 내 소수자의 역사를 극에 적극 끌어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엑스맨>(2000)과 <엑스맨2>(2003)에서의 찰스 자비에와 매그니토의 관계는 흑인 인권 신장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그 과정에서 각각 비폭력과 폭력을 앞세운 마틴 루터 킹과 말콤X의 대립을 연상시킨다. 또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는 1960년대 당시 구(舊)소련의 쿠바 핵무기 배치와 이로 인한 미국과의 갈등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2023년, 즉 미래를 배경으로 오프닝을 열지만 일종의 시간 여행을 통해 1973년으로 돌아간다. 극 중 1973년은 케네디 암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젊은 매그니토(마이클 패스벤더)가 미 국방부 펜타곤에 수감된 지 10년째이면서 볼리바 트라스크(피터 딘클리지)가 베트남 전 해결을 위해 각국의 국방부 수장들이 모인 파리 회담에서 돌연변이 제거를 주창한 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매그니토도 트라스크 박사도 아닌 레이븐, 바로 미스틱(제니퍼 로렌스)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원안을 낸 매튜 본)이 미스틱을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얼굴 마담 격으로 내세운 이유는 당시의 미국 내 정치 사회적인 변화와 관련이 깊다. 1970년대의 미국은 베트남 전을 일으킨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이 하늘을 찌르던 가운데 여성의 사회 진출과 여권 신장이 활발히 이뤄지던 때였다.  

매그니토는 수감 중이고 젊은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는 하반신 마비로 실의에 빠져 있는 동안 돌연변이 동료들이 트라스크 사의 실험에 의해 희생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트라스크를 죽이기로 결심한 미스틱은 홀로 파리의 회담장을 찾는다. 그리고 돌연변이 제거 계획을 발표하는 트라스크를 미스틱이 공격하자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이 배경으로 카메라에 잡힌다.

가슴을 풀어헤친 자유의 여신이 바리케이드 위에서 시민군을 이끄는 그림처럼 온 몸의 라인이 그대로 드러난 미스틱은 탁자 위에서 트라스크를 위협하며 울버린(휴 잭맨)을 비롯해 주변의 남자들을 압도한다. ‘나를 따르라!’ 과연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시기였던 만큼 이에 착안한 브라이언 싱어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그림을 빌려 미스틱으로 대변되는 시대의 공기를 재치 있게 담아낸다.

맥스무비
(2014.5.30)

<피부색깔=꿀색>의 가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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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깔=꿀색>은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가 ‘사이좋게’ 어울리는 영화다. 애니면 애니, 다큐면 다큐, 특정 장르를 고집하지 않고 두 장르를 하나로 묶은 건 이 영화의 연출자 중 한 명인 융 전정식 감독의 성장 배경과 관련을 맺는다.

융 전정식은 1960년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벨기에의 가정으로 입양됐다. 금발머리, 파란 눈의 가족 사이에서 검은 머리와 눈을 가진 융은 생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트라우마를 안은 채 혼란한 성장기를 보냈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이 아니고, 벨기에인이면서 벨기에인이 아닌 이방인의 정서는 그로 하여금 가족에게, 친구에게, 주변 모두에게 반항하도록 만들었다.

그럴수록 더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융을 다잡아준 건 가족, 그중에서도 어머니였다. 심한 말썽을 피운 융을 향해 ‘썩은 사과’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아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지만 그녀에게 가족이란 기본적으로 국적도, 인종도, 성별도 따지지 않는 순수의 소우주다. 비록 생모는 아니지만 하늘이 부모에게 부과한 사랑이란 이름의 의무란 게 자식을 교육하고 보호한다는 것임을 그녀는 가슴으로 증명해 보인다.

가족은 비단 피로 맺어진 관계로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융 전정식 감독의 경우처럼 우리는 서로에게 모두가 가족이다. 각자 다름이라는 형태로 개인을 구성하지만 그래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가 하나의 작품에서 공존하듯 나와 너를 가르지 않는 가족애야 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분란과 갈등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맥스무비
(2014.5.16)

<한공주>의 무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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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민 전체가, 아니 일부 세력을 제외하면 무력감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와 같은 무력감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번 세월호 참사처럼 큰 사고가 터질 때면 무고한 희생에 가슴 아파하며 지켜주지 못한 마음에 눈물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공주>는 그런 한국 사회의 만성적인 무력감에 대한 영화다. 더 정확히는 허탈하고 맥 빠진 한국적 시선의 거리감을 다룬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그 후폭풍을 온몸으로 감내 하고 ‘있는’ 한공주(천우희)를 바로 옆에서 지켜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빠라는 사람은 딸의 딱한 처지를 악용해 돈푼이나 만져볼 궁리나 하고 학교는 그녀의 사정이 외부로 알려질까 쉬쉬하기에 급급하며 절벽으로 내몰린 공주를 보호해야 할 공권력은 방관으로 일관한다.

