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셜록 홈즈는 영국의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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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의 경우처럼 영국에는, 특히 런던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라이벌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소가 사방 천지에 널렸다, 까지는 아니고 좀 있다. 어, 그러니까 그게 어디냐 하면, 찾아보면 몇 군데 된다. 흠흠. 그중에서도 이곳만큼 점잖은 척 하면서도 교묘하게 프랑스를 깔아뭉개는 사례는 그 이후에도 목격한 적이 없었으니. 원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지라 셜록 홈즈 관련 장소를 빗자루 쓸 듯 구석구석 뒤지다가 우연찮게 발견한 곳인데 바로 머더 원(Murder One)이란 서점이다.

1988년에 문을 연 이곳은 오직 추리소설만 다룬다. 거짓말 살짝 보태 신작에서부터 헌책까지 현존하는 영문판 추리소설이란 추리소설은 없는 거 빼고 다 있을 정도로 추리소설 마니아들에겐 천국과 같은 서점이다. 물론 영어를 모르는 나 같은 순수혈통(아~ 마구 자랑스러워라 -_-)의 코리언들에겐 천국이 지옥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 <셜록 홈즈의 유언장>(Le Testament de Sherlock Holmes) 제목 아주 죽이는데 내용은 뭔지 도무지 모르겠구먼. 왜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아니라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괜히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삼매경에 빠져 앞뒤 분간을 하지 못하던 난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곤 <셜록 홈즈의 유언장>이 아서 코난 도일이 집필한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서가 한 편을 메운 홈즈 소설을 보니 <주홍색 연구> <바스커빌 가문의 개>와 같은 익숙한 제목은 약간이고 생전 처음 보는 제목들로만 가득한 것이 아닌가. 우째 이런 일이.

셜록 홈즈에 미친 놈, 즉 셜록키언들은 이런 소설을 일러 패러디, 즉 안작(贋作)이라고 부른다(고 런던에서 미술공부를 하는 지인이 설명해줬다. 그 친구 알고 보면 꽤 똑똑한 구석이 있다). 역사가 아주 깊어서 최초의 셜록 홈즈 안작소설은 1892년에 발표된 <페그람의 수수께끼>로, ‘진짜’ 셜록 홈즈가 왓슨과 짝짜꿍을 이뤄 맹활약하던 당시다. 그 후 코난 도일이 1893년에 발표한 <최후의 사건>에서 홈즈가 목숨을 잃자 그 충격에서 헤어나기 위해 팬들이 직접 안작소설들을 ‘마구잡이’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셜록 홈즈 소설의 하위 장르가 된 것이다. 얼마나 인기가 좋았던지 <Y의 비극>의 앨러리 퀸은 서른 두 편의 안작소설을 모아 <셜록 홈즈 앤솔로지>를 편집했을 정도다.

홈즈에 대한 영국민의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던지 머더 원에서 유일하게 취급하지 않는 작품이 있다. 바로 프랑스의 모리스 르블랑이 쓴 아르센 뤼팽 시리즈다. ‘괴도 신사 뤼팽’, ‘아르센 뤼팽 대 헐록 숌즈’ 등에서 셜록 홈즈를 천하의 바보 취급하며 그의 명예에 극심한 누를 끼친 작품은 영국인의 자존심을 걸고 판매하지 않겠다는 것이 머더 원의 방침인 것이다.

하지만B.U.T벗뜨! 프랑스인이라도 홈즈에 존경을 바치면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것이 머더 원의 입장이기도 한데 <셜록 홈즈의 유언장>을 보니 프랑스 소설가 봅 가르시아가 쓴 안작소설이 아니던가. 나중에 서울로 돌아와 우연한 기회에 <셜록 홈즈의 유언장> 한국어판을 발견하곤 얼른 구입했더랬는데 역시! 코난 도일이 쓴 소설에는 비할 바가 아니더라. 그에 비하면 미치 컬렌과 칼렙 카, 두 명의 미국인이 각각 집필한 <마지막 날들>과 <이탈리아인 비서관>은 얼마나 훌륭하던지. 그렇다면 이건 교묘한 방식으로 프랑스를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서려는 영국의 의도? 그러건 아니건 영국인의 문화 자긍심은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아무도 못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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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사보
(2009.5.25)