한국은 그런 사회다. 사회적 강자로 구성된 가해의 커넥션이 얼마나 경악스러운지 도움이 절실한 약자를 앞에 두고도 매번 책임 회피에, 제 밥그릇 챙기기로 일관할 따름이다. 그런 치들이 이 사회를 움직이는 기득권이란 사실에 느끼는 무력감은 고스란히 <한공주>의 시선에 반영되어 있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공주에게 밀착하기보다는 거리를 둔 채 그녀 혼자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를 지켜본다.

(스포일러 주의!) 영화의 결말, 견디다 못한 공주는 한강 다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때 <한공주>의 카메라는 다리를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바깥의 그녀를 비춘다. 지나가는 버스 안의 승객은 긴박한 상황을 목격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도가 없다. 다행히(?) 수영을 익힌 공주는 물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금 삶에 대한 의지를 찾고 물 위로 떠올라 헤엄을 친다. 하지만 카메라는 역시나 다리 난간에서 멀찍이 떨어져 안간힘을 쓰는 공주를 내려다 볼 뿐. 그리고 그 장면 위로 응원의 목소리가 오버랩 된다.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지만 더 이상 그런 현실을 연장해서는 안 된다.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면서도 고작 응원 밖에 할 수 없는 무력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행동해야만 한다. 무력감의 거리를 좁히는 것. 이 땅의 모든 ‘공주’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더 이상 가해의 커넥션이 작동할 수 없도록 약자끼리 연대하고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맥스무비
(2014.5.2)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스파이더맨과 아인슈타인이 도대체 무슨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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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항상 피터 파커(앤드류 가필드)의 부재한 부모의 과거 행적을 짧게 노출하며 문을 연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는  오스코프 사(社)에서 근무하던 피터의 아버지 리처드 파커(캠벨 스콧)가 중요한 파일을 복사해 이를 다운로드 하던 중 부인과 함께 비행기에서 변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피터가 스파이더맨이 되고 무수한 적들과 맞서는 그 기원에는 미스터리한 부모의 죽음이 자리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피터가 부모의 죽음과 얽힌 단서를 하나 둘 풀어가는 가운데 악당이 생기고 사건이 발생하는 구조다.

마크 웹 감독은 이에 착안해 거미줄처럼 이야기를 방사하며 이 시리즈를 이해할 만한 단서를 군데군데 뿌려놓는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다르게 피터의 방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수한 글과 사진 들이 벽에 붙어 있고 이를 줄로 엮어 놓은 피터의 방은 흡사 파커 부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수사 기관을 연상시킨다.

근데 그와 같은 자료 들 사이에서 뜬금없는 사진과 포스터가 눈에 띈다. 길게 혀를 내민 아인슈타인의 사진이나 <이창>(1954) <욕망>(1966) 등의 영화 포스터가 그것. 겉보기에는 고등학생이라는 피터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미장센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마크 웹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장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단서1. <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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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에서 피터의 방 벽에 걸려 있던 영화 포스터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 Rear Window>이었다. <이창>은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채 집에서 안정을 취하던 제프리(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카메라로 이웃을 엿보던 중 살인 사건에 연루되고 만다. 스릴러의 대가인 히치콕의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이창>은 슈퍼히어로물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마크 웹의 말을 한 번 들어볼까. “오스코프는 오직 노먼 오스본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설립된 회사다. 그는 끔찍한 병을 앓고 있다. 오스코프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담 부서를 만들었다. 문제는 그 해법이 정신 나간 짓이라는 거다. 노먼 오스본은 윤리적인 사람이 아니다.“ 마크 웹의 발언 중에서 우리가 <이창>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윤리’다

1편에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노먼 오스본(크리스 쿠퍼)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에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거의 반(半)시체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노먼은 아들 해리 오스본(데인 드한)에게 큐브 모양의 USB를 건네는데 그 속에는 그동안 병을 해결하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하던 전담 부서와 관련한 자료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에 연관된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리처드 파커. 노먼은 리처드를 고용하면서도 그를 몰래 감시하며 자료를 관리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크 웹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원작을 참고한 적이 있지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오마주하고 싶었다.” 마크 웹은 <이창>의 제프리를 모델 삼아 악의 버전으로 노먼의 캐릭터를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제프리가 휠체어에 앉아 몸을 보전하는 것처럼 노먼은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다. 또한 노먼은 제프리처럼 카메라는 없지만 대신 사람들을 고용해 직원의 사생활을 몰래 살피고 급기야 통제하려 했다.

다만 제프리의 비윤리적인 행동이 선의가 바탕에 되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과 다르게 노먼은 주변 인물들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결국엔 비극을 초래하고 만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1편과 2편 모두 피터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노먼이 설립한 오스코프의 본사 건물이 마천루로 즐비한 뉴욕에서도 한 눈에 보이는 108층 높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위압적일 뿐 아니라 감시와 같은 비윤리적인 행동이 용이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노먼에게서 발견되는 제프리와의 비윤리적인 행동의 유사성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배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 중 하나다. 이는 또한 피터의 방안에 매설해 놓은 특정 미장센을 찾아 상상력을 발휘해 숨겨 놓은 이야기를 따라와 달라는 마크 웹의 가이드라인이라 할 만하다.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말을 인용하자면, ‘지식보다 더욱 중요한 건 상상력이다. 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 그리고 바로 여기에 두 번째 단서가 있다.

단서2.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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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방 문 안쪽에는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고 있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단순한 아인슈타인 사진이었다면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겠지만 혀를 내밀고 있으니 그 우스꽝스러운 포즈 때문에라도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 주목해 달라는 얘기다. 역시나 스파이더맨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사진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는 피터가 과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는 점일 테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미드타운 ‘과학’고에 재학했었던 피터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과학도(徒)였다. 물론 연인 그웬 스테이시(엠마 스톤)이었다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인턴으로 근무하던 오스코프에서 커트 코너스(리스 이판스) 박사에게 과학에 있어서는 자신에 이은 전교 2등 학생이라고 피터를 소개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피터는 유전자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된 후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가는 장치 ‘웹 슈터’를 스스로 고안해낸 장본인이다. 그의 실력은 아니지만, 팔 한쪽을 잃은 코너스 박사가 도마뱀과 절름발이 흰 생쥐 간의 종간 교잡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아버지 리처드 파커가 노트에 작성했던 붕괴율 공식을 생각해내고 알려줘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 피터가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가 아인슈타인이었기 때문에 초상화를 방 문에 붙여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아인슈타인이 연상시키는 또 한 가지는 ‘상대성 이론’이다. 상대성 이론은 두 지점 간 속도 차이가 발생할 경우, 서로가 서로를 바라볼 때 생겨날 수 있는 현상에 대해 다룬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어떤 현상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예로 든다면, 스파이더맨이라는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도 이를 제대로 써먹을지 몰랐던 피터는 슈퍼마켓에서 놓아준 좀도둑이 삼촌 벤 파커(마틴 쉰)를 살해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책임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큰 힘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이 필요한 것처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세상에서는 스파이더맨이 적을 물리치면 더 많은 적이 출현하는 ‘상대성 이론’을 갖는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코너스 박사가 변신한 리저드 맨을 상대했던 피터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에 이르면, 일렉트로(제이미 폭스)와 그린 고블린(데인 드한), 그리고 라이노(폴 지아마티)까지, 무려 세 명의 악당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단서3. <확대>(혹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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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피터의 방에 걸려있던 <이창> 포스터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에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으로 대체됐다. <욕망>은 사진작가가 공원에서 배회하던 중 우연하게 남자의 시체를 찍으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다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선보이는 대신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지각 작용과 관련한 관념을 영상으로 옮기는 데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왜 제목이 <욕망>이냐고? <욕망>의 원제는 ‘Blow-Up’, 한국말로 직역하면 ‘확대’다. 뜬금없게도 <욕망>으로 국내에 소개가 된 배경에는 자극적인 제목을 통해 관객을 좀 더 모으려는 수입업자의 꼼수가 자리 한다. 그러니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욕망>이라는 제목을 버리고 <확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악당 수는 셋으로 ‘확대’되었다. 피터는 스파이더맨의 팬이었다가 그를 오해하게 되는 맥스 딜런, 즉 일렉트로를 상대해야 하고 유전병을 치료하기 위해 스파이더맨의 DNA를 필요로 하는 해리 오스본의 그린 고블린도 막아야 한다. 이 둘을 물리치고 나면 감옥을 탈출한 라이노와 새로운 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다. 이를 해결하더라도 산 넘어 산이다. 스파이더맨에 대항하기 위해 6명의 악당들이 결합한 ‘시니스터 식스’가 스핀 오프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싸움이 확대되는 형국을 예감한 메이(샐리 필드) 숙모는 피터에게 “비밀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충고를  한 적이 있다. 굳이 알려하지 말라는 주변의 충고를 무시하고 부모님을 죽음으로 몬 비밀을 파헤치려 한 대가를 피터는 톡톡히 치루는 것이다. 안 그래도 좀 바쁜 피터인가. 뉴욕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피터는 그 와중에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해야 하고 그웬과의 관계도 다시금 정리해야 하며 그를 버리고 떠난 부모님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3>(2016)에서 피터의 고민은 얼마나 늘 것이며 악당과의 싸움은 어느 정도 스케일로 확대될 것인지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한편으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잘 이끌던 샘 레이미가 늘어난 스케일과 물량을 감당하지 못해 <스파이더맨3>(2007)를 망친 걸 감안하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3>에 대한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마크 웹이 <이창> <확대>와 같은 포스터나 아인슈타인 초상화를 필요로 했던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은 악당에게 있어 쉽게 몸을 움직이기 힘든 결박이지만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마크 웹의 미장센은 관객에게 복잡한 양상을 해쳐나갈 생명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맥스무비
(2014.4.28)