(5) 밀레니엄 브리지, 테이트 모던을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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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학도였던 지인이 런던 행을 택한 이유는 그림 공부 때문이었다, 고 한다. 내가 아는 그는 공부와는 담 쌓고 지내는 인간인데 아무래도 영국의 미술관 입장이 공짜인 까닭에 런던에 온 것이 확실하다. (영국의 주요 미술관은 2001년 12월부터 무료입장을 실시하고 있다!) 안 그래도, 내가 멋진 공연을 소개해달라고 하니 공연은 무슨 공연이냐며 돈 들일 필요 없이 미술관에나 가자던 그다. 내가 언제 제 돈 드려서 공연 보여 달라고 했나, 그냥 추천해 달라고 했지. 추측대로 런던으로 온 이유가 있었다. 암.

그래서 가게 된 곳이 바로 테이트 모던(Tate Modern) 역시나 이동하는 동안 말이 많다. 많이 가봤다는 거지 모. 하도 재잘대는 통에 바늘로 입을 봉하려 했는데 웬일인지 지인이 들려주는 생생한 미술관 얘기가 자못 흥미롭다. 그의 말에 따르면, 테이트 모던은 철저히 프랑스를 의식한 영국 특유의 자존심 발로에 따른 문화적 결과물이란다. 날로 명성을 얻어가는 파리의 퐁피두센터(Pompidou centre)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략적인 미술관이라는 얘기. 영국이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흥미가 동했다.

한참 열변을 토하던 그가 St Paul’s 역에 이르러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난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내렸다. 테이트 모던에 가기 위해서는 Blackfriars 역에 하차해야 한다고 가이드북에 쓰여 있던데 이런 멍청한 녀석이 한 정거장 미리 하차한 거다. 내가 런던에 처음 온 여행자라고 무시하는 거야, 나도 웬만한 건 다 안다고. 나 다시 지하철로 돌아갈래. 지인은 그런 나를 향해 ‘닥쳐!’라는 의미를 담은 눈빛을 한 번 쏘아붙인다. 그러더니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을 가로질러 약 5분여를 걷다가 유서 깊은 이 도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래형 컨셉의 어느 다리에 이르러 다시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이게 밀레니엄 브리지(Millennium Bridge)라고.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에 세워졌지. 하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어.” 국가정보원이 거대한 비밀을 털어놓듯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속삭이는 지인의 목소리가 맘에 안 들었지만 여기까지 참고 따라온 게 아까워 계속 들어주기로 했다. 

퐁피두센터가 들어서면서 파리의 대표적인 빈민가였던 마레지구가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것처럼 테이트 모던 역시 런던의 공장지구로 악명이 높았던 Bankside의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문화단지로의 이미지 쇄신을 꾀하려 했다. 문제는 공장지구였던 까닭에 고립돼 있던 데다가 정면으로 템스 강이 흐르고 있어 사람들이 쉽게 통행하기 불편했다는 것. 테이트 모던이 처음 문을 열 당시만 하더라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바로 밀레니엄 브리지란다.

미술관에 관객이 없다고 다리를 세운다? 미술관 알기를 돌처럼 여기는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었다. 그래서 더욱 지인의 얘기에 집중했다. 테이트 모던은 템스 강을 사이에 두고 세인트폴 대성당과 마주보고 있는데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밀레니엄 브리지다. 세인트폴 대성당은 런던의 주요 관광지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만 1년에 수백만에 달한다고 한다. 근데 밀레니엄 브리지가 생기면서 강북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강남의 테이트 모던으로 이동하는 사람이 수백만으로 증가했다고 하니. 그 결과, 지금은 퐁피두센터보다 더 많은 관람객이 찾고 있으며 현대미술에 있어서만큼 작품의 질은 테이트 모던이 압도하는 수준이란다.