<스파이더맨 2>와 에케 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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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은 여느 슈퍼 히어로와 다르게 얼굴 전체를 가면으로 가려 정체를 철저히 숨기려 한다. 아이언맨도 그렇지만 토니 스타크는 대중에게 자신의 슈퍼히어로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배트맨은 얼굴의 하관이 드러난 형태이니 눈썰미가 있는 이들이라면 정체를 파악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가면의 정체가 드러날 때다. 이를 미학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경우는 <스파이더맨 2>(2004)의 샘 레이미였다. 샘 레이미는 ‘에케 호모 ecce homo’의 개념을 적극 끌어 들여 스파이더맨을 설명한다.

에케 호모는 ‘이 사람을 보라’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스파이더맨 2>의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스파이더맨이기 이전 방세를 구하기 위해 피자 배달을 하는 ‘알바생’이었고 그로 인해 수업에는 늦어, 연애도 맘대로 하지 못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슈퍼맨과 같은 면모를 기대했던 대중에게 앳된 얼굴의 피터 파커는 ‘88만원 세대의 슈퍼히어로’에 다름 아니었다.  

대학생 피터 파커는 기성세대가 거미줄처럼 쳐놓은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연명하는 신세였다. 그러니 슈퍼 히어로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에케 호모의 또 다른 의미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박해 받는 예수’다. 영화의 결말, 폭주하는 지하철을 막기 위해 십자가에 몸을 기댄 형태로 이를 막아내는 스파이더맨에게서 박해 받는 예수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아니나 달라, 지하철을 막던 중 힘에 지쳐 정신을 잃은 스파이더맨은 닥터 옥토퍼스(알프레드 몰리나)에게 가시 면류관과 같은 철사에 묶여 해리(제임스 프랑코)에게로 전달된다. 해리는 아버지의 죽음이 스파이더맨의 책임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차, 가면을 벗기기에 이른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귀도 레니가 그린 <에케 호모>라는 그림이 있다. 그림 속 예수의 모습에서 기성세대에게 박해 받아, 친구에게도 배신을 당하는 피터 파커의 얼굴이 겹쳐진다면 너무 오버일까.