지인은 이를 두고 발전적인 라이벌 관계란 바로 이런 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덧붙여, 자신 또한 같은 과에 다니는 일본인을 가상의 라이벌 삼아 발전적인 작품 활동을 모색 중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댄다. (-_-;) 유머라고 하기엔 그는 너무 진지했고 진심이라고 하기엔 내가 본 그의 작품은… (지인이 충격 받을 것 같아 차마 이 지면에 밝히진 못하겠다. ㅜㅜ) 역시 모든 현상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는 법. 영국과 프랑스의 라이벌 관계로 생겨난 발전적인 사례가 테이트 모던이라면 폐해는 고스란히 지인의 몫인 것 같았다. 나는 지인에게 언젠가 꼭 그의 작품을 테이트 모던에서 봤으면 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물론 입에 침을 바르지는 않았다.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 지음 | 21세기북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을 밝히면, 지인이 그림도 못 그리고 썰렁한 농담이나 나누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테이트 모던 얘기를 하면서 지인의 얘기를 빙자해 뻥을 보탠 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에 워낙 감명을 받은 탓이다. 이 책, 읽다보면 포복절도한다. 여행수필 중 가장 재밌다. 뭔 놈의 성격이 그리 고약한지 가는 곳마다 불평이요, 묵는 곳마다 불만이다. 물론 코믹한 문체 덕에 전혀 고약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요, 백미다. 그래서 빌 브라이슨의 문체를 따라해봤다. (만약 제가 쓴 글이 재미없다면 그건 순전히 제 탓이지 이 책이 재미 없어서가 아닙니다. 강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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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2010.7.6)

(0)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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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을 다녀온 지 올해로 벌써 4년째. 잊힐 법도 한데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2005년 2월 3일부터 2005년 7월 28일까지, 6개월 동안 유럽에서 한 일을 날짜 별로 기억할 정도다. 내 평생을 통틀어 매일 매일을 사건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될까. 유럽여행이 그랬다.

처음 계획을 짤 땐 영국에서 1년간 지낼 생각을 했다. 친구가 런던에 있었고 부족한 영어를 배우기에도 용이할 것 같았다. 사실 나의 통장잔고로는 비행기를 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래도 외국에 나갈 거라고 떵떵 떠들고 다녔다. 당시 근무하던 모 인터넷 신문사는 2년 넘도록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를 두고 주변에서 하도 놀려대던(?) 터였다. “집에 돈이 많은가봐. 돈 안주는 회사를 2년 넘게 다니고.” “헌혈도 한 번 해보지 그래. 가진 거 전부 줘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 같은데” 등등. 우씨, 오기심의 발로였을까. 거짓말을 해서라도 개인적으로는 회사 재정 문제로 영향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몰라)

속으로 맘 졸이고 있던 어느 날, 나의 영국행 소문을 들은 여행팀의 편집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유럽 가이드북을 기획했는데 내가 맡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앗싸! 제안을 덥석 물었다. 안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여행경비 굳었겠다, 가이드북도 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 다만 이번 여행이 업무라는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인생의 3분의 1을 도는 반환점의 시기에서 (그때 내 나이 서른둘) 인생 리셋까지는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안 그래도, 내 상황은 최악이었다. 월급은 안 나오지, 회사는 문 닫기 일보직전이지, 애인과는 헤어졌지, 집에는 빚쟁이들 찾아오기 일쑤지.

모든 걸 버린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내 인생의 서랍장에는 새로운 재료들로 채워지게 됐다. 그 기간 동안 내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여행의 진짜 목적은 자랑이다. 모든 여행자들은 자신의 여행담을 늘어놓기 좋아한다. 시중에 출간된 수많은 여행 수필 서적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이 작업을 미뤄왔다. 당시의 기억과 경험은 매일매일 적어두었던 네 권의 일기 속에 모두 기록돼있다.

오늘부터 매주 ‘유럽여행기’를 연재한다. 영국 런던에서부터 프랑스 파리까지, 유럽 11개국 52개 도시를 순회하며 겪었던 경험담을 공개한다. 덧붙여, 단순한 후일담이 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객관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으로 주제와 관련한 책 한 권씩을 소개한다. 혹시나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삼. ^^;  사진 허남웅 | 디자인 허남준



<론리 플래닛 스토리> 토니 휠러, 모린 휠러 지음 | 안그라픽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시아 여행을 하며 주머니에 남은 건 단돈 27센트. 27센트밖에 없는 배낭여행자 둘이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 ‘론리 플래닛’을 세웠을까. <론리 플래닛 스토리>는 론리 플래닛을 세운 휠러 부부 이야기다. 이들은 아무 것도 없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책을 만들었다. 여행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엇, 내가 여행 책을 낸다는 건 아니고. 이 책에는 두 부부가 만나 처음 여행을 시작한 후 론리 플래닛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기까지의 모험담이 여행기를 빙자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