맥스무비
(2014.4.18)

<방황하는 칼날>의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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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정호 감독의 <방황하는 칼날>은 성폭행으로 하나뿐인 딸을 잃은 아버지 이상현의 복수를 다룬다. 관련해 흥미로운 캐릭터의 이름(들)이 등장한다. 성폭행을 일삼는 가해자 학생들 중 한 명인 ‘조두식’과 조두식에 대한 분노로 복수를 다짐한 이상현을 저지하겠다며 뒤를 쫓는 형사 ‘장억관’이다.

조두식이야 누가 보더라도 8살 여아를 강간 살해한 조두순을 떠올리는 이름이라 더 따지고 들 필요는 없지만 장억관은 좀 다르다. 일본 장르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억관’이라는 이름은 꽤 익숙하다. <용의자 X의 헌신> <탐정 갈릴레오> 등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포함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스텝 파더 스텝>,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 등을 번역한 이가 바로 양억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정호 감독은 서가의 책을 살피던 중 양억관이 눈에 들어와 장억관의 이름을 떠올렸다고 한다.

번역가와 형사,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디뎠지만 이들은 꽤 비슷한 성격의 고민을 안고 있다. <방황하는 칼날>의 장억관의 경우, 법을 위반한 이를 잡아들이는 것이 직업적 의무인 까닭에 이상현을 검거해야 하지만 그 자신 또한 부모 된 입장에서 상현의 심정이 십분 이해되고도 남는다. 번역가의 입장도 장억관처럼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언어로 된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옮기는 것이 맡은 바 사회 활동이지만 언어의 특성 상 번역은 창작의 영역에도 속하는 것이기에 딱 떨어지는 하나의 입장을 취하기가 난처한 것이다.  

거기에 바로 억관이 가진 이름의 뉘앙스가 존재한다. 이정호 감독의 입장에서는 오마주의 의도로 억관의 이름을 가져온 것이지만 우연처럼 맞아 떨어지는 직업윤리의 고뇌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방황하는 칼날>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이름을 살피는 것은 이 영화의 주제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할 만하다. 참고로, 상현의 이름은 거꾸로 하면 ‘현상’, 감독은 <방황하는 칼날>이 어떤 ‘현상’을 다룬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이처럼 확정했다고 말한다.  

맥스무비
(2014.4.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마담 D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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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는 개성 강한 캐릭터가 대거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를 꼽자면 단연 마담 D다. 살인 혐의로 쫓기는 주인공 구스타브가 누명을 풀어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에 자리 한 이 영화에서 살인의 대상이 되는 마담 D는 그래서 중요한 인물이다. 다만 극 초반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중요한 고객으로 등장하지만 곧 죽는 까닭에 그렇게 비중이 큰 건 아니다.

마담 D를 연기한 인물은 다름 아닌 틸다 스윈튼. 원래 마담 D의 오리지널 캐스팅은 <제시카의 추리극장>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안젤라 랜스버리였다. 그녀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연극 무대 스케줄로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웨스 앤더슨은 이에서 착안해 마담 캐릭터에게 D라는 이름을 붙여 마담 D로 확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출연 시간도 많지 않고 장시간의 특수 분장이 필요한 84세의 노부인 역할에 틸다 스윈튼을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3년 3월 23일, 뉴욕현대미술관 MoMA를 찾은 관람객들은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틸다 스윈튼이 예고도 없이 사방이 훤히 비추는 유리상자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틸다 스윈튼은 1995년 영국 런던의 서페타인 갤러리에서 8시간씩 유리상자 안에서 잠을 자는 퍼포먼스를 처음 선보인 이래 이렇게 기습적으로 종종 사람들을 놀래키곤 한다. 아무래도 유리상자 안에 누워있는 대상이 그 누구도 아닌 틸다 스윈튼인 까닭에 관람객들은 연기의 연장선상 개념으로 이 퍼포먼스를 이해하고는 한다.
     
마담 D의 캐릭터 역시 그런 경우다. 마담 D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이나 구스타브 클림트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의상보다 관에 누워있을 때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마담 D로 분한 틸다 스윈튼의 퍼포먼스 전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죽어 있는 시체에서도 살아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웨스 앤더슨이 굳이(?) 틸다 스윈튼을 캐스팅해가며 의도한 바가 여기에 있다. 죽어서도 살아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강력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 웨스 앤더슨의 안목도 뛰어나지만 가만히 누워있는 시체에서도 연기를 이끌어내는 틸다 스윈튼의 내공은 가히 대단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도리가 없다.  

맥스무비
(2014.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